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1/57)

윤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얼굴만 붉혔다.

" 뭐, 그렇다고 알아둘게요. 윤아 씨 입장에서 생각해봤습니다. 저도 그럴 거라는 결론에 닿았구요. 그리고 저는 그런 불륜을 저지를 사람이 아닙니다. 가문도 가문이거니와, 제 성격상 말이죠. 안심하셔도 될 것 같네요. "

" 네……. "

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훈훈한 분위기로 가고 있어서 조금은 의아했다.

물론 정수연의 옆에 있는 친구들은 얼굴을 전부 찌뿌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 저기요. 얼굴 좀 피쇼. "

적절한 타이밍에 현이가 파고 들었다.

술이 많이 들어갔는지 그들은 발끈해서 탁자를 쾅- 하고 내리쳤다.

" 왜 자꾸 시비야! "

" 아, 시끄럽네. 조용이 해요. "

" 이 새끼가……. "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수연이 중재작업을 했다.

적절하지만, 적절하지 않은.

" 그만해. 윤아씨 동생분도 참아주시구요. 어쨋든 제가 할 말은 다 드렸습니다. 연우 오빠랑 그냥 친하게 지내고 싶을 뿐, 이성으로서 어떤 특별한 감정은 느끼지 않는다는 것. 안심하시고 마음을 열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 …… 알겠어요. 제 속이 너무 좁았던 같네요. "

윤아야?

너… 바꼈다.

윤아의 변화에 새삼 놀라며 나는 수연을 바라보았다.

웃고 있었다.

오해가 풀려서 웃는 것은 절대 아니리라 판단한 나는 가식적인 웃음을 짓는 그녀가 역겨워 졌다.

착한 윤아를 놀려먹고, 희롱하는 그녀.

" 나쁘지 않네. 사실 조금 놀랬다. 네 목적이 뭐가 됬든 윤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

" 그런 딱딱한 말 안 써도 되요. 벌써 잊어버리신 거에요? 방금 말했잖아요. 그냥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다른 의도는 없어요. "

하아…….

이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중이다.

윤아의 표정을 보니 예상외로 담담했다.

놀라울 정도로 말이다.

" 알았어. "

" 다시 시작한다 생각하고 친하게 지내봐요, 오빠. 정말 진심으로. "

내 마음이 흔들리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내 마음속에서 거부감 보다는 환영이 더 커지는 것 같았으니까.

윤아는 모르지만 나는 분명히 수연과의 제대로 된 친구가 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 이런 분위기는 조금 안 맞다고 생각되네. 네 친구들도 너무 많이 마신것 같고. 조만간 다시 보는게 좋을 것 같아. 우리도 들어가봐야 되서. "

" 아! 네, 물론이에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윤아 씨. "

수연이 대뜸 윤아에게 다시 말했다.

윤아도 이번에는 어찌 된 일인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나중에 뵈요, 수연 씨. "

" 정말 괜찮겠어, 윤아야? "

" 응! 괜찮아. 난 오빠를 믿으니까. "

윤아가 그렇게 싱그러운 웃음을 보여주며 내 손을 꽉 잡았다.

윤아야…….

" 내가 아는 임윤아는 질투가 많은데 말이지 - "

현이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로 그렇게 말하는 현을 슬며시 본 윤아는 살벌한 미소를 지으면서 뒤통수를 후렸다.

" 아! "

" 시끄러워요, 동생? "

" ㄴ,넵. "

방금 전 까지 심각한 분위기에 묻혀서 기를 펴치 못했던 우리 세 사람이었지만, 수연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더 없이 자유로워 졌다.

윤아의 손을 꽉 잡은 나는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 히 - 왜 그렇게 쳐다봐요. 부끄럽게. "

아니야, 아니야.

너무 예쁘고 기특해서 그래.

" 집에 들어가면 엄마가 밥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겠지? "

" 밥은 무슨. 바로 자야지, 이놈아. "

윤아의 말에 처남은 시무룩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방금 전 까지 술을 마셔 놓고는 또 밥을 먹는다고 뭐라 하는것 같았다.

윤아는 살 찌는 것을 싫어하지만 현이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내에게 작게 말했다.

" 남자는 많이 먹어야 돼. 게다가 고3이잖아. "

" 우이……. 일단 들어가서 생각해요. "

생각할 게 뭐 있어.

그냥 밥 먹으라 하면 되지.

그렇게 우리는 후련한 마음으로 설날 서울 길거리를 걸었다.

일이 생각보다 잘 끝나서 그런지 발걸음이 가벼웠다.

마주 잡은 손에서 따스한 온기가 전해짐을 느낀 나는 웃음을 지었다.

다행이다.

" 집이다아……. "

윤아가 처가 현관문 앞에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도 오랜만에 오는 것이라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장모님을 뵌지 너무 오래되서 죄송스러움도 묻어있었다.

" 그러니까 자주 자주 좀 들르라고. 같은 서울인데. "

" 알겠어. "

현이가 문을 따고 들어가자 역시나 장모님이 달려 나오셨다.

" 아이고, 이 서방 왔는가. "

"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

" 암. 잘 지냈지. 어이구 내 새끼. 왔어? "

장모님은 내 인사를 받아주시고는 윤아를 꽉 껴안았다.

우리 엄마는…….

비교되네 증말.

어쨋든 우리는 윤아 방에 짐을 풀고 거실로 나왔다.

" 배고프지? 금방 밥 차려줄게. "

" 엄마, 우리는 됐어. 피곤해서 바로 잘거야. 현이나 차려줘 - "

" 응? 알았어. 이 서방은 괜찮고? "

윤아가 그렇게 말하자 장모님은 내게 물어오셨다.

우리 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대답을 해드렸다.

" 예. 저는 괜찮아요. "

말이 끝나자 마자 윤아가 내 손을 잡고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뭘 하려는거지?

장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는데…?

" 히히. "

윤아가 방문을 닫으면서 나를 야릇하게(?) 바라보았다.

얘가 왜 이래.

윤아는 나를 침대위로 밀쳤다.

그리고는 불을 끄고 내 위에 올라탔다.

" 자, 잠깐만. 뭐하는 거야. "

" 그냥, 사랑 속삭임? "

헐…….

사랑 속삭임이라니……

임신한 몸이 정말 이럴 수 있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 거짓말이구, 오빠랑 안고 자려고요. "

윤아는 그 말과 함께 내 배 위에서 내려와 내 옆에 누웠다.

나는 팔을 뻗어 윤아의 머리 밑에 놓았다.

윤아의 머리가 내 팔 위에 위치하여 팔베개를 베자 다시금 그녀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윤아를 꽉 껴안고 내 품으로 데려왔다.

" 장모님 안 들어 오시겠지? "

혹시나 장모님이 들어와 버린다면 난감할 것 같아서 한 말이었다.

뭔가 변태 같아 보인다고나 할까.

" 뭐 어때. 부부끼리 이러는 게 당연하지. "

하지만 윤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보다.

괜시리 그런 그녀가 기특해져서 윤아의 입에 입맞춤을 했다.

작지만 온기를 지닌 그녀의 입술이 민감하게 다가왔다.

오늘은… 그냥 입맞춤이 아닌 딥키스…….

아내의 앙증맞은 혀가 내 치아를 훑으며 내 입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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