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 함께 꿈꾸면서 사시길 바라네 ㅡ ]
라는 문구와 함께 말이다.
미영이의 사진이 커다랗게 찍혀 있는 앨범을 뒤집어 보니 곡에 대한 설명이 쭉 나와 있었다.
티파니 라는 가명을 쓰면서 연예계를 빛내고 있는 미영이.
그녀가 세삼스레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 폭발적인 가창력, 풍부한 음성으로 대한민국 연예계를 뒤흔든 티파니의 3번째 미니앨범. 티파니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의 행복을 바라면서 직접 작곡에 참여했다. 영원히 함께 꿈꾸어야 한다는 아름다운 말을 남기면서 곡을 완성한 그녀와 작곡진은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하며 이 앨범을 낸다. ]
" 감동이야……. "
윤아가 그 글귀를 보고는 눈을 초롱초롱 하게 뜨고 미영이를 바라보았다.
미영이는 쑥쓰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내 손에서 CD를 빼앗아 갔다.
그리고는 CD플레이어에 넣고는 스피커 볼륨을 높혔다.
[ 영원히 너와 꿈꾸고 싶다. ]
미영이의 목소리가 낮게 깔려서 흘러나왔다.
음이 아니라 그냥 말하는 투여서 조금 더 긴장감을 느낄 수 있고 몰입 되는 기분이었다.
내가 웃음 지으며 미영이를 바라보니 만족한듯 눈을 감고 자신의 곡을 감상하고 있었다.
나도 그녀를 따라 눈을 감아보았다.
윤아가 보인다.
따뜻한 햇볓이 흘러내리는 나른한 오후, 우리 둘은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에 앉아 있다.
그녀와 이어폰 한쪽 씩을 귀에 나눠 끼고는 노래에 따라 흥얼거린다.
행복해 보인다 -
우리 두 사람의 손은 평생 떨어지지 않을 듯이 굳게 이어져 있다.
[ 기분 좋은 바람을 따라
눈이 부신 저 하늘 아래
아름다운 노래와
좋은 향기로 가득한
너와 걷는 길 ]
미영이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윤아가 몸을 천천히 움직이며 노래를 감상하고 있었다.
눈을 감았을 때 보았던 것처럼 그녀의 갸녀린 손을 한 번 잡아본다.
그녀의 웃음에 나도 웃고, 힘이 들어간 서로의 손을 느끼며, 아른거리는 과거를 회상한다.
[ 기억하니 처음 만났던
어색하고 낯선 시간들
서툴고 어렸던 날
그저 말없이 지켜준
네게 고마워 - ]
하이라이트를 알리는 마지막 가사는 우리의 가슴을 치고 허공으로 날아갔다.
아름다운 멜로디가 우리 위에 떠 다녔다.
[ 지쳐있던 가슴이 다시 숨쉬고
가난해진 마음이 빛을 찾았어
영원토록 이렇게 너의 손잡고
같이 걷고 싶어 -
우리 둘 만의 세상에
사랑하는 내 사람과 함께 - ]
내 가슴이 지쳐 있을 때 한 줄기 빛이 되어준 그대.
사랑에 아파하며 울부 짖을 때 한 장의 손수건이 되어 나를 달래준 그대.
그대와 함께 손잡고 평생을 걸어가고 싶어요.
우리 둘만 있는 세상에서, 사랑하는 그대와 함께.
[ 짧지 않은 그 시간 동안
잊지 못할 많은 기억들
웃음과 눈물 속에
언제나 날 믿어준 건
바로 너였어 - ]
절정의 여운을 다 느끼기도 전에 다시 또 다른 절정이 우리를 덮쳐 왔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노래에 나는 미소를 머금고 다시 한번 윤아의 손을 꽉 잡았다.
미영이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 혹은 우리 하는 짓이 웃겼나 보다 - 계속 해서 실실대고 있었다.
[ 지쳐있던 가슴이 다시 숨쉬고
가난해진 마음이 빛을 찾았어
영원토록 이렇게 너의 손잡고
같이 걷고 싶어 -
우리 둘 만의 세상에
사랑하는 내 사람과 함께 - ]
" 노래 좋다……. "
윤아가 눈을 뜨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도, 미영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보니, 윤아 특유의 싱그러운 웃음으로 우리를 응시한다.
[ 아무도 우릴 방해하지는 않아
시간에 쫓겨야 할 이유도 없어 -
(우리 가끔씩은) 때론 멀리 있어도
(같은 마음으로) 같은 마음 하나로
같은 꿈을 꿀 수 있다면 - ]
그렇지.
아무도 우리를 방해하지 않고 - 정수연만 빼면 - 시간에 쫓길 필요도 없다.
어디에서든 항상 같이 같은 꿈을 꾸자고 다짐해 본다.
몸이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함께 하자고, 나는 항상 윤아의 마음속에 존재할 것이라고 다짐해 본다.
[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지나서(아주 오래 지나서)
너와 나의 모습이 조금 달라도(조금 달라도)
영원토록 이렇게 너와 둘이서 꿈을 꾸고 싶어
나의 소원이 되어준 나의 믿음이 되어준 너와 - ]
미영이의 가창력이 극에 달할 때였다.
깔끔하고 웅장하게 고음을 처리해 버린 미영이가 다르게 보인다.
항상 내게 앙탈 부리고 짜증내고, 틱틱 거리며 장난걸던 미영이었지만, 이제는 한 사람의 여인으로, 티파니라는 공인으로 떳떳하게 사회에서 서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 한 켠이 뿌듯해 지는 것을 숨길 수가 없었다.
내게 때 쓰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지나서(오랜 시간이 흘러서)
너와 나의 모습이 조금 달라도(조금은 다를지라도)
영원토록 이렇게 너와 둘이서
꿈을 꾸고 싶어 -
나의 기적이 되어준
나의 꿈을 함께 해준 너와 - ]
이대로 평생 눈 감을 때 까지 평범하게, 그리고 알콩달콩 사랑했으면 좋겠다.
[ 오랜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너와 꿈꾸고 싶어 - ]
나와, 영원히, 꿈꾸자, 윤아야.
" 우이……. 고마워, 미영아……. "
윤아가 미영이에게 쪼르르 달려가 그녀를 꽉 안았다.
미영이는 아니라면서 고개를 내 젓고는 윤아의 등을 토닥였다.
두 사람의 우정이 함께 하길 빌면서, 나는 다시 한번 앨범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내가 달래주기도, 위로해주기도 너무 커버린 우리 티파니 양, 고마워요.
목까지 이 말이 올라왔지만, 참았다.
미영이가 눈물을 흘릴 것 같아서.
그렇게 커버린 미영이였지만 누구보다 여린 아이라는 것을 잘 아는 나이기에, 나는 참았다.
그 대신, 나는 그녀를 고마운 눈길로 바라 보았다.
" 대박 나면 한 턱 쏘지 - 영감을 오빠랑 윤아한테서 얻었으니까. "
그래.
다시 한번 고맙다, 미영아.
미영이를 한참 우월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혹시 정수연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약간 얼굴이 찌뿌려졌지만, 처남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나였다.
" 여보세요? "
[ 자형! 언제 오세요? ]
결혼 생활 동안 항상 같았던 명절 패턴.
대구에 갔다가 설 당일에 장모님을 뵙고, 하룻밤 자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
처남이 그것을 놓칠리가 없었다.
" 잘 모르겠어. 11시쯤 안 들어갈라나? "
[ 엥? 왜 그렇게 늦게 들어오세요? ]
음, 일이 있어서 말이지.
그것도 아주 큰 일이 있어서…….
가만.
잘 생각해보니 이 녀석을 이용하면 정수연을 만날 때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내 얼굴에서는 이미 승리의 미소가 번져 있다.
" 잠깐만. 네 누나 바꿔 줄게. "
그 말과 함께 나는 휴대폰은 윤아에게 넘겨 주었다.
윤아는 동생이라는 말에 활짝 웃으며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 응, 현아-! "
[ 요, 누나. 왜 안 들어와? ]
" 약속이 있어서. 너 또 오빠한테 돈 받으려고 그러지? "
윤아의 말에 정곡을 찔린듯 윤현이는 잠깐동안 말이 없었다.
그랬단 말이지, 처남?
두고 봐.
속으로 그를 벼르면서 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
생각해보니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윤현이와 친구들과 함께 약속장소에 가면 우위는 우리가 잡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부푼 나는 빼앗듯 윤아에게서 휴대폰을 가져왔다.
왜 윤아에게 준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여하튼 나는 처남에게 물어보았다.
" 오늘 시간 있어? "
[ 어? 다시 자형이네. 네, 저야 뭐 넘치는게 시간이죠. ]
자퇴 한게 자랑이다, 이 자슥아.
" 뭐야, 뭐야 - 나도 궁금해 - "
진지한(?) 통화를 하고 있는데 미영이가 옆에서 보챈다.
윤아랑 놀아.
내가 턱으로 윤아를 가리키자 치 - 하는 말과 함께 나를 째려본 미영이는 혀를 쏙 내밀었다.
" 베에 - "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란다, 미영아.
" 그러면 우리랑 약속 장소 같이 갈래? 네 친구들 부르면 더 좋고. "
"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가, 갑자기 이렇게 막 끼워도 되는 자리에요? "
아니. 가 아니라 응.
" 괜찮아. "
도저히 도와 달라는 말은 못 하겠다.
윤아랑 트러블이 있어서 정수연이라는 여자가 우리에게 눈엣가시가 되었다 라는 말 한마디면 바로 처리가 가능하겠지만, 일이 크게 번질 것 같아서 참았다.
그리고는 같이 만나서 한번씩 분위기를 잡아주면 된다는 말로 대신했다.
[ 알겠어요, 그럼. 친구들은 모르겠고 일단 저는 갈게요. ]
윤현이가 온다니 약간은 안심이 되었다.
그가 옆에 있는 것 만으로도 우리의 언행을 활발히, 그리고 자유로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약간은 안심이 되었다.
" 그럼 8시 쯤에 보자, 우리. "
[ 예. 전화 드릴게요. ]
통화를 끝내고 윤아를 바라보니 걱정스러운 눈빛이었다.
이제야 마음 잡고 조용히 있었는데 큰 일로 번져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일 것이다.
윤현이가 다시 망나니가 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방관하고 있지는 않겠다고 맹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