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 (64/65)

 #6.

 자신이 여태껏 스스로 생각해왔고, 또 쌓아왔던 자신이란 존재를 부정당하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아마도 그 존재는 끝까지 그 무너져 가는 존재에 목을

 매달고 버티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헛되다는 절망 속에서 죽어가겠지.

 중원의 황제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용제가 자신에게 건네준 무기는 바로 그런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것이었다. 정말로 가공한 무기이다….

 그 가공한 무기는 지금 황제의 손바닥 위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 오리알보다 

 약간 큰 구슬같은 물체를 다루는 방법은, 될 수 있는 한 많은 적군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던지는 것뿐이었다.

 휴대도 간편하고 사용하기도 편리하다. 게다가 땅에 닿기만 하면 바로 그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보다 더 무서운 무기가 또 있을까. 

 더 무서운 것은 이 무기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최강의 종족이라

 일컬어지는 드래건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란 사실이다. 만일 그들이 자기네들을 

 멸망시킬 생각을 했다면….

 중원의 황제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것이 바로 인간들의 단점이었다.

 자신들과 같은 존재는 인정하지 않았다. 무서워하거나 어떤 이유를 대어서라도

 핍박했다. 그리고 자신들에 의해 마음대로 다루어지는 그들을 보고 비로써

 안심하는 것이다. 

 그는 손을 내밀어 조심스럽게 여태까지 만들어졌던 어떤 무기들보다 더 무서운

 무기를 상자 속으로 집어넣었다. 푹신한 비단천이 충격을 완화시켜 주었다.

 그리고 상자의 뚜껑이 닫혔다. 

 중원의 황제는 그 상자를 가까운 탁자에 올려놓은 후, 그곳에 놓여있던 쪽지를

 들어 일곱 번째로 읽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는 결국 이 무기에 대한 고찰과,

 이 정보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다 소모한 셈이다.

 그 쪽지는 자신이 퀘타라스에 은밀하게 파견시킨 세작(간첩. 작가주)들에 의해

 보내진 것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이 짤막했다.

 - 퀘타라스의 대신전에서 일급 정보원 17호가 아룁니다.

   이번 달에 벌어진 월례행사에서 창조주 엘시타이는 끝까지 침묵을 지켰습니다.

   황제 폐하께 옥황의 가호 있으시기를.

 황제는 잠시 눈썹을 찌푸렸다가 이내 다시 폈다. 이전에 해동의 가한도 환단이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온 바 있었다. 이런 현상이

 퀘타라스에서도 벌어졌던 것이다. 어쩌면 자미원(중원에서 섬기는 신계.

 그들은 이 신계를 믿을 것을 강요하나, 해동과 동영은 자신들만의 신계를

 고집하고 있다. 작가주)에 계시는 옥황께서도….

 황제는 다시 한번 눈썹을 찌푸렸다. 무언가가 생각날 법도 한데 그저 기억 깊숙한

 밑바닥에서만 맴돌 뿐, 그렇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모든 신계의 주신들이

 모여…그 이후 어떻게 이어지던가.

 결국 황제는 술이 들어가면 생각이 날지도 모른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고,

 시비를 부르기 위해 침상 옆에 늘어져 있는 붉은 줄을 잡아당겼다. 

 땡그랑-! 은은한 방울 소리가 황제가 머물고 있는 방을 넘어 복도로,

 그리고 시녀들이 있는 방으로까지 넓게 퍼져나갔다. 

※     ※     ※

 카프린의 모습을 한 도플 갱어는 어느새 헌의 뒷머리를 움켜잡고 있었다.

 헌의 보랏빛 눈동자가 눈물을 머금고 그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그는 그걸

 무시했다. 아니 막 무시하려던 찰나였다.

 일순 그는-또는 그것은 생각을 바꿨다. 죽이기 전에 서비스라도 해주는 것도

 좋겠지. 그는 입을 열어 아까 헌의 다 못 이어진 질문에 답을 해주기로 결심했다.

 "왜냐고? 난 도플 갱어니까…이렇게 하는 것이야 말로 내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일이니까."

 "…당신이 도플 갱어라 해도…."

 헌은 간신히 말을 이었다. 아직까지는 마음 한구석을 다 잡고 있는 그였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지탱될지…. 시리아스의 그런 걱정과는 상관없이,

 헌은 기어코 입을 열어 자신이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었다.

 "당신이 도플 갱어라 해도 상관없어! 당신은 카프린…아니 뭐라 해도 좋아!

 하지만 당신은 나의 소울 페어…날 잡아줄 수 있는 단 한 사람…."

 그것은 씨익 웃으며 한층 헌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눈물로 얼룩진 헌의 볼을

 툭툭 쳐주며 비웃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어리석은…실체가 없는 존재에게 소울 페어란 없어…."

 "당신…."

 놀람과 실망…짧은 순간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헌의 눈동자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 소년의 모습을 보며, 카프린의 모습을 한 도플 갱어는 자신의

 것인지 카프린의 것인지 모를 검을 그 소년의 가슴에 겨누었다.

 카프린의 나직한 대답이 시리아스의 귀에까지 흘러 들어왔다.

 "…난 단지…."

 시리아스는 결정해 버렸다. 하긴 처음부터 결정된 일일지도 모른다.

 카프린의 말을 계속 되고 있었다.

 "단지…너의 소울 페어의 모습을 한 도플 갱어일 뿐이야…."

 푸욱-! 피가 튀어나왔다. 헌의 가슴에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인 시뻘건 피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시리아스는 아까부터 외우고 있던 주문의 시동어를 황급히

 내뱉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심적인 동요로, 그녀의 몸에 흐르던 마나가 거칠게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카프린, 아니

 카프린의 모습을 한 도플 갱어의 검은 헌의 심장을 정확히 찔러가고 있었다. 

 "리터너브 라이프(Riturnov Life:생명으로의 회귀)!!!"

 주문은 완성되었다. 시리아스는 종잡을 수 없이 흐르던 마나가 자신의 심장을

 향해 모여드는 것을 느꼈다. 조금 후면 심장은 견디지 못하고 터져 버리겠지.

 그리고 그녀의 눈은 헌을 바라보았다.

 바보…바보…그래도 난 당신을 사랑했는데……. 

 파직-! 심장이 찢어지는 소리가 의외로 크게 울려왔다. 그리고 그녀는 대지 위에

 조용히 몸을 뉘었다. 

 풀썩-! 가벼운 먼지 구름이 얕게 일었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멀어져 가는 의식을

 잡으려 애쓰며 시리아스는 고개를 들었다. 헌의 눈물 가득한 눈동자가 들어왔다. 

 날 위해? 

 아니겠지. 그를 위한 눈물이겠지, 저것은.

 결국 마지막까지도 나는….

 그리고 그녀의 눈은 스르륵 잠자듯 감겼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종족의 사명에

 충실하게, 다가오는 '죽음'과 조화를 이룬 것이다. 

 +               +             +

 음냐...이것이 카프린의 진짜 정체...

 있지도 않은 실체를 찾겠다고 난리치던 놈이 일순간에 그 모든 것을 부정당하니

 살짝쿵 맛이 가는 것은 당연한 순서...(아...아닌감?)

 그래서 카프린의 모습을 한 도플 갱어는 일행 모두를 죽이기로 한 겁니다.

 도플 갱어로써의 자신에게 충실하기 위해서죠.

 북녘을 다스리는 검은 물의 가라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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