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9)

왠만하면 빨리 올리고 싶었지만;; 접속이 안되는 바람에;;;

주말들 잘 보내시고요,

P.S.

부득이 하게 제목을 바꿉니다;; 제가 생각해도 글 제목을 너무 성의없이 지었던게 아닌가 하는 ㅡ.ㅡ;

사채.... ㄷㄷㄷㄷㄷ

그래서 앞에 '달콤한'을 붙였..... (그게 그거 아니냐;;).. 퍼억.

자깐 이건 누군가의 말투 ㅡ.ㅡ;

나의 터프한 아내때도 맨 처음에 VALLEY로 시작했다가 제목을 바꿔서 대박이 났었는데..

그렇다면 이번에도? ㅡ.ㅡ;

굽.... 굽신굽신..

무의미한 날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오후 6시쯤 퇴근을 하고, 겨우 집까지 돌아왔다. 아내는 아까 오후 몇 시쯤에 촬영이 있다는 말을 전화로 전해왔다. 텅 비어 있는 집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두 달 동안 많은게 변해가는구나’

나는 옷을 갈아입고 시간을 한 번 확인했다. 오늘따라 몸이 이상할 만치 피곤했다. 아내가 돌아올 시간까지 잠깐 한 숨 붙일까? 나는 전화기를 들고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뿔싸!!’

어둠이 내려앉은 방에 누워있다가, 옆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귀에 걸려 슬며시 눈을 떴다.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을 겨우 겨우 뜨는데 눈 앞에서 아내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들어온건가? 몇 시지?’

아내는 나 때문에 일부러 불을 켜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때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리며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을 찾으려 애썼다. 겨우 겨우 스탠드 옆 탁상에 놓인 자그마한 시계를 보니 큼지막한 숫자가 차례대로 11과 35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 잠깐 눈 좀 붙인다는게.’

난 아내를 보고 누운 채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서서히 나의 두 눈이 어둠속에 적응해 감과 동시에 조금 묘한 장면이 눈 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 잠깐... 조금... 조금 이상한데?’

나를 등지고 옷을 갈아입던 아내가 조심스럽게 스커트 자락을 벗어 내렸을 때였다. 무언가, 아내의 엉덩이 부분이 조금 휑한 느낌이 들었다. 어둠속에서 내가 뭘 잘 못 보고 있는건 아닌가 싶어서 슬쩍 눈을 비빈 뒤에 아내를 훔쳐봤지만, 역시나 당연히 있어야 할 팬티 천조각이 보이질 않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슬쩍 아내의 몸을 훑어봤지만, 등 뒤에 걸린 브레지어와는 대조적으로 엉덩이 쪽엔 역시나 아무것도 걸쳐 있질 않았다. 호기심에 눈을 크게 뜨고 아내의 뒷태를 보고 있는데, 아내가 갑자기 내 쪽으로 몸을 돌리기에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다. 

‘뭐.. 뭐지?’

이상하게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질끈 감은 눈을 미쳐 뜰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등 뒤를 타고 흐르는 차갑고 뜨거운 땀방울의 감촉만 느끼며 송장처럼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한 참을 그러고 있는데, 방문이 열렸다가 조용히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둠 속에서 불을 켤 생각도 하지 못하고 침대 주변을 훔쳐봤다. 방금전까지 아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깨끗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괜한 호기심에 바닥에 발을 내딛었다. 

거실로 나가니 방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욱한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나마 어둠에 조금 익숙해 져 있는 탓인지 방향감은 썩 나쁘지 않았다. 와이프가 어디에 있을지 잠깐 생각하고 있는데, 화장실 쪽에서 옅은 물줄기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화장실 쪽으로 다가가 섰다. 고작 들려오는건 물줄기 소리가 단데, 이상하게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샤원가?’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아내가 일을 마치고 돌아온 뒤 샤워를 하는 일은 그만큼 드물었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얼굴을 씻는다거나 하는게 전부였는데. 나는 화장실 문에 귀를 대고는 물줄기 소리를 훔쳐 들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나는 무슨 생각이 들어 부엌 쪽으로 걸어갔다. 내가 변태도 아니고 더더욱 이런 쪽에 성적인 흥분을 느끼는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은 뭐랄까 조금 이상했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혹은 볼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갈증’ 이랄까? 그런 걸 해갈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컸다. 화장실 문을 열자니 그건 내가 생각해도 너무 위험했기 때문에 나는 서둘러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집의 구조상 부엌과 화장실은 바로 붙어있다. 그리고 부엌 뒤편으로 들어가면 자그마한 화장실 창문이 하나 있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건 단지 ‘그거’ 하나뿐이리라.

조심스럽게 걸어서 불빛이 새어나오는 화장실 창문 앞에 섰다. 다행인지 불행이지 창문이 열려 있었고, 창문을 따라서 뜨거운 김이 조금씩 빠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쉼호흡을 짧게 내쉰 뒤 천천히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면 그럴수록 차가운 물줄기 소리가 조금씩 선명하고 크게 들려왔다.

‘하아...’

샤워기를 손에 들고 몸에 물을 적시는 아내의 뒷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둠속에서 볼 때와는 달리 불빛이 내리쬐는 선명한 아내의 육신을 보고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렇게나... 이렇게나 아름다웠단 말인가. 30대 중반의 와이프의 몸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굴곡이 없는 허리라인과 너무나 풍만하지만 처짐이 없는 엉덩이. 그리고 뒤돌아섰음에도 그 풍만한 굴곡이 보이는 젖가슴까지. 지금 내가 놓인 상황 때문인지, 아니면 아내의 몸을 타고 정신없이 흐르는 물방울 때문인지 나는 아내의 몸을 훔쳐보며 새삼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쏴아]

아내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정신없이 몸에 물을 적셨다. 한참을 뚫어져라 아내의 모습을 훔쳐보던 내가 잠시 눈동자를 굴렸을 때, 세탁기 위에 놓인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그 물건을 자세히 보려고 노력했다.

‘뭐지?’

아내가 방금 전 벗어놓은 듯 보이는 옷가지들이 보였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게 속옷이 낯설게 느껴졌다. 아내의 커다란 가슴을 가려주는 브레지어며 팬티며. 모르긴 몰라도 내가 아는 아내의 속옷 중에 저런 건 없다. 게다가 어쩐지 팬티의 형태가 내가 알고 있는 그것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세탁기 위에 놓인 천조각을 자세히 보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물줄기가 그치는 소리가 들려 창문 옆으로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방으로 돌아가야 하나?’

자리에 멍하니 서서 화장실안의 동태를 살폈다. 조금의 정적이 흐르자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곤 다시 창문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비누...’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내가 비누칠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방금 전 보았던 세탁기 위의 물건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지만, 이번엔 아내가 내 쪽으로 돌아선 채 비누칠을 하기 시작했으므로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다만, 아내가 나를 향해 돌아선 덕분에 아내의 풍만한 젖가슴과 물에 젖어 엉켜있는 은밀한 곳의 털들을 보고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괜히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다. 슬쩍 고개를 내려 보니 바지 앞섶이 부풀어 있었다. 제기랄. 나란 놈은 참 구제불능이다.

한참을 고개를 돌리고 있다가 방에 돌아갈까 생각하고 몸을 돌렸다. 그런데 역시나 묘한 호기심이 발동해서 기어이 창문쪽으로 다시 고개를 들이밀었다. 

‘하아..’

여자가 몸을 씻는 건 부끄럽지만 태어나서 처음 봤다. 하지만 눈 앞에서 보이는 광경은 어쩐지 조금 낯설었다. 두 다리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가랑이라고 해도 좋을 듯-를 활짝 벌리고 선 아내가 고개를 숙이곤 자신의 은밀한 부분을 비누 타올로 부드럽게 문지르고 있었다. 

여자들은 저렇게 씻는건가? 하지만 아내는 자신의 성기를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오래 문지르고 있었다. 처음엔 손에 들린 타올로 조심스럽게 문지르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턴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이건 어디까지나 내 느낌이긴 했지만- 자신의 성기를 ‘비벼댔다’. 

‘뭐.. 뭘 하는거지?’

촉촉이 젖은 아내의 머리카락 때문에, 아내의 표정을 볼 수 없는 것이 내심 아쉬웠다. 과장을 조금 보태 한 5분가량을 정신없이 문지르던 아내는 그제야 허벅지와 다리에 비누거품을 묻혀갔다. 그리곤 돌아서서 다시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다시 창문에 바짝 기대어 세탁기 쪽을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아내의 속옷의 형태가 너무 이상하게 보였다. 차라리 저건 팬티라기 보단 하나의 폭이 좁고 길이가 긴 천 이라고 해도 좋을 듯 했다. 아내의 몸에서 거품이 천천히 걷혀가고 있었다. 나는 아내를 훔쳐보는 것을 그만두기로 하고 방으로 돌아갔다. 침대에 올라가 천장이 아닌 스탠드를 보고 비스듬히 누웠다. 그러면서도 방금전에 봤던 아내의 알몸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천 조각을 떠올리며 눈을 감은 채 아내를 기다렸다. 

‘무언가... 무언가 이상하다.’

결국 한 숨도 자지 못했다. 간밤에 샤워를 마치고 아내가 들어왔지만 나는 자는 척을 할 뿐 끝내 아내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궁금한 것이 너무나 많았지만 나는 함구하기로 마음먹었다. 

잠들어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괜한 집착에 나 혼자 나쁜 상상을 하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냥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집에서 나오기 전에 통장 잔고와 아내의 모델료를 슬쩍 계산해 보니 2천만원 조금 넘는 돈이 있었다. 뜻밖으로 관대하게 변해버린 임곽수 덕분에 내가 갚아야 할 사채 빚은 ‘고작’ 3천 얼마 정도였지만, 사정을 알고 있는 나는 솔직히 불안하고 또 불안했다. 게다가 간밤에 본 아내의 옷가지들과 두 달동안 변해가고 있는 –최소한 나는 그렇다고 느끼는- 아내를 생각하니 그 불안감은 점점 더 가중되기만 했다. 

‘다가오는 주말엔 와이프랑 같이 스튜디오에 가야겠어.’

나는 속으로 그렇게 다짐했다. 그러고 보니 아내가 모델일을 연장한 이후에는 특별히 데려다 주거나 한 적이 없다. 평일은 어림도 없고 심지어 주말에도. 이 찜찜한 기분을 달래려면 역시나 스튜디오에 찾아가는 일 밖에는 없으려나? 하지만 내가 한무영이 있는 스튜디오에 가게 된 건 뜻밖에도 다가오는 주말이 아니었다.

“촬영이 있어요.”

-오늘도?

“네.”

-....... 이틀 연속이네. 알았어. 몸 조심하고.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왔을 때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제도 촬영을 하고 왔는데 오늘도 촬영이 있다니. 나는 전화를 끊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할까. 

퇴근시간이 다 되었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차를 몰고 한무영의 스튜디오까지 내달렸다. 꽉 막히는 도로만큼 내 속도 조금씩 타들어갔다. 그러면서도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아내에게 전화를 해야할까 말아야할까를 쉼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의 답을 얻기도 전에 나는 한무영의 작업실 근처에 도착하고 말았다. 

시간을 보니 7시 반 쯤 된 시간이었다. 꽤 오랜만에 온 스튜디오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스튜디오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나는 차에 앉아있었다. 시간이 8시를 향해 갈 때, 차에서 내리려는데 스튜디오 문을 열고 누가 나오는게 보였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몸을 잔득 웅크리고 차 옆에 바짝 엎드려 숨었다. 

‘한무영?’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빠져나온 한무영은 입에 담배를 한 대 물더니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있나 없나 쉴새없이 경계를 하고 나섰겠지만, 평일인데다가 한동안 내가 자신의 작업실을 찾지 않았으므로 아무 생각없는 표정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딘가 잘 됐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몸을 숙이고 서둘러 한무영이 자리를 비운 스튜디오 쪽으로 뛰어갔다.

“하아.. 하아..”

제기랄. 평소에 운동이라도 조금 할 걸. 고작 조금 뛰었다고 숨이 가빠왔다. 하지만 역시나 스튜디오 문은 열려 있었다. 은은한 불이 내려오는 스튜디오 안에서 나는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2층 계단을 통해 한무영의 ‘작업실’로 걸어 올라갔다. 

‘열려있다?’

한무영의 작업실이 열려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아내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혹은 기대심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작업실로 들어갔다.

어둑어둑한 작업실에는 구석에서 조명기기만 덩그러니 남아 –아마도 아내가 서 있었을- 어떤 곳을 향해 희미한 불빛을 쏘아대고 있었다. 당연히 있을거라 생각했던 아내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나는 텅 비어있는 작업실을 걸어다니며, 아내의 흔적들을 찾으려 애썼다. 설마 이곳에 없는건가? 그렇게 조심스럽게 작업실을 걸어다니는데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쪼옵.. 쪼옵... 쪼옵]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서선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찾으려 집중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텅 비어있는 작업실에서 끊임없이 새어나오고 있었기에, 나는 큰 어려움없이 소리의 ‘진원지’를 찾을 수 있었다.

‘저... 저기..’

소리가 들리는건 언젠가 한무영이 자신의 ‘비밀 작업실’이라고 둘러댔던 그 방이었다. 나는 최대한 발걸음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걸어갔다. 

[쪼옵.. 쪼옵... 쪼옵]

“하아... 으읍.. 으음...”

갑작스레 들려온 남자의 신음소리에 나는 그대로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그건 너무나 걸죽한 남자의 신음소리였다. 괜히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한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조심스럽게 소리가 들려오는 문 쪽에 가까이 다가가 섰다. 

[쪼옵.. 쪼옵.. 쭈웁.. 쭈웁]

“으음.. 으읍... 하아... 좋아.. 으음..”

걸죽한 남자의 신음소리와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교차해서 들려왔다. 당장이라도 눈 앞의 문을 활짝 열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왜인지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저 자리에 멈춰서서는 나지막하게 울려퍼지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나 더 그 자리에 멈춰서서 그 소리를 듣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다시 발걸음을 옮긴건 불현듯 떠오른 한무영의 얼굴 때문이었다. 나는 등쪽에서 울려퍼지는 남자의 신음소리를 애써 무시한 채 작업실을 빠져 나갈 요량으로 작업실 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데 조명기 밑에 놓인 무언가가 다시금 내 발목을 잡았다. 조심스럽게 그 쪽으로 다가갔다. 

“이건...”

나는 놀란 마음에 작업실에서 소리쳤다. 괜히 한 손으로 입을 막아 가리며 눈앞에 놓인 물건들을 슬며시 집어 들었다. 그건 분명 아내의 옷이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내가 벗어놓은 것처럼 보이는 옷가지들이었다. 기분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손에들린 아내의 옷을 타고 약간의 온기가 느껴졌다. 방금전에 벗어놓은 건가? 얼마전 ‘훔쳐‘ 보았던 아내의 알몸이 떠오르며 다시금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궁극적으로 놀라게 된 건, 바닥에 놓인 낯 선 물건 때문이었다. 나는 아내의 옷을 내려놓고 그걸 천천히 집어 들었다.

“오... 오카..모토..”

안에 ‘원‘을 품고 있는 정사각형 모양의 얇고 작은 물건을 빤히 쳐다봤다. 영어로 표시된 오카모토라는 글씨가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형태만으로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반들반들한 비닐 재질의 겉 표면을 문질러 보면서 나는 동그랗게 뜬 눈을 쉽게 감을 수 없었다. 왜.. 왜 지금.. 이게 여기에 놓인 걸까?

나는 손에 들린 콘돔을 내려놓고 남자의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문을 향해 다시 걸었다. 꼭.. 꼭 확인해야 할 것이 생겼다. 나의 두 볼이 빨갛게 물들어갔고 심호흡은 가쁘고 거칠어졌다. 아까와는 다르게 성큼성큼 문 쪽으로 다가가는데, 누군가 2층을 올라오는 계단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정신이 온전하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종류의 떨림을 느끼며 당황한 채 서 있었다. 그리고 발걸음이 문 쪽에서 가까워 질수록 나는 점점 사색이 되어갔다.

“쳇.. 아직돈가?”

문을 열고 들어온 한무영은 남자의 거친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비밀 작업실 문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한무영이 문을 열고 들어옴과 동시에 나는 최대한 빛이 들어오지 않는 작업실의 구석쪽에 다가가 몸을 숨겼다. 

작업실에 서 있는 한무영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작업실의 조명기 쪽으로 다가갔다. 아내가 벗어놓은 옷가지와 그... 콘돔이 놓여져 있는. 나는 한무영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아아.. 악!!!”

갑자기 남자의 신음소리가 일순간 커져버린 ‘비밀 작업실’을 한무영과 내가 거의 동시에 쳐다봤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내 심장은 끊임없이 뛰고 있었다. 

“후우. 끝인가?”

아내의 옷을 들고 앉아있던 한무영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한무영의 말대로 무언가가 끝나긴 했나보다. 어둠속에서 일어서는 한무영을 나는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간의 정적이 흐르고 한무영이 ‘비밀 작업실’ 이라고 명명했던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한무영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나는 집중해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불 켤까요?”

-아니.. 그러지 마.

어둠속에서 걸죽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터벅터벅 걸어나온 남자의 모습을 자세히 보려 노력했지만, 실루엣만 보일 뿐 자세한 형상은 파악하기 힘들었다. 남자는 바지를 주섬주섬 올리며 옷 매무새를 정리하고 서 있었다. 한무영은 남자가 빠져나온 ‘비밀 작업실’ 안을 슬쩍 들여다 보는가 싶더니 조용히 문을 닫았다.

“저번에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한무영이 남자 쪽으로 걸어가더니 말했다. 옷 소매로 이마를 훔치던 남자는 그제야 돌아서며 한무영을 바라봤다.

“미안하네, 미안해. 흐흐”

-정말이지 이건 뭐, 말이 안 통하니...

“자네 그 말 태도는 좀 고칠 수 없나?”

-..........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한무영에게 말했다. 

“이런 말 하기 싫지만, 자네가 누구 때문에 그 잘나빠진 예술인지 뭔지 계속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저에게 투자해 주시는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만, 분명히 저번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당분간 다시는 찾아오시지 말라고.

“미치겠는걸 어떻게 하냐? 그러니까 당장 하루만이라도 좋으니....”

-말씀드렸잖습니까? 작업이 막바지라 힘들다고.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그놈의 조금만 조금만. 자네 너무 답답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이 오질 않았다. 무엇보다 한무영이 저렇게 쩔쩔매는 상대가 누굴까 너무 궁금한 노릇이었다. 

“이번주면 어차피 ‘끝납니다’”

-난 정확한 걸 좋아하네. 끝난다는게 뭘 의미하는거지?

낯선 남자의 언성이 순식간에 커졌다. 한무영도 흠칫 놀랐는지 순식간에 입을 다물어 버렸다. 괜히 내가 긴장이 되어 숨을 죽이고 둘의 대화를 계속 훔쳐 들었다. 

“암튼, 자네. 똑바로 생각하고 움직이는게 좋을거야. 날 화나게 해서 좋을 건 아무것도 없거든”

낯선 사내는 한무영의 어깨를 한번 툭하고 치더니 그대로 작업실을 빠져나갔다. 어둠이 내려앉은 작업실 구석에서 나는 뛰는 심장을 억누르며 한무영만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말없이 서 있던 한무영이 뒤로 돌아 ‘비밀 작업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그 때 시끄러운 벨소리가 울려퍼졌다. 

“여보세요?”

나는 몸을 웅크리고 바지에서 휴대 전화기를 꺼내 배터리를 빼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란 놈이 고작 한다는 짓은 이런 것뿐이구나. 나는 여전히 숨을 죽이고 작업실에 울려퍼지는 한무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예 형님. 네.. 네.. 아.. 네.”

한동안 한무영은 짧은 대답만 반복하고 있었다. 

“아. 네.. 깜박하고 있었네요. 지금.. 지금 보내드릴게요. 예.. 네. 알겠습니다. 네.”

한무영은 최대한 공손하게 전화를 받고 끊었다. 그리고 전화기를 손에 들고 멍하니 액정을 바라봤다.

“오늘 일진이 더러운가?”

공중에 알 수 없는 말을 뱉어내는가 싶더니, 한무영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비밀 작업실’ 안쪽으로 고개를 들이 밀었다. 그리곤 아무말없이 문을 닫더니 성큼성큼 작업실을 빠져 나갔다.

‘휴우..’

등과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나는 작업실 구석에 주저 앉아서는 1층으로 내려가는 한무영의 발걸음이 완전히 들려오지 않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한무영이 ‘비밀 작업실’ 이라고 명명한 그곳으로 달려갈까 생각하다가, -무엇이 두려운지- 나는 어둑어둑한 작업실을 빠져나왔다. 

“지금 보냈습니다. 파일명은 날짜별로 정리되어 있구요. 네. 그럼..”

나는 계단의 끝자락까지 내려와 겨우 몸을 숨긴 채 한무영을 지켜봤다. 혹시나 2층에서 문을 열고 누가 나오진 않을까 생각했지만, 왠지. 그런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1층 카운터에 놓인 컴퓨터 앞에서 분주하게 손가락을 움직이던 한무영은 ‘작업’을 마쳤는지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무언가를 보고하고 있었다. 

“후우. 하나같이 더러운 새끼들. 상종하질 말아야지”

한무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걸어왔다. 다시금 놀란 나는 서둘러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작업실 옆에 있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숨었다.

쿵쾅 거리는 발걸음이 계단을 타고 울려퍼졌다. 2층에 올라온 한무영은 머리를 한 번 긁적이는가 싶더니 작업실로 들어가 그 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하아....”

이제야 제대로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텅 빈 화장실에 그대로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은 제대로 정리가 되질 않아 미칠 지경이었다. 

한참동안 굳게 닫힌 작업실 문을 바라봤다. 그리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며 1층으로 내려갔다. 

‘아내가... 내 아내가... 저기에 있는 걸까?’

바보같이도 나는 이미 –어쩌면- 답이 정해져 있을 물음을 몇 번이고 다시 내 자신에게 내던지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된 걸음을 걸을 수 없었다. 겨우 1층으로 내려가 출입문 앞에 섰다. 

“도대체... 도대체...”

스르륵 하고 열리는 출입문을 보며 나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일까? 아니면 객기일까? 한무영은 역시나 자신의 스튜디오 문을 잠가놓지 않았다. 도대체가 알 수 없는 놈이다. 나는 그대로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지금의 나처럼 후미진 곳에 주차되어 있는 나의 차 쪽으로 걸어가려는데, 어떤 생각이 들어 발걸음을 멈췄다. 

‘컴퓨터...’

그러고보니 데스크에 놓인 컴퓨터가 왠지 거슬렸다. 그냥 이건 막연한 느낌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설마’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데스크 쪽으로 걸어갔다.

‘켜져있다.’

바탕화면이 보이는 컴퓨터가 눈에 들어왔다. 몇 번이고 든 생각이지만, 한무영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2층과 출입문을 번갈아가며 살피며 자세를 최대한 낮추고 컴퓨터 앞에 다가갔다. 

어디부터 무얼 어떻게 검색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생각보다 폴더가 많았다. 이것저것 눌러 봤다.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의 사진이 폴더와 그 속에 담긴 파일을 클릭할 때마다 툭 하고 튀어 나왔다. 몇 분 쯤 계속 컴퓨터를 뒤적이고 있을 때였다. 

‘2012년 7월 3일’

정확하게 날짜로 표시된 폴더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왠지 익숙한 날짜라 머리를 굴려보니 얼마가지 않아 대답이 나왔다.

‘아내와 내가 여기에 처음 온날.’

그리고 뒤 이어 아까 훔쳐 들었던 한무영의 말이 떠올랐다.

‘파일명은 날짜별로 정리되어 있구요. ’

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폴더를 천천히 클릭했다. 폴더 안에 한 10개쯤 되어 보이는 파일들이 있었다. 모두 그림 파일이었는데, 나는 눈치를 살피며 몰래 하나하나 클릭해 봤다. 

“예린이...”

약간 경직된 표정의 와이프 사진이 나왔다. 아마 처음 여기 온 날 한무영이 찍었던 사진인 것 같았다. 나머지 사진들도 조심스럽게 클릭해 봤지만, 별다른 사진들은 아니었다.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 폴더를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제 보니 날짜별로 정리되어 있는 파일들이 은근히 많았다. 그리고 그건 7일 내지 3일 간격의 격차를 보였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머니를 뒤적였다. 

‘있다!’

가슴 속에서 사무실에서 쓰던 usb 하나가 튕겨져 나왔다. 갑자기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차근차근 usb에 날짜별로 정리된 폴더들을 옮겨 담기 시작했다. 

시간이 10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차안에서 몸을 숨긴 채 손에 들린 usb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도무지 와이프에게 연락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아까 꺼 놓았던 전화기를 켤 생각도 하지 않고 묵묵히 스튜디오 출입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만약에... 와이프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냥 내 착각이고.. 사실 2층에서 벌어졌던 일들은 사실은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이었다면?’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usb를 만지작 거리면서 나는 차가운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눈으로 확인한 건 아무것도 없고, 덩달아 아내의 얼굴도 보지 못했으니... 하지만 스튜디오 불이 꺼지는가 싶더니 누군가가 스튜디오 문을 열고 나왔을 때, 기어이 나의 자그마한 기대는 깨지고 말았다.

불이 꺼진 스튜디오 앞에서 아내와 한무영은 나란히 서 있었다. 나는 자동차 안에 앉아 그냥 물끄러미 아내를 바라봤다. 한무영은 멀리서 보기에도 무언가 ‘큰 죄’를 지은 것 마냥 아내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스커트 차림의 아내는 손에 들린 전화기를 몇 번 만지는 가 싶더니 주머니 속에 전화기를 집어 넣었다. 한무영이 아내에게 자신의 차를 가리켰다. 아마도 데려다 줄 생각인가 보다. 하지만 아내가 한무영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슬쩍 시간을 보니 11시가 안 된 시간이다. 지금이라도 전화기를 켜고 아내에게 전화를 해야 할까? 나는 몇 번이고 고민했다. 하지만 끝내 아내와 한무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아내보다 내가 먼저 집에 먼저 도착했다.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양 손에 들린 usb를 꼭 쥐고는 침대에 가 죽은 듯 누워 버렸다. 나란 놈은 재미있는 게 당장이라도 컴퓨터를 켜고 usb에 담긴 내용들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는 거다. 

‘쪼옥.. 쪼옥.. 쪼옥’

결국 머릿속에 남은건 아까 들려오던 그 정체 불명의 소리다. 그 소리는 뭘까. 그리고 아내는 왜 자리에 없었으며, 벗어놓은 옷들과 그 ‘콘돔’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나의 기대를 산산히 부셔버린- 스튜디오에서 빠져 나온 아내는 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어둠 속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침대위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았다. 마치 공포영화 속 무서운 장면을 피하기 위해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몇 살 짜리 어린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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