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
눈물이 손등으로 떨어졌다.
진아 선배가 건내준 휴지를 조심스레 받아서 닦아보았지만, 젖어드는 휴지마냥 가슴이 슬픔에 절어버렸다.
오빠에게 미안했다.
지금 나는 이런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 내 힘 닿는데 까지는 도와줄게. "
" 선배……. 저 이제 뭘 해야되는거죠? 도대체?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
미친 사람처럼 그렇게 죄도 없는 - 오히려 고맙기만 한 - 진아선배에게 애꿏은 화풀이를 할 뿐이었다.
하지만, 진아선배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었다.
그런 내 되도 않는 짜증을 얼굴 한번 찌뿌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저 손을 잡아준다.
" 도대체……. 어떻게……. "
볼 위로 눈물을 떨어뜨리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설움이 복받쳐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 괜찮아 질거야……. 믿자, 우리. 응? "
진아 선배가 나를 꼭 껴안으면서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녀의 포옹에, 내 마음이 무너지는 듯 했다.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이런 따뜻한 포옹이 아니었나 -
오빠의 사랑이 담긴 포옹과는 다른, 그런 따뜻하게 내 마음을 녹이는 감정 나눔.
그저 그녀의 어깨에 눈물을 떨어뜨렸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 괜찮아……. 괜찮아……. "
" 아아앙 - "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설아가 잠에서 깨어나 우는 소리가 문너머에서 들렸다.
" 봐……. 너 부르잖아. 마음 굳게 먹고. 잘 보살펴. 알겠지? 이제 울지 말고. "
그래…….
선배 말이 맞겠지.
나는 설아 엄마니까.
둘도 없는 우리 귀여운 설아의 엄마니까.
문을 소리 나지 않게 열고는 밖으로 나갔다.
오빠가 설아를 안고 벌떡 일어섰다.
" 뭐라셔? "
" …….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시 코끝이 찡해왔다.
그래서 -
돌아섰다.
내 남편과 딸을 등지고서 -
" 윤아야? "
" ……. "
진아 선배가 닦아준 눈물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다시금 내 눈에서는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 ……. "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제발…….
내 어깨가 들썩이는 것이 보였는지, 가만히 와서 손을 얹는 오빠.
" 우리……. 산책하러 가야지, 설아 엄마? "
천천히 돌아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설아를 안고 따뜻한 미소와 함께 내 손을 잡는 연우 오빠에 그칠것 같았던 눈물은 다시 흘러내렸다.
" 가자. 설아랑, 세명이서. 우리 가족이잖아. "
" 어떡해요……. 우리 설아……. 진짜……. 흐읍……. 우리 설아 어떡해요……"
내가 울며 말하자, 사람들이 전부 우리를 쳐다보았다.
오빠는 그저 묵묵히 나의 손을 잡고 있을 뿐 별다른 반응은 없다.
나가…야 할 것 같다.
오빠의 말대로 우리는 가족이니까.
#
" 김 간호사, 내과 의사 있지, 그……. 권 의사. 연락 해봐. "
" 네, 선생님. "
걱정이다.
일이 바빠서 윤아에게 신경을 잘 써주지 못하는 바람에…….
머리가 아파와 손으로 이리저리 문지르면서 눈을 감고 있는데, 인터폰으로 김간호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선생님, 2번입니다. "
2번을 누르고 전화기를 집어 드니, 권 선생이었다.
" 무슨 일이에요? "
" 아, 유리 씨. 저, 내과 수술이 몇살 부터 되는가요? "
" 에? 갑자기 그건 왜요? "
유리 씨에게 설명을 해주…… 어야 겠지.
나는 한숨을 한번 쉬고는 차근차근 설명해 나가기로 했다.
" 아끼는 동생이 있는데, 그 애 딸이 폐결핵인것 같아서요. 수술이 가능해요? 음……. 한 두돌쯤 지난것 같은데. "
" 두돌? 아구구……. 좀 곤란할 것 같은데……. 곤란이 문제가 아니라 불가능 해요. "
" 그런… 가요……. "
유리 씨의 말에 나는 실망감을 한껏 느끼면서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 뱉었다.
윤아가 불쌍해서 어떡하나.
불쌍이라기 보다는, 안타까웠다.
윤아는 여린 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윤아를 많이 봐 왔고, 서로 의지하는 그런 사이였던 나는 윤아가 결혼한다면서 행복해 하는 그 날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세상을 다 가진듯한 표정으로 해맑게 웃으며 말하던 윤아.
그게 엊그제 같은데.
아기를 낳았고, 알콩달콩 살아간다는 소리에 우스갯소리로 어린것이라는 소리도 많이 하고…….
" 임 선생님? "
" 아, 네. "
전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까먹어 버렸다.
" 좀 안타깝지만 안 되겠는데요. 약 처방밖에는……. 심각해요? "
" 조금……. "
" 일찍 치료해야 된다고 전해줘요. 잘못했다간 심내막염까지 번져서 손도 못써. "
" 고마워요. 나중에 밥 한끼 살게요. "
그리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하아.
#
설아는 잠에서 깨어나 내 품에 안겨서는 이리저리 꽃을 가지고 나뭇잎을 때리려 하고 있다.
자기가 어떤 상태인줄 알기나 하는 걸까.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그녀의 어린 나이를, 그리고 우리의 '무관심과 사랑의 부족'을 탓했다.
" 설아야! 나 - 무 ! "
" 바부 - ! "
나무라니까, 바부가 아니라.
윤아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 전혀 웃음 같지 않았다. - 설아에게 단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윤아가 말은 해주지 않았지만, 대충 예상은 되었다.
설아가, 많이 아프다는 것일거다.
" 이잇! 바부! "
윤아가 볼을 부풀리면서 설아를 귀엽게 째려보았다.
" 이헤헤 - "
그런 '엄마'가 귀여웠는지 작디 작은 손으로 그녀의 볼을 만지작 거렸다.
" 이노옴! 엄마를! "
혼낸답시고 무서운 표정 짓는것 같은데, 하나도 안 무서워, 아줌마야.
나는 웃으면서 두 모녀를 바라보았다.
" 왜 웃어, 오빠는! "
이크.
불똥 튄다.
" 그냥, 행복해 보여서. "
" 행복하지. 설아가 있는데. "
그래.
설아가 있잖아.
앞으로 60년은 더 보고 살아야 돼.
그렇고 말고.
이상한 생각 하지말자, 이연우.
" 히. 물론 오빠두. "
그리고는 내 팔짱을 끼고는 씩 웃어보였다.
" 우리 매일 이렇게 나와서 산책할까? 겨울에는 좀 그러니까, 봄에. 어때? 입춘도 지났고, 곧 봄인데. "
" 그래요! 좋다. 운동도 되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