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 오래간만의 재회
약속 장소로 지정된 곳은 술집이었다.
오늘 밤 일곱 시에 가게에서 만나자! 라며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유리의 목소리는 굉장히 들떠 있었지만, 그 이유를 내가 알 리가 없었다.
약속했던 가게에 가장 먼저 온 사람은 나였다. 점원에게 유리의 이름을 말하자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오늘은 유리도 포함해 세 명이서 만나기로 했다. 토모야 오빠와 연락처를 교환할 수 있으면 감지덕지였다. 역시 유리가 있는 곳에서 내 고민을 털어놓으며 그에게 제안을 할 만한 용기는 없었다.
가능한 한 빨리 가슴에 품은 고민을 해결하고 싶었지만, 역시 일에는 순서가 있었다. 아무리 토모야 오빠가 곤란해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상대는 친구의 오빠였다. 질색해도 곤란하니까 신중하게 일을 수행해야 했다.
하지만 연락처를 교환한들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이쪽입니다.”
“고, 고맙습니다……?”
점원에게 안내받은 방은 다다미 바닥으로 된 개별실이었던 듯, 점원은 미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재촉했다.
문득 그 좁은 실내 너비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를 어떻게 봐도 두 사람 자리인데, 오늘 예약은 세 사람 자리가 아니었나?
혹시 이래 봬도 3인용 자리인 것일까? 하지만 앞접시와 젓가락도 두 사람 분량밖에 없었다. 혹시 가게 측에서 예약을 잘못 받았을까?
뒤를 돌아 확인하려던 그때, 입고 있던 재킷 주머니 안에서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디스플레이를 보니 상대가 유리라서 안심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먼저 유리의 전화를 받고 나서 확인해도 문제는 없을 터였다.
만약 유리가 예약을 잘못했다면 내가 다른 자리를 준비해달라고 하면 되었다.
안내해준 점원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인사를 한 나는 통화 버튼을 누른 상태에서 신발을 벗고 그 자리에 들어갔다.
선 채로 통화하기에는 가게가 조금 소란스러웠다.
“여보세요? 유리?”
“아, 리사? 벌써 가게에 도착했어?”
“응, 전화 온 김에 묻는 건데……, 있잖아, 자리가 2인석인데? 이거 바꿔달라고 하는 편이 좋지? 예약할 때 가게에서 무슨 설명 있었어?”
“아아, 아니야, 아니야. 나, 오늘 야근 있어서 못 가게 됐거든. 점심 때 인원수를 변경했어. 그러니까 그 자리가 맞아.”
“……뭐?”
“점심 때 말이야, 급한 안건이 들어왔지 뭐야! 그래서 지금 난 오늘 못 간다고 전화했던 거야. 그래도, 리사도 오빠도 일단 구면이니까 내가 없어도 괜찮지?”
“아, 잠깐, 유리!”
“괜찮아, 괜찮아! 오빠도 리사를 만난다고 기대하더라! 그러면 난 일이 있어서! 잘해봐!”
“아, 잠깐, 유리……!”
귀에 댄 휴대전화에서 뚝 하고 소리가 난 다음 통화가 끊기고 말았다.
자리에 들어온 뒤로 앉지도 못한 채 전화를 받았던 나는 멍하니 우뚝 서 있었다.
유리가 오지 못한다면 오늘은 여기서 토모야 오빠와 단둘이서 술을 마시게 되는 셈인가?
구면이기는 해도 만난 지 벌써 1년 만이었다. 그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며 어떤 이야깃거리를 좋아하는지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니,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기회일지도 모르지만.
유리가 없으면 그 이야기도 꺼내기 쉬울 터였다. 오늘은 우선 연락처만 교환하고 나중에 이야기하면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진심을 다해 토모야 오빠에게 ‘신상품 모니터를 하고 싶다’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갑자기 긴장하기 시작한 몸을 달래기 위해 깊게 심호흡을 했다. 유리가 오지 않으니까 돌아간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틀림없이 토모야 오빠는 가게로 오고 있을 터였다. 불러 놓고는 토모야 오빠를 곤란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어쨌든 앉으려고 자리에 발을 내디딘 그때, 문 반대편에서 ‘실례하겠습니다’라는 점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네…….”
“오늘 예약하신 자리입니다.”
“……감사합니다.”
“윽.”
들려온 목소리는 나지막하고 차분했다. 틀림없이 다정할 거라 예상될 정도의 좋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점원에게 가볍게 묵례를 하고 고개를 든 그 사람은, 안경 너머로 생긋 부드러운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리사, 맞지? 미안해, 늦어서. 먼저 와주었구나.”
‘유리는 아직 안 왔어?’라고 말을 이은 그를 보며 화들짝 놀라 제정신이 돌아온 나는,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틀림없이 이 사람이 ‘토모야 오빠’임을 알면서도 나의 심장은 바보가 된 것처럼 요란했고, 뺨은 열이 있나 싶을 정도로 뜨거웠다.
개별실에 들어온 그는 코트를 팔에 걸고서 내 앞에 서 있었다.
내가 느릿느릿 시선을 들자,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의 무테안경이 조금 비뚤어졌다.
“……안 앉아?”
“아, 아, 앉을게요!”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이렇게 멋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나는 단숨에 끓어오른 것처럼 새빨갛게 물든 얼굴을 자각하면서 황급히 자리에 앉았다.
◇ ◇ ◇
“뭐? 유리는 안 와?”
“이, 일이 갑자기 들어와 버린 것 같더라고요…….”
“아……, 그렇구나. 그 녀석, 요새 바빠 보이더라.”
그는 메뉴판을 팔락팔락 넘기면서 조금 곤란해하는 듯이 웃었다.
토모야 오빠도 나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는 것일까? 분위기도 태도도 차분해서 동요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뭐, 그래도 기껏 왔으니까 식사 정도는 할까? 리사가 싫지 않다면 말이지만.”
“아, 괘, 괜찮아요!”
“그래? 그럼 다행이다. 뭐 마실래?”
다정하게 미소를 지어주는 그의 표정을 보고 또다시 심장이 갑작스레 뛰는 바람에 요란해졌다.
전에 사귀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부터 이런 식으로 남자와 단둘이서 술을 마실 기회 따위는 없었던 데다, 그 이전에 이렇게 멋있는 사람과 식사를 한 적도 없었다.
힐끔 시선을 향한 곳에 앉아 있는 토모야 오빠는, 검은 머리카락이 빛을 받아 군데군데 파랗게 보였다.
머리색에도 신경을 쓰는 것일까? 단정하게 다듬은 헤어스타일은 성인 남성에게 어울리는 차분한 스타일이었다. 아마 왁스도 썼겠지만, 얼핏 보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스타일이었다.
더불어 무테안경이 뭐라 말할 수 없는 색기와 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밖을 걸으면 시선이 집중되는 사람일 거라고 누가 보더라도 짐작할 만큼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이런 사람이 여자 친구도 없다니, 믿겨지지가 않았다. 오히려 마음 놓고 상대를 고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결혼을 못 하는 거야’라며 투덜투덜 불평하던 유리의 걱정은 쓸데없는 기우라고 여겨졌다.
“리사?”
“아, 네!”
“뭐 마실지 정했어?”
“아, 저기, 아, 그, 매, 맥주요…….”
“응, 알겠어. 안주는 내가 적당히 골라도 괜찮아?”
“……네.”
아마 벌써 35살이라고 했었지? 유리가 가르쳐준 정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확실히 들었던 나이 정도로 보일 만큼 차분했고, 30대 후반이라고 해도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어째서 이렇게 멋진 사람이 아직 혼자일까? 게다가 여자 친구까지 없다는 이야기를 아직은 믿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유리가 모를 뿐, 그에게는 남몰래 사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다.
유리의 말로는 토모야 오빠가 무척 곤란해하고 있다고 했지만, 여자 친구가 있다면 내가 앞으로 그에게 하려는 부탁은 몹시 우스운 일이 되지 않을까?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고, 입안에 찬 침을 꿀꺽 삼켰다.
그도 맥주와 요리 몇 가지를 함께 주문했다.
음료는 곧바로 왔고, 우리는 조심스럽게 건배를 했다. 한입 마신 맥주는 몹시 차갑고 어딘가 현실 도피를 하려는 의식으로는 맛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근데 깜짝 놀랐어.”
“네?”
“유리한테서 연락받았을 때 말이야, 리사가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기에.”
“아, 아니, 그건, 그……!”
내 친구는 어쩜 그렇게 돌직구처럼 전달했을까? 그런 식으로 말했으면 이상한 방향으로 오해받았을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아니, 확실히 이상한 부탁을 하려고 했지만, 토모야 오빠에게 이상한 오해를 받아도 곤란했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아니에요!’라고 말하자, 그도 ‘괜찮아’라며 웃어주었다.
“유리가 이상한 배려를 해준 것 같아서. 신경 쓰지 마.”
“아……, 으……, 죄, 죄송해요…….”
“사과할 일도 아니야. 게다가 나도 오랜만에 리사를 만나게 되어 기뻐. 이렇게 귀여워졌다니, 나도 조금 긴장했어.”
그렇게 말하며 수줍게 웃는 토모야 오빠에게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해 얼굴을 붉힌 채로 시선을 떨구고 말았다.
그가 ‘긴장했다’고 하는 말도, ‘귀엽다’고 하는 말도 인사치레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심장은 기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여전히 두근두근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정작 긴장한 쪽은 나였다. 어떤 대화를 하면 좋을지, 어떤 이야깃거리를 꺼내면 좋을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할 말을 찾지 못해서 술을 마시는 속도만 빨라지고 말았다.
방이 침묵에 빠지지 않는 것은 오로지 그의 배려 덕분이었다. 내가 곤란하지 않도록 화제를 던져주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진즉에 어색한 침묵에 싸여 있었을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한테 뭘 부탁한다고?
떠오른 의문에 자문자답하자, “바보야, 그만둬!”라는 마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그만두자. 그렇게 마음이 시들해졌을 때, 토모야 오빠가 곤란하다는 듯 웃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었다.
“……미안해, 내가 익숙하지 못해서.”
“네?”
“여자애랑 이런 식으로 식사를 하는 게 무척 오래간만이라서 무슨 얘기를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하지만 토모야 오빠는, 여자 친구가, 있지 않으세요……?”
“없어. 꽤 오랫동안 없어. 어라? 유리한테서 얘기 못 들었어?”
“아, 아니요, 듣긴 했지만. 토모야 오빠는 멋있으니까, 유리가 모르는 것뿐일까 싶어서요…….”
“……아니, 하하. 정말 없어.”
뺨을 살짝 붉힌 채 어딘가 얼버무리듯이 웃으면서 그렇게 답한 토모야 오빠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떠올렸다.
사실이었기 때문에 달리 표현할 방법도 없었지만, 굉장히 자연스럽게 토모야 오빠를 ‘멋있다’고 말해버린 것 같았다. 나도 덩달아 뺨이 뜨거워졌다.
왠지 묘한 공기가 흐르며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분위기에 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토모야 오빠는 작게 헛기침을 하더니 또다시 웃었다.
“뭐, 그래도 정말로 여자 친구가 있으면 아무리 동생 친구라 해도 이렇게 귀여운 여자애랑 단둘이서 밥은 못 먹어. 이상한 오해를 하게 만들고 싶지 않고, 리사한테도 실례가 되니까.”
“……토모야 오빠는 여자 친구가 있으면 굉장히 소중하게 대해주는 분이겠죠…….”
“응? 근데 보통 그렇지 않나? 여럿이서 있으면 나도 신경 쓰지 않지만, 여자도 남자 친구가 여자애랑 단둘이서 어디를 가거나 하면 싫어하지 않아?”
“그야 싫지만 저한테까지 실례라고 말해주셔서요. 다정한 분이라는 게 느껴졌어요.”
“나, 그렇게까지 다정하지 않아. 리사는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는구나.”
수줍은 듯이 미소를 지은 토모야 오빠는 시선을 나에게서 살짝 딴 곳으로 돌리더니, 남은 맥주를 들이켰다.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라면 나의 고민도 웃지 않고 들어줄지 모른다.
문득 머리에 스친 생각은 방금 전에 그만두자고 단념했던 소원이었다. 나에게는 절실하며, 무시하고 살아가기에는 어려운 중대사.
만약, 만약에 토모야 오빠에게 상의하고 부탁한다면, 그가 고개를 끄덕여준다면 나는 어떤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술도 마시고 있으니, 그가 질색한다고 해도 취했다고 말하며 얼버무릴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나는 벌써 조금 취한 걸지도 모른다.
그가 내가 마실 술을 같이 주문해주었고, 나는 술이 오자마자 힘을 북돋우기 위해 단숨에 반 정도 마셨다.
“……리, 리사?”
“저, 저, 저기!”
“아, 응, 왜?”
내 고동 소리가 귀 뒤쪽까지 울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뺨이 술을 마셔서 뜨거워졌는지, 지금부터 할 말에 수치심을 느껴서 그랬는지, 스스로는 판단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말하기로 정한 내 마음에 유예란 없었다.
친구의 오빠이자 나의 어릴 적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어째서인지 지금의 나는 이 사람밖에 의지할 곳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저, 저한테! 어른의 장난감 사용법을 알려주지 않으실래요?”
“…………뭐?”
한껏 시간을 두고 나서 나온 그의 대답에서 드러나는 놀라움은 당연한 것이라며 머릿속 어딘가에서 냉정하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