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일방적인 대화에 수정이 답답해 하며 중간에 끼어들었다.
" 저도 궁금하다니까요? "
" 아, 으, 응. 아니야. 그냥 같은 학교고 몇번 만났던 사이……. "
" 이제 친해지려구. "
연우가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수연이 말을 짜르고 '친해진다'라는 말을 강조했다.
어찌 된 일인지 연우는 아무말도 않고 그냥 입을 다물었다.
" 아……. 이거 정말 우연인데요? 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언니한테도 말해야 겠죠? "
중요한 문제는 일본에 같이 가느냐가 아니라 수연을 만났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수정은 그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활기차게 말했다.
연우는 황당함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수연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 언니, 나 일본 가도 돼? 쌤이랑 같이? "
" …뭐? "
수정의 말에 그녀의 언니가 황당하다는 듯이 반문했다.
고1이 어디 놀러를 가겠다는 말인가?
" 잠깐 휴식도 필요하잖아……. 엄마도 허락 했단 말이야. "
수연은 가방을 내려놓고 가만히 동생을 쳐다보았다.
초롱초롱하게 바라보는 수정의 부탁을 거절하긴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약간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연우에 대한 믿음도 한 몫을 했을지는 수연만이 알겠지만 말이다.
" 아싸! 쌤! 이제 됬죠! "
" 어, 응……. "
힘겹게 대답하는 연우였다.
일본에 같이 가고 안 가고가 문제가 아닌지라 정신이 없던 연우는 멍하니 수연을 바라보았다.
' 제기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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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에게는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
괜히 상처 받을까봐…….
윤아도 대충 눈치는 차린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어 본다.
창공으로 날아오르려 하는 우리 사랑이 정수연이라는 나뭇가지에 걸려 터져버리면 안되지 않겠는가.
그래도, 다행은 다행이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면 정수연도 같이 일본에 가자고 했을 테니.
그래도 어느정도 염치는 있는 것 같았다.
흐지부지하게 수정이는 데리고 가기로 했지만…….
걱정된다, 정말.
" 쌤! 정신 좀 차리세요! "
" 어, 어? 아, 미안. "
무슨 생각을 했던 거지.
수정이가 나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 아우, 머리 아프네. "
" 언니랑 무슨 관계일까나. 언니한테 물어봐도 돼요? "
물어봐도 되긴 하는데, 답이 똑같을 걸?
그냥 친해지고 싶은 오빠라며 웃는 수연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 아, 몰라, 몰라! 오늘 수업 땡! 모레 보자, 수정아! "
그렇게 말하면서 도망치듯 집에서 빠져나왔다.
정말, 식겁하겠다.
설이 지난지 한달 다 되어가는데 아직…….
그것보다, 윤아 때문에 걱정이었다.
전화기를 집어들어 윤아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 여보세요? ]
" 윤아야. 먹고 싶은게 뭐야? "
[ 으……. 모르겠어요……. 오빠가 해준거! ]
…….
어제 밥을 해주는게 아니었어.
입덧 핑계대면서 매일 나한테 밥 얻어 먹으려는 건 아니겠지?
" 알겠어. 조금만 기다려요. 어디 아프거나 그런건 아니지? "
[ 조금 메스꺼운데……. 괜찮은것 같아요……. ]
불안하다.
윤아야, 아프면 안돼.
" 금방 갈게. "
[ 빨리 와요, 남편 - ]
윤아의 명령(?)에 나는 달렸다.
집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거니와, 아내를 혼자 집에 놔두는 것은 남편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10분정도 쉬지 않고 달리는데, 전혀 다리가 아프지 않았다.
윤아의 힘이란…….
아무리 생각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윤아의 존재는 매번 놀라웠다.
잠재력을 뽑아낸다고 할까나?
집에 다 왔어도 나는 속력을 늦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빨리 뛰었다.
윤아가 기다리니까.
" 오빠 - ! "
어레?
윤아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아 저 - 앞을 보니 역시나 그녀가 서 있었다.
얇은 블라우스 하나만 입고 팔짱을 낀채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내 아내 -
" 윤아야? '
" 히히.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어서 내려 왔지롱 - "
이 귀염둥이를 어떻게 해야되나.
나는 그녀의 볼을 꼬집어 주고 손을 잡고는 건물로 들어왔다.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윤아는 내 팔을 감싸고 섰다.
" 아, 맞다. 수정이도 일본 가기로 됬어. 어쩌다보니……. "
" 진짜? 우와! 나 수정이 좋아! "
오늘 왜 이렇게 예상치 못한 반응이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윤아가 좋아할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으니 말이다.
" 아, 그리고……. 그……. 수정이 언니가……. "
아까전까지만 해도 말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내 입이 마음대로 움직였다.
지르고 보자는게 내 생각인 것 같다.
" 수연 씨 맞아요? "
" …응. "
내 말을 가로채며 물어오는 윤아.
별 수 있겠는가.
수긍하는 수 밖에.
" 뭐, 상관 없어요, 이제. 난 오빠 진짜 진짜 완전 믿으니까! "
아…, 뭐…, 고마워.
나는 윤아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엘레베이터에서 내렸다.
" 히히. 오빠가 또 맛있는거 해주겠지? "
" 뭐 먹고 싶은데? 근데 어제처럼 도와줘야 된다? "
" 알겠어요. 오늘은……. 오삼불고기! "
오삼불고기라.
까짓꺼, 해주지!
윤아와 함께 집에 들어오니 공기부터 달랐다.
윤아 향기 난다 -
변태 같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냄새가 윤아 특유의 향기다.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은은한 쿨워터 향.
" 이얏! "
윤아가 쇼파에 털썩 걸터 앉았다.
흠…….
나는 누워보실까나?
윤아를 쇼파 끝으로 밀어내고 그 위에 누워버렸다.
윤아의 가는 허벅지 위에 내 머리를 얹고 눈을 감았다.
" 피곤해요? 내가 밥 할까? "
" 아냐……. "
" 웅…. 피곤하면 내가 할게요. 남편은 쉬고 있어 - "
내가 한대두….
나는 일어나려는 윤아의 손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 괜찮으니까 잠깐만 이렇게 있자. "
" 알겠어요. 나야 항상 오빠 말을 따를거니까. "
조금씩 불러오는 윤아의 배에 귀를 가져다 대어 보았다.
윤아의 숨소리에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하는 배가 귀여웠다.
" 설아야 - 아빠야 - "
우리 설아, 잘 지내고 있지?
[ 지쳐 있던 가슴이 다시 숨쉬고 -
가난……. ]
설아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데, 윤아의 벨소리가 울렸다.
내가 쇼파에서 떨어져 굴러서 휴대폰을 가져다 주니, 윤아가 킥킥 하며 웃는다.
" 여보세요? "
[ 윤아야, 나 태연언닌데. ]
" 아, 언니! "
태연누나?
왜 나한테 전화 안하고 윤아한테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약간의 섭섭함(?) 과 함께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 부재중 통화 6통 ]
아, 미안.
뛰느라 진동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 연우 좀 바꿔 줄래? 비행기 표 때문에……. ]
" 네, 잠시만요! "
윤아가 웃으며 내게 전화기를 건내주었다.
일본 간다는 생각에 잔뜩 흥분해 있는 것 같았다.
설아랑 첫 가족여행이니…….
나는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 여보세용. "
[ 전화를 왜 안 받아? ]
휴대폰을 넘겨 받자 마자 태연 누나의 애교 잔뜩 섞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매번 기분은 좋은데 뭔가…….
" 아, 뛰느라 확인 못했어. 어쨋든. 무슨 일이야? "
[ 비행기 표 말이야. 4일날 출발하는 거 있는데. 이거면 되려나? ]
3월 4일이라…….
달력을 확인해 보니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았다.
" 응. 아, 그리고 표 하나 더 구해 줘. 과외 하는 애 한명 데리고 가기로 했어. "
[ 그래? 알았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