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화 (42/57)

나를 부르는 소리에 뒤 돌아보니 윤아가 허리에 팔을 얹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두 볼에는 바람을 빵빵하게 넣어서는…….

" 고, 고의가 아니잖아! "

" 그래두! "

명백하게 삐친 표정이었다.

나는 살살 윤아에게 다가가서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아니라고 때(?)를 썼다.

" 치……. "

결국에는 입술을 쭉- 내밀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방바닥에 힘없이 앉았다.

" 연우는 변태였대요 - "

그 때, 태연 누나가 방에서 옷을 다 갈아입었는지 거실로 나왔다.

나오면서 그런말을 하니 윤아가 움찔한다.

" 누나 볼거 없거든? "

" 이거 왜 이래. 계속 뚫어져라 쳐다 봤으면서. "

태연 누나가 응큼하다는 표정으로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손에는 술도 들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퍼마실 생각인지 모르겠다.

" 그만 좀 마셔. 내일 어떡하려고 그래. "

" 아, 몰라. 몰라! 괜찮아! "

우리가 안 괜찮다고.

나는 태연 누나의 술을 뺏어서 내가 마셔버렸다.

얼마 남지도 않았네.

" 어어! 간접 키스다! 윤아야, 네 남편 나랑 키스했다! "

…….

…….

할말이 없다, 진짜.

이번에는 윤아도 황당한지 그냥 태연 누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 미안. "

그제서야 머쓱해졌는지 살짝 웃으며 사과하는 태연 누나가 귀여웠다.

" 뭐야.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네. "

내가 미소 지으며 그렇게 말하자 나를 퍽- 하고 때린다.

아프다.

" 에엣! 우리 남편 왜 때려요, 언니! "

" 결혼 했다고! 이익! "

" 아아, 시끄럽고요! 빨리 잘 준비나 해요! "

이불을 깔고 윤아와 나란히 방에 누웠다.

옆 방에는 태연누나랑 진우형이.

설마 무슨 짓 하지는 않겠지?

오늘 봐온 진우형은 믿음직스러웠기에 이런 의심이 약간은 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리를 흔들었다.

" 수정이 심심하지 않을까? "

" 뭐, 컴퓨터 하다 잔다니까 괜찮겠지. "

윤아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려 나를 향하게 했다.

" 오빠. "

" 응? "

" 우리 설아 태어나면 또 놀러 갈 거죠? "

당연하지.

설아가 태어나면, 우리 가족 세명이서 저 멀리 캐나다로 떠날 생각이다.

거기서 좋은 공기도 맛보고, 추억을 쌓다가 가는 거지.

" 응. 가야지. "

" 히히. 설아 빨리 태어났으면 좋겠다. "

설아가 태어나면 이제 윤아도 고생을 해야 할텐데, 그것 까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저 아이가 태어나면 귀엽고, 내 혈육이라는 생각.

그래, 그것만 가지고 설아 잘 키우면 되는거야.

윤아 말대로라면 뭐, 두명이 더 태어나야 하겠지만.

" 이리 와. "

나는 윤아의 몸을 내 쪽으로 이끌었다.

그녀를 꽉 안으면서 눈을 감는다.

잠 와.

오늘은 이렇게 그냥 잠들자.

이야기는 내일…….

정신이 몽롱해 진다.

#

나는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다.

왠지 모르지만, 고된 일을 하고 온듯, 나는 온 몸이 쑤셨다.

" 윤……. "

" ……. "

집 안에 들어왔는데, 윤아가 울고 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커다란 무언가를 붙잡고 서럽게 울고 있었다.

" ……. "

뭔지 보이지가 않는다.

" ……. 흐읍…… 흡……. "

애써 울음을 참으려는 듯 코를 훔치지만, 붉어진 그녀의 눈시울에 나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짐작도 못 하겠다.

이제까지 행복하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서럽게 우는지…….

" 오빠……. 어떡해요……. "

그리고는 나를 향해 달려왔다.

내 몸을 꽉 붙잡고 서럽게 떨어지는 윤아의 눈물이 내 옷을 흠뻑 적셨다.

흐르고 흘러서.

나는 그냥 멍 하다.

" 어떡해요……. "

윤아는 어떡하냐는 말만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도저히 그녀에게 왜 우냐고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 어떡……. "

그런데, 갑자기 난데 없이 바람이 불어왔다.

윤아는 그 바람에 휩쓸려 먼지가 되 버린다.

그리고, 날아갔다.

내 품에서.

그 얼굴을 아직 나를 보며 울고 있었다.

" 유, 윤아야? "

" 오빠……. "

" 윤아야! "

#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회괴한 꿈이었다.

" 우으……. 오빠…? "

" 하아……. 뭐야. "

나는 흐르는 식은땀을 닦고 멍하니 벽만 바라보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무슨 꿈이 이래…….

" 괜찮아요……? "

윤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히 윤아만 잠 깨우고 걱정하게 한것 같아 기분이 찝찝했다.

" 미안해, 윤아야. "

" 아니에요. 나가서 산책이라도 좀 하고 와요, 우리. "

윤아는 따뜻한 미소를 보여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고맙다면서 윤아의 손을 잡고 방을 살금살금 빠져나가 밖으로 나왔다.

새벽녘 일본의 풍경은 더욱 아름다웠다.

술을 조금 마셔서 머리가 아프긴 했지만, 한국보다 맑은 공기에, 흩날리는 벚꽃까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 괜찮아요? "

" 응. 이상한 꿈을 꿔서. "

" 무슨 꿈인지 물어봐도 돼? "

윤아에게 이 꿈을 말해주어도 되나…….

왠지 또 덩달아 침울해할 것 같아서 참으려고 했으나, 윤아에게 말하면 조금은 위안이 될 것 ㄱㅌ았다.

" 그냥 내가 집에 들어왔는데 네가 울고 있는 꿈이었어. 그리고 갑자기 네가 사르르 사라지는? 뭐 그런 꿈. "

" 으응? 뭐지……. "

윤아는 혼자 팔짱을 끼고 생각을 하는 듯 했다.

" 난 오빠 절대로 안 떠나요. 걱정 마. "

그래.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느릿느릿 나무 밑을 걸어본다.

그 때처럼.

" 오빠, 학교 다시 가요. "

" …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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