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화 (57/57)

…….

사진……, 이었다.

지난 달, 윤아, 설아와 함께 가족사진을 찍으러 갔을때…….

세 가족이 함께 웃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

" …….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계속해서 울고 있는 그녀를 꽉 끌어안을 뿐이었다.

" 설아야……. 설아야……. "

윤아의 입이 내 가슴에서 움직이며 딸을 애타게 찾는다.

찢어지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한채 그녀와 함께 사진을 힘있게 잡았다.

설아.

내 첫 딸.

[ 우으으응 - ]

또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서 난 팔을 풀고 윤아를 일으켜 세웠다.

" 윤아야 잠시만 이리와 봐. 아니다. 기다려. "

나는 그 말을 남기고 창고로 가서 연장도구를 가지고 왔다.

이것저것 급하게 뒤지다가 못과 망치를 찾은 나는 얼른 거실 제일 큰 벽에다가 못질을 하기 시작했다.

몇번을 두드려 못이 깊게 박힌 듯 하자, 나는 커다란 액자를 들고 와서 거기다가 걸었다.

윤아는 약간 놀란 표정이다.

" 설아는, 영원히 우리 딸이야. 지금은 여기 없지만, 우리 딸이라고. 윤아야. 우리 그만 울자. 응? 이렇게 설아 있잖아. 액자에도. 우리 딸이라고. 내 마음속에도 있고 네 마음속에도 있고. "

" ……. "

그녀가 아무말 없이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내자 나는 살짝 안타까운 표정으로 다가가 그녀를 다시 한번 꼭 안아주었다.

" 우린……. 설아의 하나뿐인 엄마, 아빠야. "

" 언니. 혹시 윤아 언니랑 친한 사람들 좀 알고 계세요? "

[ 응? 음……. 응. 조금은. 왜 그래? ]

" 할게 좀 있어서요. 태연 언니랑 지연이한테는 말해 놨구요. 언니가 그 분들이랑 같이 좀 오시면 안될까요? 중요한 일이라서요. "

[ 윤아에 관련된 거야? ]

" 네. 문자로 장소랑 시간 찍어드릴게요. 부탁드려요. "

#

연우의 결단력있는 행동으로 인해서 그의 집에는 설아와의 사진이 떡하니 걸리게 되었다.

윤아도 그를 더 믿는 것 같았으며, 간간히 웃는 등 조금씩 회복되는 추세였으나, 아직까지는 슬퍼보였다.

그녀의 남편에게 부리던 애교도 부리지 않고, 말도 적어젔으니까.

그런 윤아를 보는 연우의 마음은 찢어질 듯 했다.

그들은 지금 쇼파에 앉아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씩 근심을 풀어가는 중이다.

[띵동 -]

그 때, 초인종이 울렸다.

연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 택베인데요. 사인만 좀 해주십쇼. "

" 아, 예. 감사합니다. "

연우는 그 말과 함께 사인을 하고 소포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윤아가 일어나며 연우에게 뭐냐고 물어왔다.

" 글쎄. 이게 뭐지. "

연우는 비닐을 뜯고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비디오 테이프와 쪽지 한 장이었다.

" 이상한 것 아니니 틀어보시…오? "

윤아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이 갸우뚱 하며 연우를 바라보았다.

연우라고 해서 그게 뭔지 알리가 있을까.

약간은 미심쩍은 생각이 들면서도 궁금해지는 연우였다.

" 일단 한번 보자. "

연우는 그 말과 함께 티비로 가서 비디오 테이프를 꽂아 넣고 윤아와 함께 쇼파에 앉았다.

밝은 노란 벽이 보이더니, 이윽고 한 사람이 나타났다.

진아였다.

[에헴. 흠흠. 아, 이거 내가 첫번째로 해야되는거에요?]

[네! 빨리! 테이프 돌아가고 있단 말이에요!]

티비 안에서는 이런저런 소란이 일고 있었다.

진아는 조금 당황한 표정이더니 이내 싱긋 웃고는 입을 열었다.

[ 윤아에게. 아, 윤아뿐만이 아니라 윤아 남편분, 연우씨에게도. 안녕하세요, 임진아입니다. 흠……. 일단 윤아! 너 이 놈아. 맨날 의기소침해서 저기압이라며? 내가 뭐라 그랬어. 너 항상 웃으라 그랬지? 결혼할 때도 항상 행복한 표정 지으라고 그렇게 당부 했는데 이러면 어떡해! 언니 마음 찢어진다. 제발 그러지 말아주라. 넌 항상 웃어야 하고,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야 해. 비록 설아가 지금 안타깝게 떠나버렸지만, 훌훌 털어야지. 절대 잊으란 말이 아니야. 네 딸과의 추억은 항상, 죽을 때까지 잊지 말고. 너, 애 이제 안 낳을것도 아니잖아. 설아 동생 만들어줘야 할 것 아니야. 알았지? 항상 웃어줘. 그리고 연우 씨! 제가 나이 쪼-끔 더 많은데 윤아 울리면 때려줄거에요? 진심이에요. 항상 웃게 해줘야 해요. 윤아 여린 아이니까……. 그리고 빨리 설아 동생 만들어주고! ]

진아의 짧은 영상편지에 이미 윤아는 입을 가리고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연우가 옆에서 꽉 안아주며 영상편지를 보는데도, 도무지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얍! 헤이! 내가 가게까지 비우고 여기 영상편지 전하러 왔다. 고마워 해, 이눔아. 자. 흠……. 앞에서 진아씨가 다 말해서 뭐 할말이 없네. 내가 해줄 말은, 힘내란 말이야. 윤아도 그렇고, 연우도 그렇고. 설아, 항상 너네 곁에 있을거니까, 행복하게 살아가는게 그 애를 위하는 일이야. 잘 알지? 힘든일 있으면 무조건 전화하고. 오케이? 이놈아. 좀 많이 들르고. 윤아도 마찬가지! 슬퍼한다고 달라질 건 없어. 이제 새롭게 출발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웃는 모습 보여주길 바랄게. 안뇽 -]

주현의 말이 끝나자 바로 치고 들어온 것은 지연이었다.

[선배! 저 지연이에요. 윤아 언니도 안녕하셨죠? 수연이 연락받고 급히 왔네요. 처음에 윤아 언니보고 정말 부럽다, 어떻게 저렇게 예쁠수가 있나. 몸매도 좋고, 남편도 엄청 멋있고. 롤모델이라고 하기엔 좀 거창한가? 어쨋든 그런 생각들었어요. 그런데, 요즘 슬퍼하는 윤아언니 모습은 아니에요. 활발하고 밝은 언니 모습이 제 롤모델이였다구요. 그!러!니!까! 제발 웃어주세요 이젠. 저는 윤아 언니 웃는 모습 다시 보고 싶다구요……. 으힝……. 그리고, 연우 선배! 오빠도 예전처럼 말 많이 하고 그러라구요……. 저랑 수연이 얼마나 답답한지 아세요? 아, 그리고…….]

[나와, 나와! 내 차례얏!]

무슨 말을 전하고 싶어하는 지연인 것 같았지만, 태연이 먼저 치고 들어왔다.

했는말을 반복해서 그런것 같았다.

태연은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시작했다.

[연우 윤아 커플 보라! 이 놈들아. 내가 너희 그러라고 연우 포기한거 아닌데? 연우 너 잘 알다시피 우리 아빠가 너 한테 시집 보낼라 그런거 알지? 그런데 짜슥아. 그렇게 하면 어떡해? 윤아랑 평생 행복하게 살아야 될거 아니야! 앙? 내일부터 다정했던 커플로 복귀하라고! 아니, 커플이 아니지. 부부로! 내일 안에 다정하게 뽀뽀하는 사진 찍어서 나한테 보내! 이상!]

태연은 그 말과 함께 손을 머리 위에 올렸다가 내리는 거수경례를 하고 나서 자리를 비켰다.

다음은…….

수연이와 미영이었다.

[팟. 설아 이모 미영이와 수연입니다. 설아 엄마! 그러지 마. 네 탓도 아니고, 아, 물론 연우오빠 탓도 아니지만, 설아가 일찍 떠나버린건 미안하지만 지난 일이야. 물론, 너는 설아 엄마고, 오빠는 설아 아빠고. 절대 잊을 수 없단느 것 알아. 하지만 설아 동생들도 생각해야지. 아니, 설아를 생각해야지. 엄마 아빠가 자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슬퍼하는 거 알면 기분이 어떻겠어? 나라도 싫겠다. 그러니까, 훌훌 털고 일어나란 말이야. 자, 수연이! 할 말 없어? 

음……. 일단 윤아 언니. 저희 사이 안 좋았을 때, 풀어준게 설아라고 생각해요. 언니 임신 했을 때 서로 화해했고, 아주 친한 사이가 됬고. 그런 설아, 진심으로 사랑했고, 어린 나이에 떠난 건 저도 정말 메일 침울해요. 그런데 언니는 어떻겠어요? 하지만. 이건 해결방안이 아니잖아요. 훌훌 털고 일어나셔야죠. 다시 웃어주고, 수연아! ㅎ고 불러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연우 오빠! 음……. 연우 오빤 제가 저번주에 말씀 드렸으니까 짧게 할게요. 이해 바래요. 원래 그랬겠지만, 윤아 언니 항상 사랑해 주고, 설아 동생들도요. 음……. 에……. 흐응……. 또 말 할 것 없나?]

수연이가 질질 끌자, 태연이 다시 불쑥 나와서 헤맑게 웃으며 말했다.

[자, 자! 다 모여요! 엔딩 멘트 남았잖아요!]

그녀의 말에 연상편지를 전했던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외쳤다.

[우리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그녀들의 미소와 함께, 테이프는 꺼졌다.

연우는 웃으며 울고 있는 윤아를 꽉 안아주며 중얼거렸다.

" 괜찮아. 괜찮아, 윤아야……. 우리, 이제 웃자. 계속해서……. 우리를 생각하는 저 사람들, 실망시킬 순 없잖아. 설아 동생들은 설아에게 못해줬던 많은 것들 다 해주면서, 그렇게 우리 다시 시작하자. 알았지 윤아야? "

" 네……. 흐읍……. 미안해요 오빠……. "

" 아니야. 됐어. 어서 예전의 윤아로 돌아와! "

" 치……. "

윤아는 그녀의 남편의 말에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품에 안겼다.

설아…….

첫 딸이자 사랑했던 아이.

그녀는 먼저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버렸찌만, 윤아와 연우의 사랑은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그 말은, 더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이겠지.

윤아는 그런 생각을 하며 활짝 웃었다.

' 엄마……. 다시 일어날게. 다시 일어나서, 설아가 하늘에서 웃을 수 있게. 안녕, 설아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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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logue ~ 60 (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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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는 따로 올립니다.

* 이제까지 뜨거운 여자들을 사랑해주신 모든분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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