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57)

" 흐음……. "

윤아가 작게 숨소리를 흘렸다.

두 사람의 혀가 한데 얽혀 노니는 것이 꼭 뱀 같았다.

" 히히……. "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윤아는 슬며시 입을 때며 그렇게 웃었다.

개구쟁이 윤아.

" 누…! "

처, 처남.

우리가 그렇게 사랑놀이를 하고 있을 때, 윤현이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이러면 안되는데……?

" 아, 미안. 하던거 마저……. "

" 시끄럿! "

윤아가 그렇게 소리쳤다.

조금 난감한 상황이라 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다행히 현이는 그냥 의미심장한 미소만을 남기고 다시 방문을 닫아주었다.

" 씨잉……. 분위기 다 깨고 있어……. "

" 어쩌겠어. 자야지. "

" 치……. 아쉽지만……. "

아, 아쉽다니, 윤아야.

어느순간부터 윤아가 이런 것을 즐기는 듯 했다.

절대 나쁘다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번 해본다.

내 아내가 나만을 사랑해주고 나에게만 애정표현을 한다는 것은 더 없이 행복한 일이지만 말이다.

" 이리 와. "

나는 윤아를 내 팔로 감싸 안았다.

눈을 살며시 감으며 가슴에 귀를 대고 내 심장소리를 듣는 윤아.

들려? 내 마음이?

" 따뜻하다……. "

" 우리 윤아……. "

" 이열……. 숙제 다 했네? "

설을 지내고 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윤아와의 관계는 더 발전 된 것 같고, 이제 조금 적응이 된 수정이와의 과외.

보기보다 착실하고 성실한 아이인 것 같았다.

" 하하. 역시 정수정. 저 1등급 받을 것 같지 않아요? "

" 그건 두고 봐야 아네요. "

수정이가 스스로 우쭐해 하며 어깨를 펴자, 직접 머리를 눌러주었다.

공부 더 해야 돼, 이 녀석아.

" 근데 생각보다 진도가 빨리 나가네? "

" 익! 생각보다라뇨! 제가 얼마나 우등생인데! "

전혀 그렇게 생기진 않았어.

처음 수정이를 봤을 때 식겁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만큼 예뻤고, 친구가 많을 듯한 생김새였다.

" 아, 맞다. 수정아. 이번주 주말에는 선생님 못 올것 같아. "

" 엥? 왜요? 쌤 또 윤아언니랑 놀러가죠! "

어떻게 알았대.

" 음……, 뭐 비슷하려나. 일본 가기로 했어. 고등학생은 불쌍하구나. 자유롭지 못한 영혼이네. "

" 칫. 나도 데려가요! "

얘도 너무 극단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가면 부러워 해야지 같이 가자는 생각을…….

게다가 과외 선생님이랑 여행을, 그것도 가깝지 않은 일본으로 갈 생각을 하지?

나는 점잖게 고개를 저었다.

" 갈 거에요! 내 사비 털어서라도 따라 가야지. "

어떻게 하지를 못하겠다.

어머니가 허락 안 하실 것 같은데…….

데려가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약간은 불편할 것 같았다.

윤아랑도 많이 친한게 아닌 상태에서 태연누나랑은 전혀 모르는 사이.

게다가 나조차도 그녀의 남자친구는 모르는 상황인데 엮여 버리면 조금은 곤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도 정신을 차렸다.

이런 생각이 문제가 아니라 가는것 자체가 문제였으니까 말이다.

" 너 임마. 고등학생인데 여행은 무슨. 너 여행 갈 동안 다른 애들은 코피 터지도록 공부하는거 잘 알잖아. "

" 저에게 공부란 두번째 일이에요. 괜찮아요. 그러니까 데려가 줘요, 쌤. "

으음.

뭔가 진지하게 부탁하니까 거절을 못하겠다.

이럴 땐 내가 거절하는게 아니라 어머니의 도움을 받는게 더 낫겠다 싶어서 수정이에게 말했다.

" 어머니께서 허락하시면 생각해 볼께. "

" 진짜죠? 약속했어요? "

" 알았어. "

얼마 되지 않은 과외 선생님을 이 정도로 신뢰 할 수는 없다는 약간의 기대 아닌 기대로 전한 말이었다.

내가 이번엔 이겼다, 수정아.

" 엄마한테 전화해도 되요? "

응?

어머니 집에 들어오시면 말씀드려도 되잖아.

그래도 뭐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수정이는 내 허락이 떨어지자 마자 신나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몇번 꾹꾹 누르더니 귀에 휴대폰을 가져갔다.

근데 뭔가 번호가 길다?

" Hi. Can I talk to Linda Park? (안녕하세요. 린다 박과 통화 할 수 있을까요?) "

[ Sure. Wait a second. Linda Park Line 1. Linda Park Line 1. (물론이지요. 잠시만요. 린다 박 1번 받아주세요. 린다 박 1번 받아주세요.) ]

여, 영어?

스피커 폰으로 흘러나오는 한 남성의 말과 라인이 들어간 것을 보면 외국에 산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거기다가 관리를 받는 곳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가문이었다.

[ Hello? This is Linda. (여보세요? 린다 바꿨습니다.) ]

" 엄마! "

잠시 기다리자, 전화기 저편에서 약간은 허스키하고 위압감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수정이의 어머님일 것이라는 생각에 귀를 쫑긋 세웠다.

제발 안 된다고 말씀해주세요.

" 엄마, 허락 맡을게 있는데. 나 과외 선생님이랑 일본 같이 가도 돼? "

[ 응? 일본? 여행가는거야? ]

" 응. 놀러. "

[ 그런건 네 언니한테 물어봐야지 욘석아. 나야 괜찮다면 언니가 알면 가만히 안 있을걸? ]

언니…….

다시금 내 얼굴이 굳어졌다.

제발 '정수연'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빌면서 모든 신경을 귀에 집중시켰다.

" 엄마가 허락해 줬다고 하면 돼. 가도 괜찮지? "

[ 뭐……. 괜찮지. 대신 조심해야 한다. 아, 돈은 어떡하려구? ]

" 돈은 충분히 있어요. 고마워! 사랑해요, 엄마! "

[ 녀석. 평소에 그런 말좀 해봐라. ]

하느님.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

어느 대 저택 앞, 금발의 소녀가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콧노래를 살짝 살짝 부르면서 흥얼거리다가 문이 열리자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들어섰다.

" 수정이 있을라나……. "

소녀는 중얼거리면서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갔다.

못 보던 신발이 있었다.

살짝 의아해 하면서 방을 보니 아무도 없었다.

" 수정아? "

" 언니! "

소녀가 그녀의 동생으로 보이는 - 수정이 - 아이를 부르자, 한 사람이 활짝 웃으며 현관으로 달려 나왔다.

" 누구 오셨어? 못 보던 신발인데. "

" 응! 과외 선생님. 한번도 못 뵜지? 오늘 한번 봐 - "

소녀는 과외선생님을 자랑하려는 듯 그녀의 언니에게 활기차게 말했다.

언니의 손을 꼭 잡고 공부하던 방으로 들어간 수정은 살며시 새로운 과외선생님, 연우를 불렀다.

" 쌤! "

" 응? 수정……. "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 표정과는 대조되게 연우의 얼굴을 급격히 굳어졌다.

제발 아니기를 바랬는데.

" 연우 오빠? "

" 정수연……. "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되어 갔다.

수정은 사이에서 영문을 모르고 눈을 크게 뜬 채 두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 아는 사이야? "

" 오빠가 여길 어떻게……. "

연우는 연필을 꽉 쥐었다.

불길한 예감은 왜 이렇게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인지, 그리고 하늘이 왜 이렇게 무심한지 이를 갈았다.

왜 윤아랑 평범하게 사랑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연우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 뭐, 상관 없겠죠. 저희 화해 했잖아요. 그죠?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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