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 터닝 포인트
“휴우…….”
입을 타고 나온 한숨은 예상도 못 했을 만큼 무거웠다.
이유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말로 해버리면 깨달아서 안 되는 무언가를 깨달아버릴 것 같아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헛된 몸부림이라고 스스로도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잘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머릿속에 어떤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심장이 아플 정도로 크게 울리는 고동을 느끼고 말았다.
장난감의 사용법을 배운 그날. 한심하게도 나는 처음으로 밀려온 큰 쾌감에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흐트러진 옷가지가 완전히 정리된 상태였고, 이불까지 덮고 있었다. 테이블에 놓인 메모를 보고는 토모야 오빠에게 미안함과 창피함을 느끼며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어졌다.
뭐라고 문자를 보내면 좋을지 몰라서 아무튼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에 ‘죄송해요’라는 말밖에 쓰지 못했다.
그는 그런 나에게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라고 나를 염려하는 내용의 답장을 보내주었다.
메모에서도 문자에서도 다정함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친구의 오빠’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날 밤 이후로 변해버렸다.
토모야 오빠는 어디까지나 다정하고 의지할 수 있고, 넓은 마음을 가진 성인 남성이었다.
그 사람의 나이를 생각하면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무척이나 믿음이 가는 남자였다.
애당초 그런 남자가 아니었으면 나의 엉뚱한 부탁을 진지하게 떠맡아주지 않았을 터였다.
장난감 사용법을 배웠는데도 도저히 스스로 써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토모야 오빠가 해주길 바라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왜 그렇게 권태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유, 유리야……!”
딱 한 달 만에 만난 친구가 바로 앞까지 들이민 얼굴을 보니 여러 가지 의미로 심장이 아팠다.
그래,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다. 그녀는 나와 자신의 오빠가 특수한 관계에 빠졌다는 사실을 전혀 모를 터였다.
피곤하다고 말하면서 의자에 앉은 친구의 모습을 보자니 심장이 여전히 이상하게 뛰었지만, 억지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애당초 이런 얘기는 고백할 수 있는 내용도 아니었다.
“그래서? 무슨 일 있었어?”
“에, 엥?!”
“아니, 엄청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으니까.”
“뭐? 야, 얼빠졌다니…….”
“거울로 보여주고 싶을 정도였어. 그래서? 무슨 일 있었어?”
“아, 아니, ……아, 아무것도, 아니야…….”
유리는 모호하게 대답하는 나를 보며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점원에게 음료를 주문하고 있었다.
일단 주문을 끝내는 것은 그녀의 평소 스타일이다. 마음이 꺼림칙한 탓인지 이상하게 뛰는 심장의 고동은 가라앉지를 않았다.
“그러고 보니 말이야.”
“어, 아, 으, 응?! 왜?!”
“리사, 우리 오빠랑 어떻게 되고 있어?”
“쿨럭!”
점원이 가져다 준 아이스커피에 시럽을 넣으면서, 확 치고 들어온 유리의 질문에 마시려던 아이스티를 힘껏 뿜었다.
탁자 위에 물방울이 튀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치고 들어온 친구는 물방울 세례를 확실하게 피했다.
“뭐, 뭐, 뭐, 뭐……뭐, 뭐, 뭐가?!”
“……아니, 그야 그렇게 진지한 목소리로 소개해달라고 하니까. 보통 뭔가 있다고 생각하잖아?”
“뭐, 뭐, 뭐, 뭐, 뭐, 야, 그, 그건, 그, 이, 이것저것, 무, 물어보고 싶은 게 있, 있어서, 그랬지…….”
“평소에 아무런 접점도 없는 오빠한테?”
유리는 나의 반응에 뭔가를 느꼈는지 히죽히죽, 음흉한 미소를 지은 채 몸을 내밀었다.
“아, 아니, 그, 그게, 토모야 오빠는, 어, 어른, 이니까…….”
“……좋아하는 거 아니야?”
“왜, 왜 그렇게 되는데?!”
“아니,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는걸! 그런 진지한 목소리로 말이야! 뭐, 나의 희망도 조금은 있지만!”
“희, 희망이라니!”
“그야, 오빠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엄마도 걱정하니까. 그 점에서 리사라면 우리 아빠랑 엄마도 아는 데다, 무엇보다 내가 잘 알고 있잖아? 리사라면 우리 오빠랑 틀림없이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좀 들었거든.”
“너, 너무 비약한다, 너!”
그래서 그때 만나기로 한 술자리에 오지 않았구나. 이제야 이해가 갔다.
“내가 너무 비약하는 걸까……?”
“왜, 왜 그래……?”
“아니, 리사를 소개해주고 나서부터 오빠도 좀 이상하거든.”
“……이, 이상하다니, 뭐가……?”
“차분하게 있질 못하고, 사람 얼굴을 보자마자 안절부절못하더라고.”
“……윽.”
“리사는 리사대로 묘하게 멍하니 있고. 그야 의심이 가지.”
“……그, 그, 건……, 그…….”
유리의 추측에 뭐라 답하면 좋을지 떠오르지 않았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줄줄 떨어졌다.
초조해하는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던 유리는 한숨을 쉬고 나서 테이블에 턱을 괴었다.
“아니, 뭐 딱히 아무 일도 없으면 됐지만. 아무 일도 없으면 없는 대로 평범하게 대해줘. 그렇지 않으면 나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곤란하단 말이야.”
“……윽.”
“……우리 오빠, 별로였어? 마음에 안 들어?”
목소리 톤을 낮춘 유리를 보며 심장이 쿵쾅 소리를 냈다.
유리 나름대로 걱정해주는 마음도 생각해주는 마음도 전해져 왔다.
“……마, ……마음에 안 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토모야 오빠를 마음에 들어 한다, 들어 하지 않는다,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토모야 오빠는 틀림없이 나를 이성으로 의식하지 않고 있을 터였다.
나와 토모야 오빠는 선생님과 학생 같은 관계였다.
처음에 사용법을 배운 그날부터 적어도 세 번은 살을 맞댔다.
그는 항상 나에게 장난감 사용법과 쾌감을 가르쳐줄 뿐이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욕정을 느낀 일은 내가 보는 한 한 번도 없었다.
유리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토모야 오빠의 눈에 매력 있는 여자로는 비치지 않고 있었다.
“……말도 안 돼. 토모야 오빠는 멋있잖아. 나 같은 애는 무리야.”
“리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지껄이면 내가 후려갈길게.”
“그런 무서운 얘기를……. 그러니까 네가 너무 비약하는 거야. 애당초 토모야 오빠랑 나는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났을 뿐인데.”
“연애에는 그런 건 상관없지.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거잖아?”
“……저기, 유리는 괜찮아? 내가 친오빠랑 그런 관계가 되어도 말이야!”
그런 부탁을 한 내가 뭐라 말할 권리는 애당초 없었겠지만, 도저히 말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었다. 왜 유리가 이렇게나 나를 떠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리사라면 우리 새언니가 되어도 괜찮을 것 같아서.”
유리는 지극히 아무렇지도 않게 태평한 말투로 그렇게 단언했다.
“……뭐?”
“리사가 우리 오빠랑 결혼하면 내 새언니가 되잖아? 그러면 나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만약 오빠랑 무슨 일 있었을 때는 내가 이야기를 들어줄 수도 있고. 좋은 일만 있잖아?”
“정말로……, 너……, 긍정적이구나…….”
“긍정적이 아니라 한 번은 깊이 생각한 거야. 뭐, 일단 생각해봐. 오빠도 조건이 나쁘진 않잖아? 나름대로 연봉도 높고, 다정하고, 뭐, 좀 나약하지만 말이지. 그래도 의외로 의지가 되는 구석도 있어.”
“그……그건……, 나도 알지만……. 그래도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몰라.”
“……흐음.”
어딘가 납득이 가지 않는 표정을 지어도 곤란했다.
연애는 확실히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부분이 있지만, 그건 애당초 서로가 서로를 제대로 이성으로 인식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쓴웃음을 지은 채 유리의 대답을 얼버무린 나의 입에서는 작은 한숨이 흘러 떨어졌다.
내가 그럴 마음이 들어도 상대가 받아주질 않는다면 무모한 사랑이 될 뿐이었다.
애당초 나는 출발 지점부터 그의 연애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였다.
그 이후로 같이 쇼핑을 하고 나서 유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 ◇ ◇
집에 도착해서 혼자가 되자, 깊은 한숨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침대에 앉아 전원을 켜지 않은 텔레비전을 멍하니 바라보다, 갑자기 유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토모야 오빠는 멋지고 다정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이런 관계가 되고 나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되기를 꿈꾼 적도 있지만, 그래도 곧바로 현실이 보여서 바보 같다며 스스로도 웃어버릴 뿐이었다.
부드럽게 닿는 손끝에 욕정을 느낀 적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었다. 장난감뿐만 아니라 그 본인이 만져주기를 바란 적도 있으니까.
그래도 그 이상의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고, 나에게는 그 용기가 없었다.
토모야 오빠의 손이 닿았을 때의 일을 떠올리고는 몸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상하게 주저하지 않고 서랍에서 그것을 꺼내 침대로 돌아왔다.
이미 완전히 익숙해진 그것을 바라보니 숨결이 덜컥 흘러나왔다.
“응…….”
내 가슴에 손바닥을 대고 천천히 힘을 주었다.
머릿속에서 몸에 닿는 그의 손놀림과 동작을 떠올리고 있었다. 눈을 꼭 감고 그 기억에 매달리듯이 떠올렸다.
‘……리사, 기분 좋아?’
조금 쉰 목소리로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
‘참지 말고 가버려도 돼.’
내가 싫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끔 닿는 손끝.
‘귀여워라…….’
장난감을 가져다 댈 때도 나의 몸에서 쾌감을 끌어내듯이 천천히, 신중하게 건드려 주었다.
“……앗, 하앗…….”
장난감을 쓰는 방법은 이미 익혔다. 자신의 몸이 불감증이 아니라는 사실도 이제 알았다.
전부 다 나에게 가르쳐준 사람은 토모야 오빠였다.
평소보다도 훨씬 빨리 몸의 흥분을 느끼고는, 더 강한 쾌감을 원하며 그 기계를 손에 들고 스위치를 켰다.
희미하게 들리는 전동음에 좋든 싫든 몸이 기대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항상 토모야 오빠가 나에게 애무할 때 사용하는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나에게 애무를 할 때 항상 손에 들고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기계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항상 그 기계를 사용하여 나에게 쾌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런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몸은 완전히 고분고분해졌다.
완전히 젖어서 민감해진 그곳에 기계를 가져다 대자, 평소와는 조금 다른 쾌감이 몸을 덮쳤다.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확실하게 대답할 수는 없지만, 그저 토모야 오빠의 온기가 이곳에 없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쓸쓸했다.
“응, ……앗, 하앗……, 토모야, 오빠…….”
머릿속으로 얼굴을 그리던 남자의 이름을 무의식중에 불러버렸다.
한순간 가슴을 스친 ‘어째서?’라는 이상한 생각을 쫓을 수가 없었다.
굳게 감은 눈꺼풀 안쪽에서 그가 ‘리사’라고 이름을 부른 순간, 강한 자극이 스치며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헉, ……하아.”
절정에 달하자, 힘이 빠진 몸을 침대에 눕히며 거칠어진 숨결을 고르고자 입이 움직였다.
장난감 사용법을 배우고 나서 이런 식으로 혼자서 한 적은 없었다.
사용하려고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왜 사용하려는 생각이 들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저 토모야 오빠가 애무를 해주었을 때 일을 생각했더니, 애가 타면서 몸이 찌릿거리며 참을 수가 없어졌다.
그래도 어딘가 허무하고, 평소라면 옆에 있던 체온이 없어서 슬픈 나머지 뜨고 있던 눈을 곧바로 천천히 감았다.
왜 나는 지금 이렇게나 토모야 오빠를 만나고 싶은 것일까?
다음 주 주말에 또 만날 약속을 했는데도.
또 그 연습을 하기로 약속했는데도.
나는 이런 엉망진창인 상태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있을 수 있을까?
◇ ◇ ◇
이제 익숙해져도 좋을 터인데, 그와 만날 때는 어째서인지 긴장하고 말았다.
혼자서 몸을 위로해버렸을 때의 일을 생각하니 더더욱 긴장했다.
토모야 오빠를 ‘반찬’으로 삼았다는 자각은 있었다. 자기혐오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어떤 얼굴을 하고 만나면 좋을지 고민해도 대답은 전혀 나오지 않았고, 한숨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역에서 만났지만, 지금은 그가 직접 집에 찾아오게 되었다. ‘마중 나오기 귀찮잖아? 어딘지 기억하니까’라며 역시나 나를 배려하는 마음에 그렇게 하기로 해주었다.
정말 성가신 부탁을 하는 귀찮은 상대일 터인데, 그는 어째서 이렇게나 다정하게 배려해주는 것일까?
그가 오는 시간은 대체로 오후 세 시 정도 지나고 나서였고, 대체로 일곱 시가 지나면 돌아갔다. 저녁 식사는 항상 하지 않고 귀가했다. 나도 그 점을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 결국 항상 감사 인사도 전혀 하지 못했다.
적어도 식사만이라도 대접하려고 재료 준비나 요리 밑준비는 끝내 두었지만 그가 이래저래 분위기를 잘 만들어주어서 항상 연습이 먼저 시작되었고, 그는 내가 지쳐서 녹초가 된 사이에 ‘천천히 쉬어’라는 말을 남기고는 돌아가 버렸다.
적어도 체력이 되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준다면 좋겠지만 토모야 오빠도 볼일이 있을 터였고, 성가신 일을 부탁하고 있다는 자각이 있는 만큼 그를 붙잡기도 미안했다.
오늘도 냉장고에 식사를 만들어 넣어 놓았다. 토모야 오빠는 마침 적당한 시간이 되면 내가 만든 음식을 먹어줄까?
요리 솜씨는 그다지 자신 있는 편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반적 수준 이상은 된다고 자신했다.
감사 인사도 하고 싶었다. 일방적인 자기만족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토모야 오빠가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 싶은 것은 내 욕심일까?
어딘가 긴장한 채 시계 바늘과 눈싸움을 했다. 휴우, 내쉰 한숨은 조금 무거웠다.
“……난 뭘 하고 싶은 거지?”
이런 연습에 어울리게 해서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도무지 ‘이제 됐어요’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있었다.
스스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전혀 알 수 없어서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었다. 다시 한 번 한숨을 휴우 내쉬던 그때 딩동, 손님의 방문을 알리는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토모야 오빠가 왔다.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앗.”
“아, 죄, 죄송해요.”
문을 힘차게 열어버렸나 보다. 조금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그와 눈이 마주쳐서 나까지 놀라고 말았다.
내가 황급히 사과하자, 그는 곧바로 표정을 풀며 ‘괜찮아’라고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안 부딪쳤으니까. 무슨 일 있었어?”
“아, 아, 아니요. 기다리시게 하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얼굴이 잘생긴 사람은 웃어도 모양이 나는구나. 토모야 오빠와 알게 되고 나서 새삼 깨달았다.
그가 다정하게 미소 짓자 얼굴이 뜨거워지고 말았다.
나는 얼버무리듯이 더듬거리면서 ‘들어오세요’ 하고 말을 걸며 현관에 들어오도록 자리를 비켰다.
온화하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실례할게’라고 작게 말하더니, 그가 신발을 벗었다.
그가 항상 정해진 위치에 앉은 그때, 간신히 마실 것을 내와야 한다며 정신을 차렸다.
“……저, 고맙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응? ……아, 나도 한가하니까 괜찮아.”
차를 받아 든 그가 그렇게 말하며 웃자, 나의 마음속 어딘가가 작게 소리를 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시선을 딴 데로 돌리며 얼버무렸다.
왠지 멋쩍게 시선을 돌린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힐끔 살피는 시선에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희미하게 웃는 소리만이 들렸다.
“……저, 기…….”
“응?”
흐르던 침묵이 어딘가 거북해서 낸 목소리는 꼴이 사나울 정도로 쉬어 있었다.
“……폐를, 끼쳐서, 죄송해요…….”
“……사과할 필요는 없는데…….”
문장을 완전히 맺지 않고 어딘가 모호하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그는 아직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있었다.
표정은 어딘가 쓸쓸해 보였고, 손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은 굉장히 진지했다.
“……나도 한가했고, 곤란하던 참이라서 정말 도움이 됐어. 하지만.”
“하지만……?”
“……리사가 정말로 고민하기에 곤란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내가 힘이 될 수 있다면, 리사 잘못이 아니라고 알려줄 수 있다면. 그런 당치 않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 하지만 그건 말이야, 리사가 좋아하는 남자도 사귀는 남자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네?”
고개를 든 토모야 오빠의 얼굴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 진지함이 조금 무서웠다.
그 강렬한 시선이 왠지 나쁜 일의 전조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심장이 이상한 소리를 냈다.
“……리사, 좋아하는 남자가 있으면 나 같은 사람이 몸을 만지게 해선 안 돼.”
“……저, 기……?”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나한테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는 말을 한 기억도 없었고, 누구를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자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은…….
이상한 소리밖에 내지 않는 심장은 그 소리를 더욱 크게 울렸고, 식은땀이 등을 타고 떨어졌다.
토모야 오빠는 어딘가 곤란한 듯이 작게 웃으며 나의 머리를 살며시 어루만졌다.
“여자의 몸은 말이야, 아주아주 소중히 다뤄야 해. 남자는 그런 점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고. 몸을 잇는 데는 아무래도 여자 쪽에 부담이 크니까.”
“토모야 오빠…….”
“그러니까 말이야, 여자의 몸을 만질 때는 남자가 배려를 해야만 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줘야 해. 좋아하고 사랑스럽게 여기는 여자라면. 하지만 남자가 그렇게 생각해도 도저히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그렇게 되어버릴 때도 있겠지만, 그럴 때는 제대로 대화를 나누고 노력하는 게 좋을 거야.”
“…….”
여태까지 사귄 남자 친구는 다들 그렇지 않았다. 어딘가 일방적이고, 나를 배려해준 적이 없었다. 나를 염려하며 만져준 사람은 토모야 오빠뿐이었는데.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면 먼저 그 사람한테 부탁하는 편이 좋아. 육체관계는 나중에 생각하면 되니까. 내가 아니더라도 그 사람이 생각해줄지도 몰라. 좋아하는 남자가 있는데도 내가 손을 대게 하는 건 잘못된 일이야.”
“……토모야 오빠, 저, 그게 아니라, 그럴, 생각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오해라고 말하고 싶은데도 말하지 못한 채 입술만을 달싹이고 있었다.
“……유리한테서 들었어. 좋아하는 남자가 있는 것 같다고. ……이제 그만하자. 리사가 해야 하는 일은 나와의 연습이 아니라 네 사랑을 이루는 거야.”
“토, 토모야 오빠……, 아니, 아니에요, 저는…….”
평소와 다름없이 다정한 미소를 보이며 선언한 이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정도로 나의 마음에 아픔을 가져다주었다. 혼란스러운 머리는 그를 붙잡을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진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따뜻한 손바닥이 살며시 떨어져 나가자 쓸쓸함만이 남았다.
“민폐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성가시다고 생각한 적도 없어. 리사는 귀엽고 좋은 애인 데다 옛날부터 알던 사이니까 곤란해하고 있다면 진심으로 힘이 되어주고 싶었어. 하지만 나보다 더 적임자가 있다면 그 사람한테 맡기는 편이 좋아.”
“토모야 오빠……!”
“나한테 마음 쓰지 않아도 돼. 리사가 절박해하던 마음도 이해하니까. ……이제 남자한테 이런 부탁 하면 안 돼. 손을 대지 못하는 나약한 녀석만 있는 게 아니니까. 대부분의 남자들은 착각하고 리사에게 심한 짓을 할 거야.”
그가 쓸쓸해 보이는 시선을 향한 채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는 바람에 결국 말을 잇지 못했다.
가슴이 아프고, 갑작스럽게 듣게 된 말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마실 것 내줘서 고마워.”
토모야 오빠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일어섰다.
그가 집에 와서 이렇게 짧은 시간에 돌아가려고 하는 일은 처음이었다.
“……나 말이야, 사실은 리사를 귀엽다고 생각했어. 틀림없이 리사가 좋아하는 남자도 리사에게 끌릴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힘내. 나도 리사의 사랑을 응원하고 있으니까.”
그를 배웅하지도 못하고 그저 자리에 앉은 채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가 그토록 조용히 돌아가는 바람에 그를 쫓아갈 수도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가 말한 오해를 풀지도 못한 채 그저 그를 보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당신이에요.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에게 거절당한 아픔이 가슴을 덮쳤다. 처음으로 자각한 그 감정을 깨닫기까지는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