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화 (52/57)

" 선배에 - ! "

또 같은 패턴이었다.

뭐, 수연이가 엎에 없다는 것이 유일한 차이점이랄까.

혼자서 밥을 먹고 잠시 도서관으로 가려던 차, 지연이가 나를 부르며 달려왔다.

긴 머리를 쌩쌩 휘날리면서 달려온 지연이는 내 앞에서 숨을 헥헥 거렸다.

" 또 왜, 이눔아. "

" 수연이 못 봤…, 어요? "

" 수연이? 응. 오늘 학교 안 나온거 아냐? "

" 에이 그럴리가. 수연이 오빠 볼려고라도 매일 나올걸요? "

" 시끄러. "

이상한 소리를 하는 지연이의 이마에 딱밤을 한대 먹여주고는 나는 돌아ㄱ섰다.

무슨 일이 있겠지.

그게 내 생각이어ㅆ다.

수연이야 성격이 냉철해서 - 나는 전혀 못 느끼겠다. 아니, 아주 가끔 느낄 수 있었다. - 아무 일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 에이 씨, 걱정 돼 죽겠네. "

" 왜. 맨날 싸우더만. "

싸우다 정들어 버렸나?

물론 진짜 싸운게 아니라 장난으로 티격태격 댄 거겠지만 말이다.

" 장난이죠. 어! 어? 수, 수연이 염색했다! "

갑자기 뭔 소리냐는 듯이 지연이의 눈이 향한 곳을 바라보니, 수연이가 있었다.

화려한 금발이 아닌 연한 브라운으로 염색한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 수연아아 - ! "

이제는 또 수연이를 부르면서 달려가는 지연이를 보며 나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렇게 방방 거려서야 어디 시집이나 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 오빠! "

이건 또 뭐야.

수연이를 바로 앞에 두고 가려던 찰나, 뒤에서 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뿌와-! 빠붑-! "

하는 소리와 함께.

윤아는 또 왜 온거야…….

" 오빠아아 - ! "

방금 전 선배에 - ! 했던 지연이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윤아는 또 왜 온걸까.

더구나 혼자도 아닌 설아랑 같이.

우리학교 학생들은 전부 설아를 보더니 귀엽다면서 누구 찬양하듯이 쭉 모여들고 있었다.

덕분에 윤아가 군중의 중심이 되어서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 연우 오빠. 윤아 언니 학교 오기로 했어요? "

수연이도 나에게 다가와서 (지연이를 뿌리치고) 물었다.

내가 부른게 아닌데 말이지.

" 그러게 말이다. "

" 꺄아악! 선배! 선배 딸이에요? 너무 귀엽다! "

오두방정 지연이는 벌써부터 군중을 뚫고 들어가 윤아 앞에 서있다.

설아의 볼을 이리저리 만지면서 귀엽다면서 꺄르르 대는 모습을 보니 아직 어린 것 같다.

" 윤아야. 갑자기 무슨 일이야? "

" 한눈 안 파나 감시차 온거랄까? 그렇게 말해둘게요. 히히. "

…….

" 일편단심이라구요. 이리와 우리 공주님. "

설아는 나를 보더니 바보 같이 웃으면서 내게 안겨왔다.

살좀 쪘나?

정말 한손으로도 거뜬히 들 수 있을 정도의 무게인 우리 설아.

많이 많이 먹고 무럭 무럭 커야돼.

" 언니, 오랜만이에요. "

" 아, 수연이 안녕! 옷 고마워. 잘 입고 있어. "

음…….

언니라.

호칭이 또 바뀌었다.

딱딱하게 윤아씨, 수연씨 하는 것 보다는 좋지만, 그래도 배신감을 조금 느낀다.

이럴거면 왜 그렇게 싸워댔던거야.

나만 어색했잖아.

" 선배. 선배 부인 진ㅉ 예쁘신데요? 어떻게 만난거에요? "

" 킥. 왜? 다 내 능력 덕분이지 뭐. 하하. "

조금은 뻔뻔해진 나다.

" 오빠 강의 있어? "

윤아가 내게 물어왔다.

설아까지 데리고 또 어디를 가려고 하는 것일까.

잠시 생각해 보니 강의 하나가 더 남아 있었다.

수연이가 전과하는 바람에 같이 듣는 - 지연이도 같이 했다는 건 말하기가 싫다 - 강의였다.

윤아를 향해 고개를 주억거려주자, 윤아는 팔짱을 끼고 잠시 나를 보았다.

" 우리 사진이나 찍으러 갈려 했는데. 조금 기다릴게. 언제 끝나는데? "

" 기, 기다린다고? 미리 말하지 그랬어. 언제 끝나는지 문자 줬을텐데. "

" 히. 교수실이나 가볼까? 김지훈 교수님 뵈면 시간 빨리 갈꺼 같은데. 끝나면 전화해요. 나 데려다 줄거지? "

절대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할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 알았어. 수연아, 지연아. 먼저 들어가 있어. 나 윤아 좀 데려다 주고 올게. "

" 네. 가자, 지연아. "

수연이가 즉각 대답했다.

조금 더…… 차가워 진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하면서 넘겨버리고는 윤아의 손을 덥석 잡았다.

" 가자. "

" 응! 설아야, 가자? "

" 뿌우우! 아- 빠! "

윤아를 데리고 전체 교수실이 모여있는 홀로 들어왔다.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

조금 부끄러웠지만 뭐, 어떠랴.

우리가 좋다는데.

그리고 우리 학교에서 나와 윤아의 결혼 소식은 퍼질대로 퍼졌으니까 상관 없겠지.

" 이게 누구야! 윤아 아냐? "

뒤에서 윤아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김 교수님이셨다.

우리가 찾아 뵈러 가려했는데.

" 어! 교수님! 지금 교수님 뵈러 가는 길이었어요! "

" 그래? 들어와, 그럼. 연우도 들어올거지? "

교수님이 교수실의 문을 열며 말하셨다.

" 아, 그러고 싶지만 바로 강의가 있어서요. 윤아가 들렀길래 잠시 시간 낸거라서요. 죄송해요. "

" 아냐, 아냐. 들어가봐. 오랜만에 윤아랑 이야기 하면 되지. 마침 나도 강의 없고. "

" 그럼, 가보겠습니다. 윤아야, 조금 있다 봐. "

나는 윤아의 손을 한번 꽉 잡아주고는 몸을 돌렸다.

" 잠깐! "

그 때 윤아가 나를 부르더니 쪼르르 달려왔다.

-쪽

내게 입맞추어 주고는 팔을 세차게 흔들며 나를 배웅(?) 했다.

" 허허! 보기 좋구나, 두 사람. "

인자하신 분이라서 다행이다.

" 내일 뵈요, 오빠. 윤아 언니도 나중에 뵈요. "

" 선배, 가세요! "

윤아와 설아, 지연이와 수연이 - (윤+설)아, (지+수)연 - 와 함께 학교 교문으로 나왔다.

아직까지도 학생들은 우리를 신기한지 쳐다보고 있다.

내가 유일한 남자라서 그런가?

윤아에게는 조금 미안한 이야기지만, 수연이와 지연이 정도 미모를 가진 사람 사이에 둘러 쌓여있으니, 남학생들의 눈엣가시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가끔씩 준연이의 누나인 태연 누나도 학교를 방문해서 곤혹스럽게 했던 적도 있었다.

전생에 난 왕이었나보다.

여복이 터졌으니.

" 가족 사진 찍는 거지? 돌 사진으로는 만족 못했어? "

" 웅……. 조금 더 화려한 거 찍을거야! "

화려한 거 좋아하기는.

" 알았어. "

" 나 오빠한테 뽀뽀하는 거 찍을거야. 괜찮죠? "

나야 괜찮은데, 사진작가가 조금 오글거려서 셔터도 못누를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래서는… 조금 불안한데?

뭐 어찌됬든 나와 윤아, 설아는 붐비는 거리를 걸었다.

사진을 잘 하는 곳은 모르지만, 번화가에 가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 없…… 는데, 윤아야? "

" 그, 그러게. 조금만 더 걸어요. "

데이트한다는 셈 치고 더 걷기로 했다.

봄이 오나보다.

꽃 냄새도 살짝씩 나고, 무엇보다, 윤아의 옷차림이 시원시원 해진 것이, 코트를 주로 입었던 겨울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짧은 치마를 입고 후드티만 걸친, 정말 귀여운 봄의상이었다.

" 어엇. 사진관이다. 큰데? 저기 가자. "

" 오케이!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