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장 : 독창
어둡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소년의 몸을 한번 쓰윽 훑고 지나가자,
그때서야 소년은 몸을 돌려 자신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온통
흑색 로브에 의해 몸을 둘러싸고 있는 자는 약한 미소를 띄어 올렸다.
"이제…가자. 그런데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헌."
탁하고 쉬어버린 목소리였다. 하지만 소년의 새로운 주인은 그 목소리가 마음에
들은 것 같다. 그의 일말의 감정도 없어 보이는 메마른 얼굴에, 다시 한번 미약한
미소가 감돌았기 때문이다.
문득 그의 시선이 새롭게 대지 위에 세워진 돌무덥을 향했다.
"저기 묻힌 여인은 널 무척이나 사랑했던 모양이군.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의
생명력을 너에게 퍼부으면서 까지 널 죽음에서 되살려 낼 까닭이 없지.
물론 그것이 잘못되어 네 생명력이 다시 폭주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의 깡마른 손가락이 헌의 실팍한 가슴을 쿡쿡 찔러대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말라서 비틀어진 손가락이었다.
그는 끌끌 웃으며 말했다.
"네가 갖고 있는 이 몸뚱이에 감사해라. 네가 상당한 수준의 전사가 아니었다면,
내가 괜히 마력을 퍼부어 가며 널 데쓰 워리어(Death Worrier)로 만들지 않았을
테니."
문득 그의 눈이 매섭게 빛나기 시작했다. 원한과 분노로 점철되어 있는 어둠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대로 그는 자신의 품속에서 하나의 구슬같은 것을
꺼내어 보았다.
다음 순간, 그의 목소리는 떨려 나오고 있었다.
"이것만 있으면…그리고 거기에 너의 전투력과 내 마력이 바탕이 된다면…!"
그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둠의 기운이 한층 강해졌다. 새어나오는 기운을
견디다 못해 주위의 키작은 관목들과 풀들까지 뽑히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헌이라 불린 소년의 눈은 무심했다. 그는 데쓰 워리어, 이미 죽은 자의 영역에
속한 존재인 것이다.
마침내 어둠의 기운은 최고조에 달했고, 그 자가 서있는 곳에서 용오름이 솟아
나오기에 이르렀다. 그 한 가운데서, 지옥에서 기어올라온 악마의 목소리가
메아리 쳤다.
"이것만 있으면 그 놈을, 내 신의를 배신하고 내 가족들을 죽어가게 한 퀘타라스의
국왕을! 브레멘트 2세를 완전히 파멸로 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고함을 내지르고 난 그의 모습을 다시 냉정하게 돌아와 있었다. 그대로 그는
말을 돌리며 헌을 향해 눈짓했다.
"가자…. 서둘러 퀘타라스로 가자. 친구와의 우정을 져버린 대가는 하루 빨리
치르는 쪽이 좋을테니…."
그리고 그의 말에 헌은 말없이 복종했다. 온 몸에 기이한 갑옷을 걸치고 등에는
짐까지 짊어진 채, 헌은 말없이 주인의 뒤를 쫓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이 점차 지평선 너머 작은 점으로 변해갈 무렵, 새로운 한쌍의 눈이
그들이 가는 방향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발길이 분명 퀘타라스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눈의 임자는, 아까까지 헌이란 이름의 소년이 바라보던
돌무덤을 주시했다.
투박한 손이 돌무덤 위를 한번 쓸어갔다. 그리고 손의 주인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등에 지고 있던 짐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하나의 수금이었다.
※ ※ ※
솔리아드의 촉촉하게 젖은 눈이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응시했다.
만들어진 존재와 실체가 없는 존재 사이에 일어난 감정의 교류…
그리고 그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던 또 하나의 숨겨진 감정….
솔리아드는 수금을 타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될 멸망을 위해, 멸망 후 이어질
또 다른 시작을 위해, 그리고 멸망의 첫 번째 제물이 되어버린 소년과 그 일행을
위해…그는 수금을 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시나요,
그대를 두고 돌아서야 하는 이 마음.
언제나 한 곳엔 당신의 영상이 그려져 있지만
지켜질 수 없는 영원의 약속에
이 나의 가슴은 찢어집니다.
아름다운 나의 아가씨.
내 넋은 이미 불 타버린지 오래,
회색빛 고운 재만 남은 그 위에
당신은 또다시 꽃씨를 뿌립니다.
아시나요,
입으로 전해지는 마법의 언어.
그대와 나를 연결해주는 한 가닥의 붉은 실,
그리고 운명은 그 위에 가위를 얹어 놓습니다.
아름다운 나의 아가씨.
불과 흙의 어울림 속에서
난 다시 새로운 반지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그대의 손가락에 끼워드립니다.
아시나요,
유구한 생명을 살아가는 이에게 바치는 나의 노래.
은은한 어둠을 뿌리며 다가오는
핏빛 죽음의 아름다운 유혹,
그리고 그대는 여전히 아름다운 나의 아가씨.
솔리아드는 다시 한번 수금의 현을 튕겨내었다. 아릿한 느낌의 후렴구가
삭막하게 말라버린 대지 위를 은은하게 떠돌고 있었다.
……
………
은은한 어둠을 뿌리며 다가오는
핏빛 죽음의 아름다운 유혹,
그리고 그대는 여전히 아름다운 나의 아가씨….
그대는 여전히 아름다운 나의 아가씨…….
………
- 完 -
+ + +
드뎌...도부수 쫑입니다.
글구 천리안에 접속하는 것도 오늘로 쫑...
군입대 전까지 어떻게든 끝내려고 발버둥을 쳤는데
끝내고 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오늘 만큼은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네요.
북녘을 다스리는 검은 물의 가라한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