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화 〉21화 (21/370)



〈 21화 〉21화

 질문에 루시아가 대답했다.

“이지경님은 모르시겠지만, 마법 중에는 ‘파악 마법’이라는 것이 존재해요. 대상의 힘이나 능력,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대략적으로 알아낼 수 있는 마법이죠.”

“파악 마법?”

“네, 파악 마법. 이지경님의 정보창은 아마 그것과 비슷하거나, 아니면 보다 상위의 무언가라고 생각해요. 파악 마법으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정보. 기껏 해봐야 상대방이 나보다 강한지, 약한지, 그런 것을 알아내는 수준이니까요. 그에 비해 이지경님이 갖고 계시는 능력, 정보창은 정확하게 수치로 보인다고 하셨죠?  말대로라면 분명 그 정보창이라는 능력은 파악 마법보다는 상위에 있는 것이겠죠. 하지만 원리는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예요. 이지경님이 변한  모습을 보고서 바뀐 능력치를 정보창을 통해 보았던 것처럼. ‘파악 마법’ 또한 변신이나, 형태변환으로 인해 숨겨진 능력을 알아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거든요. 정보창과 파악 마법이 그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어느 정도 말이 되겠죠.”


확실히 루시아의 말대로라면 내가 갖고 있는 능력, 정보창은 파악 마법이라는 것과 비슷한 구석이 있을지도 몰랐다.


“아마 이지경님이 이 세계로 넘어오시는 것으로 얻게  능력들은, 이 세계의 법칙에 맞는 다른 무언가가 대체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원인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지경님에게 이 세계의 법칙과는 어긋난 무언가가 생겨났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쪽이 훨씬 이치에 맞으니까요.”


어쩌면 정보창이라고 불릴 뿐 실상은 파악 마법의  종류일 가능성도 있을 수도 있다는 루시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그렇지만, 난 마력이 없는데?”

“...그랬었죠.”

내 말에 루시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사용하는 정보창이, 루시아가 말한 파악 마법이나, 그것과 같은 종류의 무언가라고 치자. 하지만 나는 마법 하나 사용하지 못하는 마력 0의 사나이였다. 그리고 마법 이론, 가장 기초에 불과할 뿐이지만 어느 정도 마법에 대해 알아낸 내가 알기로는 마법을 사용하는데 있어서는 반드시 마력이 필요했다.


그 말은 정보창이 파악 마법의 한 종류라면, 그게 아니더라도 같은 근간을 두고 있는 무언가라면 내가 사용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나는 마력이 없으니까. 그리고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력이 필요하니까.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작은 벌레, 하물며 발치에 치일만한 돌멩이조차도 가지고 있는 마력을, 요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은 내가 사용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런  말에 루시아가 턱을 괸 채 무언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나를 바라봤다.  눈, 어디선가 본 것 같다. 그러니까... 그때의 그 눈이었다. 무언가 무척이나 알아내고 싶어 하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눈이었다. 그리고 루시아가 나를 저런 눈으로 바라봤을 때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뭔가 기분이 묘하다, 아니, 조금 오싹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지경님의 몸을 조사해보고 싶을 정도로 흥미롭지만 역시 그건 좋지 않겠죠.”

돌연 내뱉은 루시아의 섬뜩한 소리에 뒷덜미에 식은땀이 흘렀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나 싶지만, 그래도 눈빛만으로도 나를 제압하는 것이 가능한 루시아가 그런 말을 하니까 장난으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아니, 그럴 리가 없겠지만 말이지. 아니, 정말로...?


“어, 음... 되도록 사양해줬으면 좋겠는데...?”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렇게 말했지만, 아무리 모른 척해도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것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보고서 루시아는 살짝 웃어 보이며 말했다.

“농담이에요. 제가 이지경님을 어떻게 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것저것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네요.”

“뭐, 뭐어... 간단한 거라면 나도 협력할게.”


그럼 그때가 된다면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말하는 루시아에게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이후에 있던 일들을 요약하자면 먹고 마시고 떠들었다. 아마 이걸로 요약할  있을 것이다. 주로 루시아가 내게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묻고, 내가 거기에 대답하는 것뿐이었지만. 겨우 그 정도의 잡담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야기의 도중부터 루시아가 꺼내든 여전히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은 온갖 요리는 버거웠지만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만큼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만약 익숙해진다면 내 몸무게가 지금보다 세배쯤 늘어난 후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레 식당에 돌아와 있던 에루나가 내온 차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그러고 보니,  있으면 천공성이 제 영지에서 벗어나겠군요.”

“응? 벗어난다니?”

갑작스레 꺼내진 화제에 루시아를 바라보자 루시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의 의미에요. 전에도 얘기했었지만, 이 천공성은 본래부터 선조분들이 훗날 소환될, 그러니까 이지경님을 위해 준비해놓은 장소지요. 그 전까지는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성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어요. 애당초 없었던 것을, 여섯의 드래곤들이 마법으로 새롭게 만들어낸 거대한 성. 마법으로 하늘을, 우난나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성. 그게 바로 천공성의 정체죠.”

“그건 들었었던 것 같지만...”


그러고 보니 루시아가  곳, 천공성에 함께 머물렀던 이유가 마침 천공성이 루시아의 영지인 파라모아의 상공을 날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루시아의 말대로라면, 천공성은 지금  순간에도 내가 느끼지 못할 뿐이지 세계 곳곳의 상공을 천천히 떠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거야?”

“문제라고 말할 만한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때가 되면 저 또한 보옥의 관리를 위해서라도 영지로 돌아가야만 하겠죠.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이지경님이 생활하는데 있어서 전반적인 모든 것은 에루나가 도와줄 테고,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제가 당장에 달려올 테니까요.”


루시아의 말에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근데 다음은 어디로 가는 건데?”

“......”

아주 한 순간, 루시아의 고운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이 보였다. 루시아가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은 드문 일이였다. 루시아가 내게 보여주는 표정은 대체로 비슷했으니까. 언뜻 보기에는 웃는 얼굴로 보이는 미소 띤 얼굴. 그것이 ‘보통’의 루시아가 내게,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얼굴이었다.

아마 그것이 루시아가 짓기에는 가장 편한 얼굴일 것이다. 그녀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거나, 혹은 관계를 맺을 때 보통으로 짓는 얼굴일 것이다.


사람마다 제각각 그런 얼굴을, 표정을 하나 둘 쯤은 갖고 있는 법이니까. 그것을 섭섭하다고 여기거나 그런 적은 없었다. 그렇게 치자면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기왕이면 가끔씩  수 있는, 한순간 바라본 것만으로도 매혹될 것만 같았던 그때의 미소를  얼굴을 자주 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할 뿐이지.

어쨌거나, 그런 루시아의 ‘보통’의 얼굴이 무너지는 경우는 꽤 드문 일이었다. 그만큼 내가 했던 질문이, 그리고 루시아가 대답해줄 무언가가 상당히 꺼림칙한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이지경님에게는 조금 껄끄러운 상대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말하는 루시아의 말에 한 소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을 한 아름다운 소녀. 동시에 마법진에  소환됐을 당시 나를 가장 언짢게 여기기도 했던 소녀의 얼굴이 말이다.


그리고  소녀의 이름도.


“크리샤구나.”

“맞았어요. 크리샤네아 슈페리아. 그녀가 다스리는 영지인 슈페리아의 위로, 한 달 뒤에는 천공성이 다다르게 되겠죠.”


“한 달인가...”


여기에 머물기 시작한지도 이제 일주일, 그동안 능력의 탓일까, 밤낮의 구분도 없이 지내온 터라 그럭저럭 길게 느껴졌지만 사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나에게도, 나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살아갈  있는 그녀들에게도 무척이나 짧은 시간이었다.


“이거 어쩌지...”

루시아의 말은 나로서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이야기였다. 아직 루시아와 이렇다할 진전조차도 없었다. 사실상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것도 일주일동안 이번이 처음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당장 한 달 뒤에는 헤어지게 된다니... 아니, 물론 그걸로 영영 작별인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게는 시간이 없었다.

고작 1년 뿐, 내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1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뿐이다. 물론 시간이 그것뿐만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1년이 지나더라도 시간은 원치않더라도 흘러갈 것이다. 단지 애당초 약속, 아니 계약했던 대로 ‘1년 안에 반하게 한다’와 ‘1년 안에 반하겠다’라는 것은 지켜지지 못할 뿐이었다.

그래, 단지 그것뿐이다.


그렇게만 여긴다면 이야기는 편해질지도 몰랐다. 그것이 지금의 나로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뿐이지.


그런 나에게, 루시아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하는 이야기이지만, 이지경님.”

“응?”

“저의 영지, 파라모아를 구경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어때? 봐줄만 해?”

“예, 주인님을 바라보는 시종으로써의 다소 보정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누구도 주인님을 추하다고 말하지는 않을 겁니다.”


“...칭찬 맞아?”


“칭찬입니다.”


에루나의 말에 한숨을 푹 내쉬고, 거울에 비친  모습을 바라봤다. 어젯밤, 늦은 저녁까지 이야기를 나눈 루시아에게 파라모아를, 루시아의 영지를 둘러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서 밤새도록 있는 옷 없는 옷을  뒤져가며 꾸며낸, 일단 내 나름의 ‘나들이 옷’을 입은 내 모습이 보였다.

나들이 옷이라고 해봤자  옷장에 가득 들어있던 옷들 중에서도 그나마 내가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옷, 그리고 에루나가 보기에도 이 세계의 센스와 어긋나지 않은 조합 중에서 몇 가지 골라잡은 것뿐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정도면 내가 보기에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단지, 이 세계의 옷은 지나치게 화려한 감이 없지 않아 있어서, 내가 고른 것들은 에루나가 평가하기로는 다소 ‘노인’같다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핑크발랄한 패션주자가  바엔 노인이 되련다.

“하지만 그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루시아 아가씨께서 선물해준 옷을 입고 가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되어집니다만.”

“아... 그거?”


에루나의 말에 일단은 ‘나들이 옷’의 후보에 있기는 한 핑크발랄한 옷의 시리즈를 바라봤다. 어제 내가 입고 갔던 그 핑크발랄한 옷에 루시아가 만족했던 모양인지 새로 보내준  벌의 옷이 거기에 있었다.

통칭 핑크발랄 시리즈였다. 시리즈라고 말한 즉, 그때 입었던 핑크발랄한 옷과  다를 바가 없다는 의미였다.

바지는 살에 찰싹 달라붙는 쫀쫀한 타이즈에, 상의는 내가 보기엔 거의 헐벗은 거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이것저것 장식이 잔뜩 있는 외투를 걸쳐 입는, 적어도  안구에는 매우 심각한 위협이 되는 옷들이다.

“...역시 이건 루시아의 앞에서나 입을래.”

루시아가 선물해준 것이니만큼 입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많은 눈앞에 놓일지도 모르는, 오늘 같은 날에는 입기는 싫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까 아주 잠깐 생각하고는 말했다.


“루시아말고는 아무한테도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으니까.”

“흐음, 흐음... 과연, 주인님의 뜻은 알겠습니다.”

내 말에 에루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확실히 이번에 가시는 곳은 ‘요정향’이었지요. 그곳에는 루시아 아가씨만은 못하지만 인간들에게는 미색이 빼어나기로 유명한 엘프들이 살아가고 있으니 굳이 주인님의 성적 매력을 돋보여주는 의상을 입고 가시는 것은 루시아 아가씨도 좋지 않게 여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런 걸로 쳐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