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부에서 계속 됩니다.
1.휴가철이라 그런지 게시판이 조금은 한산해 보이네요.
2.저와 여러분들이 바라는 므훗 장면은 11부 쯤이 아닐까 싶습니다.
3.날이 덥네요. 더워서 자리에 앉아 글 쓰는 것도 쉽지는 않은 듯....
감사합니다.‘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라는 영화가 있다. 태어났을 때부터 80세의 외모를 가진 사나이가 세월이 흐를수록 남들과는 다르게 젊어지는 모습을 그려낸 영화이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판타지적 요소를 가지고 지극히 현실적인 드라마로 만들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 냈는데, 과연 그 이유가 뭘까?.
그 이유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젊음’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공통된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늙기 시작하고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었다. 젊음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흐르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한 이유로 이 영화가 많은 공감을 얻어낸 것은 ‘인간이 80세로 태어나 18세를 향해 늙어간다면 인생은 무한히 행복하리라’라는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명언에 충실했기 때문이었다.
젊어지는 것, 세상 사람들 누구나 꿈꾸는 것이다. 젊음은 그 자체로 아름다고 고귀하다. 그래서 ‘청춘 예찬’이라는 수필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것이다. 청춘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우리의 맘을 설레게 한다. 언제나 눈부실 것 같고 빛나는 미래를 꿈꾸며 마냥 즐거울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청춘도 결국에는 세월 속에 묻혀 진다. ‘사람은 늙어간다’라는 피할 수 없는 진리 때문인데, 아주 가끔은 이것을 역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말로는 ‘회춘’이라고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마치 그 사람만 세월이 비껴간 듯이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다운이 엄마가 딱 그랬다.
약속 시간인 오후 4시가 되어서 301호로 내려가서 다운이 엄마를 불러냈다. 301호의 현관문이 열리고 다운이 엄마가 내 눈에 들어왔을 때, 난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평소와는 아주 다른 느낌의 다운이 엄마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래?. 부끄럽게...”
“아, 아뇨. 너무... 예쁘세요.”
“호호호. 너무 주책이지 않아?.”
“저... 전혀요. 잘 어울리세요.”
43세인 다운이 엄마는 평소에도 10년은 젊어 보이는 여자였다. 그러나 내 앞에 있는 다운이 엄마는 20년은 젊어 보였다. 옷차림 하나가 이렇게 사람을 또 달라지게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운이 엄마는 청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말이 반바지지 최근 추세에 따라 거의 핫팬츠에 가까웠다. 다운이 엄마의 길고 매끄러운 다리가 상당히 돋보였다. 상의는 안에 검정색 민소매 옷을 입고 그 위에는 살짝 속이 비치는 흰색 셔츠를 입어서 상당히 깨끗하고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다운이 엄마의 가슴도 부담스럽지 않게 부각이 되었다. 신발은 굽이 낮은 갈색에 가까운 샌들이었다. 키가 크고 다리가 긴 다운이 엄마였기 때문에, 샌들 굽이 낮아도 각선미를 돋보이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전체적으로 다운이 엄마는 발랄한 여자 대학생의 이미지였다. 마지막 코디로 선글라스를 끼면서 한층 더 세련된 느낌마저 들었는데, 어느 누가 다운이 엄마를 두고 43세의 유부녀라고 말할 수 있을는지...
“와... 정말 예뻐요.”
“그만 좀 해... 호호.”
다운이 엄마와 나는 아파트에서 나왔다. 그리고 다운이 엄마 차가 주차가 되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다운이 엄마 차가 주차된 곳에 걸어가면서 다운이 엄마가 나에게 말을 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그래요?. 영화 보고 가요.”
“영화는 나중에 보고 그곳에 가면 안 될까?.”
“어디요?.”
“나에게 의미가 있는 곳... 그곳에 가면 좋을 것 같아...”
다운이 엄마는 가고 싶다는 곳이 있었다. 그러나 어디인지는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다운이 엄마의 기분전환을 위해서 영화를 보자고 했던 것 뿐 인지, 반드시 영화를 볼 필요는 없었다. 같이 있는 것이 중요했으니... 마침, 현재 개봉한 영화 중에서 볼 만한 것도 없었다.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에 도착한 우리는 다운이 엄마 차에 올라탔다. 운전은 다운이 엄마가 했는데, 조수석에 앉아 운전을 하는 그녀를 힐끔 쳐다보니, 정말 섹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운이 엄마의 긴 다리는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났는데, 한 번쯤 손으로 쓸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들 운전을 하는 남자가 섹시하다는 말이 있었지만, 오히려 다운이 엄마를 보니, 운전을 하는 여자가 섹시하다는 말이 옳을 듯 했다. 앙증맞은 발로 엑셀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밟는 모습은 그 누가 보더라도 사랑스럽다고 느낄 것이다.
“음... 잠실 쪽 아닌가요?.”
“그래. 잠실로 가는 거야...”
잠실이라. 잠실에서 가 볼만 곳을 생각해 봤다. 잠실야구장?. 롯데월드?. 잠실야구장은 과거 다운이 아빠가 극적인 홈런을 친 곳이기는 했지만, 크게 갈 이유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롯데월드?. 그것도 좀 아닌 것 같다.
“야구장이나 롯데월드는 아니겠죠?.”
“아니야.”
“그렇다면....아?. 설마 석촌 호수?.”
“딩동댕. 호호... 가 본 적 있어?.”
“네.”
잠실에는 석촌 호수가 있었다. 예전에 대학 시절 아주 짧은 기간 데이트를 한 여자가 있었는데, 함께 롯데월드로 놀러갔다가 석촌 호수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 그런데 그 여자 애 이름이 뭐였더라. 석촌 호수와 함께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혹시 여자랑 간 거야?.”
“아... 아뇨.”
“왜 그렇게 놀라?. 호호호. 데이트하기에 좋잖아.”
“가 본 것 같은데... 잘 기억은 안 나네요.”
다운이 엄마와 즐겁게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석촌 호수에 도착을 했다. 주차 지역에 주차를 한 후,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석촌 호수로 걸어갔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후 5시가 조금 넘었었다.
석촌 호수는 잠실 롯데월드를 끼고 있는 호수 공원이었다. 송파구에 있어서 송파 나루공원이라고도 불렸다. 가을은 운치가 있어 좋고, 봄에는 벚꽃이 피어 아름다운 이 곳은 호수를 사이에 두고 동호와 서호로 나뉘어져 있고, 호수 둘레 길은 2.5Km로 산책을 하거나 연인들끼리 데이트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참 좋다. 그치?.”
“그러네요.”
활엽수가 터널을 이룬 산책길을 다운이 엄마와 걸었는데, 초여름이었지만 호수에서 부는 잔잔한 바람은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었고, 곳곳에는 사랑의 시간을 보내는 연인들이 보였다.
“7년 전에, 이곳에 온 적이 있었어.”
“그래요?.”
“다운이가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그때는 전주에서 살았지. 다운이가 고3을 앞두고 롯데월드로 놀러 온 적이 있었거든... 그때 여기에 왔었어.”
“그렇군요.”
“그때는 봄이라... 벚꽃도 구경하고 그랬는데...호호. 이 곳은 석양과 야경이 멋져...”
다운이와의 추억이 담긴 곳이라... 다행히 다운이 엄마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언제나 처럼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눌 뿐... 우리는 아주 천천히 석촌 호수 둘레를 걷고 있었다.
“전 마치 데이트 하는 것 같아요.”
“그래?.”
“네. 사랑하는 여자와 데이트 하는 기분이 드는데요?.”
“호호호. 늙은 아줌마랑 있는 것이 뭐가 좋아?.”
“하하. 아까도 말했지만, 아줌마 엄청 젊어 보인다니깐요.”
“그래봤자. 아줌마잖아...”
“에이. 누가 보면 저보다 동생으로 보일 것 같은데요.”
실제로 동생까지는 모르겠지만, 다운이 엄마가 나랑 연인사이라고 하더라도 이상하게 볼 사람은 없을 듯 했다. 그만큼 다운이 엄마는 아가씨처럼 젊어 보였다. 여기서 난 진도를 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운이 엄마가 더 이상 다운이 생각을 하지 않도록...
“아줌마. 그럼 저랑 게임 하나 해요.”
“무슨 게임?.”
“야자 타임 시간을 가져보죠. 이곳을 벗어나는 시간까지....”
“야자 타임?.”
“보통의 야자 타임과는 조금 다르게... 서로 연인인척 말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말을 꺼내놓고 다운이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다운이 엄마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했지만, 역시 나를 쳐다보고 방긋 웃는다. 그런 다운이 엄마를 두고 다시 한 번 설득에 들어갔다.
“이곳에 연인들이 많잖아요. 저기도 있고, 여기도 있고... 아줌마랑 연인인척 행동하면... 젊은 느낌도 들고....”
“그럼 내가 늙었단 말이야?.”
“.... 뭐... 그건 아니라....”
“호호호. 좋아. 대신 석촌 호수에서만 그러는 거야.”
“네.”
다운이 엄마의 승낙을 받아냈다. 이제부터는 내가 다운이 엄마를 주도해야 했다. 솔직히 이름을 부르고, 말을 놓는 것이 어색했지만, 내가 먼저 제안을 해놓고 그런 모습을 보여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과감해져야 했다. 나는 대답과 동시에 다운이 엄마의 손을 잡았다.
“명희야. 저쪽으로 가자.”
“호호호호.”
용기를 내서 다운이 엄마 이름을 불렀고, 그녀의 손을 잡고 내 쪽으로 이끌었다. 다운이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웃을 뿐이었다.
“왜 그렇게 웃어?.”
“아니야. 민수가 귀여워서...”
“놀리는 거야?.”
“호호호. 우리 애인을 제가 어떻게 놀리겠어요.”
다운이 엄마는 자꾸 나를 놀렸지만, 그래도 우리는 화기애애했다. 난 다운이 엄마의 손에 깍지를 끼고 더욱 꼭 잡았다. 다운이 엄마도 싫지 않은 듯 했다. 한동안 그렇게 손을 잡고 산책을 하던 다운이 엄마와 나는 그늘이 진 벤치에 앉았다.
“이제 해가 지려나봐?.”
“그러게요. 아니, 그러게.”
“호호호.”
시간을 확인해 보니, 어느새 저녁 7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해가 서쪽 하늘로 뉘웃뉘웃 저물어 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조금씩 하늘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연인이 여기에 있네요. 이 순간을 놓치지 마세요. 사진 하나 찍으시죠?.”
“연인이요?.”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대머리의 중년 아저씨가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폴로라이드 사진기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아 사진사인 듯 했다.
“이렇게 잘 어울리는 연인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있는데, 사진을 남기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하하하.”
“그런가요?. 하하하. 그럼 찍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가까이 붙으셔서 포즈 취하세요.”
다운이 엄마의 의견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을 했다. 난 다운이 엄마의 어깨를 감싸 안았고 얼굴의 한쪽을 그녀의 볼에 대었다. 마치 진짜 연인들이 다정하게 사진을 찍는 것처럼...
“자. 하나, 둘....”
찰칵.
사진을 찍었고, 폴로라이드에서 사진이 나오고 있었다. 그때까지 다운이 엄마를 안고 있었는데, 그녀가 잠시 몸을 뺐다. 어색했지만, 모르는 척 했다.
“잘 나오셨네요. 여기 있습니다.”
돈을 지불하고 사진을 받아 들었다. 사진 속의 다운이 엄마는 활짝 웃고 있었다. 단지 아쉬운 점이라면 생각보다 내가 머리가 크게 나온 점... 사진을 다운이 엄마에게 건네주었다. 한참을 사진만 보던 다운이 엄마가 말을 했다.
“민수... 머리가 크구나.”
“켁.”
“호호호.”
“봐. 사진사도 연인 같다고 하잖아. 명희가 그렇게 젊어 보이는 거야.”
“호호호. 아니지. 민수가 그렇게 늙어 보이는 거지...”
“켁.”
다운이 엄마와 나는 한동안 사진을 가지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서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가는 석양을 감상했다. 밤 8시가 가까운 시간에는 일몰이 이뤄지면서 캄캄해지기 시작했고, 석촌 호수의 야경이 장관을 이뤘다.
다운이 엄마는 두 손을 모으고 아름다운 석촌 호수의 야경을 바라봤다. 그때만큼은 다운이 엄마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야경보다는 다운이 엄마를 쳐다봤는데, 마치 10대 소녀와 같은 그녀의 행동에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가야지...”
“응.”
“응이라니. 이제 연인 게임은 끝이야.”
“... 네”
“그래도 정말 연애하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어.”
“저도요.”
다운이 엄마와 나는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차를 타고 집으로 가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시간이 벌써 밤 9시에 가까웠다.
“민수. 배고프지?.”
“그러네요.”
석촌 호수에서 산책을 하느라, 우리는 저녁을 먹지 않았었다. 상당히 배가 고픈 상태였다.
“저녁 해줄게. 어제 김치찌개 할 재료가 그대로 있거든. 우리 집으로 가자.”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난 머리를 굴렸다. 오늘만큼은 301호가 아닌, 401호인 우리 집에서 다운이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아줌마. 오늘은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으면 안 될까요?.”
“왜?.”
“우리 집에 한 번도 안 오셨잖아요.”
“호호. 한 번 갔는데... 민수가 술에 취했을 때.....”
“켁. 그건..... 빼야죠.”
“음.... 좋아. 어차피 재료만 가지고 올라가면 되니깐. 밥은 있지?.”
“네. 밥은 있어요.”
“그러면 가서 기다릴래?. 재료 가지고 올라갈게...”
“네.”
일단은 다운이 엄마와 나는 그렇게 각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채 5분도 되지 않아서 다운이 엄마가 우리 집으로 올라왔다. 김치찌개 재료를 가져와서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부엌에서 무언가 도울 것이 없냐고 물으면서 다운이 엄마를 훔쳐봤다.
다운이 엄마는 김치찌개를 끓이며 외출할 때 입었던 흰색 셔츠를 벗었다. 다운이 엄마는 검은 민소매 옷과 핫팬츠에 가까운 청반바지만 입고 있었는데, 몸의 라인이 그대로 드러났다. 다운이 엄마를 훔쳐보면서,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그녀를 뒤에서 안고 덮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줌마. 저녁 먹고 가볍게 술 한 잔 해요?.”
“술?.”
한참 뜸을 들이다가 난 본심을 꺼내놓았다. 오늘밤은 다시 한 번 찾아온 기회라고 생각했고, 일단은 되든, 안 되든 찔러는 봐야 했다. 술 한 잔 하자는 나의 말에 다운이 엄마가 살짝 고민을 했지만, 이내 방긋 웃으며 말을 했다.
“그래. 오늘은 한 잔 하고 싶네...”
“역시 아줌마가 뭘 아신다니깐...”
“그런데 민수야. 아줌마랑 약속해야 해.”
“뭘요?.”
“저번처럼 취하면 안 돼. 너 부축하고 여기 올라오느라... 엄청 힘들었거든.”
“에이. 그런 걱정 마세요. 어차피 저희 집이니...저 취하면 그대로 놔둬도 되잖아요.”
“그런가. 호호호.”
“저 잠시 술 좀 사올게요.”
저녁식사 준비를 하는 다운이 엄마를 두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마트로 향했다. 마트에 도착한 나는 소주와 맥주 중 어느 것을 사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저번에 다운이 엄마와 술을 마셨을 때는데, 맥주를 마셨던 것 같은데...
다운이 엄마가 취해야 하는 날이었다. 소주를 선택하자니 다운이 엄마가 많이 마시지 않을 것 같고, 맥주를 선택하자니 취할 정도로 마실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맥주도 많이 마시면 취하지만, 그 전에 배가 불러서 못 마시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니...
“오늘은 이거다.”
결국에는 소주도 맥주도 아닌 ‘매화수’를 선택했다. 사실 술을 즐기는 입장에서 매화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한 번 마신 적이 있었는데, 이게 음료수인지, 술인지. 대신에 매화수는 여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일단 술이 맛있다. 매실향이 은은했고, 목 넘김이 부드러웠다. 더구나 달달한 맛도 있어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술이었다. 대략 도수는 14도 정도. 술 자체가 맛있기 때문에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여자들도 주량을 넘어서 많이 마시게 하는 술이었다.
물론, 그것을 노리고 남자들이 여자와 술을 마실 때, 일부러 매화수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었다. 주량을 넘어설 만큼 마시게 되기 때문에, 어느 한 순간 여자의 정신을 놓게 했다.
“음. 넉넉하게 10병 정도 살까...”
매화수 10병과 안주로 삼을 딸기 한 상자를 샀다. 매화수가 10병이나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부족한 것보다 나았으니... 술과 딸기를 산 후, 다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식탁에 저녁식사가 준비가 되어 있었다.
“술을 왜 이리 많이 샀어?.”
“뭐, 남으면 제가 두고두고 마셔도 되니깐요.”
“일단 저녁 먹어...”
술을 냉장고에 먹고 식탁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다운이 엄마와 단 둘이 밥을 먹은 적이 많았지만, 이렇게 우리 집에서 먹은 적은 처음이었다. 마치 다운이 엄마가 내 아내가 된 듯 한 착각마저 들었다.
“아. 역시 이 맛이야...”
“그렇게 맛있어?.”
“네.”
“호호호. 많이 먹어.”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 있는 다운이 엄마표 김치찌개는 일품이었다. 처음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던 때처럼, 난 밥을 두 공기나 먹었고, 다운이 엄마는 그런 나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저녁식사가 끝난 후, 식탁을 함께 대충 치웠다. 설거지까지 하려는 다운이 엄마를 말리고, 간단한 술상을 봤다. 안주는 내가 사 온 딸기와 남은 김치찌개였는데, 안주가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다운이 엄마와 나는 거실 바닥에 앉았다. 각자 소파에 기대었고, 우리 사이에는 술상이 있었다. 나는 냉장고에서 꺼내온 시원한 매화수를 다운이 엄마의 술잔에 채웠고, 나 역시 그녀에게 술을 받았다.
“무슨 술이야?.”
“뭐, 술도 아니죠. 그냥 맛있는 음료랄까요?. 한 번 마셔 보세요.”
“그럴까?.”
다운이 엄마와 나는 건배를 하고 술잔을 입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 천천히 술잔을 비웠다. 다운이 엄마의 목을 쳐다보니, 아주 부드럽게 술이 넘어가는 듯 했다.
“이야. 맛있네... 매실 음료수 마시는 것 같아...”
“그렇죠?. 그래서 큰 부담도 없어요.”
“호호호. 그러게...”
다운이 엄마는 매화수가 참 마음에 들은 것 같았다. 저번에 맥주를 마실 때보다 오히려 쉽게쉽게 술을 마셨다. 생각해보면 맥주야 고작 5도 정도이고, 매화수는 14도 정도인데, 쉽게 매화수를 마시는 다운이 엄마를 보고 난 계획대로 되는 것 같아서 상당히 설레기 시작했다.
“오늘 정말 즐겁다... 호호호.”
“저도 명희씨 때문에 즐거워요.”
“또 명희씨란다... 호호호...”
가벼운 농담과 함께 술자리는 길어지기 시작했다. 시간은 어느덧 밤 11시에 가까웠고, 매화수는 3병이 비어 있었다. 다운이 엄마의 양 볼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적당히 취기가 오른 듯 말도 조금씩 많아지기 시작했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래.”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갔다. 그리고 다시 거실에 돌아 왔을 때에는 다운이 엄마의 손에 텔레비전 리모컨이 들려 있었다.
“텔레비전 보시게요?.”
“그냥... 재밌는 거 있나 해서...”
다운이 엄마가 텔레비전을 보든, 안 보든 중요하지 않았다. 1시간이라도 우리 집에 더 오래 있는 것이 중요했다. 그만큼 술을 더 많이 마실 테니깐...
“어. 나 김상경 좋아하는데... 우리 이 영화나 볼까?.”
“영화요?.”
다운이 엄마가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다가 영화 채널에서 멈췄다. 무슨 영화인지 확인을 해보니, ‘생활의 발견’이었다. 어라?. 지난번에 나 혼자 봤던 영화인데?. 생각보다 야한 영화인데, 다운이 엄마가 보자고 하다니... 화면 구석에 있는 19라는 숫자를 못 본 것일까?.
“김상경 좋아하세요?. 저도 매우 좋아하는데... 이 영화 재밌겠네요. 저도 안 봤는데...”
“그래?. 어차피 오늘 영화 보기로 해서 못 봤으니... 이거로 볼까나?.”
“그러죠. 잠시 만요.”
난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형광등을 끄는 스위치로 다가갔다. 그리고 거실 불을 꺼버렸다. 방금 전까지 밝았던 거실은 어두워졌고, 텔레비전 화면에서 나오는 불빛만이 은은하게 거실을 비출 뿐이었다.
“영화를 볼 때는... 이런 분위기가 제 맛이죠.”
“호호호.”
제 자리에 돌아 온 나는 자리에 앉아 다운이 엄마와 건배를 한 후 술을 마셨다. 그리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를 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상경이 예진원과의 베드신이 나왔다. 얼핏 다운이 엄마를 쳐다보니, 조금은 당황스러워 하는 듯 했다. 그러나 난 짐짓 모르는 척 술 한 잔을 더 권했고, 다운이 엄마는 어색하게 술 한 잔을 마셨다.
“........”
“.......”
영화를 보는 내내 다운이 엄마와 나는 말이 없었다. 김상경의 상대로 예지원 다음에 추상미가 나왔고, 역시나 베드신이 시작되었다. 이미 지난번에 봤던 영화라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운이 엄마는 그렇지 않은 듯 했다.
야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몸을 부스럭거리며 불편해 했다. 물론, 나에게는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다. 오히려 티를 내면 분위기가 더욱 더 이상해질 것을 염려하는 듯 했다. 그렇다고 내가 집중하며 보고 있는 영화를 두고, 텔레비전 채널을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생각하면 그 영화를 보면서 내가 김상경이고, 다운이 엄마가 예지원이나 추상미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상상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엄청난 정액을 쏟을 만큼 뜨거운 자위행위를 했던 기억도 났다.
다운이 엄마는 영화를 보는 내낸 말을 하지 않고 술만 홀짝 거리며 마셨다. 이미 그런 다운이 엄마를 훔쳐보는 내 자지는 빳빳하게 발기가 된 상태였는데, 거실이 어두웠기 때문에 다운이 엄마는 전혀 눈치를 챌 수가 없었다.
“영화 괜찮네요.”
“그... 그래.”
약 두 시간이 지난 후, 영화가 끝이 났다.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기 때문에, 난 먼저 영화가 괜찮다며 선수를 쳤고, 다운이 엄마가 맞장구를 쳐줬다.
“나 잠시 화장실 좀...”
다운이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향했다.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취해 있음이 느껴졌다. 벌써 빈 병이 5개째였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새벽 1시였다. 이제는 다운이 엄마가 늦었다고 집에 가더라도 말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강제로 덮칠까?.”
문득 혼자 중얼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 번은 다운이 엄마를 강제로 할 수 있겠지만, 그 순간 영원히 다운이 엄마를 잃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었다. 최악으로 가면 경찰에 잡혀가는 것도 감수해야 했으니...
다운이 엄마가 살짝 비틀거리며 술자리에 돌아왔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벌써... 1시가 넘었어...”
“그러게요.”
다운이 엄마 입에서 당장이라도 ‘집에 가야겠어’라는 말이 나올 듯 했다. 좀 더 시간을 끌어야 했다.
“명희씨랑 있으니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겠네요.”
“호호호. 또 명희씨... 아줌마 가지고 놀리면 못 써.”
“하하하. 지금 이 시간이 정말 즐겁네요.”
“나도 즐거웠어....”
다운이 엄마가 집으로 가려는 기세가 보였다.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저는 즐거운 이 시간이 좀 더 길어지면 좋을 것 같은데....”
“....늦었는데....”
“저랑 한 병만 더 마셔요.”
“지금도 많이 마신 것 같은데...”
다운이 엄마가 양손으로 자신의 양볼을 매만지며 말을 했다. 어쩔 수 없었다. 조금은 약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사실은 조금 외로워서 그래요. 평소에는 거의 대화를 할 사람이 없거든요. 아줌마는 꼭 제 친구나 누나 같아요. 제 속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이요. 편안하고 따뜻하고.....”
“그래?. 나도... 민수가 친구같이 좋아... 편안하고....”
“그냥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괜찮겠죠?.”
“좋아. 까지껏.... 호호.”
다운이 엄마를 다시 한 번 잡은 나는 냉장고에서 매화수 한 병을 꺼내왔다. 그리고 동시에 글라스 잔을 하나 가져와서 술상에 놓았다.
“글라스 잔은 왜?.”
“음... 원래 밤이 깊을수록, 또 술이 들어갈수록 사람은 감성적으로 변하잖아요.”
“그렇지.”
“누군가에게 자신의 고민도 털어놓고 싶고... 그냥 속에 있는 말도 하고 싶고....”
“.........”
자못 진지하게 내가 이야기를 하자, 다운이 엄마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내 말에 동조함을 알렸다. 그런 다운이 엄마를 보고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 또 한 번 게임해요.”
“게임?.”
“네. 좀 더 솔직해질 수 있고, 서로 가까워 질 수 있는...”
“.......”
“진실 게임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