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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을 갔다 오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는 다시 학교에 다니고, 윤아는 집에서 쉬는 형태의 생활이 반복되었다.
수정이 과외는 항상 다니고 있었고.
수연이랑도 이제 약간은 친해져서 학교에 같이 다니고, 밥도 같이 먹고 했다.
윤아도 이제 임신 말기가 되어 배가 잔뜩 불러 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항상 집에 가면 그녀의 곁에 누워 설아의 소리를 듣곤 한다.
오늘도 나는 윤아와 함께 조심스레 잠자리에 들었다.
아기 낳을때가 다 되자, 둘다 민감해졌다.
저번주에 아이가 나올 것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 덕분에 더욱이.
이미 일주일이 지났지만, 윤아는 전혀 아프다고 하지 않았다.
아파야 아이가 나오는데 말이다.
한껏 조심스러워 질수 밖에 없다.
그런데 막 잠에 들려고 할때, 윤아가 나를 힘 없이 불렀다.
" 저, 오빠……. "
나는 깜짝 놀라서 정신을 차리고 침대에 앉았다.
" 응, 왜. 어디 아파? "
" 그……. 양수……. "
야, 양수?
양수가 터졌다는 말인가?
윤아를 보니 심히 아파하는 표정이었다.
식은 땀도 주루룩 흐르는 것이, 틀림 없었다.
아버지에게 들은 바로는 양수가 터지면 24시간 안에 수술을 해야 한다고…….
아니면 아기가 위험해진다고…….
나는 벌떡 일어나 빨리 옷을 입었다.
" 윤아야. 병원 가자. 빨리. "
" 으우……. "
윤아는 많이 아픈듯 몸을 가누지 못하고 느릿느릿 옷을 입었다.
급해지는 것은 나였다.
혹시 잘못되는 건……
이런 생각하지 말자.
윤아를 부축해서 급히 자동차로 왔다.
그녀를 조수석에 앉히고, 미친듯이 엑셀을 밟았다.
가까운 병원까지는 15분 정도.
새벽이라 그런지 차가 별로 없어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다.
신호도 무시하고 달렸다.
덕분에 7분여 만에 병원에 도착한 우리는 간호사에게 윤아를 알리고 기다렸다.
일분이 되기 전에, 한 의사가 급히 우리에게 달려왔다.
의사는 윤아를 데리고 병실로 재빨리 들어갔다.
간호사들도 급해졌는지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인다.
이제서야 실감이 났다.
곧 아이가 태어날 것 같다는.
그런 생각과 함께 윤아가 걱정 되었다.
너무나 아파하는 표정.
여자라면 꼭 거쳐야 하는 '관문' 이었지만, 내가 미안했다.
윤아야, 아프지 마…….
그렇게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기다리기를 몇 분, 의사가 병실에서 나왔다.
" 일단 양수가 터진 것 같습니다. 보아하니 아기 낳을 때가 좀 지난 것 같은데……. 24시간 내로 수술 하셔야 합니다. "
……
" 지금……. 될까요? "
" 지금은 인턴들이 대부분이라, 안될 것 같구요. 두어시간 뒤에 가능하겠네요. 5시쯤에 괜찮으시겠습니까. "
" 예, 예. 부탁드립니다……. "
병실에서 느릿느릿 걸어 나오는 윤아의 얼굴이 창백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그녀의 땀을 닦아주고, 갸녀린 손을 꽉 잡아 위안을 심어주는 것.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픔을 나누지도, 시간을 당겨줄수도 없었으니까…….
그저 미안할 따름이었다.
" 조금만 참아, 윤아야. 수술하자. "
" 네……. 괜찮아요……. "
내가 걱정할까봐 억지로 웃음 지으며 괜찮다고 하는 윤아…….
갑자기 울컥해서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왜 자꾸 너를 생각하지 않고 나를 생각하냐는 외침이 목까지 솟아 올랐지만,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윤아를 어떻게 탓할까.
그저 의사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윤아의 손을 잡고 계속 기다린다.
꼼지락 꼼지락 대는 윤아의 속 마음을 전혀 모르겠다.
나를 안심시키려고 그러는건지, 아니면 너무 아파서 그러는 건지.
한시간이 지나도록 그러고 있었다.
나는 윤아를 위해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손만 잡아주었다.
" 임윤아씨? "
그 때, 한 간호사가 윤아를 불렀다.
윤아는 한숨을 한번 쉬고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녀를 부축한 나는 윤아의 어깨를 두어번 주물러주고 토닥였다.
긴장 하지 말라고…….
" 설아 먼저 보고 올게요 - "
윤아는 그 말을 남기고 내 눈에서 사라졌다.
수술실 문이 닫기고, 나는 무거운 침묵에 억눌려 의자에 다시 주저앉았다.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는 다시, 기다린다.
.
.
.
침묵.
어두운 병원 복도에는 나만 얼굴을 파묻고 숨을 죽이고 있다.
아직 수술중이라는 사인이 꺼지질 않는다.
제발 아무 일 없기를…….
.
.
.
이제까지 살아왔던 순간중 시간이 제일 안 가는 것 같다.
윤아밖에 생각나질 않는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내 탓일까?
윤아가 아픈게?
.
.
.
아기 울음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몇분 후, 드디어 수술 등이 꺼졌다.
설아야…….
설아야…….
수술실 문이 열리고 모든 사람들이 기쁜 표정으로 복도로 나왔다.
" 따님이신데, 아직은 보실 수 없으세요. "
간호사가 나에게 축하의 말과 함께 이렇게 전했다.
윤아는…….
윤아가 침대 위에 누운채로 나온다.
얼굴에는 지쳤다는 표정과 행복하다는 표정이 어우러져 있었다.
" 수고했어, 윤아야. 진짜로……. "
" 우리 설아, 예쁜거 알아요? 진짜 예뻐요……. "
윤아는 그렇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그래, 윤아야.
우리도 이제 아이가 생겼어.
그렇게 바라던 설아가 말이야.
가슴 벅찼따.
행복한 가정.
얼마전 윤아와 함께 샀던 설아의 신발과 옷, 아기 용품들이 생각 났다.
설아야, 엄마 아빠가 이렇게 많은 준비를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