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 (42/72)

#41

"야, 이하루! 팔찌 하고 나가야.............."

팔에 두를 검은가죽끈을 놓고간 하루의 뒤를 따라,

탈의실밖으로 서둘러 나온 나였다.

근데 그순간 날 향해 고개를 돌리는 하루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흠짓-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혼돈가득한 눈빛으로 아른거리는 하루의 눈.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애처롭게 날 응시하는 녀석의 눈빛에 순간 온몸이 거미줄처럼 

녀석에게 묶여버린채 그자리에 얼어붙어버렸다.

이...하루?

"....뭐해? 빨리줘!"

하지만 하루의 뜻밖의 모습에 온몸이 얼어붙은것도 잠시,

언제그랬냐는듯...

녀석 특유의 미소를 입가에 그은채 

내앞으로 성큼 다가와선 불쑥- 손을 내미는 하루.

어?! 내가 잘못 봤나....

"....자....."

고개를 갸웃거린채......

가죽끈을 쥐어든 손을 불쑥 하루녀석에게 내미는 순간,

갑자기 내손을 끌어당겨선 사람들이 많은 그곳에서

마치 날 끌어안듯 내몸안으로 순식간에 밀려드는 하루.

".... 촬영때 내가 너무 섹시해도 흥분하면 안돼. 쿡...."

짖굳은 하지만 달콤한 녀석의 숨결이 내 귓가에 머문다.

주위사람들의 놀란 시선에 흠짓 놀라, 내가 녀석을 밀칠려는 순간....

갑자기 곱지않는 시선으로 우릴 바라보고 있는 하균씨에게 버럭- 소리치는 하루.

"윗옷 벗어도 되죠?!

어짜피 벗을거면 지금 벗을께요."

"마음대로."

하균씨의 말에 걸치고 있던 난방을 벗어재끼는 하루.

허걱!! 잠..잠깐!!! 하루야 안돼!!!

이빨자국이..........

[어머, 저거 뭐야? 이빨자국이니?]

[쿡쿡...뭐야, 그럼 아까 탈의실안에서 현진씨한테 당한모양인데....]

스텝들이 술렁 거리며 여기저기서 터지는 귓속말.

제길!!

대체 이자식 왜이러는거야...너 일부러 그런거지!! 으앙...

녀석의 갑작스런 행동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갤 푹 숙이는데 불쑥 내게 손을 내미는 하루. 

"매줘~~얼른~~"

애교가득한 녀석의 목소리.

제길!! 그럼 그렇치!! 아까 너 그 눈빛 쑈한거지!!

잠시나마 놀란 내가 .. 내가 바보다!! 

미간을 팍 찡그리며 도끼눈을 치켜세우는데....

녀석의 울트라, 짱 섹쉬한 몸매가 내앞에서 훤히 내보임에 

눈치도없이 펌프질을 시작하는 내 심장.

[하아~]

나직히 한숨을 내쉬곤....

손에 가죽끈을 메어주며 말에 힘을 팍! 줘선 녀석에게 귓속말을 건냈다. 

"제길. 너 집에가면 죽었어!"

"쿡..... 기대할께."

내 무지막지한(?) 협박에도 불구 날 향해 웃는 하루자식.

"이하루! 촬영시작이다!! 빨리와!!"

하균씨의 촬영을 알리는 호통소리에 힐끔- 하균씨를 바라보는 하루.

갑자기 한번도 자신의 목에서 빼놓지 않았던, 은 팬댄트를 벗어선 나에게 불쑥 내민다.

"잠시 누나가 맡아줘."

"어? 어..."

"........근데 누나, 흥분하지 말라니깐.......쿡쿡......."

뜻밖에도 팬댄트를 내게 내미는 하루의 행동에 의아해하는것도 잠시....

갑자기 내 가슴에 손을 불쑥 내미는 하루자식! 

녀석의 손으로 스며드는 나의 불규칙적인 심장고동에... 피식- 웃는 이놈의 자식!!!!

거기서 끝이면 내가 말도 안한다. 

촬영세트가 설치되어있는곳으로 발길을 돌리면서도..

날 바라보며 손으로 자신의 가슴에 손짓을 해가며

가슴이 뛰는 행동을 취한채 날 놀리는 저놈의 자식!!

너 집에가면 진.짜. 죽었으!!!

......그나저나 여기있는 사람들한텐 뭐라고 해야하나...

"현진언니!"

"영..영은아..어떻해...사람들 알아챘겠지?.."

날 툭! 치며 내곁으로 다가온 영은을 향해 울상을 지으며 나름대로 SOS를 치는 나.

하지만 영은은 그런 날 보며 피식 웃더니.......

"...좀....심하게 물었다."

이란다. 제길.......

"쓸데없는 변명하는건 안 통할껄.

그냥 하루군하고 사귀는 사이라고 여기사람들한테 말하는게 좋을거야."

"우씨...

저 자식은 왜 갑자기 우리회사 광고는 찍는다구...."

"어? 하루군이 언니한테 말안했어?!

계약금 받아서 뭘 할건지??"

".....아니."

"하긴..비밀로 하고 싶겠지. 풋....꽤 귀엽네 우리 하루군."

대체 뭔소리야?!

무슨소리냐고 영은에게 물어볼려고 했는데..

나보다 앞서버린 영은이의 질문에 그만 말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참! 근데 언니 혹시 저 여자 모델, 언니나 하루하고 아는사이야?"

"누구?"

영은이의 질문에 난 그제서야 하루의 곁에 서있는 여자 모델에게 눈길을 돌렸다.

큰 키.

찰랑거리는 갈색 머리결, 자연스런 웨이브.

약간 다른 사람에 비해 살결이 희다고 느끼는것도 잠시...

난 그만 그녀의 눈동자에 눈길이 멈췄다.

파란색 눈동자.

옅은 하늘색의 깨끗한 그녀의 눈동자.........

"저 여자......."

"응. 혼혈이야. 하루군처럼 미국에서 온지 얼마 안되었는데..

괜찮지? 부장님이 눈이 높으셔. 왠일로 저렇게 괜찮은 모델을

데리고 오셨는지.....덕분에 난 짐 하나 덜었잖어.

근데 아는 사이는 아니야?

아까 하루군 저 크리스틴양하고 인사하는데...

완전히 얼어붙더라구.

눈치가 서로 아는 사이인것 같았는데....

언니 혹시 아는거 뭐 없어?"

".........글쎄..........."

크리스틴.

귀에 울리는 처음 듣는 이름.

유심히 그녈 바라보는 내 시야로.....

순간 난 그녀의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보고 말았다.

그녀의 목에 출렁이는, 하루가 내게 남긴 팬댄트와 똑같은 팬댄트.

갑자기 저 가슴속 깊은곳에서부터 정신없이 밀려드는 

불안감이 온몸을 휩싸며.... 

하루가 남긴 커플마크가 욱씬거린다.

그리고 난 처음으로 깨달았다.

하루가 내게 없었던.....

내 곁에 없었던.....

그의 미국생활에 대해 난 전혀 아는게 없다는.

바보같이.....

그 짧은 기간동안 하루의 생활속에 내가 없었다는,

그 사실을 난 그동안 잊고 있었다.

바보같이.........

가슴을 꽉 막아버린 답답함, 불안감.....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하루가 

날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

자꾸 하루가 내앞에서 먼지처럼 사라질것 같아.....

난 하루가 내손에 남긴 팬댄트를 마치 하루인냥 꽉 움켜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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