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 (12/65)

 #2.

 한수산 줄기를 따라 이어져 나오는 자성강. 구하기 힘든 기어신초(奇魚神草)들이

 산재하는 선경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이다. 그 강줄기를 따라 약 50채 가량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네 마을을 '돌말'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 이유는 자성강 강가에서 온갖 모양의 돌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세상의 모든 모습을 돌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여,

 동네 이름을 '만물암(萬物岩)'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었다.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자라난 사냥꾼 링 메이는 오늘도 변함없이 콧노래를

 부르며 자성강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그녀뿐만 아니라 이곳 출신 사냥꾼들에게

 자성강은 더할 나위없이 좋은 사냥터였다.

 산짐승들은 어떤 동물을 막론하고 물을 마셔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 있어 가장 물 마시기 좋은 장소는 자성강 상류의 시내들이었다.

 이걸 아는 링 메이를 비롯한 이곳 사냥꾼들은 그 시내 주변에서 몸을 숨기고

 있다가 물을 마시러 다가오는 사냥감들을 잡곤 하였다. 

 활줄을 튕겨 보며 산을 올라가던 링 메이는, 문득 어디선가에서 들려온 소리에

 몸을 긴장시키며 귀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이런…어제 창 려우를 습격했다던 그 호랑이인가….'

 링 메이는 활을 하나 꺼내 줄에 매었다. 소리를 들어 보아하니, 묵직한 것이

 절대 초식동물의 발걸음은 아니다. 그녀는 언제라도 활을 쏠 준비를 하며

 천천히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 보았다. 

 "어엇…?!"

 막상 수풀을 헤치고 그 안을 들여다 본 링 메이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풀 저편으로 보이는 것은 호랑이가 아닌 한쌍의 남녀였기

 때문이었다. 높게 선 바위에 몸을 의지하고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있었는데,

 둘 다 검은 머리칼에 용모도 환한 것이 남매처럼 보였다. 

 사람들 눈에 잘 띄게 하지 않으려고 될 수 있는 한 바위 끝 쪽에 앉아있었는데,

 그러나 사냥을 하며 단련된 그녀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링 메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가 보았다.

 우선 그녀는 소년 쪽을 쳐다보았다. 검은 윤기가 도는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흘리고 자고 있는 것이 꽤 귀여워 보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스무살 이상은

 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링 메이는 이번엔 여인 쪽을 바라보았다. 역시 똑같은 색깔의 단발,

 그리고 언뜻 보면 귀여울 것 같은 용모. 그러나 링 메이는 바라보면 볼수록

 그 둘의 얼굴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닮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남매가 아니라 연인 사이일수도 있겠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며, 그녀는 우선 여인을 깨워보려고 그녀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의 손이 마악 여인의 어깨에 닿으려고 하는 찰나.

 쉬이익-!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링 메이는 자신의 목 밑에 들어온 칼날을 볼 수 있었다.

 약간 겁에 질린 채로 그녀는 자신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의 얼굴은 이상하게 흥분되어 있었다.

 "당신이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는 모르지만…절대로 누나만은 해치지 못해,

 누나만은!" 

 '누나? 누나라고? 역시 남매 사이였나?'

 자신의 목 밑에 칼이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도 그런 생각을 먼저 하는 자신에게

 속으로 실소를 터트리며, 링 메이는 천천히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전 누구의 사주를 받거나 하지 않았어요. 

 단지 사냥을 나왔다가 당신들을 보게 된 것뿐이에요."

 "정말인가요…."

 소년은 칼을 거두면서도 약간 미심쩍은 목소리로 물어보았고,

 링 메이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요, 이 활통하고 활을 봐요, 거짓말 아니죠?'

 "그렇군요….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그녀가 보여주는 활과 활통을 보고서야, 소년은 미심쩍은 표정을 버리고

 링 메이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를 표시했다. 

 "그런데 왜 이런 험한 계곡에 있는거예요? 이곳 유혼곡(幽魂谷)은 한수산에서도

 가장 험한 계곡인데…."

 "사정이 좀 있어요…. 그런데 마을은 가까운 곳에 있나요?"

 링 메이는 자고 있는 여인이 깨지 않도록 조심해서 소년의 옆에 앉았고,

 소년은 그런 그녀에게 짐승 가죽으로 된 듯한 깔개를 권하며 물었다.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요. 저 여자가 몸이 안 좋기라도 하나요?"

 링 메이는 깔개를 사양하며 그냥 바닥에 앉으면서 되물었고, 소년은 빙긋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아뇨, 하지만 오랜 산행으로 지쳐 있어요. 잠시 쉬게 하는 것이 누나 몸에

 좋을 것 같아서요. 게다가…."

 "게다가?"

 그 말을 하면서 갑자기 소년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링 메이는 조심스럽게

 다음 말을 재촉했고, 소년은 이상하다는 듯이 말을 읊조렸다.

 "특별히 잘못 먹은 것도 없이 토하곤 하거든요? 특히 요새 와선 더 심해요….

 아무래도 오랜 산행에 지쳐서 그런게 아닐까 싶은데…." 

 "내가 좀 봐도 될까요?"

 링 메이는 호기심이 생겨 앞으로 당겨 앉으며 물었고, 소년은 반가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의술을 아시는군요…! 하긴 사냥꾼으로 지내시다 보면 다칠 일도 많을테니까…."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해요."

 링 메이는 피식 웃으며 조심스럽게 곤히 자고 있는 여인의 손목을 잡아보았다.

 이렇게 그녀가 증상을 보자고 자신있게 말한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자신의 언니가 바로 몇일 전에 비슷한 증상을 보였고,

 그녀가 의사를 불러 왔을 때 의사가 내린 진단 결과는 바로….

 "아무래도 임신같은데요?"

 "임신이요?!"

 소년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아무래도 저 나이에 아빠가 된다면 당황스럽겠지. 

 링 메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부인에게는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해요. 일단 우리 마을로 내려가도록 하죠."

 "아, 예, 예…."

 얼빠진 사람처럼 가만히 있는 소년을 보며, 링 메이는 어지간히 충격이 컸구나

 하고 생각을 하고는, 일어서서 앞장 설 준비를 했다. 그 동안에 소년은 자신들의

 짐을 챙기고 곤히 자는 여인의 몸을 조심스럽게 업은 후, 링 메이의 뒤를

 따라갔다.

 산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링 메이가 자신을 바라보지 않게 되자,

 소년은 금새 무표정하게 된 얼굴로 중얼거렸다.

 "예상했던 대로이군…. 이걸 어쩐다, 빠른 시일 내에 유산을 시켜야 편할텐데…."

 계곡에는 매서운 1월의 바람이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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