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 (31/65)

 #1.

 아즈탄 협곡은 물살이 거칠기로 유명하다.

 이 메마른 니더우드의 대지 밑을 흐르는 지하수들이 모여 형성하는 급류는

 마치 구(킬리만자로 신계의 천둥의 신. 작가주)가 내리치는 벼락의 창을

 연상케 했다. 

 그 거센 물살은 바위를 깎아내고 모래를 쓸어내며 이곳에 협곡을 만들었다.

 그 우뚝 선 협곡의 중간 위치에 니더우드가 자랑하는 샌드런너 하탄 아베브의

 용병단이 자리잡고 있다.

 용병기지가 자리잡은 위치는 아주 절묘해서 협곡을 넘어가려면 기지를 점령해야

 하고, 협곡을 돌아가면 기지에서부터 달려 내려오는 용병단에 공격당하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지난 세기동안 수없이 벌어진 니더우드-퀘타라스 간의

 전쟁에서도 이 아즈탄 용병기지는 함락된 적이 없었다.

 즉, 봉인된 땅 '죠드므'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협곡의 밑바닥에서 여태껏 내려왔던 법칙을 뒤집기 위한 인간들의

 행동이 개시되고 있었다. 

 "이곳이 그 유명한 아즈탄 용병기지…."

 "자신 없으신가요?"

 사내는 자신의 어깨에 걸려있던 망토를 다시 잘 정돈하며, 옆에서 들려온

 또다른 남자의 메마른 목소리에 답했다. 은빛으로 빛나는 갑옷은 달빛을

 더욱 청초하게 만들고 있었다. 

 "설마…우린 퀘타라스의 성기단(Temple Knight)이다. 저런 사막의 야만족에게

 깨질 리가 없지. 게다가 우리에겐 저들의 허를 찌를 작전이 있어."

 "생각해둔 것은?"

 "옆으로 돌아가 위로 올라간다."

 "…간단하지만 어려운 방식이로군요."

 사내는 눈을 빛내며 협곡 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몸을 돌리며 명령을 내리고는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반시간 후에 시작한다. 병사들에겐 휴식을 취하게 하라."

 "알겠습니다."

 메마른 목소리의 또다른 사내는 자신의 상관의 말에 대답하고는 자기 역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즈탄 협곡 꼭대기에는 뿔같이 휜 초생달이 떠있었다. 

 ※     ※     ※

 사내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두 손은 갈퀴처럼 되어 땅을 파내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뒤엉킨채 부연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고, 두 눈은 핏빛으로 변해

 광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사내의 입이 열렸다. 묽고 덩어리진 것이 떨어져 모래 위로 퍼져나갔다.

 한차례 몸이 떨리더니 굵고 쉬어터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크크크…."

 웃음 소리였다. 낮고 쉬어서 잘 들리진 않았지만 분명한 웃음소리였다.

 어딘가 모르게 슬픈 기색을 띈, 마치 가장 높은 산 위에 올라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터져 나오는 한숨처럼.

 사내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두팔을 내뻗었다. 그 팔로 하늘을

 휘어잡기라도 하듯, 그렇게 사내는 하늘을 향해 팔을 내뻗었다.

 그리고 사내는 절규했다.

 "크크크…크하하하하하!!! 그런 이유였습니까? 단지 그런 이유에서 였습니까?

 신이여, 엘시타이여, 그런 이유에서 였습니까? 우리를, 이 나를 만든 것이

 그런 이유였습니까?"

 그러나 창조신 엘시타이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사내의 어조는 더욱 격렬해졌다.

 "그래서! 우리를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해놓고! 동료에 의해 배반당하고

 죽음 당하게 하고! 이 기나긴 세월동안 방황하게 만든 것이었습니까?"

 사내는 끝내 고함을 내질렀다. 

 "엘시타이여!!! 엘시타이여!!! 엘시타이여!!!"

 커헉-! 사내의 목구멍에서부터 피가 토해져 나왔고, 사내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려는 듯, 땅 위에 자신의 몸을 뉘였다.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가벼운 흙먼지가 날렸다. 

 바위와 돌과 모래만이 가득한,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 메마른 대지 위에

 사내는 그렇게 몸을 눕히고는 다시는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두두두두- 샌드런너가 지나가는지 땅이 잠시 진동하더니 곧 멈췄다.

 그리고 태양은 허허벌판에 쓰러진 사내의 몸을 비추며 조용히 엠트 분지의

 하루를 마감시켰다.

 ※     ※     ※

 "이런, 한참 흥이 오르는 중인데…."

 "하필이면 이런 때 경계령이냐."

 불 주위에 모였던 용병들은 한마디씩 불만을 토해내면서도 자신의 위치로 향했다.

 각자의 무기를 들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용병들을 바라보며 헌은 내심 하탄이란

 사람에게 관심이 가는 것을 느꼈다. 

 원래 용병들이란 제멋대로인 족속이다. 내키는 대로 나가 싸우고, 상관은 절대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며, 쉴 틈이 생기면 심지어 전쟁터 한가운데에서라도

 잠들어 버리는 것이 바로 용병이다. 이렇게 자유분방한-나쁘게 말하면 다루기

 힘든 용병들을 이 정도로 지휘하고 있다는 것은 그의 능력을 십분 말해주고

 있었다.  

 헌은 슬며시 자신의 도를 들어보았다. 희뿌연 날에 달빛이 어렸다.

 괴기할 정도로 은은한 밤의 빛깔이 소년의 눈동자에 어른거렸다.

 문득 시리아스가 그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기대며 다가왔다. 

 "드디어 시작이군요…."

 "걱정되세요, 누나?"

 "글쎄요…."

 바보…제가 당신을 걱정할 리가 없잖아요. 그건 당신도 잘 알고 있을텐데.

 당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어디서건 살아남을 수 있겠죠.

 비록 이런 우스운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에는 그 힘이 모자라긴 하겠지만.

 제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당신의 눈동자.

 언제나 무감정하고 완전히 죽어있는 듯한 그 보라빛 눈동자.

 아,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사람을 버텨줄 수 있을까. 

 얼마나 오랫동안 이 사람에게 나 자신을 조화시켜 나갈 수 있을까. 

 어리석은…그가 결코 나에게 오지 않을 것이란 걸 알면서도….

 하지만 그를 버티기엔 내 힘이 모자라. 단지 피냄새에서 그를 잠시 떼어놓는 것

 외에는 난….

 시리아스는 소년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안았다. 그리고 그의 보라빛 머리칼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의아한 듯한, 아니 그렇게 보이고자 꾸민 소년의

 눈초리를 피하면서.

 잠시 후, 시리아스는 소년의 몸을 밀어내며 자신의 몸 속에 흐르는 불의

 정령력을 끄집어내었다. 그녀의 머리칼이 공중으로 너울대며 솟구쳤다.

 붉은 눈동자는 어둠을 틈타 더욱 붉게 빛났다. 그리고 시리아스는 헌을 향해

 여전히 애정어린, 그러면서도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자, 가요."

 "…그러죠."

 이제 둘의 모습은 모닥불 주위에서 사라졌다. 저 멀리에선 여전히 용병들의

 발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달은…뿔같이 휜 초생달은 여전히 괴기스럽기

 까지 한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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