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9)

마치 좋은 결과를 기다리는 어린 아이처럼 오늘도 굽신. 

그나저나 텍스트가 간혹 깨지네요;; 뭐 읽는데 지장없습니다;;

어쩔 줄 모르는 심장을 움켜쥐고 그대로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 봤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생각은 없고 묽은 정액이 가득 묻어있는, 그러니까 팁토 부분에 정확히 묻어있는 검은생 스타킹 생각만 가득했다.

나는 손톱을 입술에 가져다대곤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대기 시작했다. 

“정선생님 볼일 다 보셨나봐요?”

한참을 멍하니 손톱만 물어뜯고 있었는데 한무영이 계단을 올라오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화장실 옆에 바로 작업실이 있구나. 어느새 내 코앞에까지 다가온 한무영을 나는 말없이 바라봤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멍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한무영을 바라보며 나는 계속 머리를 굴렸다.

“저...”

-네.

“아무래도....”

쉽사리 말이 떨어지질 않았다. 바보같은 생각이지만, 지금 상황에선 작업실에 있을 아내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다리에 걸치고 있던 그 검은 스타킹도.

“아무래도.... 와이프를...”

-와이프를?

“그... 작업하는 걸 구경하고 싶은데요.”

-아.

정말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좋은 건지 어쩐건지 좀체 알 수 없는 한무영의 표정을 통해 내가 알아낼 수 있는건 도무지 아무것도 없었다. 담담히 그의 대답, 아니 ‘허락’을 기다렸다.

“뭐, 그러시죠. 하루종일 무료하셨을텐데.”

-네.

마치 하루 종일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한무영이 웃어보이며 나를 작업실로 안내했다. 작업실 문을 여는 순간에도 미친 듯 뛰고 있는 내 심장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조명을 등지고 앉아있던 와이프가 나를 보며 짧은 ‘인사’를 건내왔다. 아무래도 나의 등장이 꽤나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한무영의 눈치를 살피며 아내의 곁으로 다가갔다.

“당신, 옷 또....”

제기랄,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와이프의 옷차림새가 또 바뀌어 있었다. 점심 때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원피스에 ‘검정 스타킹’ 차림이었건만, 어느새 스커트 차림에 우윳빛 밴드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유난히 팁토 부분이 부각되는 그런 차림이었다. 덕분에 아내가 입고 있는 타이트한 티셔츠 때문에, 아내의 풍만한 젖가슴이 더욱 도드라지게 보이는 것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후엔 이 차림으로 촬영한다고 해서..”

그제야 조명에 비친 아내의 얼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화장을 한 건가? 아내의 두 볼이 어쩐지 저번처럼 붉게 물들어 있는게 신경이 쓰였다. 나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마치 한무영이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아내에게 소리쳤다.

“그... 그 당신이 말한 탈의실은 어디 있어?”

아내의 표정을 보아하니 조금 놀란 눈치다. 빌어먹을 왜 또 심장이 뛰는거지? 슬쩍 눈치를 보니 카메라를 매만지고 있던 한무영 역시 조금 놀란 눈치였다.

“탈의실이요? 그건 왜...”

-아니, 저번주에 왔을 땐 안보여서.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나는 나답지 않게 아내를 옭아맸다. 그러면서도 난생처음 느껴보는 묘한 느낌에 사로잡혀 연신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 탈의실이라면 이쪽에 있습니다.”

정적을 깬 건 한무영이었다. 당황한 표정의 아내를 뒤로 하고 나는 한무영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몸을 틀었다. 한무영과 아내의 표정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탈의실 쪽으로 걸어갔다. 

“아...”

한무영이 탈의실이라고 알려준 곳은 작업실 한켠, 후미진 곳에 있었다. 아마도 어둑어둑한 탓에 저번 주에 내가 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탄식을 하게 만든 것은, 탈의실에 대롱대롱 걸려있는 아내의 청바지와 분홍색티. 그리고, 아까 신었던 것으로 보이는 ‘검은색 스타킹’과 원피스였다.

“선생님 왜 그러시죠?”

나는 멍한 표정으로 한무영을 바라봤다. 그런데 한무영이 마치 나에게 보여주려는 듯, 자신의 비밀 작업실 문을 활짝 연 채 바로 그 앞에서 서 있는게 아닌가? 마치 ‘여기도 한 번 보렴’ 하는 표정으로.

등골에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었다. 빌어먹을.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몸이 쉽게 돌아가질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할지, 그리고 한무영과 아내를 향해 어떤 표정을 지어보여야 할지, 선뜻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시...실례했습니다. 저번에 탈의실이 보이질 않아서. 저도 그냥.. 그..”

-괜찮으신가요?

“예.. 죄송합니다. 그럼..”

-사진 찍는거 안보고 그냥 가시게요?

먼저 안정을 찾은건 한무영처럼 보였다. 얼굴을 붉히고 있는 내게 한무영은 너무나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한무영은 물론이고 아내의 얼굴까지 볼 ‘낯’이 없어서 고개를 숙이고 그대로 작업실을 빠져 나왔다.

‘빌어먹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시체처럼 세워져 있는 차까지 걸어갔다. 운전석에 앉아 달아오르는 얼굴을 감싸쥐며 그대로 시트에 기대 버렸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당장 저녁에 와이프 얼굴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하지만 ‘고맙게도’ 얼마가지 않아 와이프에게서 건내 받은 짧은 문자메시지 한통은, 그런 내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내 주었다.

[저녁은 여기서 시켜 주신다는데, 그래도 괜찮겠어요?]

나는 손톱을 입에 물고 고민하다가, 기어이 ‘응’ 이라는 짧은 문자 메시지를 타이핑 해 보냈다. 어찌되었든 이 상태에서 아내의 얼굴을 볼 면목은 없다.

밤이 깊어갔다. 시간을 슬쩍 보니 10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아내의 전화가 올 때까지 나는 정말 한 번도 전화기에 손을 대지 않았다. 굳어버린 몸으로 운전석에 앉아서는 어둠이 내려앉은 ‘스튜디오’를 멍하니 바라봤다. 

‘와이프가 나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게 내 머릿속을 감싸고 있는 솔직한 생각이었다. 분명 와이프도 아까 일에 대해서 무슨 말인가를 할텐데,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한단 말인가?

운전대를 부여잡고 스튜디오 입구를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시간이 10시 반을 조금 넘어가고 있을 때 스튜디오 문이 열리며 와이프와 한무영이 동시에 빠져 나왔다. 차 문을 열고 나갈까 어쩔까 고민하다가 결국 차에서 내리지 못했다. 와이프와 한무영은 한동안 무슨 말인가를 나누는가 싶더니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를 찾는 것 같았다. 그리고 와이프와 한무영이 동시에 내 차를 발견했을 때 둘은 짧은 인사를 나눴다. 그리곤 차창 너머에서 아내가 내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게 보였다. 이번엔 내가 사준 분홍색 티셔츠와 청바지차림으로.

어둠이 내려앉은 시내를 말없이 달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곁눈질로 슬금슬금 바라봤을 땐 아내는 저번주처럼 무표정하게 창문밖을 응시할 뿐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조금 피곤해 보였다. 

‘왜 아무말도 하지 않는거지?’

말이 없으니 더욱 불안했다. 사실 지난 3년간 늘 이래왔다. 아내는 왠만해선 나에게 짜증이나 화를 낸 적이 없었다.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가정은 가끔씩 서로에게 화도 내고 투정도 부리고 하는 그런 건데, 그런 면에선 아내의 태도는 조금 아쉬운게 사실이었다.

“저기...”

아내가 고개를 돌려 나에게 입을 열었을 때, 나는 순간적으로 브레이크를 밟고 말았다. 나와 아내의 몸이 차안에서 크게 뒤틀렸다.

“어.. 미안..”

한적한 길 위에 멍하니 서서는 와이프에게 사과의 말을 건냈다. 와이프도 조금 당황했는지 애꿎은 이마를 손으로 한번 짚는가 싶더니 나를 보며 천천히 얘기했다.

“혹시.. 요즘 힘든일 있어요?”

-어? 갑자기 무슨?

등뒤가 시려왔다. 혹시, 한무영이 아내에게 이상한 얘기라도 한 걸까? 

“아니 그냥, 요즘 표정도 안좋아 보이고...”

-없어. 아무 일도. 왜? 일 해보니까 못하겠어?

아뿔싸. 이런 얘기는 하는게 아니건만. 나는 말을 뱉어내곤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늘 그렇듯 표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요. 생각보단...”

-생각보단?

“생각보단 재밌어요.”

-아.. 정말?

뜻밖이었다. 조금 지쳐보였는데 모델일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내심 못하겠다는 말이 흘러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병신같이.

“아까... 아까 일은 미안해.”

-.........

“탈의실...”

-아....

“그냥 그게...”

-됐어요. 이유가 있었겠죠. 

역시나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웃는 것도, 그렇다고 화를 내는 것도 아닌 표정을 지어보이며 와이프가 말했다. 괜히 씁쓸해진 나는 다시 엑셀에 발을 올렸다. 

집에 돌아왔을 때, 와이프가 내게 봉투 하나를 건냈다. 뭔가 하고 건내받은 봉투를 열었을 때 빳빳한 수표 3장이 봉투 안에 들어있었다. 맙소사. 정말 3백만원인가? 나는 와이프에게서 받은 돈봉투를 다시 돌려주려 했지만 와이프가 한사코 됐다는 통에, 머뭇거리다 봉투를 스탠드 옆에 살짝 얹어놓았다. 아내는 씻겠다며 그대로 방문을 열고 나갔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뭐지?

내가 임곽수에게 전화를 건건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일이 제법 힘들었던지 와이프는 간단하게 씻고 돌아와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방안의 눈치를 살피며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임곽수에게 말했다.

“일단 300만원을 갚고 싶은데요.”

-아 이사람. 천천히 갚으래도.

“아니요. 300만원 갚고, 또 월급이 들어오는대로 갚겠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혹시라도 2천만원을 다 갚게되면 아내가 일하는걸 언제라도 그만두게 했으면 하는데요.”

나는 나의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한동안 전화기 너머에서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임곽수가 천천히 말을 걸어왔다.

“음. 그건 나에게 할 말이 아니지 않나? 한사장이랑 말해야지. 

-아...

“그리고... 오지랖인건 알지만, 괜찮을까?” 

-네?

“정일무씨 생활 수준이랄까, 월급이래야 매달 얼마 들어오는지 내가 다 알고 있는데. 2천만원을 너무 쉽게 갚겠다고 하시니..”

-그건...

“뭐 돈 빨리 갚겠다는데 나야 좋지만, 무리하시진 말라고. 혹 갚지 못하더라도 상환 기간은 꽤 넉넉히 드릴테니 너무 걱정하시진 말고.”

-그....

“그럼 끊소~”

결국 별다른 말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임곽수의 말은 사실 틀리지 않았다. 쥐꼬리만한 월급이 들어온다고 해도 2천만원이라는 돈을 금새 갚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내가 벌어온 3백만원을 내 사채돈을 갚는데 쓰자니 –이제와서- 괜히 미안하고 뭐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하아. 결국 별다른 방법이 없나?

아내가 누워있는 침대로 돌아와 생각에 잠겼다. 여자스타킹, 화장실, 정액, 탈의실, 한무영. 한눈에 봐도 아무 연관도 없을 것 같은 단어들을 억지로 연결시키는 건, 정말 고역이다. 하지만 거진 하루종일 한무영의 스튜디오에 있으면서 이상하다 느낀 건, 정말이지 스튜디오에 발을 들이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었다는 점 이었다. 그리고 저번주에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한무영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작업실 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뭐 솔직히 내가 봐도 훔쳐갈 거라곤 별로 없어보였지만. 아 하나 꼽으라면 1층에 놓인 데스크탑 정도? 후우. 에라 모르겠다. 알게 뭐냐? 내 돈 없어지는 것 도 아닌데. 잠이나 잘란다. 

아내가 ‘일’을 한지도 벌써 한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3백만원씩 차곡차곡 모아 어느새 천만원을 훌쩍 넘는 돈을 모았다. 

토요일이 되면 나는 어김없이 아내를 스튜디오까지 데려다 줬다. 아직도 그 때 봤던 검은 스타킹이 머릿속에 남아있었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토요일이 되면 하루종일 무료하게 지낼 수 밖에 없는 나와는 달리, 긴 시간동안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내의 얼굴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어쩐지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냥 모르겠다. 이건 단순히 나의 느낌에 기인한 거라서. 그냥 느낌이 그랬다. 

집으로 돌아오면 아내는 어김없이 내게 뻣뻣한 수표가 담긴 하얀색 돈봉투를 건내줬다. 그러면서도 표정의 변화랄까. 뭐 그런 것들은 읽을 수 없었다. 

‘앞으로 두세번 더 이 일을 하면 끝인가?’

조금 이율배반적인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내 마음도 어쩐지 처음과는 달리 조금 무덤덤해 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아내가 일을 시작하고 처음에는, ‘그래 앞으로 몇 번만 더 하면, 빌어먹을 사채 때문에 아내를 파는 일은 더 하지 않아도 된다’, 뭐 그런 생각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어쩐지 미안한 마음보다는 –물론 그런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그냥 묵묵히 내가 해야만 하는 일 –이를테면 아내를 스튜디오까지 데려다 주는-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토요일 밤이면 쥐죽은 듯 잠들어 버리는 아내의 얼굴을 슬쩍 바라봤다. 정말 예쁘긴 예쁘구나. 창가를 통해 은은히 들어오는 밤빛에 비친 아내의 얼굴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멍하니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 아내가 언젠가 처음으로 내 침대에 걸어 들어온 그날밤이 떠올랐다. 그날도 이렇게 불빛이 꺼진 방안에 와이프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때 난 서른 일곱 먹도록 동정이었다. ‘형식적인’ 혹은 ‘비공식적으로’ 나의 아내가 된 그 여자가, 나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된 지도 벌써 1년을 넘어가고 있던 시점이었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특별히 예린이에게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저 함께있으면 그 자체로 고맙고 감사했으며, 내가 감히 그녀를 치유한답시고 보다듬는 과정을 통해 내 스스로가 치유되는 묘한 행복을 느끼던 때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특별히 성욕이 부족하다거나 어디가 이상하다거나 한 것도 아니다. 나는 극히 정상이며 –그러니까 발기를 한다거나 하는 문제에 있어서- 나의 아내에게 예나 지금이나 성적으로 충분한 매력을 느끼고 있다. 

“당신은, 뭐랄까. 참 이상하고, 달라요.”

처음으로 나란히 침대에 마주하고 앉았던 날, 예린이는 나를 보며 그렇게 얘기했었다. 빌어먹을 동정이었던 나는 그때까지도 상황파악이 좀체 되질 않아, 생전 처음 느껴보는 떨림에 막연히 와이프의 눈을 피하기만 했었다. 와이프가 내게 먼저 다가온 것도, 그리고 내가 혼자 자고 있는 방에 들어온 것도, 모두 아내를 만나고 1년 반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와이프는 별다른 말없이 그대로 내 옆에 누웠었다. 내가 그 상황에서 아내에게 내 뱉었던 말은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뭐.. 뭘 하는거야?”

정말 병신같은 말이지만 나는 정말 그때 내가 뭘 해야하는지, 그리고 지금 이 여자가 내 앞에서 무슨 일을 하려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불이 꺼져 있는 방에 누워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와이프는 한동안 말없이 누워있을 뿐이었고, 나는 그런 와이프를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같이 살자면서요. 앞으로.”

한참을 누워있기만 하던 아내가 내게 쏟아낸 저 말 한마디 ‘덕분에‘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그랬었지. 몇 번을 까이다 –나름 프로포즈랍시고- 저 말을 쏟아내곤 결국 승낙을 받았었다. 

와이프. 나의 ‘비공식적인’ 아내가 된 예린이를 처음으로 안았던 게 바로 그날 밤이었다. 분명 나에겐 너무나 과분한 미모의 와이프가 잠자코 누워있는데, 한동안 발기가 되질 않았다. 정말이지 너무 떨렸던 기억만 가득했다. 와이프의 옷을 벗겨내고 생전 처음 여자의 브레지어와 팬티를 조심스럽게 벗겨내는 동안에도 내 성기는 반응하지 않았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와이프에게서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어둠속에 드리워진 아내의 몸은 정말이지 너무 아름다웠으니까. 잘록한 허리라인과 커다란 가슴. 그리고 생전 ‘실제로’ 처음보는 여자의 은밀한 부분까지. 설명하기 어렵지만, 하여튼. 

아내의 옷을 다 벗기고도 끝내 물건이 반응하질 않았다.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아내는 조금도 떨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한참을 걸려 옷을 다 벗어냈음에도 와이프는 자신의 유방이나 성기를 가리기는커녕 그저 눈을 감고 침대위에 누워있을 따름이었다.

짧은 순간에 나는 많은 생각을 했었다. 처음 하는데 괜찮을까? 이 나이 먹도록 아직까지 경험이 없는걸 눈치라도 챈다면 실망하지 않을까? 너무 빨리 끝나면 어떡하지? 애써 와이프랑 여기까지 왔는데 괜히 어색해지는건 아닐까? 설마, 자기 나름대로 이런 걸 보상이라고 생각하는건가? 뭐 이를테면 그런 생각들을 끊임없이 되새기고 있는데, 놀랍게도 와이프가 내 손을 꼭 잡고는 자신의 젖가슴 위로 가져다 댔다. 와이프에게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손은 한없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생전 처음으로 만져보는 여자의 가슴은 너무나 부드러웠다. 감히 손을 움켜쥐거나 별달리 움직일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손바닥 전체에 고루 퍼지는 그 보드랍고 따뜻한 감촉은 정말 처음 맛보는 느낌이었다. 

나의 손을 가볍게 움켜쥐고 있던 아내의 손이 떨어져 나가자, 나는 아내의 가슴을 조심스럽게 움켜쥐었다. 한손에 움켜쥐고도 남음이 있는 그 느낌. 동시에 거짓말처럼 잠잠했던 내 성기가 꼿꼿이 발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본능적으로 내가 입고 있던 옷을 한 꺼풀씩 벗고는 천천히 아내의 몸 위로 올라갔다. 

딱딱하게 발기해 버린 내 물건이 아내의 두툼하고 부드러운 허벅지에 닿자, 내 아래에 깔려 누워있던 아내가 조심스럽게 다리를 벌려주는 느낌이 들었고, 나는 처음으로 ‘딱지‘를 떼는 동정의 남자가 그렇듯 몇 번 허둥대다가 겨우, 아내의 몸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다른 애무도 없었다. 어쩐지 성기를 타고 매우 뻑뻑한 느낌이 들었음은 물론이고 밑에 깔려있는 아내 역시 나의 삽입과 동시에 단발마의 신음소리를 토해냈었다. 난생 처음 맛본 여자의 느낌은 뻑뻑하다, 따뜻하다, 그리고 살냄새가 참 좋다. 뭐 그정도로 기억한다. 

처음 관계를 갖는 남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나는 삽입과 동시에 아내의 큼지막한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는 정신없이 허리를 흔들었다. 자세도 불편했고 어쩐지 허리도 아팠다. 솔직히 말하자면 평소에 하던 자위보다 그닥 좋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재밌는건 정말 얼마가지 않아 사정의 기운이 잦아들었다는 점이었다. 

아내의 몸 위에서 5분정도 몸을 흔들었을 때, 아내의 깊은 곳 안에 꿀렁꿀렁 나의 흔적들을 토해내곤 겨우 아내의 몸 위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허리는 욱신거렸고, 이마엔 땀방울이 맺혔으며 실눈을 뜨곤 연신 옆에 누워있던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건 아내의 표정을 통해 캐치해 낼 수 있는건 도무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게 예린이와 처음으로 가졌던, 그리고 내 인생의 첫 번째 사정이었고 섹스였다. 사실 그 날 이후로 나는 아내에게, 혹은 아내가 나에게 –섹스에 관한- 별다른 요구를 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뭐 당연한 일이겠지만. 마흔을 바라보는 나는, 내 옆에 누워있는 여자에게 내 아이를 잉태시킬 욕심은 요만큼도 없다. 나는 그저 부부에게 있어서 섹스나 육체적인 공유보다 중요한게 훨씬 더 많다고 확신하는 편이다. 결단코 내 실망스런 첫 번째 섹스에 대해 일련의 면죄부나 그 비스무리한 것들을 요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아무튼 나는 잠들어 있는 예린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빨리 시간이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다.

“아... 머리야.. 어... 어?”

내가 눈을 뜬 건 오후 한시쯤의 토요일이었다. 전날 회식자리에서 필요 이상으로 과음을 한 것까지는 기억에 있는데, 어쩐지 그 다음부터는 조금도 기억에 없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아내의 이름을 불러댔다. 하지만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거실로 나갔을 때 나의 눈에 들어온 건 아내가 차려놓은 밥상과 하얀 A4용지에 적혀져 있는 아내의 글씨였다. 나는 관자놀이를 눌러가며 A4 용지를 들어 천천히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일 때문에 먼저 나가요. 북어국을 끓여놨는데 간이 맞을런지는 모르겠어요. 일어나시면 끓여 드세요. 몸 가누기 힘드실테니 오늘은 나오지 마시고 쉬셨으면 해요. 예린]

나는 덤덤히 A4 용지를 식탁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갈증을 느끼며 물을 한 잔 따라 벌컥벌컥 들이켰다. 여섯 번째 촬영인가? 나는 속으로 횟수를 정리해 봤다. 마음같아선 밥이고 뭐고 지금 당장이라도 씻고 아내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나는 그대로 식탁 의자에 탁하고 걸터앉았다.

“후우. 이제 나도 마흔인가?”

한탄섞인 한마디를 거실에 쏟아냈다. 하릴없이 아내가 적어내려간 A4 용지를 다시한번 손에 들었다가, 아내가 끓여놓은 북어국 냄비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곤 천천히 불을 켰다.

끝내 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그래도 아내가 조금 신경쓰여서 저녁 시간에 맞춰 슬쩍 전화를 해 봤다. 전화벨이 몇 번 울리는가 싶더니 이내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별다른 말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여전히 변화가 없는 일정한 목소리 톤. 아내에게서 감정이나 생각을 읽어내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9시를 조금 넘겼을 때 와이프를 데리러 나갈까 하는 생각에 외출 준비를 했다. 딱히 오라는 이야기는 없었지만 그래도 왠지 묘한 사명감 같은게 있었다. 사실 걱정도 됐고. 

[바람 불어와~~ 내 몸이~~~]

순간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아낸가 싶어 전화기를 들었을 땐, 서예린이라는 이름 대신 그닥 반갑지 않은 친구 녀석의 이름 세 글자가 알알이 박혀 있었다.

“어.”

-일무냐?

“그럼 또 누구겠냐?”

-왜 이렇게 퉁명스럽냐? 야 긴말할 것 없고, 지금 빨리 이 쪽으로 와. 여기가 어디냐면....

“야 됐어. 나 지금 나가려던 참이야”

-잘 됐네. 그럼 빨리 이쪽으로 와. 여기 니네 집에서 가까워. 여기가 어디냐면......

지금.. 지금... 이거.. 대박이야! 암튼 빨리와!!!

창용이 녀석은 지가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내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괜히 짜증이 나서 무시를 하려다가, 거의 숨이 넘어갈 듯한 창용이 녀석 때문에 묘한 호기심이 생겨났다. 한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가, 창용이가 말한 위치를 곱씹어 봤다.

‘여기라면, 스튜디오 가는 길목이긴 한데. 창용이 녀석이 호들갑 떠는 것도 어쩐지 좀 그렇고...’

창용이가 말한 장소는 분명 집 근처였다. 어떻게 할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나는 천천히 집 밖으로 빠져 나갔다. 

“오~~ 왔냐?!”

-야 무슨 일이야?

창용이 녀석이 말한 곳까지 차를 몰고 가니, 허름한 맨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터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맨션 앞에 꼬질꼬질한 모습의 창용이가 보였다. 그리곤 별다른 대화라고 할 것도 없이 녀석이 내 팔을 붙잡고는 어디론가 끌고 가기 시작했다. 

“느...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다시 시작할까요?”

창용이 녀석에게 이끌려 맨션안의 어느 방안으로 들어갔을 때, 매캐한 담배연기 때문에 눈이 따가워 눈을 부비적 거렸다. 그리고 겨우 눈을 뜨고 앞을 봤을 때, 방안에 한 무리의 남자들이 나와 창용이를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창용이 옆에 서 있는데, 창용이가 그대로 –자신의 자리쯤으로 보이는- 바닥위에 걸터앉길래 나도 그 뒤에 다가가 슬그머니 앉았다. 

‘포커..’

상황파악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창용이를 포함한 네 명의 남자들이 뺑하니 둘러앉아 도박판을 벌이고 있었다. 요즘 겨우 참고 있는 중인데, 결국 창용이 새끼 때문에. 괜시리 속이 뒤틀려서 창용이의 등 뒤에 대고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야 너 고작 이것 때문에..”

-가.. 가만 있어봐.

창용이 녀석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그러고 보니 아까 맨션 밖에서 봤을 때 얼굴도 제법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창용이에게서 조금 떨어져서 돌아가는 분위기를 지켜보기로 했다.

“오..... 올인!”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연신 따가운 눈을 몇 번이고 비벼댔다. 

‘여... 열판 째!!’

드라마속 주인공처럼 창용이 녀석이 어울리지 않게도 허공속에 ‘올인’이라는 말을 토해냈다. 지금 이기면 자그마치 열판을 연속으로 따는 샘이다. 사실 놀음판에 있다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팀플레이’ 때문에 일부러 밀어주는 경우는 있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이건 확실히 ‘밀어주기’가 아니다. 나는 조금씩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천천히 창용이의 등뒤에서 창용이가 상대하고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호... 호구...’

원래 나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타입은 아니다. 게다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도박판에선 결단코 해서는 안 되는 일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인 사람들은 그 누가 봐도 ‘초짜’다. 

“에이씨. 오늘 안되네. 난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겄소”

-그.. 그럼 잠깐 쉴까요? 손목도 좀 아프고. 흐흐.

창용이가 돈을 긁어모으며 멋쩍게 웃고 있었다. 빌어먹을. 저게 다 얼마야? 나는 창용이에게 눈치를 주곤 밖으로 나갔다. 

“야... 저.. 저사람들 다 뭐냐?”

-뭐긴 뭐냐? 존나 호구들이지.

“일부러 저주는 것 같지는 않은데?”

-여기 6시에 왔는데, 상태를 보아하니 서로 ‘엮여’ 있는 인간들은 없는 것 같아.

“그럼....”

-처음 한 두시간은 일부러 푼돈 걸고 저주면서 실력들 좀 봤는데, 존나 허접해. 그래서 판돈 올리면서 몇 판 이기고 몇 판 지고 반복했더니 존나 돈이 쌓이는거야. 그러니까 푼돈을 건 판은 존나 많이 하면서 일부러 저주고, 한번에 열라 많은 돈을 걸어서 한번에 따버리고. 뭐 그런...

맙소사. 이건 정말 대박이다. 갑자기 손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입속에서 침이 마르고 심장박동수가 떨려왔다.

‘아.. 안돼... 안돼.. 안되는데...’

나는 고개를 숙이고 애써 담담해지려 노력했다.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일까? 하지만 창용이 녀석이 기어이 나에게 한마디 했을 때, 나의 인내력은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야. 너도 껴라.”

-나? 나.. 난.. 임마 나 돈 없어.

“아 새끼. 그러지 말고 해.”

-지.. 진짜 돈이 없어. 그리고 요즘 돈쓰기도 좀 그렇구.

“아 새끼 진짜. 그럼 6백 줄테니까 그 돈으로 한 판칠래?”

-6백???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창용이 녀석을 바라봤다. 이 새끼가 대관절 얼마나 땄길래 6백이라는 말을 저렇게 쉽게 하나? 창용이 녀석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는가 싶더니 내 귓속에다 대고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꿔주는것도 아니고 그냥 줄게. 그러니까 가서 한 판 하라고 임마.”

-너.. 너.. 지금..

“뭐 나도 슬슬 자리를 뜨려고 했던 참이고, 여차저차 눈치도 보이던 중이었으니까. 쟤네들은 내가 잘 구슬려 볼게. 정 미안하면 나중에 술이라도 한 잔 사던가? 오케?”

미안하다니. 그나저나 창용이 녀석이 원래 이랬나? 

암튼 10분정도의 휴게시간을 마치고 나와 창용이, 그리고 생전 처음보는 사내들이 다시 방으로 모여 들었다. 창용이는 조금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그 중에서 가장 나이가 있어보이고 동시에 덩치가 좋아보이는 중년 남성에게 ‘형님’ 소리를 내며 굽신거리기 시작했다. 애써 고개를 돌린 나의 눈에 거대한 판돈과 익숙한 ‘카드’들이 들어왔다. 

[꿀꺽]

맙소사. 저절로 침이 넘어갔다. 창용이가 내 곁에 다가와 나를 한 번 툭 치고는 나머지 사내들에게 인사를 건내는가 싶더니 

방을 빠져 나갔다. 사내들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지어 보이던 나는 창용이가 앉아있던 자리에 다가가 앉았다. 

눈앞에 카드와, 그리고 창용이가 남기고 간 돈다발이 들어왔다. 이렇게 되면 나에게 남은 선택은 하나다. 

나는 눈을 감고 짧게 쉼호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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