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 (5/65)

 #5.

 올해로 70세를 맞이하는 야율 산. 

 수선공으로 잔뼈가 굵은 그는 이곳 천주촌에선 제일 연장자로 존경받고 있다.

 물론 그래봐야 천주촌에 사는 주민들에게서 지만.

 귀족들이 전직 백정이었던 그에게 존칭어를 쓸리 없다.

 하지만 그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그들 귀족에게 있어 자기네들은

 필요한 물건을 납품해 주는 기계일 뿐이다, 인간이 아닌 것이다.   

 야율 산은 천천히 고개를 뒤로 젖히며 입에서 담배 연기를 뿜어내었다.

 이틀만 지나면 그의 생일이 돌아온다.

 야율 산은 갑자기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작년 이맘 때 였던가. 

 "정말 잊지 못할 수선이었지, 아무렴….

 시체를 그런 식으로 수선하는 사람이 그렇게 흔할려구…."

 마른 기침을 토해내며 야율 산은 그때의 일을 더듬어 보았다.

 "그래, 이맘 때였어…. 그때도 이렇게 꽃비가 내렸지…. 허허허…."

 몇년전, 야율 산은 그날도 밤늦게까지 가죽을 무두질하고 있었다.

 금방 도살한 소에서 벗겨낸 가죽이라 아직도 뜨끈뜨끈 했다.

 이 온기로 아직 추운 봄을 이겨내 보리라….

 야율 산은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 가죽을 집어들었다.

 그때였다.

 "어이, 안녕하시오. 오랜만에 찾아왔지, 산노?"

 버르장머리 없는 그 말투. 야율 산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빌어먹을 망나니 녀석, 이번엔 무슨 일이냐?"

 "크큭, 산노의 멋진 바느질 솜씨를 빌리러 왔지…. 크크큭…."

 야율 산은 자신을 찾아온 소년을 한번 바라보았다.

 아무렇게나 자른 보라색 머리칼이 출렁거리는,

 앳되보이는 15세 정도의 소년이었다.

 그러나 소년의 눈은 너무나도 공허했다.

 "빌어먹을…. 그 얼굴 치워라. 닭살 돋게도 잘 생겨가지고는….

 어떻게 저런 얼굴로 태연하게도 그 소녀의 목을 베었는지 이해가 안 되는구만,

 그래."

 "호오, 그런가? 그럼 산노를 이해시켜주지.

 왜 내가 그 애의 목을 베었는지 말이야."

 문밖에서 무언가를 질질 끌고 오는 소년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야율 산은 속으로 혀를 찼다. 소년은 도부수로 있기에는 너무 머리가 좋았고,

 너무 검술 실력이 좋았다. 어쩌다 도부수의 아들로 태어났는지….

 하지만 야율 산은 소년에게 연민보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는 그런 성격이

 정말로 무서웠다.

 그리고…

 "이것 좀 꿰매줘, 산노. 잘 꿰매야 해요. 내 노리개로 쓸거니까."

 "…이게 네가 목을 베어버린 이유냐…."

 야율 산은 얼굴에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소년이 끌고 온 것은 다름아닌 그가 오늘 처음으로 벤 소녀였던 것이다.

 이미 깨끗이 닦여 있는 벌거벗겨진 소녀의 하얀 몸뚱이를 보며

 야율 산은 눈을 들어 소년을 바라보았다.

 "바느질 자국이 안보이게 했으면 하는데, 산노?"

 "……너 같은 놈은 지옥에서도 안 받아줄 거다, 빌어먹을 망나니 녀석."

 "그럴지도 모르겠군. 하여간 빨리 해줘요. 몇일이면 되겠어?"

 "일주일 후에 와라."

 "너무 늦어. 삼일, 어때? 금 20냥 쳐주지."

 "……."

 야율 산은 한숨을 푸욱 쉬었다.

 "…좋다…." 

 "후훗, 역시 산노답군. 자, 이건 선금. 잘 부탁해요."

 소년은 야율 산에게 짤랑거리는 금돈 세닢을 던져준 후 뒷켠으로 물러났다.

 야율 산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려는 것이다. 

 야율 산은 소녀의 몸뚱이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손에 쥐어진 금돈을 바라보았다.

 금돈 세닢이면 일주일은 먹고 살수 있다.

 '나도 어쩔 수 없기는 마찬가지군….'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야율 산은 작업을 시작했다.

  ※     ※     ※

 야율 산은 담배를 갈아 끼우며 훗 하고 짧은 웃음을 토했다.

 정말 몇시간이 걸리는 대작업이었다. 

 일단 잘려진 머리통에서 두개골을 부수어 끌어내고,

 그러면서 골도 함께 빼낸다.

 그 작업이 끝나면 몸 안의 내부장기 들을 잘려진 목의 단면을 통해 끌어낸다.

 그리고 그 후에는 중간 중간에 약초물로 씻어주면서 방부제를 묻힌 약솜으로

 내부를 채워나가며, 가끔 가다가 뼈의 느낌이 나도록 잘 휘어지는 재질의

 철사를  밀어넣는다. 마지막으로 목을 몸통과 잘 꿰어 맞춘 다음 흑수정으로

 갈아만든 눈동자를 새롭게 박아 넣으면 작업 완료.

 소년은 그가 잘려진 머리통에서 두개골을 부수어 끌어내는 작업을 유심히

 지켜보고 난 후 집으로 돌아갔고, 그때부터 야율 산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소년이 그의 작업을 지켜보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렇게 하면서 기술을 익혀

 버리는 것이다. 확실히 표면상으로는 아무 흔적없이 두개골을 부수어 버리는

 것은 보통 기술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걸 한번 보고 외워버리는 그 놈은 정말로

 보통 놈이 아니다. 

 야율 산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얼마 안 남은 담배를 쭉 빨아들였다.

 조금 섞어둔 아편의 향기가 그의 머릿속을 매우 맑게 해주었다.

  "으음?"

 야율 산은 문득 거리가 무척이나 소란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지?"

 대로 쪽으로 나간 야율 산은 빼꼭히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어딘가로 돌과 오물을 집어던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죽어랏! 이 더러운 마물!"

 "이거나 먹어랏!"

 "어디 한번 그 잘난 정령술을 써보시지?"

 사람들의 떠들썩한 야유. 야율 산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그러는지 궁금하여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려 보았으나 사람들의 벽이 너무 높았다.

 실망한 그는 주위에 서 있던 한 청년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이보게, 젊은이."

 "응? 아, 야율 어르신 아니십니까?"

 뜻밖에도 그는 야율 산이 잘 아는 대장간집 아들 회이샹 이었다.

 "지금 무슨 일이 있는건가?"

 야율 산은 주위의 떠들썩한 분위기를 고려해 조금 높은 목소리로 물어보았고,

 회이샹도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마물이 잡혀왔습니다! 머리색이 빨갛고 귀가 아주 긴 마물이에요!"

 "마물?!"

 "그렇습니다! 이제 얼마 안있어 그 망나니 녀석에게 넘겨지겠지요!

 아, 저기 옵니다!"

 청년, 회이샹은 길 쪽으로 몸을 돌리며 주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야유를

 퍼붓고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야율 산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마물인가 하며 회이샹의 도움을 받아 몸을

 이리저리 빼서 길 쪽으로 나왔고, 그 마물이란 것의 정체를 볼 수 있었다. 

 "흠, 저게 마물이라…. 틀린 말은 아니구만…."

 야율 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침 자기 앞을 걸어가는 붉은 머리칼의 엘프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알기로는 저 붉은 색 머리칼은 숲을 버리고 불과 계약을

 맺은 엘프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야율 산은 엘프 종족이 그들을

 블러드 엘프라 부르며 경원시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야율 산은 천천히 그 블러드 엘프를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돌에 맞아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 아름다움은 여전했다. 가슴을 가린 것으로 보아 여성인 듯

 했다.

 "흠, 나중에 감옥에 가서 얘기라도 해봐야겠군. 어쩌다 저런 희귀한 종족이

 여기까지 잡혀왔지?"

 야율 산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광분한 관중 사이를 뚫고 천천히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길거리에선 아직도 흥분한 관중들이 그 블러드 엘프에게 돌을

 던져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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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글 올리기 힘들군요.

 또다시 삭제라니...

 흐음...그럼 방식을 또 바꿔야 겠군요. 

 일요일 쉬고 하루에 세편 내지는 두편 올리는 것으로...

 북녘을 다스리는 검은 물의 가라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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