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 (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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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오길 잘 했지? "

연우, 윤아, 수정과 헤어진 탱진 커플은 한가롭게 쇼핑몰을 거닐고 있었다.

서로의 손을 꽉 잡고는 절대 놓지 않을 다짐을 하며 -

연우를 잊기 위해서 사귀었던 진우라는 사람에게 점점 빠져드는 태연이었다.

자신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분명히 진우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된 것 같았다.

" 응. 좋은 동생도 한명 생겼고, 윤아 씨랑 수정이도 싹싹해 보여. "

" 앞으로도 많이 만날걸? 연우랑 보통 인연이 아니라서 말이야. "

" 그래? '

진우는 태연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결혼까지 가자, 우리도.

이게 그의 생각이었다.

아직 반지가 없는 여자친구의 손을 안타깝게 어루만지며 길을 걷는 그의 발걸음이 느리고 쳐져보였다.

사랑으로는 안되나 보다.

" 뭐 살까? "

" 오빠가 사주는거지? "

" 알았어. 으유. "

진우는 태연을 귀엽다는 듯이 한번 꼬집고는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어딘지를 알아야 가지.

" 근데 뭘 사야 되나? "

" 옷이랑……. 먹을 거……. "

" 돼지. "

" 이익! "

돼지라는 말에 태연이 발끈해서 진우의 팔을 짝 - 하고 내리쳤다.

진우는 아팠던지 팔을 부여잡으며 태연을 바라본다.

" 돼지야! "

" 이이잇! 하지마아……. "

태연이 귀여운 표정으로 울상이 되어서 앙탈을 부렸다.

진우는 저절로 피어오르는 미소를 숨기지 못한채 여자친구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 미안해. "

" 씨이. 미안할 짓을 왜 하는거야! "

태연의 외침이 일본에 울려퍼졌다.

" 이거 예쁘다! "

으아…….

제발, 윤아야…….

한 시간 동안 쇼핑만 계속 하고 있으려니 너무 지겨웠다.

무엇보다도 짐은 다 내가 들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

윤아는 임신을 해서 그렇다 치더라도, 수정이 짐도 안 들어주기 뭐한 바람에 같이 들어야 했으니, 내 손은 남아나질 못했다.

힘든 걸 아는지 모르는지 두 여자는 계속해서 물건을 사댔다.

" 이, 이제 충분한 것 같지 않아, 여보? "

" 그런가요? 어때, 수정아? "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지 왜 수정이에게 물으시는지요.

몇분 전, '수정이는 부잣집 딸래미다' 라는 결론에 이른 나로서는 최악의 말이었다.

보나마나 고개를 저으면서 '그럴리가요!' 하며 외칠 것이 분명했다.

" 조금 더 사도 될 것 같은데요? "

이럴 줄 알았어.

태연 누나한테 전화나 걸어볼까?

나는 그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는 급히 힘겹게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 여보세용? ]

" 누나! 이제 가야 하지 않을까? '

[ 아, 연우야. 잘 됬다. 짐 없으면 좀 와서 도와줘 - ]

…….

…………….

그냥 끊어 버렸다.

" 윤아야……. 오빠 힘들어……. "

그저 아내에게 빌 수밖에 없었다.

" 우으……. 알겠어요. 가요, 우리. "

살았다!

나는 쾌재를 부르며 웃었다.

팔에 힘이 무진장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빨간 고래가 씩 웃는듯한 느낌이라고 하면 조금 과장된 표현일 것이나, 그만큼 행복했다.

근데 태연 누나 찾으려면 오래 걸릴텐데.

" 수정아, 선생님 좀 도…와 주지 않…을래? "

나는 두 팔 가득한 짐을 손수 보여주며 수정이에게 부탁했다.

수정이도 약간은 마음에 걸렸는지 선뜻 내 짐을 약간 들어주었다.

역시 수정이.

나는 태연 누나에게 문자 한통만 보내 놓고 정문으로 와서 잠깐 앉았다.

윤아와 수정이도 폭풍과 같은 쇼핑에 많이 지친 듯 벤치에 걸터 앉는다.

" 힘들지? "

" 그렇긴 한데……. "

여운이 남는 이 문장, 뭔가 예감이 안 좋았다.

그냥 더 묻지 않기로 했다.

" 연우야 - ! "

앉은지 3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태연 누나가 나를 부르면서 달려왔다.

역시나 짐은 진우형이 다 들고 있었다.

남자는 쇼핑 하러 가면 돌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나였다.

동병상련의 느낌으로 나는 진우형에게 다가가서 짐을 약간 들어줄었다.

" 으아……. 고맙다, 연우야. "

" 형도 역시네요. 돌겠어요. "

" 뭐, 어쩔 수 있겠냐. "

나는 맞다면서 긍정을 표하고는 앉아서 그새 노닥거리고 있는 세 여자를 원망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차가 있어서 다행이지, 숙소까지 걸어갈 뻔 했으면…….

상상도 하기 싫다.

" 저기요, 아줌마들. "

" 윤아만 아줌마얏! "

말 하자마자 태연 누나가 짤라 먹었다.

맞는 말이긴 하다만,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데 말이다.

" 아, 어쨋든. 숙소가서 쇼핑 한 것들 갔다 놓고 바로 온천으로 갈래요, 아니면 물고기 보러 갈래요? "

" 온천! 온천! "

수정이가 소리쳤다.

온천 한표.

윤아는 혼자 곰곰히 생각하다가 그냥 슬며시 나에게 미소만 지어보였다.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관계로 그냥 내가 가고 싶은 온천에 한 표를 또 던져주었다.

이렇게 되면 태연 누나가 아무리 수족관 가고 싶다 해도 온천 갈거야.

물고기 보고 싶다하면 하나 잡아와서 온천에다 풀어 줄 생각이었다.

" 나도 온천갈래. "

물고기 잡으러 바다로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알았다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지럽게 놓여있는 짐들을 있는 힘을 다해 잡고는 윤아 옆에 섰다.

" 윤아야, 주머니에 키 있거든? 그거 좀 꺼내줘. "

" 네, 남편. "

윤아는 내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뒤적 뒤적 거리다가 차 키를 꺼내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들고 남은 두 여자들과 같이 차로 뛰어갔다.

진우형과 나는 무거운 짐을 들고 그녀들을 따라 갈 수 밖에 없었다.

슬프다.

" 빨리 가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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