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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화 〉42화 (42/370)



〈 42화 〉42화

우선 호신의 방패를 도로 팔찌의 형태로 바꿨다. 이 팔찌를 사용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은 에루나의 마력이었다. 에루나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위해서 일하고 있을 텐데 그런 에루나의 마력을 이런 곳에서 허투로 사용하기엔 조금 그랬다.

그리고 훌쩍 뛰어 프록과의 거리를 벌렸다. 생각보다 프록이라는 괴물 개구리의 혓바닥이 엄청 길었다. 거의 1미터는 족히 뻗어 나온  같은데. 이래서야 내가 들고 있는 검보다도 훨씬 긴 리치를 갖고 있는 셈이었다.

이걸 어쩐다.

내가 배운 것들이라고는, 따지고 보면 멀리서 공격해오는 루시아의 마법을 피하거나 막는 것과, 반대로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공격해오는 에네스타의 공격에 대처하는 법. 이  가지라고 할  있었다.


어느 쪽이든 나보다 격상의 상대와 싸워서, 아니, 그 격상의 상대의 공격으로부터 시간을 버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사태에 대처하고, 상황이 해결될 때까지 시간을 버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나도 아주 멍청이는 아니었다. 갑자기 이런  마구 배우기 시작한 것이 그 날 이후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때는 에루나가 무엇을 경계했고, 무엇에 대해서 슬퍼했는지 몰랐다. 에루나가 숨기려고 했으니까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대충 그때 무슨 일이 있었다는  정도는 알  있었다.


아니, 눈치 채지 못하는 게 이상했다.  다음날에 내 검술 스승으로 에네스타가 붙고, 루시아와 마법 수련을 하기 시작했으니 아무리 둔한 나라도 아 뭔가 일이 있었구나, 하고 깨닫는 눈치는 있었으니까.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배운 것들이라고는 저게 다였고, 그걸 다르게 말하자면 나랑 엇비슷 실력의 상대, 하지만 나보다 더 멀리서 공격이 가능한 상대에게서 접근해서 공격하고, 쓰러트린다는 것은 전혀 배운 적이 없다는 게 됐다.

아니, 애당초 뭔가 쓰러트린다는 것도 내 일생에서 해본 적이 없는 경험이지만.

순간 머릿속으로 떠오른 것은, 냅다 뛰어서 칼을 꽂는다는 단순하고 심플한 공격방식이었지만. 역시 그건 조금 그랬다. 뛰어가던 도중에 한두 대는 맞을 것 같고. 그래서야 애당초 목적이었던 한 대도 맞지 않는다는 것을  수 없었다.


정신 차리자, 속으로 그렇게 되뇌며 쿠겍하는 울음소리를 내는 프록의 움직임을 바라봤다.

프록 역시 그런 나를 경계하듯이 꾸룩거리며 움직였다.


에네스타였다면 여기서 내가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연이어서 공격을 했겠지만, 상대는 에네스타같은 초인이 아니였다. 그렇다고 루시아처럼 내 행동을 서서히 좁히면서 옭아가는 스타일인 것도 아니었다.


상대는, 프록은, 에네스타보다도 느리고 루시아처럼 머리가 좋은 것이 아니었다. 프록의 공격인 몸통박치기나 혓바닥도 루시아의 바람의 창처럼 매섭지 않았고, 에네스타의 검과 비교하면 하품이 나올 정도로 약했다.

눈으로는 차마 쫓기에도 버거워서, 언제나 보는 것과 동시에 움직이는 것을 강요하던 둘에 비하면, 눈으로 움직이는 게 뻔히 보이는 프록의 공격은 아무것도 아닌 셈이었다.

오히려 어째서 이런 거에 놀랐을까, 스스로도 조금 어이가 없어졌다. 프록의 모습 때문일까. 확실히 혓바닥이 날아오는 모습이 조금 기괴하기는 했다. 엄청 징그럽긴 했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거나, 놀라 나자빠져도 우습지 않을 정도로 징그럽게 생기긴 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징그러운 것 정도는 아무 문제없었다. 조금 바짝 정신을 붙들면 그 정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쿠겍!”

나는 몸통으로 부딪혀오려는 프록을 피하기 위해, 몸을 옆으로 젖혔다. 하지만 곧바로, 프록의 혓바닥이 그런 내 몸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읏차.”

그래도 역시 피할 수 있는 속도였다. 애당초 비교대상이 이상했다. 루시아의 바람의 창, 에네스타의 검, 그 다음이 이 개구리 녀석의 혓바닥이라니. 프록으로써도  둘과 비교당하는 건 너무한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상대해본 거라고는 그 둘이 전부인데 별  있나.


하지만 이걸로 알았다. 적어도, 프록의 움직임은 재빠르더라도 내가 보고서 피하지 못할 수준의 공격은 아니란 것을.

시야의 밖에서 공격해오더라도, 보는 순간 어떻게든 피할 수 있는 수준의 공격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일단 안심할 수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프록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뛰기 전에 다리의 이동. 숨을 들이쉬는 순간. 눈동자의 움직임.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언제나 ‘보는 것’과 ‘움직이는 것’ 두 가지를 강요하듯이 내게 주입했던 루시아와 에네스타가 있었기에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번에는, 오른쪽!’

그리고 그렇게 머릿속에서 패턴화시킨 프록의 행동을, 프록이 행동하기 전에 앞서 읽어내는  역시 쉬운 일이었다.

나는 프록이 혀를 꺼내기 위해 목울대를 움직이는 것과,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눈을 보고서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써걱!

“으아...”

단숨에 휘둘러진 칼날에 프록의 혓바닥이 핏물을 사방으로 튀기며 날아갔다. 칼날이 미끄덩하고, 무언가를 가르는 감촉을 온전히 손바닥을 통해 남긴 채로 말이다.

“쿠아악!”


그리고 혓바닥이 잘려나간 프록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이 보였다. 입가에 피거품을 물고서 이리저리 머리를 흔들어재끼는걸 보니 엄청 아픈 모양이었다. 아니, 나 같아도 멀쩡했던 혓바닥이 잘려나가면 아프겠지만.

흘끔, 카에네스를 바라보자 내 시선을 느낀 듯 카에네스가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귀엽지 않느냐니 뭐니 해서 혹시 아끼는 마수인가 싶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던 모양이었다. 굳이 외견상으로는 티가 나지 않는 혓바닥을 노려봤는데 괜한 짓이었나 보다.


“그럼...”

검을 고쳐 쥐고서, 붉게 변한 눈으로 이쪽을 노려보는 프록이, 내게 달려들려는 움직임을 보자마자 나는 검을 휘둘렀다.

라이어스 제국검술의 가장 기본이 되는 초식이자, 최후의 초식. 21번째 초식.

동시에 라이어스 제국검술의 시작이 되는 초식.


“쿠엑!”

써억, 하고 달려들었던 프록의 앞다리를 베어내고, 그대로 멈추지 않고 옆구리를 베어 넘겼다. 계속해서 몸통만한 머리를,  계속해서 이번에는 고통으로 움츠러든 뒷다리를.

검을 움직일 때마다, 프록의 몸의 일부가 조금씩 썰려나갔다. 옅은 초록빛을 띈 피를 흩뿌릴 때마다, 프록의 몸이 잘게 썰려 바닥에 뿌려졌다.


“카악!”


그런 나에게 입을 벌려, 카에네스가 알려주었던, 독성을 지닌 침을 뱉는 프록이었지만 그것 역시 대단한 것은 되지 못했다. 고개를 옆으로 젖혀 피하고는 그대로 벌어진 프록의 입에 칼을 쑤셔 넣었다.

푸욱!

“쿠, 쿠에! 쿠에에에엑!”

버둥거리는 프록의 머리를 붙잡았다. 엄청 미끌거렸다. 기름을 엄청 바른 젤리를 만지는 듯한 감촉이었다. 가능하면 다시는 만지고 싶지 않은 감촉을 느끼면서, 나는 프록의 머리를 꾸욱 붙든 채로, 검을 움직였다.

써어억, 하고... 칼날이 프록의 커다란 입안에서부터 움직여서, 그대로 몸통을 내리 베어갔다.


무언가를 죽인다는 것. 그것도 자기가 직접 죽인다는 것은 아마도 이것이  경험이었지만...

그때와 비교해서, 몸이 떨리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아무리 경험하더라도, 역시 이건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 무언가를 직접 죽인다는 것은, 아무리 그래도,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다. 단지, 해야만 한다면....

“흡!”

써걱, 하고 프록의 몸이 그대로 갈려서, 눈앞에서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단지 해야만 한다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었다.





“흠... 잘하셨구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그렇게 말해준 에네스타를 보고서, 나는 눈앞에 널부러진 프록의 시체를 흘끔 쳐다보고는 대답했다.


“칭찬 고마워.”

쑤욱, 프록에게 꽂아 넣었던 검을 뽑아, 핏물을 닦았다. 이 검은 루시아가 내게 선물해준 검이었다. 내게는 명검이고 뭐고 검을 보는 눈은 없었지만 에네스타의 검을 몇 번이나 받아넘겨도 날이 상하기는커녕 멀쩡한데다가, 아까 만져봤을 때도 미끌거리기는 했지만 단단한 근육을 갖고 있던 프록의 몸을 힘을 들이지 않고도 베어버렸던 걸 생각하면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좋은 검인 것은 틀림없었다.

그런 걸 핏물이 묻어있는 채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게 루시아가 준 검이라는 것이었지만.

“음, 드래곤의 반려라면 이보다 더한 마수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구려.”


“너무 과한 기대는 하지 말아주라. 봐, 지금도 손 떨리고 있거든?”

“엄살 부리지 말게.”

엄한 선생님이었다. 별로 엄살 같은 게 아니었는데 말이지.


“좋아, 어느 정도 라이어스 제국검술을 사용할 수 있게  것 같으니... 드래곤의 반려, 혹시 내 검술을 배워볼 생각은 없나?”

“응? 에네스타의 검술?”

“아아, 별로 이름 같은 것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제법 쓸만한 검술이라네.”

검으로는 최고라고 할 수도 있는 검주의 검술을 제법 쓸만한 검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야 상관없지만...”

상관은 없었지만, 배울 시간이 없었다. 라이어스 제국검술이야 운좋게 처음부터 기능으로 갖고 있었고, 미친듯한 실전과 같은 대련으로 빠르게 랭크가 올랐다지만, 새로운 검술을 배우는 것은 별개의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C랭크에 오른 뒤로는 이렇다할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는 라이어스 제국검술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좀 더 빠르게, 좀 더 능숙하게 검을 다룰 수 있게 되어가고는 있었지만, 기능으로써의 제국검술은 여전히 C랭크였으니까.

이제 며칠 뒤에는 떠나는 내가, 에네스타의 검술을 배운다치더라도 얼마나 배울 수 있을까.


“아,  걱정하는지 알겠네만 안심해도 좋네. 나 역시, 크리샤네아님의 영지로 드래곤의 반려가 떠날 때, 동행할 예정이니 말일세.”


“...엥? 하지만, 여기는 어쩌고?”


“요정향이야 루시아네스님이 계시는데 무얼 걱정하겠나?”

그야 그렇긴 하지만, 아니 루시아를 제외하더라도 당장 에네스타의 옆에 있는 카에네스도 세 가지 속성의 정령을 자유자재로 소환할 수 있는 정령사라고 했다. 카에네스 말고도 대다수의 주민들은 활이면 활, 정령이면 정령, 마법이면 마법, 무엇하나 빠질 데가 없는 전사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요정향은 좋게 말해도 시골동네정도의 크기니까, 이미 전력으로는 과잉이라고 해도 좋았다.

“어, 음... 그렇지만...”

그 말은, 크리샤의 영지인 슈페리아에 가더라도, 이 검술 수련을 가장한 폭행사건은 계속된다는 이야기인가.


“뭔가 불만이라도 있나?”

“...아니, 없어. 잘 부탁할게. 에네스타.”


“음! 나야 말로 앞으로 잘 부탁하네, 드래곤의 반려.”

고개를 끄덕이며, 씨익 웃는 에네스타에게 나는 뭐라고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참, 감각을 잊어버리기 전에 나와 다시 한 번 대련을 해보는건 어떤가?”

“...아니, 에네스타도 힘들테니까 괜찮아.”

“뭘 사양하지 않아도 괜찮네. 전혀 힘들지 않으니까.”

사양하는게 아니라 하기 싫다고 돌려말하는겁니다. 이미 에네스타와의 대련, 그 이후에 이어진 프록과의 실전으로 내 정신력은 바닥이라고. 조금 쉬게 해주라...

하지만 그런 내 눈빛공격은 에네스타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대신 그 옆에 있는 카에네스를 바라봤지만 카에네스는 나를 보며 쓴웃음을 짓고는, 프록의 시체를 치우기 시작했다.


티가  나는 외면이었다. 너무 상쾌하게 도와달라는 무언의 신호를 외면받으니 오히려 산뜻한 기분이었다.

두고 보자.


“...그, 럼, 사양하지 않고...”

어쩐지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라 힘없이 검을 쥐고 있던 내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헤노스님! 루시아네스님께서 찾으십니다.”

무심코 반길 뻔 했다가, 뚱한 표정을 짓는 에네스타의 얼굴을 보고서 표정관리를 하며 고개를 돌리자, 나타를 비롯한 에오시스 자매들이 보였다.


그녀들은 아는 척을 하는 아버지, 카에네스를 보고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는 곧장 내게 다가와 고개를 숙여보였다.

“루시아가 나를 찾는다고?”


“네, 무슨 일인지는 자세히 듣지 못했습니다만... 몸가짐을 바로하고 준비되면 곧장 침소로 와주시길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침소라니?”

루시아의 침소 같은 건 가본적도 없었다. 그런 내 물음에 나타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베헤노스님의 침실로 오시라는 말씀이였습니다.”


“아, 그래.”

괜히 놀랬다가 손해본 느낌이었다. 아니, 손해본건 아니었지만. 그냥 그런 기분이었다.


“미안, 일이 이렇게 돼서 대련은 나중으로 밀어야겠네.”

“...뭐, 어쩔 수 없구려. 루시아네스님께서 부르시는 것이니 내가 막을 수 있는것도 아니니.”

“...막을 수 있다면 막았다는 것 같다?”

“그럴 리가.”

내 말에 시선을 돌리며 그렇게 말하는 에네스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나타에게 말했다.


“그럼 준비를 해야겠지.”

“예, 베헤노스님이 씻으실 물과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놨습니다.”


“그건 다행이군. 아, 혹시나 싶어서 말하는 거지만. 씻는 것은  혼자해도 되니까 목욕탕으로 들어올 생각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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