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6화 〉46화 (46/370)



〈 46화 〉46화

눈앞에서, 부족에서 가장 강한 족장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입고 있던 옷조차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광경을  낙시안들을 이를 딱딱 부딪치며 두려움에 떨었다.

낙시안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사실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결국 죽기 마련이었다. 하물며 마실 물, 먹을 음식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이 땅에서 죽음이란, 당장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당연한 것이었다.


다만...


다만 이토록 허망하게, 이토록 허무하게 죽어버리는 경우는 없었다.


그들이 죽음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유는, 그 죽음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사냥을 하고 고기를 얻어, 가족들의 배를 불리기 위하여 싸우다 죽는다.


 죽음은 슬프지만, 의미는 있었다.

자식들과 가족들을 위한, 살아가기 위한 땅을 지키기 위해, 혹은 빼앗기 위해 싸우다가 죽는다.

그 죽음 역시 슬프지만, 의미는 있었다.

설령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죽음은,  다른 누군가가 살아남는다는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허망하게, 그것도 자신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자가 이렇게나... 아무런 의미도, 존재의 증거도 남기지 않고 죽어버렸다.


그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른 에루나가 그들에게 있어서, 어떻게 보일지는 뻔했다.


그들의 눈에는 그야말로, 갑작스레 그들의 땅에 찾아온 죽음의 사신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서, 사신으로 밖에 보이지 않은 에루나가, 자신을 보고 있는 낙시안들을 둘러보다가 이미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린 자락스가 있던 땅을 밟으며 말했다.

“이 자를 대신해서 저와 이야기하실 분은 없습니까?”


주춤, 하고 에루나가 다가가자 낙시안들이 뒤로 물러났다.


혹시라도 있을지 몰랐던 위험을 배제하기 위해서, 너무 과한 일을 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에루나는 생각했다.

죽이기보다는 머리를, 그 안에 있는 뇌를 흔들어 부숴버렸다면 이들이 이토록 두려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했더라면 보기에는 덜 위협적인 모습으로 위험을 제거했을 수 있었을 테니까. 결과적으로 말해서, 그렇게 했다면 자락... 뭐시기하던 남자에게는 죽은 거나 다름없는, 오히려  좋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이미 고위의 파괴마법으로,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지워버린 뒤였다. 가루는 이미 바람에 날려 사라져버린 뒤였다. 애당초 죽은  살릴 수도 없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에 후회하기보다는, 벌써 이름조차 기억에 없는 자를 떠올리기 보다는, 에루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시   말했다.


“아무나 상관없습니다. 조건만 충족한다면, 누구나 상관없으니까.”

에루나의 말에, 늙은 노파가 앞으로 나서 물었다.


“...그 옷, 그리고  말투는. 당신은 고향에서 오신 분입니까?”

고향,  말이 에루나가 온 땅. 도바난과 아투스를 이르는 낙시안의 말이라는 것쯤은, 에루나도 금방 눈치 챌  있었다.

하지만 에루나는 굳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드래곤의 땅, 그리고 인간과 그를 비롯한 모든 종족들의 땅에서 왔습니다. 당신들의 고향이라고 하셨습니까? 당신들의 고향은 이곳이 아닙니까?”

“그, 그건...”


서슬 퍼런 에루나의 눈빛에 노파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압박은 이정도로도 충분하겠지. 에루나를 이곳에 보내기 전에, 루시아의 이야기를 떠올린 에루나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당신들은 몰라도, 당신들의 후손은  고향이라는 땅을 새롭게 찾을 수도 있겠죠. 어디까지나, 만약입니다만.”

노파가 그런 에루나의 말에 퍼뜩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노파의 반응을 보아하니, 이곳에서는 유일하게 낙스의 밖. 그러니까, 도바난과 아투스에 대해서 조금 알고 있는 자로 보였다.


노파의 뒤에서, 두려움에 떨며 노파와 에루나를 바라보고만 있는 다른 낙시안들과는 다르게, 눈곱이 끼고, 빛이 죽어있던 노파의 눈동자에 힘이 돌아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눈동자에 깃든 것은 분명 희망, 혹은 선망이라고 부를만한 것이었다.


노파가 어떤 식으로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반응을 보아하니 대충 어떨지 짐작이 갔다.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저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당신이 알고 있는 그 땅으로 돌아갈 사람을.”

“그렇다면 저를...!”


노파가 그렇게 말하다가, 이내 말을 삼켰다.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에루나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노파가 예상했던 대로, 에루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안타깝게도, 당신은 제가 생각하는 모든 조건에서 벗어납니다. 당신은, 그래요. 부디 이 땅에서 죽어주시길.”


냉정하고, 한 치의 동정조차 없는 차가운 말이었다. 하지만 에루나는 노파가 낙심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을 이었다.

“제가 바라는 자는, 이렇습니다. 첫째, 투기를 사용할  알아야 한다는 것. 제가 보기엔, 당신은 투기를 사용할 수 없어 보이는군요. 마법사입니까?”

“...저는 주술사입니다.”

“주술인가요. 마법과는 다른 체계의, 마력을 사용하는 방법인가 보군요. 어쨌거나, 어째서 당신이 뽑히지 못하는지 알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노파를 보고서, 에루나는 말했다.


“두 번째, 어릴수록 좋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며, 이곳에 대한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어린 나이라면 금상첨화입니다만, 그래서야 투기를 쓸 수 없을지도 모르니 희망사항에 불과할 뿐이군요.”


벌써  가지나, 노파는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서, 희망을 버렸다. 하지만 그 덕분에, 노파는 오히려 자신의 욕심이 아닌, 종족으로써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물었다.

“세 번째,  번째는 어떻게 됩니까?”


노파의 말에 에루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녀를 낙스로 보낸 루시아네스가 내걸은 조건은 두 가지였다.

하나, 에루나의 주인인 이지경에게 투기를 가르칠  있는, 투기를 익힌 자를 데려올 것.


둘, 낙스에 대한 미련이나 그 종족들, 낙시안에 대한 것을 잊을 수 있을 만큼,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고 가치관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어린 자를 데려올 것.

이 두 가지를 충족한 자를 데려오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던 에루나였지만, 세 번째 조건을 묻는 노파의 말에 생각했다.


에루나에게 루시아가 허락한 권한은 그리 크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크고 작은 기준은 어디까지나 에루나가 보기엔 그렇다는 것이지, 저들도 똑같이 느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실제로 노파가 보기에는 좀 더 조건이 달려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앞서 말한 두 조건이 충족하는 자들을 여기에 모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세 번째 조건에 충족되는 자는, 제가 직접 고르도록 하겠습니다.”


스스로 조건이 더 없느냐고 묻는데, 아 이거뿐이니까 상관없습니다, 하고 알려줄 만큼 에루나는 상냥한 성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좋다고 조건을 달았으면 달았지. 에루나는 고개를 숙이는 노파를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노파가 낙시안들을 불러 모으고, 그리고 그중에서 가려 뽑은 자들이 모이기까지 하루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낙시안들이 모인 것은 금방이었지만, 투기를 사용할 수 있는 자, 그리고 나이가 어린 자, 마지막으로 에루나가 보기에 쓸 만하다 싶은 자들만 고르다보니 다소 시간이 걸린 탓이었다.


그렇게 모인, 백여 명의 어린 낙시안들을 보며 에루나는 고민에 빠졌다.


“생각보다 수가 많군요.”

과연 낙스라고 해야 할까. 인간들의 기준으로 따지자면 아직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투기를 익히면 천재라고 불렸는데, 낙시안들에게는  천재라고 부를만한 아이들이 백 명이 넘는 것이었다. 에루나가 거기서 더 가려 뽑지 않았더라면,  수는 더 많았을 것이었다.

“흐음...”

두 가지의 조건을 충족한 자를 데려오기 위해서, 루시아가 허락한 상한선은 세 쌍 이하의 낙시안을 낙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 그리고 그렇게 낙스를 떠나온 자들의 숫자만큼의 양식을 이곳에 보내주는 것과 데려온 자들에게는 이지경이 투기를 습득한 후에 자유인의 신분을 내려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이중에서 뽑아봤자 고작 여섯. 그것도 성별로 나누면 각각 세 명씩 가려서 뽑아야한다는 이야기였다.


“우선, 거기의 바록과 그쪽의 바쿠는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우선  명. 에루나에게 지명당한 바쿠와 바록이 앞으로 나왔다. 에루나에게 지정 당하자마자 표정이 썩어 들어가고, 금방이라도 죽을  같은 얼굴이 되었지만 말이다.


20살이 채 되지 않고, 투기를 다룰 수 있는 자.  두 조건에,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에루나가 낙스에서 도착한 날에 보았던 둘이 포함되어 있었던 탓이었다.


다른 둘, 무락과 우투는 안타깝게도 이미 성인이었다. 아니,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일단 바록과 바쿠는 뽑히지 않은 무락과 우투를, 엄청나게 부러워하고 있었으니까.


“이걸로 둘입니까. 나머지를 뽑아야하는데...”

벌써 둘, 그것도 남자들로만 뽑았으니 일단 균형을 맞춰야하는 에루나의 입장상 여자인 낙시안을 최소 둘은 뽑아야 했다. 하지만, 투기를 익히는 자들은 대부분 전사가 되기 위해 싸움을 나서는 남자들의 몫이었다. 낙시안들에게 있어서 사냥과 전쟁에 나서는 것은 남자들뿐으로, 투기를 익힌 여자들의 수는, 그것도 나이가 어린 자들의 수는 턱없이 적었다.


하지만, 적다는 것이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에루나는 두려움에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는 낙시안들을 살펴보다가 이내 한 소녀에게 시선을 두었다.


다른 아이들이, 에루나를 보며 두려워하는 반면, 그 소녀는 똑바로 에루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쳐다본다고  만한  아니었다. 그 소녀는, 명백히 살기를 담아 에루나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소녀를 보며, 에루나가 입을 열었다.

“이름을.”


그런 에루나에게 소녀가 대답했다.


“...네가 죽인 자락스의 딸, 로로.”

“과연, 당신이 저를 노려본 이유는, 당신의 아비를 제가 죽였기 때문입니까?”


에루나의 물음에 로로라고 밝힌 소녀는 빤히, 에루나를 노려봤다. 자신의 아비를 죽인 자에 대한 원망과 증오일까. 그렇다면 그 분노는 타당했다. 생명을 가진 자라면 당연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에루나는, 천천히 로로라는 소녀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려줬다. 그녀가 자신에게  말을. 거기에 증오가 담겨있더라도, 원망이 담겨있더라도, 에루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을 테지만 일단 그녀의 아비를 죽인 자로써, 그 딸인자에게 원망을, 분노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종의 예의, 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에루나의 예상과 다르게, 로로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자락스,  녀석은 내가 죽이려고 했어. 근데, 네가 빼앗았어.”


그러니까, 하고 로로는 에루나에게 어디에 숨겨뒀는지 모를, 돌을 깎아 만든 것 같은 단검을 뽑아 겨누며 말했다.

“나는, 내 사냥감을 빼앗은 당신을 죽일 거야. 그러니까, 너는 나를 데려가야 해.”


“당신이, 저를 죽이겠다는 말입니까? 고작 그따위의, 장난감으로?”

에루나는 손을 뻗어, 로로가 들고 있단 단검을 붙들어 잡았다.

뿌득, 하는 소리와 함께 단검은 너무나도 쉽게 부러지고 말았다.

“자, 그렇다면... 이렇게 하면 당신은 어쩔겁니까?”


에루나의 말에 로로가 대답했다.

“그래도 죽이겠어. 무기가 없다면, 주먹으로, 주먹이  된다면, 다리로, 그마저도 안 된다면 물어뜯어 죽이겠어.”

“과연.”

스윽, 하고 에루나는 로로에게 손을 뻗었다.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낙시안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불쌍하게도, 괴물의 신경을 건드린 로로가 죽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아 질끈 감았던 눈을 뜨자. 그 눈에 비쳐 보이는 광경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 전혀 별개의 것이었다.


“훌륭한 대답입니다. 당신은 교육해볼만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로로라고 하셨습니까? 저쪽으로 가주십시오.”


로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은 에루나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에루나를 보며 로로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날 죽이지 않을 거야?”

“죽일 필요가 없으니까, 죽이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죽일 생각인데도?”

“아마 당신이 평생토록 노력하더라도 무리일 테니까 문제없습니다.”


쁘득, 하고 이를 가는 로로를 보며 에루나가 말했다.


“분하십니까? 그렇다면 저를 죽일  있을 만큼 강해지면 그만입니다. 무리지만.”


휙! 하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에루나의 손을 뿌리친 로로가 성큼성큼, 죽을 날을 기다리는 노인과 같은 얼굴로 서있는 바록과 바쿠에게 향했다.


“흐음... 나머지는, 어떻게 뽑으면....”

적어도 한 명, 많더라도 세명은 더 뽑아야하는 에루나는 남아있는 후보들을 바라봤다.

“주인님께 투기를 가르칠만한 자들은, 저 바보 둘로도 충분하겠죠.”


에루나가 보기엔 한참이나 기준 미달이었지만 투기를 다루는 것만큼 제법이었던 두 바보, 바록과 바쿠를 바라봤다. 예법을 가르치고, 예의라는 것을 머리에 쑤셔 넣어야겠지만 에루나에게 그 정도는 간단했다.


“그리고, 저 로로라는 소녀는... 주인님의 시중을 들게 하면 좋겠네요.”


자신을 죽이겠다고 한 로로였지만, 로로의 힘은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던 그녀의 아비와는 다르게, 로로는 턱없이 약하다고 해도 좋았다. 하지만 그 성격을, 다소 손본다면 꽤 쓸 만한 종자가 될 것 같았다.


“아, 그렇게 하면 되겠군요.”

좋은 생각이 떠오른 에루나는, 곧 허공에 그림을 그리듯, 손가락을 휘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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