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화 〉12화 (12/370)



〈 12화 〉12화

“굉장히 넓은데.”


우선은 식사부터 하기 위해 식당으로 온 나는 눈앞에 식당이라고 펼쳐진 광경에 무심코 그렇게 말했다.

 방이라며 내준 곳도 그랬지만 식당도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었다. 족히 수십 명이 동시에 앉아서 식사를 해도 남을만한 식탁이 보였다.


그리고 대체 언제 준비한 것인지는 몰라도 온갖 음식들이 그 커다란 식탁을 가득 메울만큼 올려져 있었다. 그것도  나온 것이라는  따듯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는 것으로.

그런  감탄 반 경악 반의 혼잣말을 들었는지 루시아가 말을 걸었다.

“저희들에게 있어서 이 정도가 보통이지만요. 혹시 불편하신 거라도 있으신가요?”


“불편한 건 없어. 없는데...”


음식이 좀 많지 않나 싶을 뿐이지. 나도 남들만큼 먹는 편이기는 하지만  손이 닿는 범위 안에서만 먹어도 배가 두 번은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것이 식탁 가득, 가득 있는 것이다.


다른 일곱 명이 얼마나 먹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겉보기에는 나보다 적게 먹으면 먹었지 많이 먹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이 세상에는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없는 건가?

"그나저나 하나같이 엄청 맛있어 보이네."


보는 것만으로 입안에서 침이 고이고 있었다. 안 그래도 머릿속에서 떠오른 기억들. 눈앞에 차려져 있는 음식들이 어떻게 먹어야하고 어떤 맛이 나고 어느 나라의 음식들인지 하나같이 알려주고 있는 기억들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마치 눈앞에서 먹방이라도 하는 것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런 내 말에 루시아가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음식 담당이 누구였죠?"


"오늘~? 오늘은 카르네였던가~?"

카르네가? 보기와는 달리 사실은 요리를 잘하거나 했던 건가? 아니, 딱히 카르네가 요리를 잘할 것 같지 않아 보인다는 것은 아니었다. 카르네를 비롯해서 모두가 요리란 것을 할 것 같지 않은 이미지일 뿐이지.

의외의 이름을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카르네를 보자 어쩐지 조금 부끄러워하는 기색으로 이름을 열었다.


"어쩐지 조금 기쁜거얼. 생각해보니까 다들 나오는대로 먹었지 음식의 감상같은 것은 말하지 않았으니까. 색다른 기분일지도오. 그 녀석들도 들으면 기뻐 할거야아."


"그 녀석들이라니?"


"그야 이 음식들을 차려준 녀석들을 말하는 거지이?"

내 말에 당연한 걸  묻냐는 듯이 그렇게 말하는 카르네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이거, 카르네가 한거라며...?"


"정확히는 카르네의 영지에서, 말이지만요."

"영지...?"

"그러고 보니 아직 설명 드리지 않았네요."

루시아가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하나를 집으며 말했다.

"이 빵이 저희들의 세계. '우난나', 인간들의 말로는 신의 축복이 내리신 땅. 그들이 부르는 말로는 판게아라고 하죠."


"우난나?"

판게아, 라는 건 많이 들어본 말이었다. 익히 들어본 초대륙, 땅덩어리가 분열하기 전에 있었던 커다란 땅덩어리를 이르는 말이었다. 하지만 우난나, 아니 내가 듣기에는 우난나라고 들렸을 뿐  더 복잡한 발음의 말은 처음으로 들어본 말이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리셨을 지도 모르겠네요. 이것만큼은 언령으로도 어떻게 안 되니까요. 아마, 이지경님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가장 비슷한 발음으로 들리셨을 거예요. 가장 오래된 언어. 아직 신의 축복이 닿기 전의 시대. 그때의 말이니까요."


뭔가 친절하게 설명해준 것 같지만 그래도 뭐라고 한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우선 가장 궁금한 걸 물어봤다.

"언령이라는 게 뭐야?"


"언령은 언령이에요. 신들이  땅에 부여한 법칙. 모든 언어가 서로에게 통한다는 축복이죠. 덕분에 이지경님과 저희의 말이 달라도, 서로 말이 통하는 거랍니다. '우난나'는 그 축복에 미치지 않은 언어. 고대의 언어로 세계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에요."


사용하는 말이 다를 텐데도 통하는 것도 드래곤이니까 그런 건가 싶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을 줄은 몰랐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딱히 다른 나라의 말을 배우지 않더라도 좋다는 거구나. 대학이니 뭐니 타국의 언어를 배워야하던 수험생들이 좋아할만한 이야기였다.

"뭐, 인간들은 나라마다 사용하는 문자에 격을 두는 모양이지만요. 신들이 기껏 법칙으로써 말의 평등을 주었는데 우스운 이야기죠. 덕분에 작은 나라에서는 사용하는 문자만 열 개가 넘는다던가요?"

미안, 수험생이 질색할 만한 이야기였다. 나름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대국 사이에 껴있는 우리나라가 이곳에 있었더라면 적어도 사용하는 문자만 네다섯 개는 됐다는 거잖아. 그건 대체 어떤 끔찍한 세계야.


적어도 나는 그런 세계에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이 빵을 우난나라고 하면..."

그렇게 말하며 루시아는 빵을 조각조각 잘라내서 여덟 조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여섯을 따로 옮기며 말했다.


"이것들이 저희들의 영지. 저희들이 신들로부터 맹약으로써 인정받은 땅. '도바난', 드래곤들의 땅이에요. 저의 영지부터 시작해서, 아샤와 아냐의 영지까지."

파라모아, 창공의 보옥과 하늘을 상징하는 금색용. 루시아가 지배하는 영지.

슈페리아, 대지의 보옥과 대지를 상징하는 흑색용. 크리샤가 지배하는 영지.


브란시아, 숲의 보옥과 숲을 상징하는 녹색용. 아르카가 지배하는 영지.

크락시아, 얼음의 보옥과 냉기를 상징하는 은색용. 샤르가 지배하는 영지.


듀락시아, 홍염의 보옥과 불을 상징하는 적색용. 카르네가 지배하는 영지.

아드리아, 물의 보옥과 물을 상징하는 청색용. 아샤와 아냐가 지배하는 영지.


하나같이 길다란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자신이 지배하는 땅의 이름이었던 모양이였다. 그것도 세계를 팔등분해서  중 여섯을 차지할 만큼 거대한 땅덩어리의 주인들. 그것의 상징인 이름인 것이다.


어마무시한 지주들이였구나. 새삼스레 눈앞의 드래곤들이 어지간한 존재들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남은 둘. 하나는 볼모지나 마찬가지인 '낙스'. 버림받은 땅. 오래전 이 세계로 넘어왔던 마수들과 마물들의 후손들이 살아가는 땅이죠. 다른 하나는 '아투스' 외곽, 벽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땅. 인간들을 비롯한 많은 종족들이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인간들, 꽤 험하게 살아가고 있구나. 이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는 모르겠지만 고작 한곳만이 인간들의 땅이라니, 아니 그마저도 다른 종족들과 공유하는 형편이었다. 뭔가 같은 인간으로써 할 말이 없었다.

"뭐, 말이 영지고 땅이지 사실상 저희들은 그 땅을 관리하고 지켜볼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요."


"어? 그런 거야?"


"네, 솔직히 말해서 귀찮으니까요. 덕분에 드래곤들이 번성했던 예전과는 다르게, 저희들의 땅, 이곳저곳에서 많은 종족들이 번성하고 있답니다."


귀찮구나. 하긴 귀찮을 만하다. 얼마나 커다란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작지만은 않을 땅덩어리를 관리하는 것이다. 그것도 혼자서 하라고 하면 엄청나게 귀찮을 거다.

"거기에 이 땅의 이름들도 고대에 그렇게 지어진 것뿐이고 지금은 본래의 이름이 가진 의미와는 다르게 위치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뒤죽박죽이에요."


그렇게 말한 루시아가 조각낸 빵조각들을 다시 합쳤다.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빵조각들이 다시 한 덩어리의 빵이 된 것이다. 아까와 달라진 점은 조각난 빵조각의 흔적이, 빛으로  선으로 나뉘어져있다는 점일까.

'아투스'. 외곽, 벽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인간들을 비롯한 종족들의 땅이 가장 안쪽에 있었고, 그 주위를 드래곤들의 영지들이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외곽에는 '낙스', 버림받은 땅이 있었다.

"어째서 이런 형태가 됐는가, 말하기엔 식사시간이 너무 길어질 테니 나중에 천천히 말씀드릴게요."

"아, 응."


나도 밥 먹는 중에 역사 공부같은 거 하기 싫다.

"아무튼 아까도 말했듯이, 저희들의 땅에서 살아가기 시작한 종족들... 그들에게 땅을 빌려준 대가로 조금 도움을 받을 뿐이에요. 지금 식탁에 있는  음식들도 그런 것 중 하나고요."

"...조공?"

"비슷하네요."


저희가 달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요, 그렇게 말한 루시아가 다시 한 덩어리로 만든 빵을 수프로 보이는 것에 찍어서 입에 넣었다.


"어차피  녀석들이 멋대로 바치는  뿐이고오, 우리도 나쁠  없으니까아. 그걸 조금 규칙을 정해줘서어. 언제 무슨 날에는 이곳에서 식사를 바치고, 언제 무슨 날에는 다른 곳에서 보석을 바치고, 뭐어 그런 식인거야아."

내버려둬도 재산이 불어나는 종족이란 거구나.


이렇게 들으면 드래곤들이 엄청나게 편하게 살아가는 종족인  같았다. 적수가 없을 정도로 강하고, 오만해도 그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할 만큼의 권리를 지니고 있다.  권리를 쥐어준 것이 다름이 아니라 무려 신이다. 감히 토를 달지도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런 권리만큼이나 여러 가지 의무를 짊어진 종족들이다. 드래곤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원치 않더라도, 세계를 위해서 자신의 몸 정도는 거리낌 없이 희생해야 하는 종족들인 것이다.

고룡들은 대마법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거리낌 없이 심장을 꺼내고 그녀들은 소환된 인간 나부랭이인 나에게 부탁하는 것을, 고개 숙이는 것을 부끄럽다고 느끼지 않는 종족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인간인 나로서는 아마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해하기로 했다. 그녀들에게 반하기 위해서, 그녀들이 나에게 반하게 하기 위해서. 이런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시작조차도 불가능할거다.

"공부가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

벌써부터 눈앞이 막막하기만 했다.


"아, 크리샤.  앞에 있는   주라~"

"네가 알아서 가져가라고!"


"아, 크리샤아. 이거  먹으면 내가 먹는다아?"

"아앗?! 마지막에 먹으려고 한 거라고 그거!"

"에에, 뭐어. 미안해애?"

"사과에 진심이 안 담겨 있잖아!"


그렇지만 노력하자. 눈앞의 광경을 보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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