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윤아가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걸어가며 그렇게 말했다.
무슨 소린지도 모르겠고, 왜 그런지도 모르겠다.
" 왜? "
" 오빠 졸업해야죠. 일년인데. "
종럽이라…….
그래도 이제까지 윤아랑 같이 학교를 다니다가 혼자 다니려니 조금 어색했다.
준연이도 있고, 다른 친구들도 있지만, 그래도 윤아만큼 하겠는가.
" 심심해서 못 다녀. 다닐 사람도 없고. "
" 준연 씨 있잖아. 뭐, 정 안되면 수연 씨도 있고. "
……뭐?
나는 윤아의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수연이랑 같이 다니라니……?
다른 사람들 시선은 상관할 바 못되지만, 윤아가 괜찮은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나도 편할 것 같지 않고.
" 그게 무슨 말이야? "
" 생각해보면, 우리 결혼 했잖아요. 그리고 오빠 저 사랑하…죠? "
왜 더듬는거야.
" 당연하지. "
내 대답에 윤아가 그럼 됬다면서 수연이와 같이 다니라고 한다.
무슨 속셈일까.
나야 뭐 덜 심심하긴 하겠다만 즐겁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피곤할 것 같다.
" 근데 정말 졸업하라고 학교 가라는 거야? 그리고. 너 임신했잖아. 혼자서 어떡한다는 말이야. "
" 괜찮을 거에요. 하루종일 학교에 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대신 나랑 많이 놀아주기? "
그러면서 내 팔을 꽉 쥐고 한껏 웃어준다.
…….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아 아까 앉았떤 벤치에 다시 앉았다.
시원하지만 딱딱한 벤치의 감촉이 등에 느껴졌다.
" 여긴 시끄럽지도 않네. "
그러고보니 나뭇잎이 스쳐 사삭 거리는 소리와 떨어지는 벚꽃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정말 자연 그 자체였다.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었으면…….
윤아와 매일 와서 사랑을 나누고 갈텐데 말이다.
" 윤아 잠 안와? "
" 응. 괜찮아요. "
매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괜찮은가 보다.
나는 아닌데.
잠이 사르르 밀려온다.
" 오빠는 피곤할텐데 - "
윤아가 놀리듯 내게 말했다.
어쩜 나를 그렇게 잘 아는지 모르겠다.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어깨를 으쓱하며 기대라고 말한다.
그녀의 어깨에 기대보았다.
작은 어깨지만, 포근했다.
" 잠꾸러기야. "
" 네가 일찍 깨워주면 되잖아……. "
" 이제부터 안 일어나면 계속 뽀뽀할거야? "
일어나지 말아야지.
계속 뽀뽀라니…….
나른나른 하다.
이런 곳에서 잠드는 적은 또 처음인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다시 그 꿈을 꿀까봐 두려웠다.
" 후아! 자지 말아야 겠다. 윤아 씨? "
" 왜요? "
" 춥지 않나요? "
새벽 봄은 조금 쌀쌀했다.
윤아를 보니 얇은 티 하나만 걸치고 있었던지라 나는 내 자켓을 벗어서 윤아에게 덮어주었다.
" 아, 괜찮은데. 오빠가 춥잖아요 그럼. "
반팔이라도 괜찮아요.
윤아잖아요.
" 아냐, 아냐. 숙소로 들어가자. "
나는 윤아와 함께 걸어왔던 길을 다시 걸었다.
그 꿈, 불길하다.
왠지 앞으로 일어날 것 같은 더러운 느낌…….
그래선 안 되겠지만, 뭔가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일어나는 것 같다.
혹시 수연이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그녀와 만남을 부드럽게 하는데 윤아가 가담하는 것은 아닐까.
이상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 오늘 아침은 내가 해야지! "
" 괜찮겠어? 내가 좀 도와줄게. "
" 그러면 고맙지 - 역시 남편이야. "
그러면서 내 볼에 입을 맞추었다.
제발, 꿈은 꿈이기를.
바라고, 바라고, 또 바래본다.
" 해 뜨는거 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은 안 되겠다. "
새벽 3시는 참 어중간한 시간이었다.
자기도 그렇고, 일어나 있기도 그렇고.
자면 왠지 아침에 못 일어날 그런 느낌.
안 자면 다음 날이 고달프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 에잇! "
★
" 응? "
" 내리라니까요? "
뭐, 뭐야.
벌써 다 온거야?
" 한국이에요! "
폭풍같은 5일이었다.
여기저기 둘러다니면서 일본을 맛보고, 즐기던 우리.
역시 신은 즐거울 때 시간을 빨리 흐르게 하는 것 같았따.
한창 재미있었는데.
그 재미를 다 느끼기도 전에 나는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 몸을 싣고 있었고, 지금은 1시간 30분만에 한국에 도착해버렸다.
다시 일상이 시작될 걸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온다.
" 으아……. "
내가 비행기에서 내려 기지개를 펴자, 태연 누나가 나를 째릿 째려본다.
" 너, 진짜 나쁜놈이야. "
" 아, 미안하다니까? 왜 자꾸 그래. "
셋쨋날에 바다에 가서 태연 누나를 빠뜨려 물먹게 했었는데 아직도 풀리지 않은듯 화난 표정으로 나를 째려보는 태연 누나.
나는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가 앙탈(?) 을 부렸다.
" 오빠! "
윤아가 바로 제지 했지만.
나는 알았다면서 다시 금새 윤아 옆으로 와서 그녀의 짐을 들었다.
" 뭐, 여기서 헤어지도록 할까? "
" 쌤! 저 쌤차 타고 가도 되죠! "
수정이가 손을 들고 그렇게 소리쳤다.
되긴 되지만.
" 그래. 태워다 줄게. "
흔쾌히 그녀의 부탁을 허락하고 태연 누나와 헤어졌다.
뭔가 있는 느낌을 지울 순 없지만.
아, 그리고.
아직도 그날의 꿈을 잊지 못하겠다.
눈을 감고 그것을 생각해보면 곧바로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 오빠, 내가 운전할까? 몸 안좋아 보여. "
" 아냐. "
나는 윤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5일전 세워 두었던 차로 왔다.
다행히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 집으로 가 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