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실연과 용기 (7/9)

[ 6 ] 실연과 용기

그때 나의 마음을 자각하고 그에게 좋아한다고 전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만을 하면서 지내던 일주일. 게다가 자각한 순간에는 이미 실연당한 상태라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머리에서 토모야 오빠의 쓸쓸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오해를 풀고 내 마음을 전하면 될까? 하지만 이제 와서 그를 좋아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좋아하는 남자에게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오해당한 끝에 그 사랑을 응원받다니, 나는 어쩌면 이렇게 무모한 사랑을 하고 만 것일까?

나는 토모야 오빠의 연애 대상에서 제외된 존재. 오해를 푼다 한들 의미가 있을까?

나는 깊은 한숨을 쉬고 나서 눈앞에 놓인 커피를 스푼으로 휘휘 저었다.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10분이나 남았다. 유리가 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터였다.

아침에 유리가 ‘할 이야기가 있어’라며 전화로 불러냈다. 만나기로 한 카페는 휴일 낮이라서 그런지 몹시 붐볐다.

나는 커피를 젓고 있던 손을 멈추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를 해주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소중하게 품고 있어봤자 나만 괴로울 뿐이었다.

토모야 오빠는 이제 틀림없이 만날 수 없을 터였다. 만나고 싶어도 만나주지 않을 것이었다.

흘러넘칠 것 같은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위로 들자, 아무런 특색도 없는 천장이 시야에 비쳤다.

“리사!”

“……유리야.”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시선을 되돌리자, 그곳에는 숨을 헐떡거리는 유리가 손을 맞댄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응? 왜?”

갑자기 사과를 받아도 왜 사과를 받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유리는 혼란스러워하는 나에게 음료를 주문하지도 않고 ‘미안해’라고 거듭 말했다.

“자, 잠깐만, 유리, 왜 그래?”

“……미안해, 나, 오빠한테 쓸데없는 얘기를 했어.”

“뭐?”

“리사랑 오빠,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었지?”

나를 살피는 듯 눈을 위로 살짝 뜨고 쳐다본 유리의 말에 한순간 사고가 멈추었다.

유리가 눈치채고 있다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토모야 오빠는 자취를 하고 있고, 유리도 마찬가지로 혼자 살고 있었다.

남매니까 연락을 주고받기는 했겠지만, 토모야 오빠가 나와의 일을 누설할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유리는 굳어진 나를 보며 어딘가 거북해하며 의자에 앉더니 몸을 작게 웅크렸다.

“오빠가 말이야, 리사랑 만나고 나서 정말 즐거워하는 것 같더라. 내가 전화해서 물어봐도 아무 말도 안 하는 주제에, 리사가 귀엽다고 자꾸 그러더라고. 리사는 리사대로 아주 마음에 없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어째선지 포기하고 있고 말이지. 그렇다면 차라리 오빠 쪽을 부채질하면 좋을 것 같아서…….”

“……아, 그래서 토모야 오빠가 나한테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느니 그런 말을 했구나…….”

“정말로 미안해. 오빠가 이래저래 트라우마가 있다는 점을 깜박하고…….”

“트라우마?”

“……그건 좀, 오빠가 화를 내니까 말할 수 없지만……. 있잖아, 리사. 정말로 우리 오빠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 조금도?”

유리가 진지한 얼굴로 묻자 한순간 얼버무리는 편이 좋을까 고심했다. 하지만 친구인 유리에게 숨긴다고 한들 들킬 터였고, 무엇보다 그녀는 내가 자각하고 있지 않았던 무렵부터 나의 상태를 알아채고 있었다고 하니 이제 와서 숨겨도 소용없었다.

포기한 듯, 잘 모르겠는 웃음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응. 나, 토모야 오빠를 좋아하는 것 같아.”

“리사…….”

“근데 자각한 순간에 실연당한 거 있지? 이제 괜찮아.”

“뭐? 왜……? 좋아하잖아?”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이랑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힘내라고 응원을 받은걸? ……연애 대상으로 보이지 않나 봐. 그런데도 좋아하기만 하는 건 힘드니까.”

웃는 얼굴로 딱 잘라 말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제대로 미소를 짓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유리는 애처로운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나의 손을 꽉 잡았다.

“미안해. 리사, 정말 미안해.”

“……유리 탓이 아니야. 오히려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 빨리 포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아니, 아니야. 오빠는 절대로 리사를 연애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았어.”

“뭐?”

“자세히 말할 수는 없어. 정말 미안해. 하지만 리사가 포기할 필요는 없어.”

“……유리?”

“오히려 나는 리사가 꼭 힘을 내주길 바랐어.”

“……뭘?”

어딘가 토모야 오빠의 얼굴과 닮은 유리는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며 그와는 다른 진지한 빛을 머금은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우리 오빠한테 거절당해줘.”

이 이상으로 상처를 입으라니, 이 여동생은 정말로 내가 애써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까?

◇  ◇  ◇

유리가 ‘오빠를 꼭 데려갈 테니까!’라고 진지한 얼굴로 말하며 약속한 곳은 시티 호텔의 어떤 방이었다.

왜 호텔에? 그런 의문은 그 후에 이어진 유리의 설명을 듣고 풀리기는 했지만, 너무 뜬금없는 일이라 몸이 굳어졌다.

그래도 유리가 약속한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나도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까?

적어도 오해만이라도 풀고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사실은 ‘저는 당신을 좋아해요’라고 말하고 싶다고 그렇게 자각했다.

체크인을 끝내고 방에 들어갔더니 그곳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나는 긴장하고 있던 사지에 약간 힘을 풀었다.

나는 깊은 한숨을 토해 내고 나서 소파에 앉았다.

“……괜찮아, 힘내자.”

제안을 받았을 때는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내 마음을 정리하고 고민하면서 어떻게 하고 싶은지 확실히 깨달았다.

거절당해 달라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던 유리는,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을 터였다.

그래서 나는 틀림없이 여기서 또 한 번 차이게 되리라고 어쩐지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유리는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히 그의 트라우마를 이루는 부분일 것이다.

말할 수 없다는데 억지로 캐물을 수는 없었다. 단지, 유리가 하는 이야기에는 반드시 충분히 근거가 있을 터였다.

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고, 친구가 등을 밀어주고 있었다. 그녀를 믿을 만한 근거로 삼을 수 있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등받이에 기대려던 그때, 인터폰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긴장하여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와준 사람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빨리 만나고 싶어서 마음이 조급해졌어도, 애써 천천히 열도록 마음을 가다듬으며 문손잡이를 잡았다.

문을 열자 누군가의 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을 보자 와주어서 고맙다는 마음과 동시에 긴장감도 한층 고조되었다.

“……리사?”

“……아, 안녕하세요?”

톤이 올라간 점은 야무지지 못했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자며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나를 타일렀다.

“……어째서? ……유리는?”

“저, 우선 안에서 얘기하지 않으실래요?”

놀라서 당황하는 토모야 오빠의 손을 살며시 잡자, 그의 몸이 나에게도 전해질 정도로 크게 움찔했다.

그렇지만 여기서 주춤할 수는 없었다. 살짝 힘주자 그의 몸은 천천히 문 안으로 들어왔다.

방에 들어온 그의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리사.”

“……제가 부탁했어요. 토모야 오빠랑 제대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나랑?”

“……토모야 오빠는 저라면 괜찮다고 말해주셨잖아요?”

“무슨 얘기야……?”

“저라면 괜찮을 테니까 사랑을 이룰 수 있도록 힘내라고 말해줬잖아요!”

손을 꼬옥 잡은 채 그렇게 말하니 그는 당황한 듯이 숨을 삼켰다.

“그, 그러니까, 힘내자고 생각했어요…….”

“아, 고백, 할 거야?”

“할 거예요. 그래서 토모야 오빠한테 가르쳐달라고 하려구요.”

“……나한테, 뭘?”

당황하는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쉽사리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당연했다, 내가 너무 에둘러서 표현했으니까.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용기였기 때문이었다.

거절당할 각오는 되어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이 순간을 맞이하니 역시 무서웠다.

그의 손을 잡은 채 그 눈동자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토모야 오빠는 왠지 상처를 받은 듯한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리사? 나한테 무슨 얘기를 묻고 싶어?”

그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들리는데도, 감정만큼은 드러나지 않았다.

나는 작게 심호흡을 하고 나서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토모야 오빠한테 안기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뭐?”

“저, 토모야 오빠한테 안기고 싶어요.”

각오를 마치고 털어놓자, 그는 굳어진 채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이 기회였다.

시티 호텔 룸은 마침 딱 적당하게 좁았다. 그를 넘어뜨리고 싶은 침대는 그의 바로 뒤에 있었다.

그의 몸에 힘껏 안겨들자, 머리 위로 ‘으앗!’ 하는 소리가 나면서 둘이 함께 침대에 쓰러졌다.

“리사?! 잠깐……,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거야?!”

나는 필사적으로 안기려는 나를 떼어 놓으려는 그의 몸에 걸터앉아 셔츠를 꽉 잡고 힘껏 몸을 일으켰다.

“알고 있어요!”

“윽…….”

“확실히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내가 안 된다고 했잖아. 이런 일은 좋아하는 남자하고 해야 한다고.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 일이…….”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토모야 오빠니까요! 토모야 오빠한테 안기고 싶단 말이에요!”

“……뭐?”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토모야 오빠뿐이에요.”

“무슨 말을……?”

“토모야 오빠가 그만하자고 해서 정말 슬펐어요.”

이제 만날 수 없다. 만나주지 않는다. 만져주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했더니 무척 슬프고, 쓸쓸하고, 심장과 가슴이 아팠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이제 알고 있었고,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유리에게 등을 떠밀려서라도 용기를 내자고 결심했던 것이었다.

“토모야 오빠는 언제나 다정하고 항상 저를 배려해 주었어요. 그런 식으로 다정하게 달래듯이 만져주었잖아요. 저한테 괜찮다고, 그렇게 몇 번이나 가르쳐 주었잖아요!”

“그건…….”

“동정이라도 좋아요. 하지만 저는……, 어차피 실연할 거라면 토모야 오빠한테 제대로 차이고 싶어요…….”

유리의 얘기로는 넘어뜨리고 거절당해도 기세로 밀어붙이면 괜찮을 것이라 했다.

거절당해도 포기하지 않으면 괜찮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게까지 이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마음도 없는데 안겨보았자 슬퍼질 뿐이었다. 나를 불쌍히 여기고 동정해서 마음을 받아주는 건 싫었다.

그러니까 이것으로 됐다. 그가 나를 단호히 차주면 이제 포기하겠다.

그의 옷을 잡은 채 단념하고 있던 손에서 힘을 빼고 고개를 숙였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그의 옷뿐이었다. 당혹스러운 듯이 굳어진 몸 위에 나는 힘없이 걸터앉아 있었다.

무겁겠지? 빨리 비켜야 하는데. 왠지 남 일처럼 생각하는 머릿속은 그의 대답을 듣기 두려워하며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있었다.

심장 소리만이 크게 울렸고, 방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왜 내가 리사를 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네?”

조용한 방에 울려 퍼진 음성을 듣고, 한순간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주뼛거리며 시선을 그의 얼굴에 맞추자, 그는 곤란한 것 같기도 하고 울고 싶은 것 같기도 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안해. 착각해서 상처를 입혔어.”

“엥, 네……?”

“……난 리사는 그런 애가 아니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데.”

“……토모야 오빠?”

살며시 몸을 일으킨 그는 다정한 미소를 씨익 지으면서 나의 몸을 끌어안았다.

“미안해, 상처 입혀서. ……나, 겁이 났었어.”

“……겁이 났다구요?”

“너를 줄곧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네게 배신당하면 어쩌나 생각하니 좋아하는 남자한테서 빼앗을 용기조차 나지 않았어.”

“……네?”

“한심한 남자라서 미안해.”

팔을 두른 머리에 그의 온기가 전해졌고, 몸으로는 그가 힘주어 안아주고 있음이 전해졌다.

토모야 오빠의 목소리가 귓가에 다정하게 울렸다. 그는 나의 몸을 그의 다리 위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부드럽게 톡, 톡, 쓰다듬어 주는 손바닥은 평소와 다름없이 다정했다.

그는 ‘한심한 이야기지만’이라며 서론을 말하고는 나의 손을 잡았다.

“……나, 얼굴이 이렇잖아. 옛날부터 여자애들한테서 고백은 많이 받았지만, 항상 오래 가지 못했어.”

“……왜요?”

“금방 차였거든. 이미지랑 다르다면서. 나한테 무슨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항상 그런 말을 들으면서 차이고, 그러는 사이에 사람들이 멋대로 이미지를 가져다 붙이는 바람에 차이는 게 무서워졌어.”

“……이미지랑 다르다니, 어째서……?”

“왜일까? 나도 잘 모르겠어. 더 멋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는 둥, 더 재미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는 둥, 그런 말만 들었지만 나는 나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그런 식으로 생각했더니 여자한테 마음이 끌리는 일도 없어졌지.”

그는 잡은 손을 살며시 어루만지며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리사는 처음부터 달랐거든. 그래서 나도 계속 기억하고 있었어.”

“네?”

“내가 차여서 집에 왔을 때 마침 유리가 리사를 데리고 처음으로 우리 집에 왔었어.”

“그……그랬었나요……?!”

분명히 처음 만난 곳은 유리네 본가였다. 그때 토모야 오빠는 아직 본가를 나가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 내가 거실 소파에서 멍하니 있었던 거 기억해?”

그 말을 듣고 유리의 집에 처음으로 갔을 때 있었던 일을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확실히 그때 그는 거실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마음에 걸려서 말을 걸었다. 그는 그때 ‘이미지랑 다르다는 얘기를 들었더니 스스로를 잘 알 수 없게 되었다’라고 말했던 것 같았다. 그때 나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오빠는 오빠로밖에 안 보여요. 이미지든 뭐든 제가 이야기한 그대로예요. 다정하고,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사람이에요. ……오빠를 제대로 봐주는 사람이 나타날 테니 그대로 있어도 되지 않을까요? 리사는 그렇게 말했어. 나한테 그대로 있어도 된다고 말해준 사람은 리사뿐이었어.”

“……윽.”

그때 나는 틀림없이 그 정도로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때 어떻게든 침울해하는 이 사람을 돕고 싶어서, 멋대로 이미지를 강요당하고 멋대로 환멸을 당했다며 이미지대로 될 수 없는 자신을 책망하며 침울해하고 있던 그에게, 그건 나쁜 일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필사적으로 뭐라 말할지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때부터 이런 애는 나 자신을 제대로 봐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왔어.”

“토모야 오빠…….”

“동생의 친구한테 그런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어. 유리한테서 리사가 만나고 싶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대했어. 하지만 막상 만나보니 굉장히 예뻐지고 귀엽더라. 틀림없이 리사는 나를 상대해주지도 않을 줄 알았어. 나보다 훨씬 더 좋은 남자를 만나서 행복해질 여자라고 생각했어.”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나의 어깨에 이마를 댔다.

“장난감 사용법을 가르쳐달라는 너의 말을 듣고 지금까지 너를 안은 남자들에게 질투했어.”

“……윽.”

“나라면 내 욕심만으로 리사를 만지지 않아. 리사를 줄곧 소중히 대할 텐데. 그렇게 생각했어. 내가 리사의 남자 친구는 될 수 없어도, 나를 좋아해주지 않아도 적어도 넌 어디도 이상하지 않다, 넌 정상이니까 안심하고 사랑을 해도 된다, 아무것도 불안해하지 말고 행복을 바라도 되는 여자라고 알려주고 싶었어.”

“토모야 오빠…….”

“……반은 그게 진심이었어. 나머지 반은 내가 리사를 만지고 싶었기 때문이야.”

“……윽.”

“리사에게 마음을 고백할 각오도 없고, 받아들여줄 수 있는 만큼의 아량도 없는 주제에 멋대로 내 소원만을 이루려고 하던 비겁한 남자야. 그래도 좋아?”

“비, 비겁하다니…….”

그런 식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해줘서 기뻤다.

그는 항상 냉정하고, 나를 만질 때조차 욕정을 느끼는 기색을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토모야 오빠는……, 저를 연애 대상으로 보지 않는 줄로만 알았어요…….”

“……미안해.”

“정말로요……? 그렇게 전부터……?”

“……응.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난 겁쟁이야.”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가 나를 믿지 않았던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식으로 멋대로 만들어진 이미지를 계속 강요당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다른 여자와 다르다고는 단언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내가 접해 온, 대화를 주고받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 됨됨이를 알게 된 그는 다정하고, 어른이고, 굉장히 안심할 수 있는 남자라고, 지금도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좋아해요. 제가 아는 토모야 오빠는 다정하고, 저를 언제나 배려해주고, 저를 만질 때도 항상 자기 본위로 만지지 않았어요.”

“……폼 잡고 있었을 뿐이야. 사실은 더 많이 만지면서 그저 더더욱 기분 좋아지길 바랐을 뿐이야. ……네가 불감증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제 알고 있지?”

그의 손바닥이 뺨을 어루만지자 살결이 술렁거렸다.

“……몰라요.”

“……리사?”

“몰라요. 저는 아직 토모야 오빠한테 안긴 적 없단 말이에요.”

나를 만지며 쾌감을 가져다준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손가락과 어른의 장난감뿐이었다.

“……가르쳐주세요. 좋아하는 사람에게 안겼을 때 제가 어떻게 되는지.”

“나, 아마 한번 안으면 헤어지지 못할 거야.”

“괜찮아요. 저도 아마 토모야 오빠를 보면서 환멸도 하지 않을 거고, 이미지가 깨졌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 거니까요.”

아직 모르는 일도, 아직 알고 싶은 일도 많았다. 틀림없이 하나하나 알게 될 때마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며 기뻐할 것이다.

왠지 모르지만 그렇게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뺨에 가져다 댄 손바닥에 내 손바닥을 겹치며 얼굴의 방향을 틀었다. 그의 손바닥이 입술을 밀어붙이는 것처럼.

남자를 유혹하는 방법 같은 건 몰랐다. 고작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혹이었다.

입술이 닿자 살며시 손바닥을 빨아올리듯이 쪽 소리가 나는 키스를 한 직후, 그의 손바닥이 나의 입술에서 떨어지더니 귀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듯이 잡으며 두 뺨을 꽉 눌렀다.

지금까지 받은 적이 없었던 그의 입맞춤이 입술에 닿았다.

“응…….”

“리사……!”

“앗……, 흐, 으응…….”

몇 번이나 입술을 꾹 누르기만 하는 키스가 반복되더니 그는 살결을 살짝 물었다. 그가 쪽 빨아올리자 감미로운 유혹이 등을 내달렸다.

처음 해준 키스를 그만두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오래도록 계속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필사적으로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의 아랫입술이 입술의 표면을 쓰다듬으면서 입을 열도록 부드럽게 재촉했다. 나는 그 유혹을 거스르지 못하고 살며시 입술을 벌렸다.

그리고 벌린 입술 사이로 들어온 그의 혀가 나의 혀를 부드럽게 휘감았다.

“음, 으……, 아……, 읏.”

“후우…….”

뺨을 누르고 있던 그의 손바닥이 미끄러지더니, 한 손으로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휘감으며 살며시 밑으로 쓸었다.

다른 한쪽 손은 나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어깨를 어루만졌다. 옷 위에서 쓰다듬었을 뿐인데, 토모야 오빠가 만지고 있다고 생각하자 소름이 돋으면서 또다시 감미로운 쾌감이 등을 내달렸다.

숨을 쉬기 힘든 나머지 몸이 산소를 갈구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키스를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그도 그 점을 헤아렸는지, 입술은 떼지 않고 그저 숨을 쉴 수 있도록 맞닿은 혀만 풀어주었다.

뜨거운 한숨만이 서로의 입술에 닿았다. 이마가 포개지며 지근거리에서 서로 시선이 마주쳤다.

“리사…….”

“더 불러줘요…….”

“리사…….”

“……이제 더 이상 오빠가 불러주는 이름을 듣지 못할 줄 알았어요.”

몸을 포개듯이, 하나로 합치듯이 팔에 힘을 주어 그의 몸에 안겨들었다.

그가 나의 등에 팔을 두르며 침대로 부드럽게 넘어뜨렸다.

나를 애무하는 동안에만 열기가 담긴 목소리로 ‘리사’ 하고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를, 그가 이제 그만두자고 해서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아팠다. 다시 한 번 이름을 불러주기를 바라는 진심을 자각했을 때부터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미안해. 앞으로도 계속 이름을 불러줄게.”

“네, 오로지 토모야 오빠만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그는 기쁜 듯이 웃더니, 또다시 ‘리사’ 하고 나의 이름을 불렀다.

“아……앗.”

“……싫어?”

그가 가슴에 살며시 손바닥을 놓자, 몸이 작게 움찔 튀어 오르고 말았다.

하지만 그건 결코 싫어서가 아니라 기대와 긴장 때문이었다.

“……아, 아니, 저……, 죄, 죄송해요. 왠지……, 토모야 오빠에게 안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이상하게, 긴장해버려서…….”

그가 나를 만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키스를 나누자 갑자기 현실감이 밀려오면서, 오늘 밤에는 어른의 장난감이 아니라 그의 손으로 그와 이어져 진심으로 쾌감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몸이 멋대로 긴장했다.

그를 떠올리며 혼자서 몸을 위로하거나 공허함과 외로움을 느끼거나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 깊이 그의 체온과 감촉에 반응하고 말았다.

“……내가 리사의 살을 만지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

“……제가 좋아한다고, 토모야 오빠를 좋아한다고 확실히 자각하고 나서 오빠가 만지는 건 처음이에요.”

“뭐……?”

“……토, 토모야 오빠가 만질 때는 하, 항상 긴장했지만……! 그, 그래도 이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니 더, 더더욱 기, 긴장, 되, 되어서! 시, 싫은 게 아니에요, 싫은 게 아니라, 기, 기뻐서 그래요……!”

토모야 오빠가 나의 쾌감을 끌어내고자 나를 만져주었다는 사실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만져주기만 한다면 나는 쾌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이어졌을 때 아픔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나를 젖게 해주리라는 것도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어도, 만약 마음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그런 불안이 마음에서 솟아났다.

그는 내 몸이 희미하게 떨리고 마는 사실을 눈치챘는지, 나와 나란히 눕고는 어깨에 팔을 둘러 살며시 나를 껴안아주었다.

“괜찮아. 꼭 기분 좋게 해줄게. ……장난감이 없더라도 리사의 기분이 좋아지도록 해줄게.”

그러니까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나한테 몸을 맡겨.

어디까지나 다정한 그의 목소리는 나의 마음 안으로 쑥 스며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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