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24화
동정은 하지 않았다. 그 남자의 업보이니까. 노예사냥꾼, 말 그대로 사람을 노예로 삼기 위해 사냥을 하는 자들을 말했다. 그런 남자가 사냥감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도리어 사냥 당했을 뿐이었다. 그런걸 동정할 만큼 나는 착해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놀랄 정도였다. 어째서 아직까지 남자가 살아있는지. 노예사냥꾼인 남자를 보자 떠오른 탓 이었다. 드래곤이 부여한 기억 중에는 노예사냥꾼에 대한 것 또한 있었다.
그들의 생태, 섭리 그리고 그들의 처분에 대해서도. 노예사냥꾼은 한마디로 말해서 고소득 고위험 직종이었다. 이걸 직업으로 칠 수 있다면 말이다. 노예사냥에 성공하면 어마어마한 돈벌이가 되지만 되려 실패해서 붙잡히게 된다면 대부분이 그 즉시 처분된다. 문자 그대로, 처분되는 것이다. 목이 베이고, 시체는 불태워진다. 그리고 잘린 목은 효수되어 오랫동안 방치된다. 들짐승과 날짐승들에게 파 먹히고, 벌레들에게 남은 살점을 뜯긴다. 그렇게 뼈가 남을 때까지 방치된다. 그것이 이 세계에서 노예사냥꾼에 대해 처분하는 방법이었다.
그런 것이 이 세계의 상식이었다. 그것이 이 세계의 당연한 것이었다. 사냥에 실패한 주제에 살아남은 노예사냥꾼 같은 것은 본래 존재할 수 없는 법이었다.
하지만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미처 처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유는 우리가 이곳에 왔기 때문이었다. 루시아네스와 내가 이곳에 왔을 때, 목만 남은 노예사냥꾼들의 시체들이 주렁주렁 열매처럼 매달려있다면 그 꼴이 참 볼만했을 거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곳에 이들을 수용하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이해도 갔다. 어째서 카에네스가 나와 루시아에게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려했는지.
남자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인간이었다. 루시아네스가 나에 대해서 어떻게 소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은 처음 나를 봤을 때, 내가 인간인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놀라지 않았었다. 그 말은 즉, 내가 인간인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런 그들이 나와 같은 인간을, 아무리 노예사냥꾼에 불구하더라도 그들의 시체를 자랑스레 내걸을 수 있었을까? 자랑스럽게 우리가 노예사냥꾼들을 잡았노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아니, 불가능할 것이다. 적어도 나라면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카에네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으, 으으...”
그때, 남자가 신음과 함께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나를 바라봤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너, 너는...?”
빛을 잃은 듯 했던 남자의 눈에 돌연 생기가, 아니 독기와 같은 것이 깃드는 것이 보였다. 삶의 의지. 살고자하는 생존본능이 외눈만이 남은 남자의 눈에 깃드는 것이 보였다.
꿈틀하고, 남자의 두 눈의 희망이라는 감정이 깃드는 것이 보였다.
“인간...? 너는 인간인건가?! 어째서 이곳에...!”
“무엄하다!”
남자가 몸을 일으켜 세우고, 철창으로 가로막힌 가운데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 내 옆에 서있던 보초가 들고 있던 창을 들이밀었다.
“감히 이 분이 누군지 알고 지껄이는 건가?!”
크읏, 하고 남자는 목덜미 바로 밑에 들이밀어진 창날에 주춤하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 시선은 분명 나를 향하고 있었다. 끈덕지게, 끈질기게, 남자의 시선은 오롯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마치 나를 마지막 희망, 혹은 동아줄을 보는 것처럼. 오직 나만이 당신이 살아날 구명줄이라는 것처럼.
“자, 자네. 호, 혹시 이들과 친분이 있는가? 그렇다면 나를 풀어주게! 이건 오해일세! 나는 그들을 노예로 삼기 위해서 여기에 온 것이 아니야! 나는 그저...”
“그저?”
스스로가 듣기에도 놀랄 정도로 냉정한 목소리가, 낮게 깔린 목소리가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그런 나를 보며 목덜미에 서리가 내려앉은 것처럼, 남자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말을 이엇다.
“그, 그저... 그래, 맞아. 나는 상인일세. 그저 이곳을 지나쳐가려 했을 뿐인 상인이였네. 그러니 제발!”
거짓말. 내 뒤에 시립하고 있던 에루나의 감정이, 그녀의 생각이 내게 스며들기도 전에 나는 남자가 한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남자는 자신의 거짓말. 자신을 보고 상인이라고 말한 것을, 그것을 어떻게든 합리화시키려는 듯 이런 저런 변명을 자질구레하게 내게 내뱉었지만 이미 나는 남자가 하는 이야기들이 전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뒤였다.
왜냐하면 남자의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눈이, 나를 너머, 내 뒤에 서있는 보초와 에루나를 바라보는 그 눈이.
탐욕과, 분노 그리고 욕정으로 가득한, 그 날 보았던, 그 소녀를 보았던 무수한 남자와 같은 눈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정적으로,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에릭’의 「일구이언」에 간파합니다! ‘에릭’이 숨기고 있던 진실을 간파했습니다! ‘에릭’은 플레이어 ‘이지경’님에게 진실을 숨기고 있습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에릭’의 「철면피」를 꿰뚫었습니다! ‘에릭’의 진실된 얼굴이 드러납니다!]
귓가에 울리는 알림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하나밖에 남지 않는 외팔로 철창을 붙들고서, 내게 애원하는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거기에 있는 것은 분노와 욕심으로 일그러진 추악한 얼굴로, 나에게 울면서, 추레하게, 그리고 구질구질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자의 모습만이 있었다.
스르륵...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리고 저릿저릿할 정도로 느껴지는 살기에 돌아보자 에루나의 모습이 보였다.
어디에서 꺼냈는지 모를 단검을 손에 쥐고서, 차갑게 남자를 노려보는 에루나의 모습이 말이다.
“주인님, 명령을.”
어두컴컴한 감옥의 안에서도, 에루나의 손에 쥐어진 단검의 예리한 칼날은 빛을 반사하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단검을 손에 들고 있는 에루나의 얼굴은 차가운 칼날보다도 더욱 냉혹하게 얼어붙어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 내가 몰랐던 에루나의 또 다른 얼굴.
그 얼굴을 보고서, 나는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곳, 남자와 같은 노예사냥꾼들을 수금하고 있는 이곳에 함께 왔던 다른 한 명의 이름을.
“카에네스.”
내 부름에 에루나의 뒤에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서있던 카에네스가 다가와서 말했다.
“네! 넵! 지금 즉시 이 자를 풀어 해방하겠습니다! 또 같이 붙잡혀있던 자들도...”
뭔가 착각했는지 다급하게 그렇게 말하고는 보초에게 철창을 열라고 말하던 카에네스를 에루나가 막아 세웠다. 갑자기 자신을 막아 세운 에루나를 보며 어리둥절해하는 카에네스의 표정이 불빛이 적은 어둠 속에서도 뚜렷하게만 보였다. 그런 카에네스에게 말했다.
“처리해.”
“네, 네?”
“이 자를, 그리고 이자와 함께 잡힌 자들을 처리하라. 그렇게 말했다. 이들을 처리하는 너희들의 방식이 있겠지? 나와 같은 인간이라고 봐줄 필요 없다. 너희들의 뜻대로 하라. 단, 내 눈앞에 띄지 않게.”
“네, 네...! 아, 알겠습니다!”
뒤에서 당황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이미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 내 뒤를 에루나가 뽑아들었던 단검을 다시 어딘가로 집어넣고는 쫓아왔다.
“괜찮으십니까? 주인님.”
“으으응~ 글쎄. 일단 좋은 기분이 아닌 것은 분명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좆같은 기분이겠지.
하지만 내 기분이 나빠진 것은 내 한마디로 방금까지 내게 목숨을 구걸했던 남자가 죽게 되었다는 것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남자뿐만이 아니라 방금 내뱉은 한 마디로 양손으로도 세기 힘든 수의 사람이 죽게 되었다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제발! 제발!! 자네! 아니, 도련님! 공자님! 제발 목숨만은...!”
그리고, 등 뒤에서 들려오는 단말마와 같은 남자의 아우성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나는 밖으로 나가는 계단을 오르며 중얼거렸다.
“어딜 가나 똑같구나.”
단지 그것만이, 욱신거리듯이 가슴을 옥죄여왔다.
“감히...”
그런 나를 뒤쫓아 오던 에루나가 입을 열었다.
“감히 주인님의 비천한 종이 여쭙겠나이다. 어째서 직접 그를 처리하지 않으셨습니까? 어째서 저에게 그 자를 처리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셨습니까? 주인님께서는, 그것을 원하셨던 것이 아니셨습니까?”
가장 먼저 내 가슴 깊이 꿈틀거렸던 충동을, 억제되지 못했던 감정을 읽고서 움직였던 에루나가, 나를 위해서 단검을 손에 쥐었던 에루나가 그렇게 물어왔다.
“나는 선인이 아니니까.”
내 말에 에루나의 감정이 내게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에루나와 나 사이에 연결되있는 예속 각인이, 그녀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알려주었다.
의문.
그리고 납득.
아마 내가 느꼈듯이 에루나 또한 느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나는 에루나에게, 아니 나에게 들려주듯이 말했다.
“아무리 나를 위해서라도, 누군가를 죽이는 너를 보게 된다면 나는 너를 멀리하게 되겠지.”
그것이 아무리 비루먹어도 모자랄 인간쓰레기를 처리했을 뿐이더라도. 나라면 그랬을 것이다.
“네 손이 나를 위해 붉게 물든 것에 불구할지라도, 나는 아마 너를 꺼려하게 될 거야.”
에루나가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나로 인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나는 그랬을 것이다.
나는 선인이 아니니까.
나는 누군가를 쉽게 미워하지 않았다. 자랑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 나의 주의였다.
단지.
“나는 용서하지 않아.”
나 스스로조차 용서하지 못했으니까.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