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28/57)

" 학생부 떴다! "

1학년 3반이 술렁 거렸다.

두 학생도 서로 멱살을 잡고 주먹다짐을 하다가 자리에 급하게 앉았고, 구경하던 학생들도 모두 자기 반으로 흩어져 버렸다.

몇 초 후, 교실 앞 문이 열리면서 고3 명찰을 달고 있는 학생 세명이 들어왔다.

그들의 팔뚝에는 검은색 띠가 둘러져 있었다.

[學生?府]

" 음……, 방금 싸운 분 누구신가? "

제일 앞에 키가 큰 소년이 그렇게 조용히 말했다.

전혀 위협적이지 않지만 압력이 가해지는, 그리고 말을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소년이 그렇게 말하고 잠시 기다려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 흠……. "

" 연우야 애들한테 물어보면 알 것 같은데. "

소년의 오른쪽에 서 있던 학생이 그에게 말했다.

연우라 불린 소년은 가만히 있으라 하고 교탁으로 가서 섰다.

" 에……, 뭐, 안 나오신다니까 그런걸로 치죠. 뒷 일은 책임 못 집니다? "

연우가 슬쩍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교실 안은 짝과 소근소근 이야기 하는 학생들 때문에 웅성거렸다.

학생부에서 일어나라고 하는데 거역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 1학년들이 들어온지 얼마 안되서 잘 모르나 본데요, 이러면 곤란해요. "

연우가 교탁을 탁탁치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좌우에 서 있던 학생들은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얼굴을 잔뜩 찌뿌리고 교실을 쭉 둘러보았다.

" 어이 너, 일어나봐. "

그 학생의 말에 중간쯤 앉아있던 여학생이 벌떡 일어났다.

얼굴에는 두려움을 한 가득 안고서 눈을 학생부와 눈을 맞추지 못하는 학생을 보고 연우는 한숨을 폭 - 쉬었다.

" 걔가 무슨 잘못 있다고 그러냐. 앉아도 돼. 다시 말합니다. 지금 학생들에게 물어서 알아내서 나오나, 알아서 나오나 똑같애요. 그러니 서로 번거롭지 맙시다. "

연우가 학생들을 쭉 훑어보고 말했다.

그래도, 반응이 없었다.

연우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얼굴을 잔뜩 찌뿌리고는 맨 뒤에 앉아있던 한 학생을 지목해 일으켜 세웠다.

" 얼굴에 상처가 있는데, 왜 그런거야? "

" 넘어졌……. "

짝 - 

그의 말 보다 학생부의 손이 빨랐다.

연우는 그저 팔짱을 끼고 그 광경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 살살해, 준연아. "

" 똑바로 말해라. 우리가 지금 장난하는 것 같냐? "

준연의 매서운 추궁에 학생은 얼굴을 파르르 떨다가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열중쉬어를 하고 땅만 바라본채 말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서 학생부의 위압감은 1학년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 죄송합니다……. "

" 너 싸웠지? "

연우가 준연을 제지하고 따뜻하게 물었다.

그 학생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우는 알았다며 말하고는 그 학생으로 하여금 자리로 들어가라고 했다.

" 입학한지 일주일이 갓 지났는데 벌써 다툼이 있네요. 공부하는데 지장이 있을 것 같아 심려됩니다. 고등학교에 올라왔으니 고등학생으로 바껴야 하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죠. "

연우는 그 말만을 남기고 그 반을 나와버렸다.

준연과 나머지 학생도 1학년 학생들을 잡아먹을 듯이 한번 째려보고는 그를 따라갔다.

1학년 반은 학생부가 사라지고 나서도 아무 말이 없었다.

.

.

.

그 일이 아니더라도 학생부는 항상 눈에 띄었다.

다수의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는 학생부는 연우를 중심으로 항상 활발히 움직였다.

싸움, 담배, 술, 연애, 장난 등 학교에서 있어서는 안될 일들을 귀신같이 잡아내곤 했다.

학생부 구성원들은 격하고 폭력적이었지만, 그들을 인솔하는 연우는 그렇지 않았다.

항상 미소짓고 다니면서 그들을 제지하고, 말리며 학생들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연우는 항상 여학생들에게 - 혹은 남학생들의 우상이 - 인기가 많았다. 

학생부가 뒤에서 욕을 먹어도 연우는 고마움의 대상이 되는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 된 것이었다.

" 어, 그, 앞에! 잠깐만 기다려봐. "

" 네? "

그 날은 연우와 윤아가 처음 만난 날이었다.

혼자서 걸어가고 있던 윤아를 연우가 급히 불러세웠다.

윤아는 연우가 학생간부라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혹시나 자신이 뭔가를 잘못했나 하는 두려움과 함께, 몰래 혼자서 이 연우라는 선배를 가슴 설레게 보고 있던 터라 기대감 또한 숨기지 못했다.

" 저, 일이 생겨서 그런데, 이것 좀 전해줄래? "

윤아가 그의 손을 바라보니 서류였다.

윤아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 3학년 교무실에 갔다 드리면 될거야. 이름이……, 윤아구나. 그래. 수고 좀 해줄래? "

" 네……. "

연우는 고맙다면서 산뜻한 미소를 지어보이고 윤아의 눈에서 사라졌다.

그가 보이지 않게 될 때 까지 윤아는 붉어진 볼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히익! "

그러다가 심부름 늦게다는 생각에 3학년 교무실로 뛰었다.

" 그 때 내 이름 외울것 같이 말해 놓고는 처음 본 사람처럼 대했지? "

" 그, 그거야……. 예의상 그랬던 거지! "

미영이의 유수와 같은 말을 듣고 나니 많이 부끄러워졌다.

윤아는 그 때 일로 나를 놀렸다.

내가 잘 못 한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

아리쏭했다.

미영이는 나빠, 나빠 하면서 혀를 쯧쯧 차며 과자를 신경질적으로 씹고 있었다.

졸지에 죽일 놈이 되어버린 나는 허탈한 표정으로 윤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장난이 재미있었던 건지 활짝 웃으면서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 장난이에요, 장난. 그때 얼마나 설렜는지 알아? "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어쨋든 우리의 만남이 보통 만남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 배고프다, 배고파 - ! "

윤아가 소리쳤다.

누가 보면 밥도 안주는 줄 알겠다, 윤아야.

하지만 미영이는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의 배가 울부짖고 있다는 소리를 그냥 넘기지 못하겠는지 일어서서 주방으로 타닥타닥 걸어갔다.

식사를 준비 할 분위기였다.

" 미영이 힘든데 밥 준비하는거 아냐? "

나는 그녀가 걱정되어서 윤아에게 속삭였다.

그제서야 윤아도 약간은 미안한지 어쩔줄 몰라했다.

나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며 윤아에게 말해 놓고 미영이를 따라 주방으로 갔다.

" 너 힘든데 뭐 하러 밥 하려고 해. 괜찮으니까 이리로 오세요. "

" 에헤이, 윤아 배 고프다잖아. 먹을게 없어서 걱정이네. "

미영이의 말에 윤아도 거실에서 벌떡 일어나 이리로 쪼르르 달려왔다.

그리고는 그녀의 팔을 잡고는 자신이 있던 곳으로 끌고 갔다.

" 괜찮다네, 윤아가. "

내 말에 미영이는 약간은 찜찜하다는 표정으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아, 맞다 미영이 노래 들어봐야 되는데. "

영원히 너와 꿈꾸고 싶다 라는 끌리는 제목의 노래.

게다가 나와 윤아의 해피 스토리를 담은 미래지향적 노래라는 말에 나의 온몸이 그 노래를 원하고 있었다.

미영이는 이상한 웃음을 지으면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더니 앨범 두장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각각을 우리 부부에게 나누어 주면서 멋지게 사인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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