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57)

[ 오빠 아내분, 꽉 막히신 분이네요. 이런말 하긴 그렇지만,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

내… 아내를 욕했어?

내 이빨이 뿌드득 갈렸다.

자기가 뭐길래.

어디가 그렇게 뛰어나길래 흠잡을 곳 하나 없는 윤아를 그렇게 판단하는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노릇이었다.

" 간다고 해요. "

내가 한 마디 하려 할때, 윤아가 눈에 오기를 가득 담고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화난 것 같았다.

내가 마이크를 손으로 가리고 그녀에게 괜찮겠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 됐고. 어디서 만날지 말해. 분명히 말해두지만, 나는 윤아랑 같이 간다. "

[ 그러세요. 내일 9시에 우리 처음 만났던 술집이에요. 늦지 않으시길 바래요. ]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다시는 보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매정하게 거절 못한 내 자신이 한심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윤아에게 미안했다.

" 미안해, 윤아야. "

" 아니에요. 이번 기회에 똑똑히 보여줘야 겠어요. 누가 이연우 여자인지. "

내 여자야 당연히 너지만, 무턱대고 갈 수는 없잖아.

게다가 정수연 말대로 그녀가 나에게 대쉬를 한적도, 고백을 한적도 없었기 때문에 억지스러움이 약간은 드러나 보였다.

그걸로 놀림감이 될 수도 있었고.

듣자하니 친구들도 오는 것 같은데, 보나마나 우리 가지고 장난 칠 것이 뻔했다.

"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오늘은 윤아랑 대구 거리를 거닐면서 이야기나 해야지 - "

내 말에 윤아의 얼굴이 펴졌다.

이쁘다, 우리 윤아.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 얼굴 찌뿌리지 마 -

그녀의 손을 잡고 앙상한 가지 밑을 거닐었다.

군데 군데 가로등이 애처롭게 빛을 던지고 있었다.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차들이 쌩 - 하고 지나가 귀는 좀 아팠지만, 행복했다.

언제나 내 곁에 있어주는 아내 덕분에.

괜시리 그녀의 손을 더 꼭 잡게 되는 나였다.

" 이렇게 걷다 보면, 서울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요? "

윤아가 문득 그렇게 말했다.

" 과거 보러 가? "

내 농담에 윤아가 킥킥 웃었다.

풀린 것 같아 다행이었다.

저번에 울고 나서 조금은 강해진 듯하여 마음에 상처를 덜 입는 윤아였지만, 아직 불안한 마음에 그녀의 감정의 흐름을 살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이잉 -

내 휴대폰이 울렸다.

또 누군가 싶어서 - 불안한 마음을 안고 -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확인하니 미영이었다.

좀 전에 통화해 놓고선? 

[ 신곡 나왔당 - 막장연예인♡ ]

왜 이제 말하는 거지?

윤아에게도 문자가 왔는지 열심히 키 패드를 누르고 있었다.

[ 이번 곡은 윤아랑 오빠를 모티브로 한 곡이라오 - 막장연예인♡ ]

나와 윤아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라…….

기대되는데?

인터넷을 뒤적거려 보니 제목이 [영원히 너와 꿈꾸고 싶다] 였다.

제목은 일단 5점.

노래는…… 나중에 들을거야.

" 영원히 너와 꿈꾸고 싶다라는 곡이네. "

" 제목 이쁘다. 영원히 저랑 꿈꿔요? "

윤아가 그렇게 말하며 내 팔을 꽉 껴안았다.

그래.

이렇게 영원히 꿈꾸면서 살자.

근데 혹시 이게 꿈은 아닐런지.

그런 회의가 드는 것도 숨길 수 없었다.

" 예쁘다 - "

봄이 아니더라도, 꽃이 피지 않았더라도 앙상한 가지가 가지는 특유의 매력이 윤아의 마음에 들었나 보다.

윤아는 항상 예쁜 걸 좋아해야지.

앙상한 가지는 안돼, 윤아야.

" 배는 고픈데 이렇게 걷고 싶구……. "

윤아가 배를 문지르면서 울상을 지었다.

나도 슬슬 배가 고파와서 그런지 발걸음이 느려지는 느낌이었다.

" 들어갈까……. 엄마가 밥 해놨지 싶은데. "

" 음……. 다시 걸어 가는 시간 있으니까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너무 늦지나 않을런지 모르겠네……. "

윤아의 걱정에 내가 고개를 끄덕여주고 발걸음을 돌렸다.

윤아가 밟았던 길을 내가 밟고, 내가 밟았던 길을 윤아가 밟으며 우리 뒤를 비추던 별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미 어둠은 피부 곁으로 스밀대로 스며 가로등만이 길을 보여주었다.

" 폭풍 같은 설이 지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

" 일상이나, 설이나 오빠만 있으면 나한텐 다 똑같아. 둘다 좋다구 - "

그렇게 말하는 윤아를 보고 웃어주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별이 밝았다.

서울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별들이 지방인 대구에서는 밝게 빛났다.

이런 별, 오랜만이다 -

" 저기 봐, 윤아야. "

내가 북극성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하자 윤아가 와아 - 하면서 미소지었다.

예쁜 윤아 같다.

" 저 별 가지고 싶어 - "

따, 따다 주고 싶지만 내 능력 밖이에요, 설아 엄마.

" 이걸로 대체 할께요. "

내가 그녀의 네번째 손가락에 끼여있는 반지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러자 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어보였다.

그녀의 손을 내 손에 깍지 끼우며 꽉 쥐었다.

따뜻했다 -

" 우잉……. 배고파요……. "

윤아가 울상을 지으면서 앙탈을 부렸다.

귀엽다.

내가 알겠다면서 발걸음을 빨리 하니 윤아는 거의 뛰다시피 한다.

" 그, 그 정도로 배고프진 않아! "

윤아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나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 설아! "

아, 설아.

잠깐 윤아의 뱃속에 설아가 있다는 것을 깜빡 했던 나는 미안한 표정으로 멈춰 섰다.

윤아가 숨을 고르면서 나를 째려보았다.

" 나빴어. "

" 열심히 운동해야지. "

" 으히. 그건 맞는데 땀 흘리는건 싫어……. "

윤아의 귀여운 말을 곰곰히 새기며 행복한 걸음을 부지런히 놀렸다.

윤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걸으니 집까지는 금방이었다.

" 들어가자마자 연주가 달려온다에 윤아를 걸지. "

" 에에? 왜 나를 걸어요! "

윤아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순진무구함이 윤아의 매력포인트 챕터 투 정도 되려나?

나는 거짓말이라면서 그녀의 손을 잡고 정문에 들어섰다.

" 어? 누나 찬데? "

앞에 회색 벤츠가 보였다.

불길하다.

누나가 왔다는 말은, 내가 질타와 함께 놀림을 받는다는 뜻이었다.

아버지도 동참할 것이 분명하고, 어른들도 말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윤아는 좋을거야.

설아를 품고 있으니까.

" 이연우 이제 큰일났대요 - "

윤아가 나를 놀린다.

밤에 보자구요, 여보.

나는 한숨을 쉬며 현관문을 열었다.

" 이이! "

역시나 연주가 달려나왔다.

보아하니 공부는 커녕 계속 누나와 잡담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 이제 오냐? "

누나다.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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