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힘들어요? 이 땀 좀 봐..”
“괜찮아요..민영씨는 괜찮아요? 아프진 않고?”
“난 괜찮아요..정수씨가 힘들죠..”
“힘들긴요..이 정도야 뭐..”
“정수씨 몸을 좀 봐요..너무 말랐어..살 좀 찌워야겠어..지금 너무 힘들어 보인다구요..”
“하하..그런가요..진짜 괜찮은데...”
“그럼 다행이구요...”
“오늘 정말 너무 좋았어요...”
우린 그 말과 함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부드러운 입맞춤을 나눴고, 입술이 떨어지며 서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랑해요...민영씨..”
“그런 말 하지 마요. 나중에 정말 예쁘고 좋은 여자 만나면 그런 말은 해줘요..”
“왜 그렇게 말해요..”
“난..애가 있는 유부녀고, 정수씨는 미혼이잖아요..”
“그게 중요해요?”
“네..나한테는 중요해요. 말했잖아요. 나 용기 같은 거 없는 사람이에요. 내 가정 부술 수 있는 그런 용기 같은 거 없는 사람이라구요..”
“그럼..왜 나에게 이렇게...”
“그건 진심이니까요. 나도 정수씨가 좋아요. 사랑...정수씨가 말한 그 감정일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정수씨와 이런 관계를 가지지 않았을거에요“
“.......”
“그렇지만..정수씨가 나 때문에 발목이 잡힌다면 그건 싫어요. 세상엔 나 말고도 좋은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애 있는 유부녀한테 발목 잡히는 거 그걸 원치 않는다구요..”
민영은 그 말과 함께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혀 있었다.
내가..내가 이기적인 놈이라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민영을 사랑한다고 내뱉어 버렸다.
민영이 뻔히 어떤 처지에 있는지 잘 알면서..어쩌면 책임질 수도 없을 말을...
그렇게 무책임하게 내뱉어 버리고 만 것이다.
가슴이 아파온다. 다신 민영을 울리고 싶지 않았는데..
나로 인해 슬퍼하는 민영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눈물이 흘러 내려온다. 가슴이 너무 아파서일까..
몇 해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장례식에서도 너무나 슬펐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는데..
지금 이 순간, 눈물이 뺨을 타고 줄줄 흘러내린다.
“울지 마요..왜 울어..왜에...”
억지로 울지 않으려 참고 있던 민영의 눈에서도 맺혀 있던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린다.
“미안..너무 미안해요...내가 너무 바보 같고 나쁜 놈이라..민영씨를...”
시야가 뿌옇게 흐려 질만큼 눈물이 흘러내리고 호흡이 거칠어지며 더 이상 말이 이어지지 못한다.
민영은 그런 나에게 다가와 나를 품에 꼭 안았고, 나는 마치 어린아이마냥 서럽게 민영의 품에 안겨서 소리를 내어 울었다.
민영의 내 등을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
거칠었던 호흡이 진정이 되며 점점 감정이 가라앉으며 눈물이 멎어가기 시작한다.
난 고개를 들고 민영을 바라봤고, 민영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민영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젠..울지 않을게요..정수씨 맘 안 아프게..그렇게 울지 않을게요..지금처럼 늘 웃을게요..”
눈부시게 아름다운 민영의 모습을 보며 난 살며시 민영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뗐고, 민영은 다시 한 번 내 입술에 입술을 살짝 맞추고는 날 꼭 끌어 안았다.
“한 번만 더 안아볼게요..마지막으로...”
마지막..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앞으로 민영을 다시 볼 순 없겠지..민영은 가정이 누구보다 중요한 사람이니까..
난 민영을 잡을 수 없을 테니까..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내 이기적인 감정 때문에 민영을 잡을 순 없는 거니까..
우린 한참을 그렇게 서로를 품에 꼭 안고 있었고, 그 날이 민영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데이트였다.
민영은 그 후 한 번씩 내 글에서 댓글이나 쪽지를 통해 서로 연락을 주고받긴 했으나 그 외에 일체 개인적인 연락은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잘 지내고 있냐고 물으면.. 항상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잘 지낸다는 대답을 해줄 뿐..
우린 그렇게 그 날의 감정을 소중히 간직하며 멀리서 서로를 응원하며 행복하길 빌었다.
다시는 울지 않길...행복만 가득하길...그렇게 기원했다.
epilogue
5년 후
뜨겁게 내려쬐는 햇볕, 한국의 여름은 요즘 견디기 힘들만큼 숨이 턱턱 막힌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하리..이제 몇 시간 후면 난 이 곳에 영영 없을 테니..
난 손에 들린 비행기 티켓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게이트를 지나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여긴 영영 안녕이구나...’
34년간 살아온 곳을 떠나는 느낌.. 만감이 교차한다.
이런 게 시원섭섭한 느낌인가..
‘모르겠다..어떻게든 잘 되겠지..’
무작정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캐나다로 떠나는 것이 아직도 잘 하는 짓인지,
못하는 짓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지만 일단 결정을 한 상황이고 이제는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잘 되겠지..잠이나 자자..한숨 푹...’
10시간 후 캐나다 벤쿠버 공항
처음 타보는 비행기에 시차 적응에 정신을 못 차리면서 비행기에서 내려 게이트를 지나 밖으로 나오니 낮이다.
낮에 탔는데 낮이라니..
멍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환한 미소로 민영이 날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민영씨...”
난 민영씨를 보며 환하게 다가갔고, 민영의 옆에 민영을 꼭 닮은 예쁜 여자 아이가 수줍은 듯 민영의 뒤에 숨어 눈만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사해야지...아빠한테..”
“아빠...?”
“응..”
“아...빠..”
“그래..우리 지민이..”
난 지민이를 품에 안아 들어 올렸고, 민영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췄다.
벤쿠버의 눈부신 햇살만큼 눈부시게 환하게 웃어주는 민영..
이젠 혼자가 아닌 셋이다. 우리 세 사람의 앞날에 지금처럼 눈부신 햇살만 가득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