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수정이까지…….
이러다가 내가 제일 늦는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절대 그래선 안돼.
몇일 동안 태연누나가 그것으로 놀려댈 것이 뻔했다.
" 오빠! 죠기 내 가방……. "
윤아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 윤아는 임신했으니까 내가 가져다 줄게.
윤아의 가방, 보기보다 무거웠다.
나 골릴려고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가방보다 더 무거운 것 같았다.
" 자, 여보. "
" 고마워요, 남편 - "
가방을 가져다 주자 내 팔을 휘감아 안으며 싱그러운 웃음을 보여주는 윤아 덕분에 기분이 한층 더업되었다.
윤아는 정말 내 생에 활력소인 것 같다.
그렇게 잠깐 기다리니 내 짐이 또르르 굴러왔다.
왠지 기분이 좋다.
" 쌤! 이제 어디로 가요? "
수정이가 물어와 나는 일정표를 한번 꺼내서 보았다.
숙소로 가야할 것 같았다.
" 숙소로 가자. 오사카 글로벌 하우스라는 곳인데, 멋지더라구. "
" 아! 오사카 글로벌 하우스 한번 본적 있어. "
진우형이 그렇게 말했다.
외관상도 좋고, 그렇게 비싸지도 않아서 몇일 묵기에는 충분할 것 같았다.
" 흠……. 일단 택시타고 가는게 빠르겠지? "
" 돈은 오빠가 내……. "
윤아가 슬며시 내게 말했다.
돈이 깨지겠네.
그래도, 한번쯤(?) 은 괜찮겠지 싶은 마음으로 기분 좋게 승낙했다.
근데 다섯명이서 어떻게 타지?
아, 여섯명.
우리 설아는 윤아 타고 가니까 괜찮다 쳐도 한명이 빠져야 하는 상황이 오는 건가?
" 근데 여섯명 어떻게 타지? 렌트카를 빌릴까? "
렌트카가 더 빠르겠다는 생각에 미쳤다.
일본 지도를 펴서 오사카를 자세히 보니 렌트카 하는 곳을 못 찾겠다.
일본어도 안되고, 이건 뭐…….
걸어가야 할 기센데.
그러기는 싫었다.
" 일본어 할 줄 아는 사람? "
" 나, 나! '
태연누나가?
못 미더우니 패스.
" 할 수 있는 사람 없어요? "
딱 -
" 에잇, 나 할 줄 안다니까! "
무시했다가 한대 맞았다.
태연 누나, 보기보다 힘이 세다.
맞은 뒤통수가 얼얼할 정도니까.
윤아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뒷통수를 어루만져 주었다.
" 아, 알았어. 그럼 렌트가 어디서 빌릴 수 있는지 물어봐. "
" 오케이! 맞겨만 둬! "
그리고는 자신있게 지나가던 일본인 한명을 붙잡고 다짜고짜 물었다.
" 아, 에……. "
내가 불안하다 했지.
일본어를 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 더듬더듬 거리기만 하고 있었다.
" 에이 씨. 어……. 렌트카 웨어? 웨어? "
…….
영어도 안되나 보다.
렌트카 웨어라니.
한국 사람인 거 티내고 다니는 것 같다.
" 빠져 주세용. 제가 할게용. "
나는 고개 숙이고 그 둘의 대화에 들어갔다.
태연 누나를 살짝 뒤로 빼고 내가 대화를 해보았다.
" 아……. Excuse me. Can you tell me where I could lent a car? (실례합니다. 자동차를 어디서 렌트 할 수 있는지 좀 가르쳐 주시겠어요?) "
" Oh. Ok. Go s……. "
그 일본인은 다행히 친절했다.
제발 크로우즈 제로에 나오는 그런 애들이 아니길 바랬는데.
자, 이제 본격적으로 일본 탐방을 시작해 보실까나?
★
" 일정이 어떻게 되요? "
어렵게 어렵게 구한 렌트카를 타고 가는 도중, 윤아가 내게 물어왔다.
나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일정을 확인했다.
" 일단 숙소가서 짐 풀고 조금 쉬다가 헵 파이브 갈거야. 그다음에 공중전망대 들렀다가 온천 갔다가 야경 구경. 우리는 관광하러 온게 아니라 놀러 온거잖아? 너무 빡빡하게 잡으면 지칠 것 같아서 최대한 놀 수 있는 곳으로 정했어. 박물관 이런 건 다 빼버리고. "
윤아는 와아 - 하면서 감탄사를 놓고는 손벽을 짝 쳤다.
수정이와 태연누나도 만족하는 듯 했다.
그런데, 진우형이 앞자석에 얼굴을 드리밀고는 건의를 하나 했다.
" 오사카에 수족관은 어때? 좋다고 하던데. "
" 수족관요? "
수족관은 한번도 못 들어봤는데…….
진우형이 좋다고 하면 좋겠다 싶어서 윤아에게 찾아보라고 좀 부탁했다.
윤아는 잠시만 - 하는 소리와 함께 휴대폰을 집어들어 빠르게 타자를 쳤다.
그리고는 내게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 카이유칸 이라는 곳 있는데 엄청 멋있대 - "
카이유칸 이라.
윤아가 이것저것 만지다가 이미지를 보여주니 나도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한국과는 스케일이 틀렸다.
" 여기도 가장! "
태연 누나가 갑자기 앞으로 얼굴을 밀며 외쳤다.
그렇게 안 말해도 된다구요.
안 그래도 핸들이 한국으로 치면 조수석에 있어서 불편해 죽겠구만.
" 아, 몰라. 어! 저거 아닌가? "
앞에 보니 큰 일본식 건물이 몇개 보였다.
정말 크다.
게다가 고전도 아니고 세련 되어 보이는 것이, 갑자기 뿌듯함이 물밀듯 느껴졌다.
" 역시 남편! "
윤아가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워주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 광경에 놀랐는지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다.
" 빨리 가자, 빨리! "
태연 누나가 소리쳤다.
나는 속으로는 씨부렁 거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엑셀을 밟았다.
" 다 합쳐서 20만원 덜 들거야, 아마. 한 사람당 4만원씩 내면 되겠다. 아, 수정이는 학생이니까……. 조금 덜 내도 괜찮아. 내가 돈 좀 보태……. "
" 20만원이면 제가 다 낼까요, 쌤? "
뭐?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이번에는 수정이 빼고 전부다 놀란 표정이었다.
" 왜, 왜 그래요……. "
왜 그러냐고 묻는 수정이가 더 의심스러워졌다.
집도 그렇게 호화롭게 살 수 있는지, 그리고 어머니는 왜 위국에 나가 계시는지, 아버지는 뭐하시는 분인지.
수정이에 대한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
" 너 돈 얼마 가져왔어? "
" 오백정도…? "
…….
얘 도대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더 웃긴 것은 수정이에게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놀라는 우리를 이상하게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정체가 뭐냐. "
" 저 쌤 제자죠, 뭐. "
뭐, 차차 밝혀지긴 하겠지만, 매우 궁금했다.
" 아, 왜들 이러세요. 제가 돈 낼테니까 빨리 가기나 해요! "
결국 궁금증을 풀지 못한채, 민박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일본어로 뭐라 말하는데 전혀 알아듣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