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27/57)

" 뭔가 우리 역할이 바뀐거 같지 않아요? "

하긴, 내가 술 먹지 말자고 한 건 처음인것 같았다.

역할 바꾸기 놀이 뭐 이런건가?

그런데 이 사태에 대해서 윤아는 약간은 좋다는 감정을 표하고 있었다.

' 맥주는 보리차다! '라는 준연의 외침이 귀에 멤돌았다.

맥주는 보리차지.

그래도 윤아는 보리차 마시면 취한다고.

자꾸 술이 있는 냉장고로 눈이 가는 윤아를 이끌고 카운터로 왔다.

뭐가 이렇게 많아.

언제 갖다 놓았는지 장난이 아니었다.

삑 - 삑 - 하는 바코드 찍는 소리와 함께 돈이 올라간다.

" 18000원 입니다. "

많이도 나왔다.

나는 돈을 지불하고 편의점을 나왔다.

" 오빠! 들고 가야죠! "

네가 들고와…….

할 수는 없겠지.

나는 한숨을 깊게 쉬고 다시 들어가 봉지를 두개 들고 나왔다.

꽤나 무겁다.

" 일년 동안 마음껏 부려먹으려구? "

" 히 - 기대해요. 배 부르면 더 시킬꺼니까. "

죽어 나가겠다.

윤아는 착하니까 쉬운일만 시킬거야.

" 빨리 타기나 하세요. 미영이 기다리겠어요. "

내 말에 윤아가 알았다며 손을 내젓고는 조수석에 탑승했다.

뒷자석에다가 봉지를 놓고 운전석으로 오니 윤아가 벌써 과자 하나를 뜯어서 먹고 있었다.

" 돼지. "

하면서 아내의 옆구리를 푹 찔러본다.

" 에에? 설아가 먹고 싶다고 했어요! "

윤아는 그러면서 설아 핑계를 댄다.

이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내가 기분 좋게 차를 전진시키자, 윤아도 즐거운가 보다.

편의점에서 미영이의 숙소까지는 그다지 멀지는 않았다.

차가 원래는 없는 거리에 평소보다 많은 차들을 빼면 바뀐 것 이 없다.

" 명절이 싫어……. "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윤아는 내 말을 듣고 안전벨트를 풀더니 볼에다가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 힘 내요, 남편. "

그리고는 그 달콤한 목소리로 내게 웃으며 속삭였다.

내가 알았다며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만족한듯 활짝 얼굴을 폈다.

내가 웃으면 웃는 윤아.

내가 울면 우는 윤아가 좋다.

" 빨리 빨리 움직엿! "

윤아가 앞에 차들에게 소리쳤다.

들리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 다 왔네요. 뭐가 그리 급해. "

" 히. 주차해야 되잖아요. "

윤아 말대로 주차를 해야 했다.

그냥 대충 세워놓고 올라가기로 마음먹고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 딱지 붙을텐데? "

" 안 붙어. 붙으면 어때. "

" 앗? 돈 나가잖아요! 절약해야지! "

절약해야 한다는 애가 염색으로 돈을 50000원이나…….

어쨋든, 우리는 그냥 올라갔다.

미영이가 청소는 해놨을런지 모르겠다.

현관에 다다라, 초인종을 눌렀다.

[ 띵동 - ]

경쾌한 벨소리가 복도에 울려퍼졌다.

[ 누구세요 - ! ]

" 날세. "

내가 중저음으로 낮게 깔아서 말하자, 문이 벌컥 열렸다.

부딪힐 뻔 했다.

" 왔네! "

미영이가 화장을 안 한 민낯으로 우리를 반겼다.

우리끼리 화장도 그렇커니와, 나는 화장보다는 안한게 좋았으니까 별로 싫지는 않았다.

" 미영아 - "

윤아가 쪼르르 달려가서 미영이에게 안겼다.

9시까지 신나게 놀아보자구.

신발을 벗고 집으로 들어가니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우리가 온다고 정리를 했나보다.

윤아는 이리저리 쏘다니면서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처음 와 보는 것도 아니면서 신기한듯 와아 - 하고 탄성을 지르는 윤아가 귀여웠다.

" 뭘 이렇게 바리바리 싸들고 오셨나. "

미영이가 내 짐을 받아 내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 그냥, 집에서 놀게 해주는 대가라고 해둘게. "

내 말에 미영이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고마운 눈치를 내게 보내었다.

내가 손을 절래절래 흔드니 윤아가 쪼르르 달려와서 우리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 보았다.

뭘 이렇게 의심하는 걸까.

" 무슨 이야기 했어! "

" 응? 너 흉 봤다, 왜! "

미영이가 그렇게 웃으며 장난을 걸었다.

윤아도 분한지 얼굴 가득 오기를 담고 미영이에게 달려들었다.

이렇게 놀다간 지치겠다 싶어서 급히 중재를 하긴 했지만, 두 사람은 아직도 진정이 되지 않는가 보다.

서로 마주보고 웃으면서 호시탐탐 장난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 20대 중반이 뭐하는 거야. "

내가 땅바닥에 걸터 앉으며 이렇게 말하자 윤아는 내 뒤로 와서 나에게 업혔다.

팔로 내 목을 감고는 앙탈을 부린다.

" 아아앙 - 간만인데에 - "

어찌 하지를 못하겠다.

내가 알았다면서 고개를 돌려 윤아의 볼에 입맞추자, 미영이가 이제 또 나를 째려보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봉착한 나는 애써 그녀의 눈초리를 피했다.

" 내가 왜 소개 시켜줬을까. 진짜 후회되네……. "

" 네가 소개 안해 줬어도 난 연우오빠 알고 있었거든! "

아, 또 부끄러운 이야기가 나올 듯한 분위기였다.

나는 전혀 자각하고 있지 못했지만, 사실 윤아와 나는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때는 서로 모르던 사이라서 그냥 얼굴만 알고 있었지만, 윤아는 내가 다니는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물론, 거짓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그 때 오빠 진짜 멋있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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