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6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내가 작은 먼지, 그보다 더 작은 알갱이가 되어 빛으로 된 터널 같은 곳을 마구 통과하며 날아다니는 그런 꿈이었다.
그 터널은 무척이나 길었다. 그리고 한없이 계속해서, 나는 무언가에 끌려가듯이 날아가고 있었다. 단지 그럴 뿐인 것이 계속될 뿐이었다. 당연히, 금방 지루해졌다.
그래서 생각했다.
손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띠링~
그런 소리와 함께 손이 생겨났다. 귀도 없는데 어떻게 소리를 들었나 싶었지만, 어째선지 그 소리만큼은 똑똑히 들려왔다. 게다가,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손이 생겨났다는 것이 중요했다.
돌연, 없던 것이 생겨나는 감각은 뭐라고 말해야할까. 아무튼 간에 여태까지 느껴본 적이 없었던 신감각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어쩐지 조금 즐거워졌다.
게임 같다고 해야 하나, 게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캐릭터를 만들 때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역시 꿈이라서 그런가, 내 마음대로 되는구나 싶어서 이번에는 이것저것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몸을 만들어내기로 했다. 이런 알갱이 같은 몸에 커다랗기만 한 손이 달려있는 것은 역시 불편했다.
주로 감각적으로 불편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번에는 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띠링~
또 다시 그런 소리와 함께 몸이 생겨났다. 익숙한 이미지라고 해야 할까, 가장 떠오른 것이 그것이라고 해야 할까, 생겨난 몸은 기존의 몸, 그러니까 내 몸과 별 차이가 없는 그런 몸이었다. 그걸 보니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가 부족한 걸까, 고민할 것도 없었다. 근육이 부족했다. 어차피 꿈속인데 뭐 어때, 그런 느낌으로 어째선지 3인칭의 시점으로 내려다볼 수 있는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조물딱거리며 조금씩 바꿔나갔다. 그렇게 하다 보니 원래는 없던 복근이라던가, 근육이라던가 마구 생겨난 끝에 굉장히 훌륭한 몸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꿈에서 깨어나도 이런 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물론 그럴 리가 없지만. 아무튼 그렇게 몸을 만들어내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더욱 많아졌다. 나는 내 몸을 움직여서, 빛으로 된 터널을 걸었다.
몸을 움직이는 방식이 처음에는 뭔가 어색했지만 금방 익숙해졌다. 애당초 있던 것이 없어졌던 것이다. 다시 되돌아왔는데 익숙해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직 입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입 자체는 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것일 뿐, 내용물이 빠져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족한 것, 그것은 원래는 몸속에 있어야할 내장들이였다.
이런 것까지 만들어야 되는 건가, 꿈 주제에 쓸데없이 세세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관, 성대를 떠올렸다.
띠링~ 또 다시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크흠, 아, 아아. 오, 되네?”
소리가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목 안에 무언가가 생겨나는 느낌이 들어 입을 열어 소리를 내보니 목소리가 나왔다.
“흐음, 그럼 이런 것도 되려나.”
이런 것도 되는구나 싶어서 겸사겸사 내 몸에도 빠져있던 것들을 채워 넣었다. 허공에서 내장을 비롯한 여러 가지들을 만들어내고, 저절로 갈라진 내 몸 안에 처덕처덕 넣는 광경은 어쩐지 그로테스크했지만 거부감은 없었다.
왜일까, 그냥 꿈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내 몸이라서? 어느 쪽이든 별 상관은 없었다. 나로서는 그냥 지점토를 만지작거리는 감각에 가까웠으니까. 그게 아니라면 게임속의 커스마이징 시스템을 이용해서 캐릭터를 이것저것 만져가며 꾸미는 느낌에 가까울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게 여러 가지로 실험해보며 놀았다. 어차피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끝없이 이어지는 것만 같은 터널을 걸으면서, 이것저것 만들어내는 것이 다였다. 그래도 알갱이였던 때와 비교하면 심심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뭐든지 되는 만능툴을 가지고서 노는 기분이라서 제법 즐거웠다. 혹시나 싶어서 넣어보기도 했던 판타지적인 기능도 무사히 작동한다는 것이 느껴져서 조금 놀랐지만.
그때, 터널의 빛이 강하게 뿜어져 나오는 곳이 보였다. 그리고 저 너머로부터 무언가가 나를 끌어당기는 듯 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 순간 직감했다. 이 너머로 넘어간다면, 어쩌면 다시는 여기에 돌아올 수 없을 거라고.
저 곳을 넘어가면, 이 꿈은 이제 끝이라고.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가볼까.”
어차피 슬슬 깨고 싶기도 했다. 재미있던 꿈이라서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계속 자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빛이 뿜어져 나오는 터널의 너머로, 발을 내딛었다.
쿵!
마치 무심코 내딛은 발밑에 계단이 없었던 것처럼, 허공을 딛는 감각과 함께 눈이 번쩍 뜨였다. 무언가를 통과했다는 감각과 비슷한 감각. 그것과 함께 눈을 떠버린 내 눈에 비친 것은 여느 때와 같은 내 방의 모습이 아니었다.
“...?”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화려한 문양이 가득 새겨져있는 천장이었다. 아름다운 무늬를 그리고 있는 그것은 이미 예술작품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잘 보면 그 무늬들은 작은 보석들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것만 봐도 여기가 내 방이 아니란 것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내 방의 천장에는 작년 즈음에 슬었던 곰팡이의 얼룩이 남아있어서 지저분했다. 딱히 내가 청결에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그저 집이 낡아서 그런 거였다. 집주인이 새로 도배해준다고 약속한 날까지 그냥 그대로 두기로 했던 것이 계속되었을 뿐이라 결국에는 내 방을 떠올리면 천장에 얼룩, 이라는 것이 되어버렸다. 천장에 보석이 박혀있는 곳은 절대로 아니란 얘기였다.
아무튼 여기가 내 방이 아니란 것은 확실하니까 어째서 내가 이런 곳에 있는지를 생각하기로 했다.
혹시 병원인가?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하는 기억 속에서 정신을 잃었던 것이 떠올랐던 나는 제일 먼저 그것을 먼저 생각했다가, 곧바로 부정했다.
이렇게 화려한 병원의 천장 같은 거, 들어본 적도 없었다. 만에 하나, 만약 그런 병원이 있더라도 내가 갈 곳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동네 병원의 응급실에서 일어났겠지.
그러다가 문득, 이런 방을 어디선가 본적이 있었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확히는 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그것도 비교적, 최근에 말이다.
드래곤, 그들이 대마법을 위해 준비했던 방. 정신을 잃기 전에 보았던 광경 속에서 말이다.
“아니,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몸을 일으켰다가, 그제야 내가 알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내 몸이, 내 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좋다는 것도 깨달았다.
“어...”
내 안전을 위한 튜브들은 어디가고 탄탄한 복근이 자리 잡고 있는 배를 바라보자 그런 소리가 나왔다. 객관적으로 봐서, 내 몸은 형편없다고 할 정도는 아니였지만 지금처럼 근육질의 몸은 아니었다. 이전의 몸과 지금의 몸, 어느 쪽이 더 좋냐고 말한다면 당연히 이쪽이기는 했지만... 갑작스레 체형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꿈속에서 만들었던 것과 꼭 빼닮아있다면,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야? 꿈? 이거 꿈인가?”
아직 잠에서 덜 깨기라도 한 건가 싶어서 뺨을 꼬집어봤지만 평범하게 아팠다. 덤으로 새로운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안경을 끼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원래’라면 안경이 없으면 코앞에 있는 것도 제대로 구분이 되지 않았을 텐데. 멀쩡하게 잘 보여서 여태까지 몰랐던 거였다.
아니, 어쩌면 지나치게 잘 보이는 걸지도 몰랐다. 천장에 있는 무늬를 그리는, 거기에 하나하나 박혀져있던 작은 보석까지도 제대로 보였었으니까.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내 몸에, 아니 지금 내게 일어난 일에 당황해하고 있을 때였다.
끼이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일곱 명의 소녀가 보였다. 하나같이 사람 같지 않은, 아름다운 외모의 소녀들이였다. 그녀들을 사람 같지 않다고 여긴 이유는, 제각각의 방면으로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특이한 머리카락의 색깔 때문이였다.
금발부터 시작해서 은발, 적발, 흑발, 녹발, 그리고 청발의 쌍둥이로 보이는 소녀.
...어디선가 많이 봤던 색상의 조합인데. 어디였더라, 머릿속에서 떠오를락 말락하면서 떠오르지 않는 기시감에 빤히 소녀들을 쳐다봤다가 다른 것이 떠올랐다.
아니, 잠깐만. 나 알몸이었지?
태평하게 어디서 봤는지 생각하기에는 지금 내 꼴이 말이 아니었다. 내 몸뚱이는 지금 태어날 때 모습 그대로, 완전 노출 상태로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급하게 몸을 가릴만한 것을 찾아봤지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일단은 손으로라도 가려보려고 했지만, 나는 내 하반신에 대롱거리는 것을 보고서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거 왜 이렇게 커졌어.
아니, 생리적인 작용으로 그런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크기가 커졌다. 일평생을 같이한 분신이 혼자 초진화를 이루고 있었다. 왜 이 녀석만 이런 진화를, 하고 생각했다가 이것만이 아니라 몸 쪽도 여러 가지로 바뀌어 있다는 걸 다시 떠올려냈다.
“아.”
그러고 보니 몸을 고쳤을 때 이것도 고쳤었지.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간 기억으로부터 이렇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갑자기 근육질의, 균형 잡힌 몸을 가지게 된 것도, 쓸데없이 커다란 것을 갖게 된 것도, 단순한 우연일 리가 없었다.
꿈속에서 만지작거리면서, 만들어냈던 몸 그대로. 지금 내 몸은 그때 그것과 똑같았던 것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좀 더 키를 크게 만들었을 텐데...
“......”
“......”
지금 중요한 게 그게 아니었지. 나는 이쪽을 빤히 쳐다보는 일곱 쌍의 시선을 그대로 받으며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어째 내가 더 부끄러워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보통은 반대가 아닌가? 아니, 그보다 뭔가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감상하고만 있지 말고.
“...아무리 봐도 평범한 인간이지?”
그때, 흑발의 소녀가 주위의 소녀들에게 동의를 구하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말에 다른 소녀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평범한 인간이지 어디 이상한 곳이라도 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알몸으로 나타난 남자가 그렇게 말한다고 한들 전혀 신뢰성이 없어서 그냥 입을 닫고 있기로 했다.
“응~ 내가 봐도 평범한 인간으로 보이는 걸~ 후암~”
내가 입을 닫고 잠잠코 있자 이번에는 녹발의 소녀가 그렇게 말했다. 딱 봐도 졸려 보이는 얼굴이었다. 반쯤 감긴 듯한 눈을 하고서 하품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런다고해서 그 미모가 어디로 날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법진에서 소환했어.”
넋놓고서 하품을 하더라도 미소녀인 녹발의 소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번에는 은발의 소녀가 그렇게 말했다. 뭐가 불만인지 불편한 기색으로 얼굴을 찌푸린 흑발의 소녀나, 이래저래 졸린 모양인지 하품하는 녹발의 소녀와 달리 은발의 소녀는 무표정한 얼굴이였다. 말 그대로, 그녀에게는 표정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다.
그저 잘 만들어낸 인형처럼, 빤히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렇게 계속 쳐다보니 내 몸에 어딘가 이상한게 있는건가 싶었다. 아니, 알몸으로 있는 이상 분명 이상한 건 맞지만 말이다.
“뭐어, 오크 같은 게 아니란 건 다행이라면 다행이네에.”
이번에는 적발의 소녀가 그런 말을 꺼냈다. 쭉, 나를 훑어본다 싶었는데 그런 감상을 남긴거였다. 오크라면 내가 알고 있는 그 오크를 말하는걸까? 적어도 오크보다는 나은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은 알겠다. 내가 겨우 오크보다 나은 정도로 취급받고 있다는 것도 알겠고.
아니, 그보다... 사람을 알몸으로 방치하고서 자기들만 아는 얘기를 그렇게 나누시면 제가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모르겠거든요? 솔직한 마음으로는 당장 얼굴부터 돌려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내 작은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얼굴을 돌려줬으면 하는 바람과는 다르게, 청발의 쌍둥이 소녀가 내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잠깐, 아냐, 아샤.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함부로 다가가지 마!”
“에~? 그치만 평범한 인간을 직접 보는 건 이게 처음인걸!”
“아니면, 혹시 크리샤는 인간이 무섭기라도 한 거야?”
그런 둘을 흑발의 소녀가 말리려고 했지만 청발의 두 소녀, 아무래도 쌍둥이로 보이는 외형과는 다르게 성격이 조금 달라 보이는 둘의 말에 눈을 찌푸렸다.
“무섭다고? 내가? 내가 무서워하는 건 이 세상에 없어!”
크리샤, 라고 불린 흑발의 소녀가 그렇게 말하자 아냐라고 불렸던 청발의 소녀가 빙그레 웃었다.
“그럼 크리샤, 네가 먼저 말을 걸어봐!”
“맞아, 그럼 되겠다.”
“...뭐? 내가 왜 저딴 거랑!”
아니, 그렇게 대놓고 사람 앞에서 저딴 거라고 말해주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대놓고 싫어 죽겠다는 표정도 지어주지 말았으면 좋겠다. 여러 가지로 상처 입을 것 같았다. 아니, 이미 상처 입었다. 아예 무시하는 것도 싫기는 한데, 이것도 싫었다. 그보다 누가 옷 좀 가져다 줬으면 좋겠다.
“아냐세오스, 장난은 그쯤하세요. 아샤네오나. 이야기는 언제든 나중에 할 수 있으니까 지금은 참도록 하고요. 크리샤네아, 그런 태도는 눈앞의 상대에게 실례입니다.”
그리고, 여태껏 조용히 이쪽을 바라보고만 있던 금발의 소녀가, 그런 소녀들을 중재하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사르륵, 머리카락과 같은 황금빛의 드레스가 스치는 소리와 함께 내 앞까지 걸어온 소녀는,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윽고 드레스의 자락을 살짝 집어 들어 올리고는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차원의 너머에서부터 오신 추잡하게 생기신 분이시어. 저희들을 대표해서, 지금까지의 무례를 사과드립니다.”
...방금 여기 와서 제일 실례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