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화 (47/57)

" 말 못해주는 거야? "

내 물음에 수연이는 그냥 조용히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계속 꼬치꼬치 캐물으면 수연이가 더 힘들어 할 것 같아서 묻는 것을 관뒀다.

" 알았어, 그럼. 무슨 일이든지 좋게 해결하고. "

" 고마워요……. 오빠. 차 한잔 하고 갈래요? "

나에게 그렇게 권유하는 수연이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윤아는 이제 문제될 것이 없었고, 그보다 수연이를 조금 위로해 줘야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수연이는 웃으며 차를 끓였다.

부엌의 식탁에 앉은 우리 둘은 서로 마주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단은 기다렸다.

수연이가 무슨 말을 할 때까지 말이다.

" 고마워요, 오빠. "

" 응? "

" 걱정되서 찾아 오신거잖아요……. "

수연이는 미안하다는 듯이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그렇게 조용히 말했다.

보면 볼수록 수연이도 참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런 것 가지고 뭘. 우리, 친구 하기로 했잖아. 친구끼리 왜 그래. "

" ……. "

내 말에 수연이는 또 웃음만 남겼다.

큰…일인 것 같았다.

물 끓는 소리가 들리자 수연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차를 태웠다.

향긋한 향이 난다.

" 오빠는 이제 곧 졸업이네요. "

" 뭐, 그렇지. 너 나 없이 어떡하려고 그러냐. "

화제를 전환하려고 그렇게 농담을 던졌다.

수연이는 잠깐 웃는듯 하더니 다시 평범한 얼굴로 돌아왔다.

" 에휴……. 그러게요. 수정이도 이제 2학년 되면 자주 못 볼텐데. "

" 그 녀석, 잘 할거야. 하면 되는 애니까. "

" 그러길 바래야죠. "

다시 무거운 침묵이 우리를 덮쳤다.

항상 학교에 갈 때 할 이야기가 많아서 조잘대던 수연이와 나였지만, 오늘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수연이의 표정이 너무 슬퍼보였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집에 가 봐야 할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벌써 40분이나 지났다.

윤아가 기다릴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마지막 한 방울 까지 다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 어려운 일 있으면 전화 해. 힘 닿는데 까지는 도와줄게. "

" 다시 고마워요. 아, 가 보셔야되죠? 윤아 씨 기다리실 것 같은데……. "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알았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수연이.

그녀는 현관까지 나를 배웅했다.

" 차 잘 마셨다, 수연아. 언제 한번 우리 집에 와. "

" 알았어요. 내일 뵈요, 오빠. "

" 그래 - "

나는 수연이에게 작별을 고하고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이번에는 윤아한테 또 미안해진다.

살면서 미안해 할 일이 왜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속으로 궁시러궁시렁 거리면서 집에 도착한 나는 설아와 함께 잠들어 있는 윤아를 발견 할 ㅅ 있었다.

'아' 커플이네.

설아, 윤아.

두 사람의 잠을 깨우기 싫어 나는 살금살금 내 방으로 들어왔다.

" 히힛. 자는 줄 알았지? "

뭐, 뭐지.

내가 막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려 할때, 윤아가 내 방으로 침입(?) 했다.

설아는 진짜 자는 것 같다.

" 안 잤어? "

" 자기 기다렸죠 - "

그랬구나.

나는 이리 오라면서 윤아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다람쥐처럼 쪼르르 달려와 내 무릎위에 앉는 윤아.

그녀에게 살짝 입맞춤 해주고 미소지었다.

" 히. 설아 이 녀석 때문에 오빠랑 놀 시간이 없어. "

" 그래도 설아가 있어서 더 행복하지 않아? "

" 그건 그래요. 오랜만에 뽀뽀! "

방금 해줬잖아…….

그래도 군말하지 않고 그녀의 입술에 내 입을 가져갔다.

" 설아 밥 먹었어? "

키스를 하고 난 뒤, 나는 윤아에게 물었다.

윤아는 고개를 끄덕인다.

" 수연 씨가 뭐래요? "

" 모르겠어. 무슨 일이 있는 건 확실한 건 같은데 말하기 꺼려하는 것 같더라고. "

" 그럼 물어보지 말지. "

" 응.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었어. 실례 될 까봐. "

윤아는 웃으면서 잘했다고 나를 끌어안았다.

" 역시 오빠는 생각이 깊어. "

" 너한테 그런 소리 들으니까 뭔가 좀 이상하다. "

내 말에 윤아가 몸을 떼더니 얼굴을 찡그리며 입안에 바람을 가득 넣었다.

삐졌나?

그러면서 혼자 팔짱을 끼고는 나를 옆으로 째려본다.

" 에이, 농담이야. "

" 치 - "

윤아가 입을 삐죽 내밀면서 나를 외면했다.

내가 이리저리 움직여 가면서 그녀를 바라보니 장난하지 말라면서 내 가슴을 툭툭 친다.

나는 윤아를 일으켜세우고 나도 의자에서 일어났다.

방에서 이러기에는 시간이 아까워서…….

설아가 있는 거실로 나온 윤아와 나는 설아 곁에 누웠다.

엎드려서 턱을 괴고는 설아를 바라본다.

뽁뽁이를 물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모습이 정말 천사 같았다.

" 윤아 닮아서 예쁘네. "

" 뭐, 뭐에요……. "

윤아가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혔다.

우리가 떠드는 소리가 약간은 들리는지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면서 자세를 바꾸는 설아.

귀엽다, 진짜.

그 짧은 팔로 이불을 휘저으며 입맛을 다시는데, 진짜 광고에 나오는 그런 아기들 같았다. 

" 아들 낳았으면 오빠처럼 멋진 아이가 나올텐데. 곧 또 아기 낳아야죠, 오빠? "

…….

뭐라고?

윤아의 입에서 또 다시 자녀계획이 나왔다.

이런 말 할때마다 나는 윤아가 무섭다.

아기를 그냥 막 낳아버릴 것 같아서…….

" 그, 그래야지? "

그래도 웃으면서 그렇게 말해주었다.

멋쩍은 웃음이었다는게 문제지만.

윤아는 부끄러운 듯 말을 하고 있지 않다가 데굴데굴 굴러서 내 위로 왔다.

" 히힛. "

그러면서 나를 꼭 껴안고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는수 없이 나도 팔을 올려 아내를 끌어안았다.

남들은 아기 낳고 전부 살이 쪘다, 뭐한다 하는데 윤아는 어찌된 영문인지 그대로이다.

오히려 더 볼륨있어졌다고 할까?

몸매가 더 좋아진 것 같다.

" 이거 이거, 설아 교육상 좋지 않은 광경인데? "

" 뭐 어때요. 설아도 크면 이럴텐데 - "

아, 설아가 커서 이럴지는 몰라, 윤아야.

윤아 너라서 이럴 수 있는거지.

아는 선배들이나 형들에게 물어보니 꽉 잡혀서 매일 빨래하고 산다고 한다.

거기에 비하면 진짜 윤아는 현모양처다.

" 윤아 힘들지 않아? 설아보고, 빨래하고, 요리하고. "

" 괜찮아요 - 우리 가족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 오빠는 걱정 마시고 공부나 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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