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장 : 귀신이 나오는 집
사내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넌 내가 무섭지 않니?"
"아저씨는 이 집에서 나왔으니 귀신 맞죠?
애들은 날 보고 요괴의 아이라고 해요. 항상 날 두려워하고 그러면서도
또 날 괴롭히죠. 난 요괴의 아이, 아저씨는 귀신. 그러니까 난 아저씨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어요."
사내의 미소가 점점 묘해졌다. 햇빛을 오래 못 본 탓에 하얗게 탈색된 손이
주머니로 짐작되는 곳을 찾아 더듬거리더니 안으로 쓱 들어갔다.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 그 손엔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엷은 갈색으로 빛나는
새 모양의 장식이 달린 목걸이였다. 그리고 사내는 그것을 아이의 목에
걸어주었다.
평범한, 그러나 묘하게도 아이에게 전체적으로 어울리는 목걸이였다.
아이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그 미소는
아이의 밝은 목소리와 함께 사내의 가슴속에 깊숙이 새겨졌다.
"고맙습니다-!"
※ ※ ※
사내가 서있는 곳은 사방에 거미줄이 쳐있고 여기저기 쇳덩이가 발에 차이는
작업장 한가운데 였다. 날카로운 것이 스치고 지나간 듯한 눈의 흉터를 매만지던
그의 손이 어느 순간 멈추었다.
번득이는 외눈이 허물어진 화로 옆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바로 그곳에
자신이 서있었다. 미친 듯이 쇳물을 들이부으며 연신 망치를 두들기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 목이 컬컬해져 왔다.
소리를 높여 자신을 꾸짖는 사부의 모습이 보였다.
"야, 이 놈아! 쇠를 사랑하라고 얼마나 그렇게 말했느냐! 네 눈앞에 있는 것
은 적이 아니라 네 짝이란 말이다!"
챙-! 챙-!
사내는 사부의 노여움이 다분하게 담긴 충고를 넘겨들으며 계속해서 벌겋게
달아오른 쇠를 두들겨대었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쇠에 생명을 불어넣어 또다른 자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잔뜩 성이 난 쇠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놈은 자신이 그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그다지 원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들어서야 해.
사내는 다시금 망치를 치켜들었다. 다시금 힘을 주고는 그놈의 머리통을 향해
힘껏 자신의 손을 휘둘렀다.
파아앗-! 마치 독사처럼, 쇠가 달려든다.
순간의 교차점, 그리고 쇠는 사내의 공격을 피해냈다.
"……웃…!!!"
쇠의 반격. 놈의 이빨은 그의 왼눈을 앗아간 것이었다.
사내의 왼손 밑으로 턱의 선을 따라 핏방울이 또르륵 굴러 내려갔다.
그러나 사내의 입에선 결코 비명이 새어나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하나 밖에 남지 않은 눈은 이전보다 더 진하게 번득이고 있었다.
조용히 몸을 일으킨 사내는,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자신의 사부에게
머리를 숙이며, 탁한 목소리를 끄집어내었다.
"오늘부터 잠시 대장장이 일을 그만 두겠습니다."
사부는 뜻밖의 일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자신의 연장을
만지작거리다가 툴툴거리며 쏘아붙일 뿐이었다.
"흥! 네 녀석같이 단순 무식하고 하나 밖에 모르는 놈이 벌써부터 길을 찾아
헤매게 되다니! 제대로나 걸어간다면 좋겠구나!"
사내는 사부의 그 말에 잘 짓지 않던 미소를 지어보였다.
"……반드시…만들어 보이겠습니다…!"
※ ※ ※
어느 동네에 가건 거의 허물어져 가는 집이 한 채 정도 있기 마련이다.
만일 그곳이 빛이 잘 들어오는 곳에 위치해있다면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가 되고,
그렇지 못하다면 귀신이 나오는 집으로 이야기가 퍼져 그네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지금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집은 후자에 속했다.
그들도 그 점이 무척 마음에 걸렸는지, 어깨와 팔에는 빳빳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들중 가장 뒤에 서있던 아이가 결국 울 듯한 표정을 하더니
아이들 중 가장 키가 크고 눈썹이 부리부리한 아이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저…그냥 돌아가면 안될까? 지금 시간도 좀 늦었는데…."
"아월! 늦긴 뭐가 늦어! 이제 겨우 묘(卯)시(오후 다섯시 경. 작가주)에
접어들었다고!"
아월이란 불린 아이의 눈은 이제 금방이라도 넘쳐흐를 듯 물이 고여 있었다.
"하, 하지만 소운…."
"그만해! 그러니까 네가 겁쟁이란 소릴 듣지! 애초부터 널 데려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결국 아월은 다시는 흘리지 않겠다던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저, 정말 무섭단 말야, 소운…. 난…."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말 화가 났나 싶어 앞으로 고개를 돌린
아월의 눈에 떨고 있는 소운의 어깨가 들어왔다. 다음 순간, 어느새 앞에
나서있던 아이들 모두가 뒤로 돌더니 죽을 힘을 다해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아월은 당황해 친구들을 부르려 했지만, 그네들이 달려가며 외쳐대는 소리를
듣고는, 그 역시 뒤돌아볼 생각도 않고 뛰기 시작했다.
"으아악, 도깨비다!"
"엄마아! 와아앙!"
"귀신이 나왔다-!"
※ ※ ※
3년, 그래 3년 만이다. 부석거리는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사내는 하나 밖에 남지 않은 눈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으아악, 도깨비다!"
"엄마아! 와아앙!"
그를 본 아이들이 울부짖으며 달아나는 것이 보였다. 사내는 그 모습을 보며
얼굴에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3년 동안이나 어둠 속에 쳐박혀 있었으니
귀신이란 말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는 귀신이 될 요량으로 흙과 쇠를 만지기 시작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것에 대한 이상하리 만치의 집착은 사람을 충분히 귀신으로
만든다고, 사부는 그렇게 자신에게 충고했었다.
하지만 지금 사부는 떠나고 없었다. 자신이 폐관에 들어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지금 이곳에 사부는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그를 잡아둘 끈은 이제 하나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 사내의 눈빛이 이채를 띄었다. 갈색머리의 아이가, 얻어맞은 상처인 듯
여기저기 흠이 나있는 볼을 움직여 환한 미소를 지어내며, 자신을 향해 웃어
보이고 있었다. 녹색 눈동자가 햇살에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안녕, 아저씨."
+ + +
마오 외장 역시 제가 새로운 시도를 한답시고 깐죽댄었던 부분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야기의 끝부분과 앞부분이 서로 연결되지요.
그리고 앞부분은 또 십장의 마지막과 연결되구여.
'도부수'는 사랑과 집착, 그리고 그것을 통한 자기 존재 확인에 대한 얘기입니다.
물론 작가의 거지같은 문체와 꼴같잖은 전개를 통하다 보니
거의 망가져 버린 삼류 변태 호러 환타지가 되었긴 하지만요...흑...
음냐...어쨌건 간에 '도부수'도 이제 거의 끝나가네요.
이제 십이장 쓰고 종장 하나만 더 쓰면 땡이닷...
북녘을 다스리는 검은 물의 가라한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