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 (63/65)

 #5.

 "사류……."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내가 널 죽였다 해서 날 원망하러 왔느냐,

 아니면 저승길이 쓸쓸하여 날 데려가려고 왔느냐. 

 마오는 고개를 한 번 휘저었다. 사류는 분명 자신의 손에 죽었다. 그리고 자신의

 실패작을 깡그리 부정한 후에 그는 드디어 하늘의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분명

 내 눈앞에 선 것은 사류의 껍질을 쓴 그때의 도플 갱어…그리고 설사 진짜 사류라

 해도……. 

 "다시 한번 부정해주면 그만이다!!"

 그 말과 동시에 마오는 사류의 머리를 향해 자신의 망치를 휘둘렀다. 기이하게도 

 망치가 닿기 전, 사류의 눈에는 기이한 웃음이 떠오르고 있었다. 다음 순간

 그 미소는 새빨간 꽃잎들에 의해 사라락 가려졌다.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다…. 두 번째로 만들을 하늘의 작품…

 그 소재를 찾아내다니…난 운이 무척 좋은 편이로군…….

 그리고 그 생각을 끝으로 마오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더 이상의 생각이나 느낌은 

 허용되지 않았다. 마오의 머리는 박살이 나있었고, 그의 앞에 나타났던 소녀의

 모습을 한 존재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마오-! 이 바보가…!!"

 알리스는 급히 달려와 손을 내밀었으나, 시리아스에 의해 저지당했다.

 그녀는 사납게 눈초리를 치켜올리며 레드, 아니 블러드 엘프를 노려보았다.

 "무슨 짓이지……."

 "…진정하세요."

 "진정하라고!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빨리 치료하면…."

 "…다시 살아날 수 있나요."

 알리스의 눈이 순간 멍해졌다. 시리아스의 슬픈 눈동자가 발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도 자신만큼이나 슬프고 당혹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는

 미숙한 판단을 내리지는 않았다.

 알리스는 입을 벌려 헛웃음을 터트려 내었다.

 "핫…핫핫…."

 그래, 아무리 내 치유술이 강하다 해도 이미 머리가 박살나 죽은 사람을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다. 그건 나도 알고 저 엘프도 알고 있어.

 "하하…핫하하…."

 그러니까…이건 마오 네 잘못이야…. 도플 갱어는 실체가 그림자이고 그림자가

 실체인 존재라는 걸 모를 네가 아니잖아. 멋모르고 실체를 공격하면 오히려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결과가 되어버린다는 걸 모를 네가 아니잖아.

 그러니까…이건 마오 너의….

 "하…하…."

 …너의 잘못이야, 마오…….

 "…흐…으흐윽…!"

 알리스는 숨을 죽여가며, 울음을 멈추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때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존재가 있었다. 곱슬한 금발은 하늘하늘 날리고 있었고, 얼굴엔 진한

 화장을 한 여인이 그녀를 향해 웃고 있었다.

 알리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뒤에서 자신을

 만류하는 시리아스의 팔도 귀찮다는 듯이 후려쳐 버렸다. 헌이 막 깨어나 뭐라고 

 외치는 소리도 무시해버렸다. 그녀는 오로지 그 여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리스의 입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녀가 두 팔을 들어 자신의 목에

 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외로웠지? 금방 따라가지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지금이라도 네가 날 찾아와서 다행이야….

 그녀의 팔이 점점 자신의 목을 졸라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알리스는 그냥

 내버려두고 있었다. 결국 그녀의 가녀린 팔이 자신의 목뼈를 부러트릴 때까지,

 알리스는 그저 그녀의 이름만을 하염없이 되뇌이고 있었다. 

 "데라……데라…."

 "카프린-! 어째서, 어째서-!"

 헌이란 소년이 뭐라고 절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더 이상은 정확히

 들리지도 않았다. 그대로 알리스는 의식의 끈을 놓아버렸다.

※     ※     ※

 "태초 이전의 무질서에서부터 내려오는 법이여…." 

 카린은 조심스럽게 주문을 외웠다. 폴리모프의 법이 지금 자신의 몸에 시행되고

 있었다.

 "그 혼돈 속에서 온갖 형체를 만들어 내었음이니…내 의지에 따라 내 위에

 새로운 형체를 허용하여라, [폴리모프]!"

 어둡게 빛나는 마법의 단어…. 그리고 카린은 조용히 마법을 마무리하고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완벽했다! 자신의 몸은 완전한 여성의 그것이 되어 있었다. 카린은 만족의

 웃음을 얼굴에 띄운 채 여기저기 자신의 몸을 매만져 보았다. 어느 순간,

 그녀-이제는 그녀-의 동작이 멈추었다. 만일…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시

 되돌아간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폴리모프의 법을 얻기 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가 버린다면,

 여태까지 그녀가 해온 일은 모두 헛일이 되는 것이 아닌가. 

 카린은 고개를 내저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은 요마의 반지 기네킨을

 이용하면 막아낼 수 있었다. 그 반지의 요기가 자신의 시간을 멈추게 할 테니까. 

 그리고 카린은 조용히 웃으며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여태까지 오만한

 모습만을 보여오던 종족이 멸망하는 순간 짓는 표정이라…궁금한걸?

 놓칠 수 없지…멸망과 신생이 교차하는 그 순간을…! 

 이미 카린의 몸은 바위에 의해 생긴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 후였다.

 그리고 쿠리안과 퀘타라스의 접경 지역에 위치한 에페르타 산맥은

 다시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여전히 산들은 태초에도 그랬던 것처럼, 말없이 모든 일을 관조하고 있었다.

 그저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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