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9)

베르테르 산타의 특별선물!!!!

2편 연속!!!!!!

여러분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비굴한 작가는 오늘도 추천을 굽신굽신.

몇 편의 동영상을 모두 다 보고 나니 정작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아내와 관련된 일들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건지 나 스스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빌어먹을. 마지막 동영상이 딱 그 위치에서 끝나 버린 탓에 정작 나는 ‘중요한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살짝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하니 10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맙소사. 회사에서 몇 시간을 있었단 말인가? 정신을 차리고 컴퓨터 전원을 내렸을 때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언젠가처럼 전화를 받지 않고 짐을 챙겨 회사를 빠져 나와 버렸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 몇 번이고 머리를 굴렸지만, 결국 아내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의 내가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모든건 내 탓인데, 아내를 대하는 내 꼴이 너무 우스웠다. 

씻지도 않고 그냥 침대에 누워 버렸다. 얼마 후에 아내가 들어오는가 싶더니 말없이 내 옆에 누웠다. 나는 아내를 등지고 돌아 누웠다. 아내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었지만, 그러면서도 아까 봤던 동영상이 머리에서 좀체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아내는 그 남자’들‘과 잔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가슴 한 켠이 뜨겁게 끓어 올랐다. 결국 난, 완벽하게 아내를 팔아먹은건가? 나는 아내를 등지고 밤새 돌아누워 있었다.

다음날 출근을 서두르는 나를 아내가 불러세웠다. 나는 차마 아내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그냥 자리에 멈춰섰다. 머릿속에는 내가 팔아먹은 아내의 얼굴과, 낯선 남자의 손을 거부하지 못하고 비틀 거리며 서 있던 아내의 얼굴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내일이 마지막 촬영이래요”

아내의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벌써? 내일이면... 토요일인가? 

‘이번주면 어차피 끝납니다.’

한무영이 중년남자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괜히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만 까딱거린 뒤 서둘러 출근길에 올랐다.

회사로 가는 차 안에서 어제에 이어 나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키기 시작했다. 

‘만약 혹시 예린씨가 반항을 하게 되면....’

마지막 동영상 속에서 한무영이 한 말이 떠올랐다. 아내는 어떻게 했을까? 그리고 나는 내일 어떻게 해야 할까?

토요일 아침이 밝아왔다. 거의 3일 밤을 뜬눈으로 지샜더니 정신이 몽롱해 죽을 것 같았다. 물론 와이프는 언제나처럼 8시 몇 분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냥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채 아무말도 하지 않고 아내의 눈치만 살폈다.

“다녀올게요”

아내의 말에 나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가 깨어있는걸 알고 있기라도 하단 듯 아내는 억양이 없는 말을 뱉어내곤 집을 나섰다. 괜히 심장이 두근 거렸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일이 마지막 촬영이래요’

‘어차피 끝나 갑니다.’

눈을 질끈 감은 나는 아내가 집을 나서고 나서 얼마가지 않아 점퍼를 걸치고 집을 빠져 나왔다.

당장 집을 나왔지만 아내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벌써 한무영의 스튜디오까지 가버린 걸까? 설마 그럴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엑셀을 밟으며 아내가 지나갔을 길을 따라 차를 몰았다. 

버스 정류장까지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지만, 아내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조금씩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이럴줄 알았으면 그냥 일어나서 데려다준다고 할걸. 버스 정류장 옆에 서서 아내가 없는 곳을 멍하니 쳐다봤다. 바지에서 전화기를 꺼내 아내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역시나 그냥 보조석에 내려놓았다. 

‘역시 스튜디오 뿐인가?’

나는 천천히 한무영의 스튜디오 쪽으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그 때였다. 버스정류장을 지나 저기 멀리서 아내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괜한 기쁨에 아내 쪽으로 차를 몰았는데, 익숙한 외제차가 아내의 곁에 다가와 멈춰 서는게 보였다. 사지가 굳어버리는 기분이었다. 청바지 차림의 아내는 보조석 문을 슬그머니 열었다. 그런데, 조금 당황해 보이는 얼굴로 자동차 안을 빼꼼이 들여다보는가 싶더니 보조석 문을 닫고 뒷문을 열고 들어가는게 아닌가? 그제야 멀리서 한무영의 차 안에 한무영과 아내 말고 다른 누군가가 한 명 더 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누군지는 잘 알 것 같았다. 

아내를 태운 BMW는 한동안 계속 달리기만 했다. 당연히 나는 아내가 한무영의 차에 올라탄 뒤부터 조심스럽게 뒤를 밟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거지?’

벌써 두 시간 정도를 말없이 따라 달렸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내가 스튜디오에 나타날 거라는 생각 같은건 아예 하지 않는건가?’ 같은 생각을 해 봤다. 만약 그렇다면 이젠 나 따윈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건가?

한 시간 정도를 더 달렸을 때, 한무영의 차가 신호에 맞춰 멈춰서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알맞게 거리를 두고 멈춰섰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슬쩍 와이프가 타고 있는 차로 시선을 던졌을 때, 뒷좌석에 있어야 할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지?’

혹시 내가 엉뚱한 차를 따라온건가? 아니야 그럴리 없다. 내가 주시하고 있는 차는 분명 한무영의 차였다. 그런데, 왜 아내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거지?

[빵.. 빵]

뒤에서 크락션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차 싶어서 나는 운전대 위에 고개를 파묻고 숨어버렸다. 슬쩍 고개를 들어 올리니 한무영의 차가 저만치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기어를 바꾸고 엑셀을 밟았다. 

운전하는 동안 아내 생각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차는 계속 달리기만 했고, 나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바다?”

한무영의 차를 따라 세 시간 정도 달렸을 때, 눈 앞에 바다가 보였다. 이렇게 긴 시간을 달려 바다에 온 건가? 하지만 그보다도 나는 와이프 생각이 간절했다. 

한무영의 차는 한 참을 더 달리는가 싶더니 조금 한적해 보이는 곳에 멈춰섰다.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보다 많이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곤 조용히 동태를 살폈다. 

“후우. 날씨 좋네!”

뒷문을 열고 중년의 남자가 기지개를 켜며 나오고 있었다. 나는 버릇처럼 손톱을 깨물었다. 그리고 곧 이어 운전석에 앉아있던 한무영이 하품을 하면서 차에서 빠져 나왔다. 물론 손에는 큼지막한 사진기가 들려 있었다. 

‘예린.. 예린이는?’

하지만 나의 시선은 한결같이 뒷 좌석에 꽂혀 있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나는 한무영의 차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뭐해? 나와!”

중년 남자가 차안에 대고 소리쳤다. 역시나 목소리가 컸다. 제법 떨어져 있는데도 남자의 목소리가 정확하게 들려왔다. 한무영은 괜히 신경이 쓰였는지 고개를 돌려가며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얼마가지않아 중년의 남자가 내린 문 쪽에서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빠져 나오고 있는게 보였다. 중년남자가 슬금슬금 자리를 비켜주고 있었고 머리를 늘어뜨린 아내가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뭔가가 조금 이상했다.

“이야. 햇빛 밝은데서 보니까 눈이 부시네. 스무살이라고 해도 믿겠어?”

중년남자가 아내를 이리저리 훔쳐보며 크게 소리쳤다. 한무영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차 문을 닫고는 먼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운전대를 부여잡고 눈 앞의 와이프를 훔쳐봤다. 아내가 입고 있는건 분명 아침에 입고 있던 옷이 아니었다. 타이트한 분홍색 스커트와 티셔츠. 아내의 몸을 타이트하게 감싸고 있는 위 아래의 ‘셋트‘는 아내의 몸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게다가 햇빛에 반사되어 묘하게 빛나고 있는 갈색 스타킹이, 아내의 매력. 그러니까 성적인 부분의 매력을 부각시켜 주고 있었다. 

“오늘 말 잘 듣네? 마지막이라서 그런거야? 하하”

중년남자는 크게 소리치며 아내의 어깨에 손을 올려 걸쳤다. 그리고 멀찌감치 걸어가는 한무영의 뒤를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지만, 곧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뒷좌석을 바라보며 이것저것 뒤적이던 나의 손에 낡은 모자 하나가 걸렸다. 모자를 쓰고 자동차의 거울로 얼굴을 비춰봤다. 정말 꼴이 말이 아니었다. 헛웃음을 지어보인 나는 보조석 서랍을 신경질적으로 열고 뒤졌다. 그리고 사놓고 몇 번 써보지 않았던 썬글라스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번엔 대충 얼굴 어딘가에 걸쳐 놓고 서둘러 자동차를 빠져 나왔다.

잠깐 두리번 두리번 거렸지만, 아내와 한무영 일행을 찾아내는 건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다. 조금 걸었을 때, 좁은 보폭으로 걷고 있는 한무영과 중년남자의 품에 안긴 채 풍만한 엉덩이를 드러낸 채 걷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자 거기 서봐!”

한참을 걷는가 싶더니 한무영이 아내에게 대뜸 소리치고 있었다. 중년 남자가 아내에게 기대어 한무영을 바라보자, 한무영이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내려 놓으며 눈치를 줬다. 그제야 중년 남자가 손사레를 치며 아내에게서 떨어졌다. 

커피 자판기 옆에 숨어버린 나는 멀리 떨어져 아내를 바라봤다. 아까 중년남자가 크게 떠들었던 그 말 그대로였다. 지금의 아내는 결단코 서른 몇 살 먹은 유부녀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돌연 아까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선 도무지 마땅한 답이 떠오르질 않았다.

아내와 한무영 일행은 한동안 바닷가를 돌아다니며 계속 사진을 찍는 듯 보였다. 중년 남자는 한무영의 눈치가 보여서인지 아내와 일정한 간격을 두고선 계속 큰 소리로 ‘바다 공기 좋다’ 며 떠들고 있었다. 나로써는 지금 당장 바다의 공기가 좋은지 어떤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이런 일이 있기전에 아내와 함께 이곳에 왔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셋은 한동안 바닷길을 따라 걷고 사진을 찍기를 반복했다. 바닷가 주위에 사람들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조금 과감하게 아내 일행을 따라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아내를 지나쳐 가는 남자들이 한 번씩 고개를 돌려 아내를 훔쳐보는 건 결코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한참동안 바닷가를 따라 걸어다니던 아내와 두 남자가 등대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3년동안 봐온 아내이지만, 엉덩이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저런 타이트한 치마를 지켜보는 건 너무나 어색하고 힘든 일이었다. 

아내 일행이 등대로 올라갔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등대 근처에 서서 조심스럽게 위 쪽을 쳐다봤다. 선글라스를 슬쩍 내리고 계속 위를 바라봤다. 낯 선 사람들이 몇 몇 보이는가 싶더니 아내와 한무영, 그리고 중년 남자의 모습이 차례대로 보였다. 나는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면서 아내를 살폈다. 사진기를 얼굴에 가져다 댄 한무영은 등대 난간에 기댄 아내를 정신없이 찍어대고 있었다. 바람에 날리는 머릿카락을 한 번 쓸어올린 아내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보니 괜히 심장이 떨려왔다. 그런데 아내를 가만히 훔쳐보던 중년남자가 슬그머니 아내의 뒤로 바짝 다가가 서는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그제 본 동영상이 떠올랐다. 

사진을 찍고 있던 한무영이 중년남자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하지만 중년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내에게 자신의 몸을 밀착시키고 있었다. 아내의 표정을 보아하니 제법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당장이라도 올라가고 싶었지만 발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한동안 아내의 등 뒤에서 몸을 밀착시키고 있던 중년남자는 낯선 사람들의 인기척을 의식한 듯 천천히 아내의 등 뒤에서 떨어졌다. 괜한 한숨을 내쉰 나는 다시 천천히 등대 위를 바라봤다. 방금전까지 보이던 아내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내려오는건가?’

나는 슬쩍 몸을 돌려 등대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몸을 옮겼다. 그리고 등대 입구를 계속해서 쳐다봤다. 

얼마나 지났을까. 낯선 사람들이 등대입구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나는 계속 등대 입구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손에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걸어나오는 한무영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내와 중년남자는 등대에서 걸어나오지 않았다.

한무영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행여나 정체가 탄로 날까 싶어, 어색한 몸놀림으로 딴청을 피웠다. 한무영은 품에서 담배를 꺼내는가 싶더니 불을 붙이곤 어디론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왜... 왜.. 한무영만 나온거지?’

괜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혹시나 아내가 모습을 드러낼까 싶어 나는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하지만 아내는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등대를 등진 채 담배 연기를 뿜어대고 있는 한무영을 바라보며 나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모자를 한 번 꾸욱 눌러쓰곤 잰걸음으로 등대쪽으로 걸어갔다.

“하아.. 하아..”

말도 안 된다. 고작 조금 걸었을 뿐인데, 무슨 숨이 이리도 찬단 말인가? 아무튼 나는 최대한 주위를 살피며 어둑어둑한 등대의 계단을 조심스럽게 오르기 시작했다. 

‘없어...’

등대의 꼭대기까지 올라왔을 때, 아내의 모습은 끝내 보이질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여 봤지만 허사였다. 나는 조금전과 다르게 아무도 없는 등대에서 멈춰서 버렸다.

아내에 대한 걱정보다 이젠 내려가는게 문제다. 괜히 내려갔다가 등대 입구에서 한무영과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정말 곤란할 터. 나는 등대 꼭대기에서 슬쩍 아래를 쳐다봤다.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한무영의 모습이 보였다. 등대 입구에선 제법 떨어져 있었다. 나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꼭대기에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나선으로 된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갔다. 사람도 보이지 않고, 아내도 보이지 않았으며, 내려앉은 어둠 때문에 빛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퍽.. 퍽.. 퍽.. 퍽]

균일하게 울려퍼지는 얄쌍한 마찰음이 귓가에 메아리쳤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다가 가만히 멈춰섰다. 소리가 생각보다 작아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캐치하기 힘들 정도였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규칙적으로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어둠 속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퍽.. 퍽.. 퍽.. 퍽..]

어둠탓에 하마터면 발을 헛디딜 뻔 했지만,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다 보니 쪽길이라고 해야하나? 비스듬히 들어간 다른 계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소리는 분명 그쪽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천천히 그 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 난간을 세게 잡고 있는 사람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흠칫 놀란 내가 크게 소리를 지를 뻔 했지만 겨우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발을 헛디딜까 조심하면서 나는 억지로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한걸음 내딛었다. 

“오랜만에 바닷가 오니까 신나지?”

등 뒤에서 사람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화들짝 놀란 나는 그대로 자리에 멈춰섰다. 그런데 방금전까지 미세하게 들리던 파열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고개를 돌려 사람의 흔적이 있던 난간을 훔쳐봤지만 난간을 부여잡고 있던 사람의 손이 보이지 않았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내 바로 뒤에서 들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그들의 곁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지나쳐 등대에서 빠져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는 내 심장이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내가 헛것을 본건가? 왠지 그냥 느낌에 등대 아래로 내려가면 한무영과 아내, 그리고 중년남자가 나란히 서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 혹은 두려움이 생겨났다. 

가까스로 1층으로 내려온 나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차라리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냥 같이 빠져나가면 될텐데, 1층에 남아있는건 고작 나 하나였다. 나는 썬글라스를 최대한 올려썼다. 가쁜 쉼호흡을 한 번 하고는 등대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빠져나갔다.

한무영이 서 있는 곳에서 반대쪽으로 정신없이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쯤 걸어갔을 때 슬쩍 고개를 돌려 등대를 바라봤다. 묘한 떨림이 몸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내가 어둠속에서 들었던 소리는 무엇이며, 난간을 잡고 있던 그 손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가만히 서 있으려다가, 다리가 후들거려 눈에 보이는 의자에 그냥 걸터 앉았다. 등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곁눈질로 등대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 숨 돌리려는데, 거짓말처럼 등대 입구에서 아내와 중년남자가 걸어나오고 있는게 보였다. 

한무영은 아내와 중년남자를 보자 고개를 흔들며 다가갔다. 중년남자는 애써 태연한 척 한무영을 지나쳐 갔고 아내역시 고개만 떨어뜨린 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잠깐 서 있는가 싶더니 아내 일행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모자를 매만진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아내의 뒤 쪽에 시선을 꽂아 넣는데 아내의 타이트한 치마가 –아까와는 다르게- 잔득 주름이 잡혀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애써 무시하고 아내 일행을 따라 조심스럽게 걸었다.

등대 주변에서 사진을 몇 장 더 찍는가 싶더니, 아내 일행은 어느 식당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가게 안으로 따라 들어가는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발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건, 바닷가에 위치한 음식점들이 대부분 그렇듯 가게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이게끔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아내 일행이 보이는 쪽에 위치한 의자에 가서, 나는 다시금 말없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혹여나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건 정말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음식점에 들어간 세 남녀는 한동안 말없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대조적으로 나는 나를 미치게 만들었던 아내의 동영상과, 방금 등대에서 있었던 ‘미스테리한’ 일 때문에 밥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돌리고 슬쩍 바다를 바라봤다.

의자에 앉아 한참동안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뭘 시켰는지 모르겠지만, 아내 일행은 식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조금씩 지치기 시작해서 조금이라도 걸어볼 요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마침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게 보였다. 

‘식사를 다 마친건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슬쩍 아내를 훔쳐봤다. 아내만 혼자 일어나서는 주인으로 보이는 아줌마에게 무언가를 묻더니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화장실이라도 가는걸까? 나는 조금 김이 새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바로 뒤 이어 중년남자 역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걸어갔다. 영문을 알 수 없어 썬글라스를 슬쩍 내리고 한무영을 쳐다봤다. 하지만 한무영은 자리를 지킨 채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슬금슬금 주변을 걸었다. 10분.. 15분.. 내가 다시 음식점을 쳐다봤을 때 그제야 손을 탁탁 털어가며 걸어나오는 중년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거리가 멀어서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표정이 조금,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기분탓일런지는 모르겠지만.

중년남자가 돌아오자 한무영이 지쳤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계속 음식점 안을 응시하고 있는데, 잠시 후에 와이프가 한무영과 중년남자에게 걸어가고 있는게 보였다.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와이프와 중년남자를 번갈아가며 뻔히 쳐다보다가 그대로 아내 일행을 지나쳐 갔다. 

눈으로 확인한 것도 없고 확인할 수도 없으니 그 자체로 미칠 노릇이었다. 아내일행을 마냥 뒤좇아 따라가는 것도 여간 힘든일이 아니었다. 나는 결국 아내를 뒤로하고 주차되어 있는 차로 먼저 돌아왔다. 

와이프와 한무영, 그리고 중년사내가 차로 돌아온 건, 내가 돌아오고 나서 한시간쯤 지나서였다. 와이프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중년사내의 품에 안겨있었으며 별다른 저항은 하지 않았다. 한무영은 이들과 조금 떨어져서 걷다가 먼저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잔득 지쳐있는 나도 조용히 차에 시동을 걸었다. 뒷좌석에 올라타는 아내의 엉덩이를 중년사내가 만져댔다. 하지만 아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젠 별로 개의치 않게 되었다.

고급 외제차는 다시 한참을 달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또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거의 기계적으로 자동차 엑셀을 밟고 있었다. 어쨌든 더 집중해야지. 이제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따라가기도 벅찰테니. 

바다에 온 시간만큼 걸려 차는 어디론가 또다시 내달리고 있었다. 시간을 슬쩍 확인하니 시간이 7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차를 타고 달리는 동안 나는 내가 왜 저들을 따라가는지, 그리고 난 하루종일 무얼하고 있는건지 생각했다. 그리곤 창밖으로 점점 익숙한 곳들의 풍경이 젖어 들어왔다. 그 때였다. 보조석에 놓아 두었던 내 전화기가 시끄럽게 울려대고 있었다.

‘예린이...’

전화에 뜬 이름을 보고 나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도로를 조심스럽게 따라 달리면서도 한 손에 들린 전화기를 나는 쉬이 내려놓을 수 없었다. 몇일동안 내가 아내에게 보여주었던 나의 이상했던 행동을 기억한다면, 결코 지금 타이밍에 전화가 걸려올 수 없다. 잠깐 망설이다가 나는 조금 위험하지만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아.. 

전화기 너머에서 아내가 조금 당황하는 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슬쩍 앞을 봤다. 어둠이 내려앉은 탓에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내의 머리가 보이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전화를 받을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한 듯 보였다. 

“일이 끝났어요.”

-데리러 갈까?

나는 아내와 마찬가지로 최대한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일이 끝났다는 아내의 말은 뜻밖이면서도 복합적인 감정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아니요. 그게.. 읍..”

전화에 집중하다가 나는 서둘러 앞에 가는 차를 바라봤다. 아내 옆에 나란히 앉아있던 중년남자의 머리가 보이질 않았다. 

“왜 그래?”

내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이내 안정된 목소리 톤으로 아내가 답했다.

“마지막이고, 잠깐 식사라도 하고 들어가라 하시는데 괜찮을까요?”

아내의 입에선 계속적으로 거짓말이 흘러나왔다. 나도 모르게 운전대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이 잔득 들어가 버렸다. 

“둘이서?”

-아니요... 아니... 그... 읍..

다시 아내가 말을 더듬었다. 갑자기 신경이 곤두선 내가 전화기 너머로 소리를 지르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평소에 아시는 분들이랑 같이 식사를 하시자는데.”

-그렇게 해 그럼. 

“네?”

-그렇게 하라고. 술도 한잔 하려나? 몇 시쯤 끝날까?

나는 내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최대한 무미건조한 말투로 아내에게 대답했다. 아내는 뜸을 들이더니 늦어도 11시 이전엔 끝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11시를 말하면서 아내가 옅은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그것은 내가 동영상에서 보고 들었던 것과 아주 꼭 닮은 소리였다.

나는 정신없이 차를 몰았다. 계속해서 화가 나는데 그 대상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한무영인지, 그 빌어먹을 중년남성인지, 아니면 와이프인지. 그도 아니면. 바로 나 자신인지.

이제 자동차 밖으로 완전한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아내를 태운 한무영의 외제차는 점점 후미진 골목을 비집고 들어가고 있었다. 점점 인적이 드물어 갔기 때문에 나로써는 최대한 집중해서 한무영의 차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차로 달리면 달릴수록 어딘가 익숙하단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한무영의 자동차가 어느 골목길을 지나 어느 ‘맨션’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브레이크를 꾹 밟았다.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어떻게 이곳을 잊을 수 있겠나. 한 달 전 내 인생을 뒤엉키게 만들어 버린 바로 그 곳인데. 

나는 대충 차를 세워두고 맨션 쪽으로 뛰어갔다. 아직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왜 아내를 태운 차가 저 맨션으로 들어간 걸까. 

맨션 안으로 몸을 숙이고 들어갔을 때 아까 들어간 BMW가 맨션 앞에 주차되어 있었다. 어둠속에서 나는 사람의 흔적을 좇았다. 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주위를 살피며 조심 조심 맨션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주차되어 있는 한무영의 자동차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는게 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외제차 쪽으로 다가가는데, 운전석 문이 열리는 바람에 나는 쏜살같이 자동차 옆으로 기대어 숨었다. 

“후우. 도저히 말릴 재간이 없네.”

한무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에게 하는 소리인지 파악이 되질 않았다. 그러면서도 슬쩍 자동차 쪽을 보니 한무영의 자동차가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자리에 주저앉아 어둠속에서 흔들리는 한무영의 자동차를 보고 있는데, 자동차 유리에 뿌옇게 낀 서리 사이로 뒷좌석 창문에 사람의 발이 보이고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그 쪽을 바라보니 자동차 창문을 정신없이 문대고 있는 발가락이 연신 심하게 뒤틀리고 있었다. 특히 스타킹의 팁토 부분을 쉴새없이 꼼지락 거리는 것이, 흡사 누군가가 간지럼이라도 태우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자동차를 바라보는데, 맨션 안에서 누가 뛰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것저것 신경이 쓰여 몸을 숨기고 숨을 죽였다.

“이제 오시나요?”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 친근하고 또한 가까운 이의 목소리였다. 나는 가만히 그게 누구일까 계속 귀를 기울였다. 

“네. 별일 없었지요, ‘창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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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훈.

좋은 친구를 사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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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영의 입에서 흘러나온 창용이라는 이름 두 글자는 내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도대체 창용이가 어떻게, 한무영을 알고 있는 걸까? 

“그나저나 사장님은.......?”

-아. 오셨어요. 그...

한무영이 살짝 말꼬리를 흘렸다. 그리고 괜한 헛기침을 계속해서 뱉어냈다. 그러자 간신히 한무영의 자동차가 잠잠해 졌다. 

얼마쯤 지났을 때, 뒷좌석 문이 열렸다. 중년남자가 수건인지 ‘뭔지’ 아무튼 천조각으로 이마를 훔쳐내며 천천히 내렸다. 그러자 창용이가 허리가 부러져라 인사를 했다. 중년남자는 귀찮다는 듯 가볍게 손짓을 보냈다. 그리고 손에 들린 ‘손수건’을 자신의 바지 뒷주머니에 구겨넣었다. 

창용이와 마주한 채 서 있는 중년남성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마치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강한 충격을 받고 말았다. 이제야 간신히 기억이 났다. 저 남자가 누군지.

잃어버린 내 돈과, -그 돈을 빼앗아 간-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던 중년 남성의 얼굴이 동시에 떠올랐다. 몸서리가 처진다. 그게 이런 건가? 난 말없이 중년남성을 바라봤다. 그리고 손톱을 입에 가져다대고 또깍 또깍 소리를 내며 씹어댔다.

“그나저나 창용이. 번번히 고맙네.”

-아이고, 무슨 말씀을. 제가 뭐 하는게 있나요.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죠.

한무영이 창용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창용이가 한무영과 중년남자를 바라보며 비굴하게 웃어보였다. 창용을 바라보던 중년남자는 가슴에서 자그마한 봉투 하나를 꺼냈다. 

“사례금 형식으로 얼마 더 넣었어. 그리고 빚이라면 내가 다 갚을테니 걱정말고.”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가봐.”

-아니 잠깐, 잠깐만요. 창용씨, 혹시 몰라 마지막으로 해 줄 일이 하나 있는데...

창용을 바라보던 중년남자가 볼일이 끝났다는 듯 창용에게 손을 휙휙 저었다. 그러자 창용이 다시한번 고개를 숙이는가 싶더니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그 때 한무영이 창용이를 막아세우더니 귀에다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창용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한무영을 쳐다봤다. 한무영이 지갑에서 얼마를 꺼내선 창용이에게 건내줬다. 그러자 창용이가 다시 한번 한무영과 중년남자를 바라보며 허리를 숙여댔다. 

“그만 나오지?”

중년남자는 이제 창용이에게 흥미가 없다는 듯 문이 열려 있는 자동차 뒷좌석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그 소리를 듣고 창용이도 슬쩍 자동차 뒷좌석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입장이 곤란하게 되어 버렸다. 창용이라면 아내도 잘 알고 있는 놈인데. 

역시나 아내는 자동차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중년남자가 무어라 크게 소리쳤는데, 한무영이 막아섰다. 그리고 창용이를 슬쩍 보는가 싶더니 알게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씩 웃어보이던 한무영은 열려있는 자동차 뒷좌석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나와. 괜찮으니까 나와... ‘김은영’씨.”

나는 한무영이 아내를 예린이 아닌 ‘은영’이라는 이름으로 부른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혹시나 창용이 신경쓰여 일부러 그런 건 아닐까. 아내에 대한 일종의 배려로써.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어둠을 뚫고 기어이 아내가 밖으로 얼굴을 드러냈다. 힐끔힐끔 자동차 안을 훔쳐보던 창용이의 얼굴이 일순간 심하게 경직되기 시작했다. 그리곤 고개를 위 아래로 크게 흔들며 눈 앞에 서 있는 여자를 자세히 쳐다봤다.

“그럼 창용씨. 부탁한거 잘 해 주시고, 그만 가 보세요.”

-아... 아... 네... 네.. 그.. 그럼...

창용이는 아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중년남자와 한무영의 눈치가 보였는지 간신히, 아주 간신히 맨션 밖으로 빠져 나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슬쩍슬쩍 고개를 돌려 타이트한 스커트 차림의 여자의 뒷태를 훔쳐봤다. 

중년남자 옆에 서 있는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건, 어둠속에서 벌벌 떨고 있는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둠속에서도 똑똑히 보였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허리까지 말려 올라간 분홍색 치마. 게다가 왼쪽 스타킹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내의 발목까지 쑤욱하고 내려와 있었다. 지금 눈 앞의 아내의 꼴은........... 

창용이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한무영이 먼저 맨션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뒤이어 중년남자가 와이프의 스커트 자락에 손을 집어넣고는 천천히 한무영을 따라 맨션으로 들어갔다.

어둠이 내려앉은 맨션 밖에서 나는 그대로 굳어 있었다. 그리고 손톱을 입에 가져다 댄 채 정신없이 물어뜯었다. 창용이와, 그리고 이제야 완전히 기억해 낸 낯선 남자의 정체. 그리고 아내. 

‘내가...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뒤늦은 후회를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덫이라고 해봐야, 덫에 걸린 치즈의 유혹을 마다하지 못하고 덥썩 물어버린 쥐새끼는 결국 내가 아니던가? 

몸을 움직이려 해봤지만 결국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한무영의 외제차 근처에서 몸을 숨기고 그저 말없이 앉아있는데,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라진 줄 알았던 창용이 녀석이 연신 눈치를 살피면서 맨션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놀라서 자리에 주저앉았는데, 창용이 녀석은 거친 숨을 몰아 내 쉬는가 싶더니 슬금슬금 맨션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잠시 고민하고 있었다. 창용이를 따라 들어가자니, 금방이라도 창용이나 한무영이 문 밖으로 걸어 나올 것 같았고,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자니 아내의 얼굴이 떠올라 미칠 지경이었다. 

한 5분쯤 지났을까? 내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맨션에서 누가 잰걸음으로 걸어나오는게 보였다. 나는 다시 어둠속에 몸을 숨겼다. 슬쩍 보니 창용이 녀석이었다. 창용이 녀석은 조금 전과는 다르게, 조금 급한 표정으로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창용이 녀석이 맨션의 뒤쪽으로 사라지고 나서 몇 분쯤 지나고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만큼의 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그제야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아내가 맨션으로 들어간 지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나는 맨션으로 들어가기보다, 창용이가 사라진 맨션의 뒤 쪽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뭘 하는거지?’

창용이의 모습은 생각보다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내가 -풀숲이라고 해도 좋을- 맨션의 뒤로 조심스럽게 걸어갔을 때,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몸을 웅크린 채 앉아있는 창용이 녀석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창용이 녀석은 마치 텔레비전이라도 보듯이 몸을 웅크리고 무언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창용이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풀숲에 자리를 잡았다. 맨션의 뒤편은 공간적으로 여유가 있어보이진 않았다. 다만 성인 남자 한 명이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기에는 충분해 보이는 공간이었다.

[하아.. 아윽... 하아..]

[퍽.. 퍽.. 퍽퍽.. 퍽]

한동안 적막이 내려앉은 맨션의 뒤 쪽에서 귀에 익은 소리들이 들렸다. 낮에 등대에서 들었던 것과 똑같은 ‘파열음’과 남자와 여자가 빚어대는 진득한 신음소리였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역시나 그마저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잔득 상기된 창용이의 얼굴 표정과 인간들의 교성을 통해, 맨션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상상’하는 것 뿐이었다. 

[하아.. 하아... 하악!!!!]

숨이 끊어질 것 같은 남자의 교성이 커졌다가 순식간에 작아졌다. 창용이 녀석도 몸을 숙이고는 계속 안을 ‘염탐’하고 있었다. 

몇 분 쯤 지났을까. 창용이 녀석이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잔득 당황한 나는 서둘러 풀숲을 헤집고 맨션 입구 쪽으로 조심스럽게, 하지만 서둘러 걸어 나갔다.

한무영의 차 근처에 몸을 숙이고 숨었다. 창용이 녀석도 몸을 숙인 채 맨션 쪽으로 빠져 나오는데, 그러면서도 슬쩍슬쩍 맨션을 훔쳐봤다. 한 손으로 바지 앞 부분을 긁적거리는 녀석의 모습에 부화가 치밀었다. 창용이 녀석은 한 쪽 손을 들어 눈 앞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아마도 시간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리곤 알게 모르게 입맛을 한 번 다시더니 맨션을 빠져 나갔다. 

창용이 녀석이 사라지고 몇 분 쯤 지났을 때 나도 슬쩍 바지춤에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여덟시 반. 시간이 꽤 흘렀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단 시간이 더디게 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나는 주위를 살피며 나와 창용이가 방금 전 빠져 나왔던 맨션의 뒤편으로 몸을 숙이고 걸어갔다.

[하아.. 하아... 여운이.. 남네...]

조심스럽게 창용이가 앉아 있었던 부근까지 발소리를 내지 않고 다가가 앉았다. 그제야 아까 숨어있던 창용이의 얼굴에만 왜 유독 희미한 빛이 내려와 앉아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눈 앞에 열려있는 창문과 자잘하게 구멍이 나 있는 검은 망 하나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나는 방 안에 나란히 누워있는 남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엔 침대도 없었고 별다른 가구도 없었다. 말 그대로 하얗게 도배된 하얀 방 안에서, 벌거벗은 남녀가 나란히 누워 있을 뿐이었다. 

한동안 벌거벗은 아내와 중년남자를 바라봤다. 번들거리는 –그리고 흉물스러운- 사내의 성기와, 얄궂게 다리를 벌린채, 자신의 은밀한 부분을 내 쪽으로 활짝 벌려 드러내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통해 방금전까지 무슨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방 여기저기에 아내와 중년남성이 벗어 놓은 듯한 옷가지들이 보였다. 다만 모든 것을 벗은 채 누워있는 아내의 몸 위에, 갈색 스타킹과 일전에 본 적이 있는 ‘가느다란 천조각’ 같은 팬티만이 아내의 몸 위에 ‘그럭저럭’ 걸쳐져 있었다. 

나한테 또 그런 적이 있었던가? 정말 보기 싫은데, 몸이 굳어버려 눈을 땔 수 없는 그런. 

‘팬티’라고 부르기도 무안한 천조각을 비집고 아내의 은밀한 부분이 보였다. 아내의 은밀한 부분이 사내와 마찬가지로 조금 번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손톱을 입에 꼭 물었다. 

“그럼, 이제 샤워라도 좀 하도록 해.”

사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창문 옆으로 살짝 몸을 숨겼다. 그러면서도 곁눈질로 계속 방 안을 살폈다. 벌거벗은 사내의 모습에 나는 금방이라도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중년남자가 몸 위에 무언가를 걸치고 방을 빠져 나갔다. 어디에 가는 건지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좀체 다리를 오므릴 생각을 하지 않고 바닥에 누워있는 아내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또깍또깍 깨물었다. 속이 매스껍고 울렁거리며 답답한 이 빌어먹을 기분은 도대체 뭘까.

얼마쯤 지났을 때 스타킹 차림의 아내가 겨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게 보였다. 브레지어를 하지 않은 아내의 젖가슴이 순간적으로 출렁하며 흔들렸다. 아내의 젖꼭지 부근이 빨갛게 부어오른 것을 보고 나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머리를 쓸어올리는 아내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해 보여’ 조심스럽게 창문 너머로 고개를 밀어 넣었다.

나는 그냥 자리에 얼어붙은 채 멍하니 비어있는 방 안을 쳐다봤다. 아내는 사내가 놓고 간 수건 하나를 손에 들고 스타킹만 걸친 알몸으로 방을 빠져 나갔다.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아내의 표정에 몇 분 째 몸이 굳어있는 상태였다. 

‘웃었어?’

표현하긴 힘들지만, 눈을 감고 있던 아내의 표정이 어쩐지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 나는 다시 손톱을 입에 물고 깨물기 시작했다. 손톱끝이 아려왔다. 이젠 정말 제대로 된 연산을 할 수 없다. 

[하하하하하하]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는데, 어디선가 중년남자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괜히 놀라 뒷걸음질 치는데 그제야 왼쪽 벽에서 또 다른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그 쪽으로 다가갔다.

‘환풍기?’

커다란 환풍기 날개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바닥쪽에 놓인 환풍기 날개 바로 앞에 몸을 숙이고 얼굴을 가져다 댔다. 

“그렇게 좋으십니까?”

-말이라고 하나? 얼마를 기다린건데.

바쁘게 돌아가는 환풍기를 통해 방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한무영과 중년남자를 볼 수 있었다. 심신이 지쳐버린 나는 그냥 조심스럽게 두 남자의 대화를 훔쳐 들었다.

“근데 자네 무슨 수를 쓴거야?”

-수라니요?

“그게 좀 이상하잖아. 아무리 처음부터 여자한테 남편을 빌미로 협박을 한다고 해도..”

-그보다 선생님 수완이 좋으신가보죠 뭐.

한무영은 중년남자를 비꼬듯 말했다. 중년남자는 한무영을 한 번 훔쳐보는가 싶더니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상한데..”

-그렇다고 해도 선생님은 정말 말릴 재간이 없어요. 제가 그렇게 말씀드렸는데도.

“내가 뭘?”

-내가 뭘 이라니요? 강간하실뻔 했잔하요. 강간! 그것도 유부녀를!

나는 심장이 멎을 뻔 했다. 강간이라니. 나는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거슬렸지만 다시 집중해서 두 사내의 이야기를 듣기로 마음먹었다.

“입조심하게 강간이라니.”

-제가 그렇게 말씀드렸잖아요. 거부하거나 반항하는거 같으면 절대 하지 말라고.

“앙탈인 줄 알았지. 솔직히 자네도 생각해 보게. 이유야 어찌 되었든 처음만나고 한 달 동안 빠굴만 안했다 뿐이지 별거 다 하지 않았나? 그래서 상대방도 당연히 몸이 달아올랐겠거니 생각하고 덤볐는데 그렇게 나오니까.”

-아무리 그래도 위험했어요. 엄연히 강간미수라구요.

“자꾸 이상한 얘기하는데, 그럼 자네도 은근히 방조한 죄는 있는 거 아닌가?”

-방조라니요? 전 그 때 들어가서 선생님과 ‘은영’이를 떼어놓았는데요.

“자네....”

강간과 강간 미수. 겨우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결국 무엇을 신뢰하지 못하고 그렇게 바보같이 행동했단 말인가.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 때’ 못했잖나.”

-뭐 다행이지만요. 여러모로.

“그럼 된 거지 뭐.”

중년남자가 강조해서 말한 ‘그 때’가 언제일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나는 내가 그제 사무실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동영상을 머릿속에 그려봤다. 그리고 아내의 얼굴이 떠올라 다시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병신...’

이젠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방금전에 창문너머로 봤던 아내의 표정과 알몸이 한 순간에 지워져 버렸다.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야. 그 날 이후로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사장님 능력이 좋아서 그런거라니까요. 가령..

“가령?”

-창용씨를 이용해서 정일무씨 내외를 꼼짝 못하게 만든 거라든지...

진즉에 알고 있었는데, 한무영은 친절하게도 모든 사실을 직접 확인시켜 주었다. 

“에이, 그거야 뭐. 흐흐.”

-덕분에 ‘은영‘이랑 더 작업할 수 있어서 저야 좋았지만요.

나는 한무영이 도대체 왜 아까부터 나의 와이프를 ‘은영’이라고 불러대는지 알 수 없었다. 아까야 그렇다치고, 이젠 창용이도 없는데. 하지만 중년남자는 아내의 이름따윈 관심조차 없는 표정이었다.

“뭐 그거야 그렇다치고, 자네야 말로 참 신기해.

-뭐가요?

“아니 나 같으면, 눈앞에 저런 년이 서 있으면 맨날 달려들어 떡을 칠 텐데 자네는 도무지..”

-확실하게 해 두겠지만, 전 단지 제 일을 하기 위해서였을 뿐이에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의 그 말도 안 되는...

“알았네 알았어..”

믿기 힘들었지만, 중년남자와는 달리 한무영은 아내에게 손 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보다 오늘은 정말 최고의 하루였네. 평생 잊지 못할.”

-선생님의 그 왕성한 성욕과 정력엔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이봐, 자네가 이상한거야.”

중년남자와 한무영은 슬슬 오늘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쏟아내려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야. 한두번 해 본 솜씨가 아닌거 같아.”

-섹스를요?

“아니 아니, 이거 있잖아... 사까시.”

아마도 아내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다는 사내의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사까시’라는게 정확히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좋으셨어요?”

-말도 마. 최고였다고.

“어차피 그런거라면 그동안에도 종종 받으셨잖아요? 근데 뭘 오늘 새삼스럽게”

-그거야 어둑어둑한 자네 작업실에서 했던 거고. 이야, 달리는 차 안에서 받는 사까시가 그렇게 기분 좋은 건지 난 오늘 처음 알았네. 뭐라고 해야 하나. 스릴이라고 해야 하나? 뭐 어쨌든 하는 사람의 스킬이 무엇보다 중요하긴 하지만. 캬.

사내는 눈을 감고 무엇인가를 음미하는 것처럼 보였다. 제길. 다리를 벌리고 앉은 사내의 복부 밑에서 흉물스런 사내의 성기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게 보였다. 한무영이 질렸다는 듯 담배 한 개를 꺼내더니 입에 물었다.

“진짜 그 순간만큼은 그 찐따 같은 남편새끼가 정말 부러워 미칠 정도 였다구. 아 그 새끼는 와이프가 지 자지를 입에 물기만 해도 싸겠구나... 하면서...”

-큭. 어차피... 친남편도...

“음?”

한무영의 말에 나는 움찔거릴 수밖에 없었다. 한무영이 나와 아내의 관계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임곽수가 말해준 걸까? 아니 임곽수도 나와 와이프의 관계에 대해선 잘 모를텐데. 

“아, 아닙니다. 그나저나 아까 등대에서는 뭘 하다가 늦게 나오신 거에요?”

-아 그거?

한무영은 손에 담배를 든 채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등대’ 이야기에 나도 다시 귀를 기울였다. 

“하아. 그냥 뭐 별거 없었어. 큭. 뭐, 아까 꼭대기에 올라갔을 때 슬쩍 아가씨 엉덩이를 보니까 미치겠더라고. 캬. 아무리 생각해도 말야, 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힌 건 최고의 선택이었던 것 같아. 어딜봐서 그게 서른 몇 살 먹은 유부녀의 몸매냐?”

-암튼, 그래서요?

“슬쩍 슬쩍 아가씨 엉덩이를 훔쳐 보고 있으려니까 내 자지가 또 슬쩍슬쩍 발동하는거야. 머릿속으로는 ‘드디어 내가 오늘 너를 따 먹는구나’ 뭐 이런 생각부터 해서. 그냥 사람이 있고 없고 생각할 것 도 없이 냅다 아가씨 엉덩이에다가 자지를 가져다 문댔지 뭐.”

-괜히 제가 눈치 보여 혼났네요.

“뭐 눈치가 보여, 거기서 보지를 깐 것도 아닌데.”

사내의 말과 아까 내가 등대 아래에서 봤던 풍경이 묘하게 오버랩됐다. 

“이야. 그 뭐라 그러나? 여자 엉덩이가 이렇게 씰룩하고 올라가 있는거..”

-힙업(hip up) 이요?

“응 그거. 참 저 아가씨는 말야. 재밌어. 빨통이나 보지나 할 것 없이 진즉에 다 봤는데, 엉덩이를 살짝 밀착시키는 것만으로도 좆꼴리는 거야. 타이트한 치맛자락에 힘껏 솟아 올라간 두 엉덩이 사이로 내 불알이며 자지며 할 것 없이 한꺼번에 문지르는데, 으아. 정말 쪽팔리지만 쌀 것 같더라고.”

-큭.

“그런데, 아가씨가 별다른 반항을 안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아까 자네한테 이상하다고 말 한 거 아니겠어? 무슨 짓을 한거냐고. 솔직히 난 어젯밤에 자네가 나한테 전화해서 ‘내일이 끝입니다’ 라는 말만 듣고 따라 나선거고. 설마 설마 했었지만.”

-그래서요?

“뭘 그래서야? 그 다음부턴 자네도 잘 알고 있잖아. 그보다 자네야 말로 그래. 내 앞에서 불편한 표정으로 서 있던 아가씨한테 자네가 무슨 눈친가 주고 내려갔잖아. 내가 못 봤을 것 같아?”

-잘못 보셨네요. 

“흐흐. 뭐 암튼 나야 고맙지 뭐. 드디어 예쁜 아가씨 따먹게 해준다는데 마다할 일이 뭐에 있겠나? 암튼 자네가 내려가니까 아가씨가 다시 잠잠해 지더라고. 그래서 계속 아가씨 엉덩이에 자지를 문지르고 있는데, 이거야 원. 당장이라도 뭉쳐있는 ‘고름‘을 꽉 짜 내고 싶어 미칠 지경이더라고. 그래서 그냥 아가씨 손잡고 일단 아래로 내려갔지.”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결국 나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었던 건 나의 잘못된 판단과 오류투성이인 사고였다. 아내는 그동안 남자 두명 에게 보기 좋게 희롱당하고 있었다. 오늘이야 어떻든.

“천천히 내려가는데 아 자지가 뻐근해서 죽을 지경이더라고. 아까 바다까지 가는 차 안에서 이미 한 번 걸쭉하게 빼냈는데도 말이지. 그런데 내려가는 계단 말고 다른 쪽에 샛길이 보이는 거야. 아가씨 손을 꼭 잡고 그냥 그쪽으로 갔지. 아니나 달라? 조금 좁아 보이는 공간이 나오는데, 하늘이 돕나 싶더라고. 더 이상 기다리기 힘들어서 아가씨를 등대 꼭대기에서처럼 벽에다가 밀어넣고 냅다 스커트를 올렸지. 이젠 뭐 더 이상 반항도 안하고 소리도 안지르더라고. 뭐 자네 덕분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때 하신건가요?

“어둠속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나더라고. 아가씨 볼기짝이랑 계곡 사이에 걸려있는 티팬티. 뭐 더 기다릴 거 있나? 나도 서둘러 바지를 내리고 자지를 꺼냈지. 진짜 자지가 말야. 바지속에서 나오는데 마치 ‘팅?’ 하고 튕겨져 나오는 그런 느낌이더라고. ‘너도 그렇게 보지가 고팠니?’ 뭐 그런 생각이 들더라니까. 손가락으로 아가씨 엉덩이에 걸친 티팬티를 쑤욱하고 들어낸 다음 냅다 꽂았지.”

-정말 대~단 하십니다.

“으아. 뭐 저번에 살짝 ‘담가만’ 봤을 때 느낀거지만, 역시나 조금 헐렁한 느낌이랄까? 그런건 조금 있었는데 역시나 유부녀니까 그러려니 했지. 그런데 내 자지를 끝까지 밀어넣는 그 순간까지 물이 장난이 아닌거야. 그리고 꽂아넣고 그냥 가만히 있으려니까 아가씨가 고개를 내 쪽으로 슬쩍 젖히는데 머리카락에 배어나오는 샴푸냄새가 아우. 게다가 느낌인지는 모르겠는데 점점 보지의 조임이 내 자지에 익숙해 지는 기분이 드는거야. 이를테면 내 자지에 맞게 꽉 무는 그런 느낌. 에라이~ 허리를 잡고 냅다 박아댔지.”

역시나 아내는 아까 등대에서 중년남자와 성적인 관계를 가진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내와 중년남자가 실질적으로 나눈 첫 번째 관계였다는 사실에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 세게 박아대는데, 쪽팔리게 그냥 쌀 것 같은 거야. 그만큼 박아댈수록 쪼임이 장난이 아니었거든. 일부러 펌프질 속도를 좀 죽였지. 그리고 괜히 무안해서 귓가에 대고 ‘콘돔이라도 끼고 할 걸 그랬나?’ 라고, 맘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여 봤지만, 아가씨는 난간만 꽉 붙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 슬쩍 아가씨 빨통을 꾸욱 움켜쥐는데 갑자기 옆에서 이상한 기분이 들더라고.”

-누구한테 들켰어요?

아마도 그 타이밍이라면.....

“아니, 그냥 사람들 목소리만 들리더라고. 아쉽긴 했지만 아가씨 보지에서 서둘러 자지를 뺐지. 아가씨도 당황했는지 스커트를 내리고 서둘러 옷 매무새를 정리하더라고. 이럴줄 알았으면 그냥 씨발 빨리 싸버릴걸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뭐 별 수 있나? 바지를 주섬주섬 올려입고 아가씨랑 사람들 눈치보면서 등대 아래로 내려갔지 뭐.”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뭐 이를테면. 아 씨발 또 꼴린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사내의 입장에서 본다면, 나는 꽤나 ‘절묘한’ 타이밍에 아내와 사내의 관계를 ‘방해’ 한 샘이었다. 머리가 몽롱해 졌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얼마전 동영상을 보면서 들었던 느낌이 그대로 머릿속을 파고 들었다. 그런데 그때와 조금 다른 감정, 기분이 들었다. 이번엔 ‘무기력한’ 기분만 들었다.

“그리고 밥먹으러 갔지.”

사내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사람은 보기보다 꽤나 수다스러운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대꾸를 해 주는 한무영도 그닥 관심이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가운을 걸친 중년남자는 다시 신나서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놨다. 나는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할 자신이 없어서 이번엔 모든 대화를 그냥 듣기만 했다.

“아주 쪽팔려서 혼났습니다.”

-에이 재밌었으면서 뭘. 

“아까 주인아줌마 표정 못 봤어요?”

-큭. 부러워서 그런거야 부러워서. 면상 보아하니까 평생 섹스한번 못 해 봤을 것 같은 쌍판이더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회랑 해산물 시켜놓고...... ‘야.. 야.. 이거 우리 아가씨 보지랑 똑같이 생겼네..’”

-재밌잖아... 왜. 

퍽이나 재밌겠다. 결국 저 놈은 끝까지 남의 와이프를 희롱하고 있었던 거구나. 

“암튼, 밥을 먹으면 먹을수록, 아까 짜내지 못한 고름이 뭉쳐 있는 기분이 들어서 자지가 불끈불끈 하는 거 같더라고. 어떻게든 씨발 진짜 제대로 한 번 따먹어야겠는데.”

-식사하시면서도 장난 아니었잖아요. 은영이 옆에 가서 가슴 만졌다가 허벅지 만졌다가. 은영이 발 들어서, 선생님 허벅지 위에다가 올렸다가.

“아 씨발, 죽겠는걸 어떻게 하냐? 암튼 밥 다 먹고 나가려는데...”

-마침 은영이가 화장실에 갔다?

“그렇지 뭐. 크크크”

-그래도 화장실까지 따라 가실 줄은..

“급했다니까. 아가씨가 화장실 걸어 들어가고 나서 바로 나도 화장실로 갔지.”

-뭐, 저도 말릴 재간이 없었습니다. 정말.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는 척 하다가, 슬쩍 헛기침을 한 번 하곤 쏜살같이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지. 혹시나 누가 있으면 죄송합니다, 그러고 나오면 되는 거니까. 근데 마침 아무도 없는거야. 아가씨가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화장실 칸만 굳게 닫혀 있더라고. 혹시나 하고 슬쩍 아래로 보니까, 아가씨가 신고 있던 신발이 맞는거라.”

-변태.

“아 씨발 변태든 뭐든 좋아. 난 씨발 그 때 아가씨 보지에다가 맘껏 하고 싶은 생각.........”

-알겠어요 알겠어. 그래서요?

“화장실 문 쪽을 살펴보면서 조금 기다렸지. 이야 은근 스릴있더라고 그거. 화장실 안에서 물내려가는 소리가 들리길래 나도 슬슬 준비했지. 자지가 씨발 알아서 서 주더라고. 조금 있다가 문이 열리는 가 싶더니, 그냥 바로 아가씨가 나오려던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지”

-놀랬겠네요.

한무영의 말은 너무나 무미건조했다. 마치 자신은 관심이 없다는 듯. 솔직히 지금의 나도 같은 심정이었다. 나는 그냥 귀가 있기 때문에 듣고, 눈이 있기 때문에 보는... 그런 느낌일 뿐이었다. 

“전혀. 그냥 전혀 안놀래더라구. 마치, ‘그래 니가 올 것 같았어’ 뭐 그런 표정이었어. 담담해 보이더라구. 그 상황이 묘하게 꼴리는게 바지를 내릴 생각도 안하고 그냥 바지 자크만 내렸어. 바지 사이로 또 내 자지가 툭 하고 튀어 나오는데, 아가씨가 그걸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거야. 야 요년 봐라? 아까 아가씨 보지에다가 박아대서 그런지 몰라도 자지가 조금 끈적끈적하기도 하고 털도 뭉쳐 있고, 괜히 내가 부끄럽더라고. 큭큭. 어쩐지 아가씨 보지에다가 박을 기분이 영 사라지는거야.”

-호.

“멀뚱멀뚱 서 있는 아가씨한테 일단 변기 위에 앉으라고 했지. 또 순순히 앉아요. 그리고 내가 아가씨 앞으로 가니까 여전히 아가씨는 날 피하지도 않고 자지만 쳐다보고 있더라고. 참 내 자지가 꼴이 말이 아니라서 괜히 머쓱해 지는데, 아가씨한테 신발좀 벗어보라고 했지. 그리고 발 좀 올려보라고.”

-변태...

“큭. 변태고 뭐고 간에, 난 여자 스타킹 신은 발만 보면 이 나이 먹도록 환장하겠더라고. 아가씨가 그제야 내가 뭘 원하는지 알겠다는 표정으로 군말없이 신발을 벗고는 변기를 조심스럽게 잡고 내 자지 쪽으로 발을 천천히 올리는거야. 자지 끝에 아가씨 발 팁토가 살짝 다가와서 부딪히는데 아, 역시 죽겠더구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허리를 앞으로 쭈욱하고 내밀었지. 그리곤 얼마 안가 아가씨가 천천히 내 자지를 발로 문질러 주더라고.”

-뭐, 그런건 익숙한가 봐요?

“뭐, 자네 작업실에서 종종 했던 거니까.”

-........

“아 여름이라 그런가, 아가씨 발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더라고. 게다가 그 스타킹의 감촉은 정말. 뿌리부터 귀두부분까지 스타킹 신을 발로 왔다갔다 하는데, 그럴때마다 포경을 안한 내 자지 껍질이 벗겨졌다 감싸졌다 하는거야. 어차피 화장실은 비어 있었으니까 맘껏 내 기분을 표출하고 있는데, 갑자기 화장실 문이 열리는거야. 아가씨가 순간적으로 멈추더라고. 하지만 난 기분이 너무 좋아서 내 자지를 감싸고 있는 아가씨 발을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있었지. 아 씨발.. 그 발..”

-진짜 변태.

“누가 들어온건지는 모르겠는데 진짜 속으로 온갖 욕을 다 하고 서 있었어. 이 씨발 빨리 좀 처 나가라. 그런데 비어있는 화장실 칸 하나가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금새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리는거야. 바로 옆에서. 진짜 씨발 속으로 ‘좆같네’ 이 말을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어. 기다리면 나가겠지 하고 조금 기다려 보는데, 아 씨발 나갈 생각을 안하는거야. 아가씨도 자세가 불편했는지 슬금슬금 내 자지에서 발을 빼려고 하더라고. 물론 나야 발을 꼭 붙잡고 안놔줬지. 그런데 달리 생각해보니까 지금 그 상황이 씨발 또 좆꼴리는거야. 바로 옆에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게다가 슬쩍 아가씨 스커트 쪽을 보니까 약간 벌어진 다리 사이로 티패티랑 보지 털, 그리고 조개가 보이는데. 귀두쪽이 울컥거리는 느낌이 들더라고. 내 씨발. 이번엔 그냥 한번 싸버리고 만다.”

이야기를 듣는 내 눈동자의 초점은 이미 희미하게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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