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레일리스는 처음엔 정신이 없었다. 어떻게 된 정신 구조인지 이 소년의 마음은
텅 비어있었다. 남아있는 기억의 방울도, 쌓여있는 감정의 찌꺼기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척이나 곤혹스러웠다. 어디를 공격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천천히 레일리스는 날개를 펼쳤다. 희미하게 나마 남아있는 애욕의 감정이
그녀의 날개를 통해 전달되었다. 그녀는 그곳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한참을 날아가서야 그녀는 한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정신 세계
속이므로 그다지 힘은 들지 않았지만, 육체의 주인이 자각하기라도 하면
그녀는 소멸되므로 레일리스는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다.
그녀가 본 것은, 회색빛 소용돌이가 감돌고 있는 호수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얼음기둥과 그 안에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 여성은 옷을 입고 있지 않는 나체의 모습이었는데, 두발을 모으고 양손을
펼치고 있는 것이 마치 여신같았다.
그러나 레일리스는 그런 것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즉시 그 여성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내 소년이 갖고 있는 그 여성에 대한 기억이
밀려들어왔다. 그것은….
※ ※ ※
선우 헌은 조용히 꿈속을 걷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잠이 들어버린 것이
이상했지만, 그렇다고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는 어떤 상황에 처해져도 헤쳐
나올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 능력은 3년의 망나니 생활, 아니 실제 형장에
끌려다닌 기간까지 합하면 15년 동안 살아남으면서 쌓아진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 헌의 입가에 미소가 고였다. 도대체 세 살 난 아이가 무엇을
안다고 형장에 세워놓는가. 귀족들은 내가 그런 광경을 보면 미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인가.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언제나 자신은 살아남았고,
그리고 돈을 벌었으므로. 그때 헌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사람, 그것도 여성의 모습이다. 걷는 것을 보나, 휘날리는 저 긴 머리칼을 보나
확실히 여성이다. 헌은 시력을 돋구어 보았다. 그리고 나지막한 신음성을 흘렸다.
"어머니……."
※ ※ ※
레일리스는 소년의 목에 자신이 덮어쓰고 있는 여인의 팔을 둘렀다.
그리고 살짝 자신에게로 당겼다. 소년은 아무 저항없이 자신의 품으로 안겨왔다.
그리고 레일리스는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는 소년의 보라빛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소년의 입에서 앳되어 보이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어머니…시군요."
"얘야…."
레일리스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며 소년을 한껏 안아주었다.
하필이면 욕정을 품은 대상이 어머니라니, 그것도 실재의 어머니가 아닌,
이 소년이 멋대로 자신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어머니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레일리스로서는 그저 이 소년을 유혹해서 정기를 빨아먹고
가버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슬슬 레일리스는 소년을 유혹하기 위한 첫 작업에
들어갔다.
레일리스의 손이 소년의 아랫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아무 저항이 없자
그녀의 손은 더욱 내려가 이미 충분히 부풀어올랐을 소년의 그것을 매만져갔다.
아니, 매만지려 했다. 그러나 손에 닿는 그것의 감촉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레일리스는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소년을 살짝 떼어내려 했다.
그러나 이미 거기에 소년의 머리는 없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길쭉한 얼굴과
왕방울만한 눈을 가진 짐승, 말의 머리였다.
그녀는 놀라 뒤로 물러서려 했으나 말의 앞다리(더 이상 소년의 팔이 아니었다)가
그녀를 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말의 거대한 그것이 자신의 하복부를 찔러오는
것을 느끼며, 레일리스는 귓가에 들려오는 냉랭한 소년의 목소리에 몸을 떨었다.
"그럴 듯 하긴 했지만, 한참 미숙하군. 이름을 받은지 얼마 안되는
서큐부스인가."
"어, 어떻게 알아챈거지…."
레일리스는 열리지 않는 입을 간신히 열어 지금 가장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고,
소년은 어깨를 으쓱이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내가 생각하는 어머니는 언제나 날 받아들이길 거부하지. 그래서 난 항상
그녀를 강간해야 하고. 내 죄를 씻어주고 더러워진 내 몸을 뉘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어머니의 육체, 하지만 그곳은 날 거부한다…."
"……이 자식…."
분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서큐부스의 뺨을 한 대 짝! 소리가 나게 갈긴
헌은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쉽게 놓아주리라 생각하지 마. 내가 여태까지 생각해놓은 어머니의 이미지를
망가뜨려 놓았으니 각오는 되어있겠지? 우선 수간(獸姦)부터 시작해주지.
걱정마, 소멸되게 놔두진 않을테니까. 오랜 시간을 두고 괴롭혀주겠어."
"………아…아아악!"
순식간에 알몸이 되어 자신의 입 속으로 그 무지막지한 물건을 집어넣는 소년에
대한 분노를 터트릴 새도 없이, 레일리스는 자신의 뒤로부터 들어오는 거대한
말의 그것에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을 내질러야 했다.
사실 그녀는 서큐부스, 꿈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염체(念體)의 상태이므로
고통을 느낄 이유가 없다. 단, 꿈의 주인되는 이가 자신의 꿈은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법칙을 깨닫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리고 운 나쁘게도, 자신의 입에 아랫도리를 담그고는 거센 악력으로 머리채를
휘어잡고 있는 저 소년은 바로 그런 꿈의 법칙을 알고 있는 이였다.
확실히 실수했다…라는 자기 반성의 시간도 가질 여유 없이, 레일리스는 어느새
세명으로 불어난 소년들에 둘러 쌓여 단순히 자기 자신만의 쾌락을 추구하는,
그래서 정기의 분출도 있을수 없는 애욕의 행위에 매달려야 했다.
그녀의 입에서는 약간 애처롭기까지 한 비명소리가 끊일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었다.
"아……아흐윽…아아……아아악-!"
※ ※ ※
선우 헌은 눈을 떴다. 낯익은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붉은 색 눈동자…시리아스 뮤프넬, 불의 세례를 받은 엘프가
지금 그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헌은 조심스레 몸을 일으키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걱정 많았지요, 누나……어, 어?"
헌의 뒷말은 끝내 이어지지 않았다. 시리아스가 그대로 헌의 가슴에 안겨오며
울음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헌은 자신의 손을 뻗어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헌은 시선을 옆으로 돌려보았다. 솔리아드의 짧게 수염난 턱이 자신을 향해
웃고 있었다.
"깨어났군, 그래. 이럴줄 알았으면 일부러 여기까지 데려올 필요도 없었을텐데."
"그러고 보니 여긴…."
그랬다. 방안의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그저 두터운 천으로 바람을 막는 벽을
세우고 한가운데에 화덕을 세웠을 뿐인 타타르의 파오와는 달랐다.
하얀색으로 칠해진 벽이 소년의 눈을 부시게 했다.
헌은 게슴츠레 하게 눈을 뜨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유난히 눈에 띄는 기형학적인
무늬들이 이곳이 어디인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솔리아드의 입가에 달린 미소가
점점 진해졌다.
"알아냈군, 그래. 자신이 어디에 와있는지 말이야. 어쨌건 환영하네,
자네는 드디어 니더우드의 용병 기지에 도착했네!"
"니더우드 하고도 아즈탄 협곡이로군요…. 물소리가 들려와요."
헌은 약간 어색해 보이는 미소를 띄우며 여전히 울음을 그치지 않고 있는
시리아스의 머리를 계속해서 쓰다듬어 주었다. 밖에서는 그의 말대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