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 (1/65)

 아버지는 망나니이셨다.

 망나니…사람의 목을 베는 직업이지….

 백정, 무당, 광대, 노예, 기생, 장의사, 사공과 더불어 가장 천시되는 자들….

 그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으로 여겨지는 직업…망나니….

 학식있다는 자들은 그들을 가리켜 도부수라고도 부르지만,

 알 사람은 다 안다, 그 말에 얼마나 깊은 모욕이 담겨 있는지.

 아버지는 망나니이셨다. 

 그것도 그냥 망나니가 아니라 도부수 투사였다.

 도부수 투사, 그냥 사람의 목을 베는 데 질려버린 귀족들이 만들어낸 오락거리….

 <사형수는 맘에 드는 무기를 무엇이든 얼마든지 골라서 도부수와 싸워라.

 도부수를 죽이면 살려주겠다.>

 귀족들의 생각은 천재적이었다. 

 기대에 걸맞게 사형수들은 살기 위해 바둥거리며

 손에는 무기를 들고 도부수들과 싸웠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들을 모두 베어 버리셨다.

 그것도 언제나 단 한 수에…

 정확하게 목을 베어 버리셨다.

 아버지는 그들이 불쌍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자객의 칼을 맞고 돌아가셨다.

 범인은 17살 난 여자애였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스스로 처단하기 위해 칼을 들었다고 했다.

 멍청한 아버지…

 아버지는 틀림없이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동정심에 몸놀림이 둔해지신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무예도 모르는 그 소녀가 내 아버지를 죽일 수 있을리 없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번엔 내가 망나니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첫번째로 벤 사형수는 바로 내 아버지를 죽인 여자애였다.

 그녀는 기를 쓰고 덤볐지만 난 한칼에 그녀를 베어버렸다. 

 그것도 목을 정확하게…

 아버지는 사형수들이 불쌍해서 한칼에 베셨겠지만,

 난 귀족들이 좋아하는 꼬라지를 못 보기 때문에 한칼에 벤다.

 멍청한 아버지…

 약자에게 동정심 따윈 필요 없다.

 실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밟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출세할 수 있다면 그건 뭔가 잘못된 것이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는 법.

 그렇기 때문에 난 항상 패자를 밟아 왔다.

 내가 죽인 자들 중 몇명의 장기는 떼어내서 팔았다.

 그리고 내 첫번째 사형수는…

 지금 나의 밤노리개가 되어있다….

#1.

 칙칙한 어둠….

 그림자마저도 사라질 정도의 짙은 어둠 속에서

 한 인영이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대강 깎은 보라색 머리칼이 출렁거리는 소년이다. 

 약간 가는 듯한 선으로 인해 자칫하면 여자로 착각할 수도 있겠으나,

 굵은 눈썹이 그가 남성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굳게 다문 입술은 마치 피를 바른 듯이 붉고,

 코는 마치 빚어 갖다 붙인 것 마냥 오똑하니 서있다.

 같은 또래의 계집얘들이 보면 달려들 법한 얼굴이다.

 그리고 눈.

 머리색과 같은 보라빛으로 빛나는 눈동자엔 

 기이하게도 아무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어떤 것도 담지 않고 있는 공허한 동공.

 소년은 칼을 갈고 있었다.

 숫돌에 물을 부어가며 조심스레 칼을 간다.

 칼은 양날로 되어 있는 검이 아니라, 외날인 도이다.

 한참을 갈던 소년은 잠시 멈추고는 칼날 위에 손가락을 미끄러트려 보았다.

 피가 배어 나와 칼날 위로 떨어졌다.

 소년의 얼굴에 만족한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칼을 다 갈고 난 소년은 한번 칼을 공중에 휘둘러보았다.

 짧은 파공음이 터져나왔다.

 소년은 손가락으로 몇번 칼날을 튕겨 본 후,

 천천히 통로를 통해 밖으로 걸어나갔다.

 좁다란 통로를 벗어나자 넓은 경기장이 나왔다.

 그곳엔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 차 있었다.

 "내 의뢰…잊지 않았겠죠?"

 갑자기 통로 끝에 서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소녀가 다가와 물었고,

 소년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와아∼! 들어온다!"

 "등장했다! 소년 도부수!"

 그렇다. 소년은 도부수, 즉 망나니였다.

 그리고 그가 벨 상대는 벌벌 떨며 검을 두손에 잡고 있는 중년의 사내.

 죄목이 무엇이었는지는…아, 매춘부로 일하는 양녀를 강간했다고 했지….

 뭐, 상관은 없지만.

 소년은 천천히 그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두눈이 핼쓱한 것을 보니

 아마도 몹시 겁에 질린 모양이었다. 사내는 소년이 다가설 때마다

 뒤로 조금씩 움찔거리며 물러섰다. 그러나 애초에 그가 소년에게서

 거리를 두려고 경기장 구석에 있던 탓에,

 이내 그의 등은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쿠쿳! 죽기 싫은 모양이지? 하지만 의뢰를 받아서 말이야."

 소년은 그 여려 보이는 얼굴에 그가 자주 짓는 삭막한 미소를 띄우며

 사내에게로 천천히 다가섰다. 그리고 완전히 얼어붙은 사내의 두손을

 향해 자신의 칼을 내려쳤다.

 "끄아아악-!!!"

 "시끄러."

 도광(刀光)과 함께 자신의 손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걸 보며

 사내는 당연히 비명을 질렀고, 그 벌려진 입을 향해 단단하게

 쥐어진 주먹이 날아왔다.

 우지직-!

 "우욱! 우우욱!"

 사내의 입에서 핏물과 함께 부서진 이빨들이 떨어져 나왔다.

 비명도 제대로 못 지르는 것을 보아 혀도 뭉개져 버렸음이 틀림없다.

 사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는 고개를 들어 애원하는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았으나, 소년의 눈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것도 일이라서 말이야. 저 귀족놈들 발광하는 모습은 나도 보기

 싫지만 할 수 없어."

 소년은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그의 바지자락을 에워싸려고

 하는 사내의 팔을 뿌리쳤다. 그리고 사내의 무릎을 강하게 밟아버렸다. 

 우지끈!

 뼈가 부숴지는 소리와 함께 사내는 땅바닥에 데굴데굴 굴렀고,

 막 사내의 다리를 불구로 만들어버린 소년은 질리지도 않는지

 중얼중얼 거리며 그에게로 다가섰다.

 "자, 이제 남은건…눈하고, '그 부분' 인가….

 참, 당신 딸 말이야, 진짜 독하군?"

 소년의 이같은 말에 사내는 눈이 공포와 증오로 일그러져

 소년의 눈길이 향한 곳으로 돌아갔다. 소년이 경기장으로

 걸어나온 문가에 서있는, 17살 정도의 여자아이가 부르르

 몸을 떨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확인한 순간, 사내는

 자신의 눈에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까무러쳐야 했다.

 +              +               +

 전에 얘기했던 대로 하루에 한 장씩 올리겠습니다.

 처음엔 그냥 한 장에 속한 이야기 모두를 같이 올려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그런 경우에는 글 읽는 속도가 엄청 느려지더군여.

 그래서 관뒀습니다.

 그리고 글 올리는 요일은 화, 목, 토로 정하겠습니다.

 혹시 못 올리는 일이 있다면 잡단란에다 사과문 올려놓지요.

 북녘을 다스리는 검은 물의 가라한이었습니다.

 [번  호] 3136 / 8192      [등록일] 1999년 11월 18일 18:35      Page : 1 / 13 

 [등록자] KARMA99          [조  회] 184 건          

 [제  목] [환타지]도부수-일장. 소년 도부수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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