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휴……. 정수연이 뭔지……. "
윤아의 입에서 나온 말이 강하게 내 귓전을 때렸다.
괜시리 또 미안해진다.
잠깐 잠심하니 제일 가슴이 쓰라리고 안쓰러운 것은 윤아였다.
어떻게 보면 두 여자 사이에 끼어 있는 내가 제일 힘들어 보이지만, 윤아만 하겠는가.
남편이 외관 여자와 엮기는 것을 바라보는 아내의 마음, 다 알지는 못하겠으나 약간은 이해가 간다.
그러니, 나는 윤아와 함께 정수연이라는 여자를 잊어야 했다.
# (시점 변화. ★은 큰 화면 변화에 쓰입니다.)
현이가 오면 약간은 안심이지만, 그래도 오빠가 걱정되었다.
내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다시 한 번 그 여자와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해 진 것이다.
그래서, 살며시 오빠의 옆으로 가서 그의 든든한 팔을 감싸 안아 보았다.
태연한 척 하는건지, 당당한지는 모르겠지만 웃는 얼굴로 내 어깨를 감싸 안아 주는 오빠.
베시시 웃음이 나오는 것을 막지 못하겠다.
정말 오빠한테 미쳐버린 것 같다.
미영이를 바라보니 이상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 왜, 왜! "
" 좀 떨어져! 솔로는 서러워서 어디 살겠나……. "
미영이의 말에 팔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내 팔에 힘이 빠지는 대신 오빠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 내 아내야 내 아내. "
히 -
나는 이연우의 아내.
또 웃음이 난다.
조증에 걸렸나?
연우오빠 옆에 있으면 항상 웃게 되고 행복해졌다.
진짜, 그를 사랑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정수연이라는 여자는 우리 관계에 있어서 꼭 없어져야 할 존재였다.
오늘 본때를 보여 줘야지.
★
미영이는 우리가 갈 시간이 되자 아쉬운 감정을 아낌 없이 드러냈다.
나도 아쉬워…….
미영이랑 떨어지기 싫단 말이야….
" 누나! "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빠의 손을 꽉 잡고 길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현이가 나를 부르며 뛰어왔다.
그대로네, 우리 현이.
" 어, 처남, 왔네. "
오빠의 말에 현이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고, 나는 그냥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더 멋있어 졌네.
" 오랜만일세, 임 여사. "
나는 까치 발을 들어서 동생의 머리를 쥐어 박았다.
어떻게 동생이라는 놈이 한번도 안 찾아와?
" 아! 왜 때려! "
" 얼굴 좀 보고 삽시다. 예? "
내 말에 오빠가 웃긴듯 허허 하고 웃었다.
" 그나저나 무슨 일이에요? "
현이의 물음에 오빠가 약간 머무석리다가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 얼마 전에 정수연이라는 여자 애랑 같이 술을 먹었거든. 그리고는 땡인 줄 알았는데 전화 오고 학교에서 아는 척 하고 그러더라고. 윤아가 그러는 거 싫대서 뭐라 그래도 계속 그러네. 오늘 술 먹자고 전화 와서 윤아랑 같이 가는 거야. 혹시 몰라서 너 부른거고. "
" 쳐 죽일 년이네. "
씁 -
나는 손에 힘을 주어 다시 한번 현이를 때렸다.
그런 말은 하는게 아니야, 동생.
" 말! "
" 아, 미안. 흥분해서. 어쨋든 걔 어딨어요? "
현이가 팔 걷어 붙히고 도와줄 것 같아서 든든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 됬다.
일을 크게 벌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 그냥 분위기만 잡아주면 돼, 처남. 너무 몰지는 말고. "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 세사람은 길을 걸었다.
기다려라, 정 수연 - !
9시가 다 되어가자 우리는 걸음을 조금 빨리 했다.
늦으면 또 꼬투리 잡혀서 공격당할 수도 있으니…….
윤아는 약간은 긴장이 되는듯 연신 침을 꼴깍 꼴깍 삼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와는 다르게 처남은…….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듯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태연한 척을 하는건지, 진짜 아무렇지도 않은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저거 아니에요? "
현이가 말했다.
그가 가리킨 곳을 보니, 정수연과 내가 처음 만난 술집이었다.
바뀐게 전혀 없었지만, 알싸한 술향기가 벌써 부터 나는 듯 했다.
" 으잉……. 와 버렸어……. "
윤아가 울상지었다.
내가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싸고 내 쪽으로 끌어당기니 나를 꽉 안았다.
무슨 전쟁 나가는 것 처럼 이렇게 하는 것도 웃기거니와, 처남이 보고 있다는 생각에 금방 땐 탓인지 윤아의 몸은 떨리고 있었다.
[ 띠링 - ]
유리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가자,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설날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 대부분 친구들인 것 같았다 - 술을 들이키고 있었다.
눈으로 쭉 훑어 보니 아직 정수연은 오지 않은 것 같았다.
" 저, 이연우 씨 되시는가요? "
그 때, 내 이름인지를 물어오는 직원이 있었다.
고개를 끄덕여 보이니 그 직원은 따라오라는 말과 함께 우리를 술집 제일 안쪽으로 이끌었다.
" 기다리고 계십니다. "
얼마나 돈이 많길래…….
한 눈에 봐도 vip 룸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 와우. "
현이도 감탄했는지 이리저리 둘러보며 눈을 굴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수연과 친구들이 술잔을 펴넣고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대여섯명 정도로 보이는 그들은 얼굴이 이미 벌개져있었다.
얼마나 마신건지 모를정도로 취한 것 같은 그들과 눈이 마주친 나는 똑바로 쳐다 보았다.
" 오셨네요? 앉으세요. 가만. 남자분은…? "
" 처남이야. 설.날. 이니까 윤아랑 같이 있는게 당연한거라 생각해서. "
내 말에 뒷통수를 맞았다는 듯이 정수연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착석하자, 술이 돌아왔다.
윤아는 술을 마시면 안되니까…, 내가 다 마셔주지.
나는 내 술잔을 한번에 들이키고 연이어 그녀의 술잔도 비워버렸다.
" 뭡니까? "
그 광경을 본 정수연의 친구가 날카롭게 따졌다.
아마 자기 친구의 술잔을 가로챘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 제 아내가 임신을 해서요. 술을 마시면 안되네요. "
" ……. "
벌써부터 분위기가 가라 앉았다.
윤아로서는 견디기 힘든 업악감이였는지, 내 손을 주물럭 거리면서 안절부절 못한다.
" …임…신을 했는데 왜 데리고 온 거에요? "
정수연이 물었다.
" 술집에서 술을 꼭 마시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했어. 이야기나 나누자는 거지. 왜? "
" 아니에요. "
다시 정적.
이런 상황… 죽어도 싫었다.
금방이라도 윤아를 데리고 뛰쳐 나가고 싶었지만, 그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 술집이 술 마시라고 있는 곳이지, 이야기 하라고 있……. "
" 아! 거 참 좀 조용히 합시다! "
나이스, 처남.
속이 다 후련하다.
윤현이가 참지 못했는지 술잔을 힘껏 잡으면서 그렇게 쏘아 붙였다.
" 왜들 이래요. 즐겁게 모인 자린데. 이야기나 나누자구요. 아, 그리고 윤아씨. 임신 축하드려요. "
" 네……. "
정수연이 대충 상황을 정리하자, 그녀의 친구들과 처남은 그냥 묵묵히 술만 들이켰다.
수연은 오늘도 매혹적이었다.
모든 남성들이 한번쯤은 눈을 돌릴만한 패션에, 특유의 생김새까지.
게다가 저번과는 다르게 술이 들어가도 계속해서 차가운 말투였다.
시크한 여자 컨셉인가?
" 오늘 제가 이렇게 여러분을 번거롭게 한 까닭은 바로 윤아씨 때문이에요. 오해가 조금 생겨서. "
윤아…때문이라고?
전혀 그럴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게 정수연의 계교인지, 아니면 우리가 생각을 잘 못 한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당황한 것은 확실했다.
윤아도 주물럭 거리던 손을 멈추었다.
" 윤아 씨는 제가 연우 오빠랑 친하게 지내는 거… 탐탁치 못하게 여기고 계시죠?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