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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님! 저희 왔어요! "
설 연휴가 되자 나와 윤아는 더 없이 바빠졌다.
큰 집이 대구에 있어서 경북으로 내려가야 했던 것.
차를 타고 4시간 가량 달려서 대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붉어져 산 뒤로 몸을 반쯤 숨긴 상태였다.
윤아가 집에 들어가면서 활기차게 외치자, 엄마가 손에 밀가루를 잔뜩 묻힌 채로 달려나왔다.
" 아유, 윤아 왔구나. 어서 와. "
윤알르 유독히 좋아하시는 어머니이기에, 이런 반응을 예상했지만 조금 섭섭했다.
오랜만에 보는 아들인데…….
" 나는 눈에 보이지도 않지? "
" 에이, 쯧쯧. 윤아가 왔잖니. "
이렇게 황당할 수가.
다시 서울로 올라 가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윤아가 내 팔을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 언니! "
그 때, 작은 방 문이 벌컥 열리더니 무언가(?)가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 연주 오랜만이네! "
고등학생이 놀 시간이 어딨어.
들어가서 공부해야지.
" 어이, 수험생? "
" 오빠! "
역시 고3한테는 수험생이라는 말이 가장 짜증나나 보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장난이었지만, 진심으로 싫어하는 듯 했다.
" 넌 네 새언니랑 놀러 못 가겠네. 나는 윤아랑 놀다 올건데. "
" 아빠! 오빠가 놀려! "
아직도 어린애 처럼 아빠한테 매달려서 고자질을 하는 연주.
윤아는 그녀가 귀여운지 작게 웃었다.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오니 이미 친척들이 많이 와 있었다.
" 안녕하세요. "
내가 인사를 하자 윤아도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 어, 그래! 연우 왔구나. 좀 앉아라. "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쇼파에 앉자, 윤아는 겉옷을 벗어놓고 주방으로 갔다.
임신한 몸으로 일을 시키고 싶진 않은데.
" 엄마! 윤아는 일 좀 빼주면 안돼? "
내가 쇼파에 앉아서 엄마에게 소리쳤다.
엄마는 무슨 소리냐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윤아는 괜찮다면서 손을 절래절래 저었지만, 나는 말을 계속 이었다.
" 윤아 애기 가졌는데. "
" 픕 - "
내 말에 온 가족의 행동이 멈추었다.
아버지는 한숨을 한 번 쉬고 내 어깨에 손을 올려 놓으셨다.
" 아들아. "
" 엉? "
" 니가 성인이고 결혼도 했다지만, 학교 가야하잖니. 무슨 생각으로 그런거냐. "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을 하시긴 하지만, 얼굴에는 이미 웃음이 지어져 있었다.
곁눈질로 윤아를 보니 엄마가 그녀의 엉덩이를 토닥여 주고 있었다.
" 휴학내고 과외하고 있어요. 일단 아기 가지고 보려구. "
" 언니 아기 가졌어? "
아, 연주야.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또 다시 방문을 열어 재껴 거실로 나왔다.
곧 수능 쳐야하는 애가 왜 이렇게 천하 태평이지?
" 아, 설날 때는 전부 놀거야. 3일만 놀고 공부할래. "
저러다가 망하지.
저런 정신상태로는 수능을 잘 볼 수가 없다.
연주에게는 미안하지만, 재수 해야겠구나.
" 새아가, 올해는 가서 쉬렴. 건강 챙겨야지. "
주방에서 윤아와 엄마의 대화가 들려왔다.
" 아니에요, 어머님. 음식 준비 할게요. "
" 그래, 동서. 올해는 우리가 할테니까 쉬어. "
형수까지 그렇게 나오니 윤아도 어절 수 없는가 보다.
죄송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윤아가 주방에서 빠져 나와 연주 방으로 들어갔다.
그걸 본 연주는 내 손을 이끌고 윤아를 따라 갔다.
" 언니! "
" 응? "
" 임신했어? "
아까 다 들었는데도 또 묻는다.
본인에게 들으면 느낌이 색다르다는 걸까?
그녀의 물음에 윤아가 기분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 오빠 변태. "
아빠한테 가서 변태라 하지 그러냐.
" 설아야. 이 설아. "
" 우와! 이름 예쁘다. 한글 이름이야? "
" 응. "
아직은 얼마 되지 않아 부르지 않은 배였지만, 멀리서도 내 아이의 심장박동이 느껴지는 듯 했다.
아기를 배에 품고 있는 윤아는 오죽할까.
연주가 책상 위에 턱 걸터앉아서 나를 째려보았다.
" 언니는 언제 올라나 - 이 소식을 빨리 알려야 하는데. "
누나가 오면 나를 놀릴게 뻔했다.
어린놈이 애 임신 시켰다고.
생각만 해도 끔직했다.
부디 늦게 오기를, 혹은 내일 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나는 윤아의 곁으로 갔다.
" 피곤하지 않아? "
차에 오래 타고 있어서 피곤할텐데 윤아는 웃으며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무래도 아기를 가지니 내가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듯하다.
항상 윤아가 먼저였고, 아기가 먼저였다.
" 좋은 아빠가 될런지 모르겠네. "
얘는 왜 옆에서 계속 태클을 걸어.
" 그건 자네가 걱정할게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수험생? "
" 아이 씨! 하지 말라니까? "
수험생 보고 수험생이라 하지 뭐라 해.
" 앉아서 공부나 하시지? "
" 오늘은 안 할거야. 내일도. 이제부터 이빠이 공부해야지. "
이빠이라.
오랜만에 듣는다, 이 말.
사투리는 아니지만 대구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
천지 삐까리라는 말과 함께 표준어를 쓰는 사람들을 당혹케 할 수도 있는 말이라서 잘 쓰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 언니 오면 다 이를꺼야. 오빠가 새 언니랑……. "
뭔가 대화가 산으로 가는 것 같아서 그녀의 입을 막았다.
제발 살려줘요, 동생.
" 야야. 하지마 진짜. 나 맞을거야. "
" 웅……. 응원 해줄게, 오빠. "
병주고 약주냐.
한창 대화가 진행되고 있을 때 방문이 열리면서 엄마가 과일을 들고 오셨다.
" 수험생은 공부 안하고 왜 잡담하고 있을까? "
역시나 잔소리 하실 줄 알았다.
연주는 울상을 지으면서 내 뒤로 와서 몸을 숨겼다.
윤아가 하는 짓을 똑같이 하고 있다.
" 오빠, 살려줘. "
나를 이때까지 놀렸겠다.
당해봐라.
내가 말을 하려는 찰나, 윤아가 내 옆구리를 꽉 꼬집었다.
속으로 소리를 바락 지르면서 작게 신음하자 엄마가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 하하, 엄마. 오늘으 서얼… 끄윽… 날인데 연주 하루만 쉬게 하지. "
" 흐음……. 아들이 그렇게 말하는데, 안 들어 줄수도 없고. 새 아가는 어떻게 생각해? "
" 네? "
윤아가 내 허리에서 손을 때고 능글맞은 웃음을 짓더니 대답했다.
" 저는 남편 말을 따를게요. "
잘도 빠져나가네.
윤아, 보기보다 잔머리가 뛰어나다.
가끔 윤아에게 감쪽같이 속곤 했다.
" 그래? 그렇다면……. 연주야 내일은 밤새거라. "
" 에에에? 엄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