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태양은 자신의 마차를 지하로 몰아가고
달의 여신이 수줍은 얼굴을 내밀을 때
초원의 푸근한 향기는 보채는 양의 울음소리 잠재우고
늙은 양치기의 마두금 소리에 처녀의 마음 두근거리네
히리하 히리하 히리하후네
휘두르에 부는 바람이여
이 노래 전해주오
우쿠알칸의 사냥개는 보라매와 다투고
몽구르의 활이 치올의 머리를 빗끼면
말들은 다시 한번 하늘을 향해 투레질하고
달은 하르판의 나무에 자리잡는다
히리하 히리하 히리하후네
파오에 머무는 차칸이두르여
이 얘기 들어다오
투르긴의 처녀가 물을 긷기 시작하면
이어 새벽이 날아와 휘두르 저편에 머물고
예전의 약속대로 수탉이 노래하면
달은 태양에 밀려 서쪽으로 달아나지
히리하 히리하 히리하후네
초원에 맴도는 향기여
내 지친 마음을 달래주오
시리아스는 자신의 귓가에 들려오는 그 아련한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방이 횡하니 뚫린 초원인지라, 굳이 엘프가 아니더라도 금새 이 노래가락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 옆에 앉아 불에다 오늘 먹을 야채죽을 올려놓고 젓고 있는 소년은,
그런 노래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일정한 속도로 손을 놀리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궁금해하는 눈초리를 보내면 금방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주겠지.
설사 그것이 꾸며진 것이라 하더라도…….
시리아스는 이내 마음을 먹고 소년의 이름을 불렀다.
"저, 헌? 저 노래가 무슨 노랜지 혹시 알아요?"
한참 죽을 젓고 있던 헌은 자신을 부르는 시리아스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며
슬쩍 웃어 보였다.
"초원에 전해지는 오래된 사랑 노래예요. 별을 사랑해버린 한 시인의 얘기죠."
"아, 알고 있었네요?"
시리아스는 살폿이 웃으며 얘기를 재촉하는 시선을 보내왔다.
헌은 그런 그녀의 눈초리에 못 이기겠다는 몸집을 해보이며 말을 이었다.
"한 시인이 있었죠. 그는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어느날 초저녁 무렵에 희미하나마 빛나고 있는 작은 별을 보게 되었어요.
그는 작지만 자신의 힘을 다해 빛나고 있는 그 별을 사랑하게 되었고,
만나고 싶다는 마음에 여행을 시작했죠, 별을 뒤쫓는 여행을."
선우 헌은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별빛이 그의 보라빛
눈동자에 부딪혀 회색의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별의 길을 걸으면서 그는 초원의 사냥꾼 우쿠알칸의 사냥개와 그놈을 놀리고
있는 보라매를 보았고, 그들에게 자신이 쫓고 있는 별의 행방을 물었어요.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달리면서 돌고 있는 길 외에는 모르고 있었어요."
"흐음…나머지 내용도 대강 알 것 같네요. 그런데 후렴의 히리하…어쩌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이죠?"
시리아스가 갑자기 중간에 나서 말을 끊더니, 다른 질문을 해왔다.
주제를 바꾸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말이 중간에 끊겨 화가 날만도 하건만,
헌은 그냥 웃으며 그녀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그건 타타르의 목동들이 말을 몰 때 내는 소리예요."
아마도 그녀는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나는지 알았을 것이다. 명사수 몽구르도,
그에게 쫓기고 있는 도적 치올도, 또 투르긴(우물을 뜻하는 타타르 말.
작가 주)에서 물긷는 처녀도 작은 별이 가는 길을 몰랐다는 것을.
그리고 결국엔, 달이 휘르드(세상의 끝을 가리키는 타타르 말. 작가 주)에서
벌어진 치르제르 놀이(타타르식 체스. 작가 주)에 져서 양보하게 되는 하르판의
의자에, 새벽이 올라설 때까지 그 시인은 자신이 사랑한 작은 별을 찾지
못한다는 것을.
그 시인이 처한 상황은 아마도 그녀의 과거를 생각나게 했겠지. 이루지 못할
사랑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 그리고 꿈이 깨어졌을 때 밀려오는 허무.
헌은 또다시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는 시리아스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그런 것들을 알게 되었죠?"
"망나니로 살다 보면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만나게 되죠."
헌은 피식 웃었다. 역시 눈동자엔 역시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야릇한 기대감과 허탈감을 반반씩 섞어놓은 듯한 그 눈빛은,
처음에 자신이 감옥 밖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처럼 붉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헌은 가슴을 벌리고 자신의 콧속을 파고드는 초원의 바람을 맡아보았다.
정신을 곤두서게 하는 좋은 바람이다. 한 줄기 한 줄기마다 활을 마주
쏘고 있는 기수들의 기세가 느껴졌다.
그 바람을 한껏 맡으며 헌은 시리아스의 다음 질문을 받았다.
"전의 그 도법도 그렇게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터득해낸 건가요?"
"…맞아요."
헌은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시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진한 피냄새가 확실히 풍겨 오는 손이다. 절대 이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절대로.
그리고 그것을, 내 옆에 앉아 있는 블러드 엘프는 내가 잊게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지, 정말 어리석게도….
헌은 불 위에서 끓고 있는 야채죽을 크게 한번 떠서 그릇에 담아 시리아스에게
내밀고는,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몽구르의 활이 치올의
머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어둑한 구름의 그림자가 보였다.
'내일은 날씨가 궂어지겠군…. 우피(雨被)를 한 장 꺼내놓아야겠어, [짐]이
거추장스러워 지지 않도록….'
헌의 보라빛 눈동자는 다시금 하늘을 뒤로 하고, 묵묵히 죽을 먹고 있는
시리아스에게로 향했다. 초원의 상큼한 바람이 그들 사이를 맴돌다가
투르긴의 물긷는 처녀에게로 날아올랐다.
광대한 초원이 펼쳐진 이곳…이곳은 바로 타타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