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성문 밖에서 무덤을 파며 지내는 응칠은 오늘 따라 상당히 화가 나있다.
내기에서 졌기 때문에 잃은 은 삼십냥이란 돈도 돈이었지만,
그의 가장 큰 고객이 없어졌다는 것이 그의 기분을 제일 더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가장 큰 고객은 지금 빨간 머리의 마물과 부둥켜안은 채
자기 앞에 놓인 손수레에 실려있는 상태였다.
응칠은 가만히 마물의 등으로 뚫고 나온 소년의 칼날을 보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고 입맛을 쩝쩝 다셨다.
"정말이지 아까워. 좀 오래 끌었으면 내가 건대로 세 번만에 벨 수
있었을거 아냐. 괜히 서두르다가 이게 무슨 꼴이야."
응칠은 옆에 세워 두었던 삽을 주워 들고 다시 무덤을 파기 시작했다.
이 곳에 들어갈 시체 수만 해도 벌써 다섯 구. 마물과 망나니의 시신 역시
그 시체들 속에 섞여 들어가 겠지.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죽으니 별 볼 일 없구만. 그건 그렇고 이젠 누가
망나니가 된다지? 지금 사형수로 있는 놈 중에 하나 뽑힐까, 아님 다른
도시에서 놀고 있는 놈들 중 하나가 올까. 좀 실력있는 놈이 와야 할텐데…."
응칠은 놀리던 손을 멈추고 구덩이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줄을 들어
늘어뜨려 보았다. 폭과 길이는 세 발(한 '발'은 160cm 정도. 작가주),
그리고 깊이는 네 걸음(한 '걸음'은 30cm. 작가주) 정도 될 것 같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응칠은 손수레 옆의 주전자를 기울여 입에다 뿌연 용담주(龍痰酒)를 들이켰다.
말이 좋아 용의 가래침이지, 귀족들이 마시는 만보주(滿寶珠)나
자화선(紫花仙)을 담글 때 밑에 남은 찌끼들을 모아 거른 싸구려 술이다.
그래도 응칠은 그 용담주를 즐겨 마신다. 우선 싸고, 마신 후에도 한참이
지나도록 깨지 않는 그 독한 맛 때문에 그는 그 술을 즐겨 마셨다.
적당히 취기가 오르자, 응칠은 손수레를 무덤으로 끌고 갔다. 그 때 응칠은
갑자기 자신의 손에 힘이 없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왜 이러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응칠은 시체를 실은 손수레를 무덤 쪽으로 밀치며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한참 후 그가 깨어났을 때, 이미 무덤은 완성이 되어 있었고, 수레가 비어있는
것을 봐서 시체가 안 들어간 헛무덤을 만든 것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톡톡 치며, 취중에도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자신의 실력에 감탄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 ※ ※
천주촌에서 첫째가는 부자 왕보단의 집. 고기 백정 출신으로 시작한 그는,
타고난 상술을 발휘, 지금은 천주촌은 물론 인근 모든 마을들의 상권을 한데
주무르고 있는 거상이 되어있다. 왕보단은 천주촌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퍼져
나가는 연결 방식을 채택, 그 결과로 청난성 5분의 일에 해당하는 지역의 고기
공급을 독점하게 된 것이다.
비록 천민 출신이라 솟을대문은 만들지 못하나 그의 대문은 어느 귀족집과
비교해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화려했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그 비싼
출입문에다 매일같이 동네 아이들이 똥칠을 해놓고 간다는 점이지만….
지금 때는 겨울, 모든 것이 한창 말라있을 때이다. 한 줄기 세찬 바람이
왕보단의 집 정원을 스치고 지나간다. 특히 별채 근처에 있는 오동이 크게
흔들리는데, 어찌된 것인지 나뭇가지가 서로 서로 스칠 때마다 불꽃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이러길 몇차례, 마침내 마른 나뭇가지에 불이 붙고, 그 불은 별채 지붕을 타고
넘어 점점 퍼지기 시작하여 어느새 창고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불이야! 불이야!"
뒤늦게 서야 별채 지붕에 불이 난 것을 눈치챈 하인들은 잽싸게 물을 떠서 불을
끄려고 하였으나, 불은 번질대로 번져 인근의 집 지붕에도 옮겨 붙은 후였다.
불이 옮겨 붙은 집들은 주로 볏짚과 마른 황토를 섞어 지어진 것들이어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고, 개중에는 오늘 재수없게 마물의 손에 죽은 망나니의
집도 포함되어 있었다.
※ ※ ※
곽우량은 다시 한번 천천히 자기 앞에 앉은 그 우돈이란 자를 쳐다보았다.
떡대는 좋게 생겼는데 꼴을 보아하니 머리는 완전히 텅 비어서, 할 줄 아는
말이라곤 느리고 낮은 어조로 '돈…줘….'하는 것뿐이다. 자기 이름도 말할 줄
모르는지, 가슴에는 커다랗게 '우돈(禹豚)'이라고 써있는 이름표까지 걸고
있었다.
"왜 이름이 우돈인지 알겠군…."
"돈…돈 줘…."
곽우량은 기가 차다는 듯이 그 자의 머리통을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넌 도대체 그 말이 몇 번째 인지나 아냐?"
"…돈 줘…돈…."
"말을 하지 말자…."
곽우량은 한숨을 팍 쉬고는 그 자리에서 돈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머리털 빨간 마물과 그 망나니 녀석의 경기에 걸린 돈은 총 금 육천 삼백 만냥
가량. 게다가 양측 동시 사망이란 결과를 예측한 사람은 이 바보 녀석의 주인인
이선우 하나뿐. 그러니 경기장 규칙대로 이 돈의 7할은….
"세금을 제하고도 무려 금 사천 삼백 만냥. 어마어마한 액수로군….
부럽다, 부러워."
곽우량은 혀를 내두르며 자신의 수표책에다 '금 사천 삼백 만냥'이라고 써서
그 우돈이란 자에게 내주었다.
"뭐, 네 주인님이 알아서 바꾸시겠지. 이 수표책은 네 주인님도 잘 쓰시는 것
같은 산서은호에서 발행한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산서은호에서 내준 어음과
같은 효과가 있다 이거야. 알아들었냐?"
"돈…돈이다, 히…."
곽우량은 얼굴을 싸매며 손을 휘저어 '돈' 소리 밖에 못하는 우돈이란 자를
내보냈다. 금 사천삼백만냥 이란 거금을 품에 넣은 우돈은 그 길로 전출소
(錢出所)를 나와 길가에 세워둔 인력거로 걸어갔다.
오동나무로 만든 고급 인력거 위에는 한 뚱뚱하고 매부리코의 사납게 생긴
노인이 앉아있었는데, 지그시 눈을 감은 것이 자고 있는 것 같았다.
바로 전번에 이 곳 경기장에 와서 가장 배당이 안 좋은 곳에 자신의 돈을
걸었다가 거금을 따낸 이선우이다.
우돈은 계속 잠에 취해 있는 자신의 주인에게 휘적휘적 걸어가더니,
히죽 웃으며 노인의 품속에다 자신이 받은 수표를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다시 히죽 웃어 보였다.
"히, 돈…돈이다…."
그리고는 인력거를 일으키더니, 그 살찐 팔로 끌기 시작했다.
처음엔 타고 있는 노인의 무게에 휘청하긴 했으나, 이내 평정을 찾고는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멀리 사라진 귀족 이선우, 아니 자신의
수표를 바라보던 곽우량은 아깝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근래에 들어 새로 산
용정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 + +
글 올리는 방식을 또다시 바꾸기로 했습니다.
글 한번 올릴 때마다 여러 챕터를 묶어 올리는 방법이 있더군요.
왜 이제야 그런 방법을 알았지?(난 바본가...)
여하튼간에 담부터는 두세편 씩 한꺼번에 묶어 올릴 계획입니다.
하루 올릴 수 있는 양이 네개로 한정되어 있으니
하루에 두 장 분량은 나갈 수 있겠죠.
군대갈 날이 멀지 않아서리...
맘이 급해집니다.
북녘을 다스리는 검은 물의 가라한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