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57)

" 으아 - 좋다아아 - "

1시간 전 우리의 모든 노고를 싹 씻어 주듯 뜨거운 온천 물이 내 몸을 휘감았다.

모든 근육들이 이완되어 풀어진 느낌이었다.

윤아와 함께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었지만, 짚으로 된 벽 하나만을 두고 있는 노천탕이라서 이야기는 나눌 수 있어 다행이었다.

" 후아 - "

진우형도 힘들었는지 축 풀어저서는 입까지 물에 담그고 있었다.

물에서 올라온 김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 보았다.

옆의 여탕에서 윤아, 수정이, 그리고 태연 누나의 말 소리가 들려왔다.

즐겁나 보다.

안 데려 왔으면 어쩔 뻔 했어.

" 남펴언-! "

그렇게 긴장을 풀고 있는데 갑자기 윤아가 나를 불렀다.

" 응? 왜? "

" 메에로옹 - "

…….

대꾸할 힘도 없다.

나는 그냥 씩 웃고 치웠다.

" 삐진거 아니죠? "

" 응. 아냐. 좋지? "

나는 물에 목을 담구고 소리쳤다.

윤아가 긍정의 대답을 내게 전해주었다.

" 진우 형. 태연 누나랑 사귀신지 얼마나 됬어요? "

" 이제 한달 넘었지? "

한달이면 꽤 됬구나. 

나는 팔짱을 끼고서 미소 지었다.

본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진우 형은 왠지 믿음이 갔다.

듬직할 뿐더러, 책임감도 있어서 태연 누나를 함부로 하지 않을 것 같았다.

" 태연이랑 많이 친한가봐? "

" 예, 뭐. 어릴 때 부터 알고 지냈어요. "

" 그래? 그럼 자주 봐야겠다? "

진우 형이 웃으며 내게 그렇게 말했다.

내가 미영이에게 윤아에 대해서 물어보듯, 진우형도 내게 태연 누나에 대해서 물어볼 심산인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이 탱누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손해보는(?) 느낌도 적잖았으나, 그저 웃음을 남길 뿐이었다.

" 수정아 - "

" 왜요, 쌤? "

수정이가 대답했다.

그런데, 막상 불러보니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자, 벽 위로 물방울이 보인다.

" 왜 불러 놓고 말이 없어요! "

" 할 말이 없어서……. "

옆에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짚을 살짝 열어서 엿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변태 취급 당할 것 같았다.

게다가 윤아만 있는게 아니라 태연 누나랑 수정이도 있기에, 나는 손을 그냥 물에 담그고 있었다.

" 남펴어언 - "

다시 윤아가 나를 부른다.

" 왜, 여보? "

" 야! 그 여보, 남편 좀 그만 하면 안돼냐? 부부인거 티내는 것도 아니고! "

그렇게 닭살스러운 대화를 이어가려던 찰나, 우리의 말은 태연 씨의 외침에 끊기고 말았다.

짜증나는 듯 수정이와 어우, 하며 질색을 하고는 우리 부부를 흉본다.

" 킥. 짜증나면 결혼 하시던가 - "

그리고 나는 얼굴을 온천 물에 담구었다.

냄새도 신기하고, 느낌도 신기하고.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담구고 있으니…….

뜨겁다.

나는 급히 물에서 얼글을 뺐다.

" 으아……. "

" 뭐 하냐. "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니 진우형이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쪽 다 깠다.

" 형, 근데 이러고 있기 조금 불편하지 않아요? 뭔가 떠들고 그래야 되는데. "

" 그러게. 여자들은 잘 노는 것 같은데 우리는 아직 어색하다. 나갈까나. 술 한잔 할래? "

술…….

윤아만 먹이지 말고 나는 먹어야 겠다.

솔직히 놀러와서 술 한잔 쯤이야 괜찮지 않겠는가.

나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 윤아야 - "

" 응? "

" 우리 먼저 나가 있을게 - ! 천천히 하고 와! "

나는 윤아에게 그렇게 말해 놓고 진우 형과 탕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와서 온천에서 주는 가운을 입고는 방을 하나 예약 해서 거기 걸터 앉았다.

" 일본 술은 도통 뭐가 좋은지를 모르니……. "

진우형은 아무 술이나 가져 와서 내 탁자에 놓았다.

얼마만에 마시는 술이냐…….

캔을 따자, 경쾌하고 익숙한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 윤.아.가 뭐라 그럴텐데. "

그러나 나는 술을 입에 데자마자, 나는 살벌한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분명 탕에 들어가서 피로를 풀고 계셔야 할 '윤아님' 목소리였다.

" 아, 이거 음료수야. 술은 무슨. "

" 그래요? 난 또. "

윤아는 그렇게 웃으면서 내 옆으로 와 앉았다.

불안하다.

" 나도 음료수 마실래! 오빠 꺼 줘봐아. "

…….

이럴 줄 알았다.

나는 망설이다가, 결심했다.

다 마셔 버리자고.

결심이 서자마자 나는 맥주를 바로 넘겨버렸다.

알싸하다 -

" 응? 뭐라고, 윤아야? "

" 치. "

윤아는 뾰로퉁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녀를 잡을 수 밖에 없고.

그녀의 손을 잡고 다시 끌어 내리자, 나를 째릿 - 째려보았다.

" 놀러왔잖아요, 여보. "

" 흐응……. "

윤아는 그렇게 작게 신음하더니 입맛을 다셨다.

진우형 앞이라서 뭐라고 하지는 못하겠는지 작은 얼굴을 조심스레 끄덕인다.

" 고마워요. "

나도 살짝 입을 맞춰주고 싶었으나, 진우형 때문에…….

태연 누나는 안 오나.

" 술 냄새! "

생각이 끝나자 마자 태연 누나가 급히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옷을 입다 말았는지 가운은 어깨에 위태롭게 걸쳐서 뛰어오니 곧 벗겨질 것 같았다.

" 아, 누나. 많으니까 옷부터 똑바로 해. "

" 에이, 우리 사이에 뭘. 남자친구에다가, 죽마고우에다가, 제일 아끼는 동생 두명까지. 괜찮지 않냐? "

이 누나 위험하다.

어디가서 봉변 당할 것 같아서 다시금 슬며시 걱정이 되었다.

자기 몸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걱정스러운 눈길을 거둘 수가 없었다.

" 쌤! 저도 마셔도 돼요? "

다행히 수정이가 나를 불러준 덕분에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무슨 소리지?

" 야, 너 17살 밖에 안 된 녀석이…! "

게다가 수정이는 여자잖아.

" 치. 음료수나 마셔야지. "

수정이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카운터로 가 음료수를 몇 캔 사왔다.

이렇게 되니 또 미안해진다.

그래도, 미성년자한테 술 먹이면 머리 나빠져서 안돼.

" 아우, 그래도 조금 시원하다. "

진우 형이 팔을 뒤로 기대면서 그렇게 말했다.

나도 온 몸의 피로가 다 씻겨나간 듯하다.

" 이제 좀 어두워졌으면 좋겠다. 근데 오늘 그거 다 가기에는 조금 빡시지 않나. 다시 땀 내기도 그렇고. "

" 그런 것 같기도 한데. 밖에 어두우면 내일로 미루지 그래? "

속으로 밖이 어두워졌길 바래본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았다.

어둡다!

밝은 별들이 까만 하늘을 수내어 빛내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금방이라도 내게 떨어질 것 같이 위태롭게 빛이 세는 별들이 수도 없이 박혀 있으니, 실로 장관이었다.

나는 그 상태로 멍하게 밖을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스산한 바람까지 살살 불어, 윤아가 좋아하는 벚꽃이 별들을 약간씩 가렸다.

" 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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