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9화 〉69화 (69/370)



〈 69화 〉69화

천공성에서 식사를 할 때는 가끔 루시아와 함께 먹을 때를 제외하면 언제나 혼자서 먹고는 했었다. 에루나는 골렘이라 식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다가 천공성의 사람이라고 해봤자 나 혼자뿐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혼자 밥 먹는  이제 끝. 혼자서는 지나치게 넓기만 했던 식당이 떠들썩했다.

바록이나 바쿠는 덩치도 커서 꽤 먹겠구나 싶었는데, 마야나 니아, 로로도 엄청 잘 먹었다. 슈슈도 마찬가지고. 아무래도 낙시안들은 드래곤 못지않은 대식가인 모양이었다.


에오시스 자매나 에네스타는 그들에 비하면 적은 양이기는 했지만, 부피로만 치면 그다지 다를 바 없었다. 특히 에네스타는 몸을 쓰는 일을 해서 그런지 바쿠나 바록 다음으로 엄청 먹어댔다. 둘과 다른 점이라면 채식을 주로 하는 엘프인지라 에오시스 자매들과 에네스타의 앞에는 초록으로 가득했을 뿐.


채식의 특성상 고기로 가득한 낙시안들의 식단과 비교하면 훨씬 푸짐해보여서, 언뜻 보면 에네스타가 더 많이 먹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무튼 배도 부르고 나니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거기에 조용하기까지 했다. 에루나가 에네스타를 비롯해서 새롭게 거주하게 된 이들의 방을 배정해주러 갔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모처럼 방에 혼자 있게 된 나는 머리를 굴렸다.


"음..."


문제는 내가 아무리 짱구를 굴려봤자 뭐 나오는 게 없다는 거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뭔가 번뜩하고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괜히 머리만 벅벅 긁어대다가 머리카락이 뭉텅 뽑혀 나올 뿐이지.

애당초 내가 지금 고민하는 건 답이 안 나오는 것이었다. 오늘 들었던 크리샤의 일이나, 에네스타를 필두로... 이미 저질러버리고  뒤인 낙시안들의 지나치게 올라가버린 충성도 대한 것들이었으니까.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다. 게임이라면 예전에 세이브 해뒀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지만 현실에서 그런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뭔가 고민하더라도 할  있는 게 없다는 거다.

하지만 그런 나라도 한 가지 장점은 있었다. 굳이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바로  장점이었다. 남들이 하루 종일 생각하더라도 고작 몇 시간인거에 불과한 반면, 나는 하루를 하루 그 자체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남들이 1시간 고민하면 나올  내가 2시간이 걸린다더라도 시간적으로 부족할건 없는 거다. 나는 하룻밤을 꼬박 밤새워가며 고민했다. 그렇게 괜한 머리카락만 뽑아대며 하루 꼬박 홀로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랬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거나 하자고.


그리고 내가   있는 것이란, 일단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고민은 잠시 제쳐두자는 거였다. 즉 머리를 비우고 일이나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내가 할  있는 일이란 게 뭐, 대단한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서, 오늘부터 나도 너희 일이나 도울란다.”


“저, 저기...”


내 말에 마야와 니아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왜, 뭐. 도와준다니까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건데.

“이래봬도 제법 잘하니까 아무거나 시켜만 보라고.”


아마 내가 못미더워서 그런 것이리라. 하지만 이래보여도 몇 년이나 자취생활을 한 몸이었다. 귀찮아서 대부분 즉석 인스턴트나 외식으로 배를 채우고는 했지만 간단한 요리는 물론이거니와 청소정도는  수 있었다.

그런 자신감을 갖고 그렇게 말하자 마야와 니아가 서로의 얼굴을 보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그렇다면 베헤노스님의 방을 부탁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우선 내 방 청소인가...


“좋아, 맡겨만 보라고.”

간단한 것부터 차근차근 하면 좋겠지 뭐.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 나는,  3시간 뒤에 한 가지의 간단한 사실을 깨닫았다. 원래 내 세계에서의 내 방과, 천공성에 있는  방의 규모의 차이라는 간단한 사실을.



“끄어억...”


겨우 먼지 털이와 물걸레질을  것뿐인데도 허리가 아작이 날  같았다. 하지만 아직 못 다한 일이 산더미였다.

“...저기, 도와드려도 될까요?”


그런 나를 보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던 에오시스 자매의 필두, 나타가 그렇게 물어왔다. 나타만이 아니라 에샤와 모네도 나타의 옆에서 난감하다는 얼굴을  채로, 찌뿌둥한 허리를 펴고 있는 나를 보고 있었다. 정식으로 시녀로 임명된 마야나 니아와는 달리 에오시스 자매들은 조금 어정쩡한 입장에 있었던 탓에 에루나에게서 이렇다할 일을 배정받지 못한 탓이었다.

그녀들을 내 가신으로 임명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내가 그녀들에게 무슨 직별을 나눠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에루나에게 부여한 권한는 나의 시녀들에게 명령을 내릴  있는 권한이었다. 나의 가신이라는 입장에서는, 아직 제대로  자리를 배정받지 못한 에오시스와 에루나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릴 없이 내 근처에 머물고 있던 에오시스 자매들이었지만 그런 그녀들이 보기에도 내가 하는 짓이 영 그랬던 모양이었다.

응...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얕잡아봤다가 큰 코 다쳤다.

매일 같이 에루나가 뚝딱 해치우는 일이라서, 사실 별거 없겠거니 생각했는데... 내 방 하나 청소하기도 엄청나게 빡셌다.


이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워왔던 에루나가 괴물인 거겠지만... 하지만 그보다 나를 괴롭게하는 것은, 이제 막 시녀의 일을 배우기 시작한 마야나 니아마저도 나보다 훨씬 일을 잘한다는 것이었다.


힘 하나는 장사들인 낙시안이니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도 나도 제법 에네스타와의 수련 덕에 눈에 띄게 능력치가 상승한 만큼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결과만 말해서 그럴 일은 없었다.

나름 자취생활 몇 년으로 제법 가사에 도가 텄다고 생각했는데 에루나의 발끝은커녕  시녀가 된 마야나 니아보다도 못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우쳤을 뿐이었다.


마야와 니아, 둘이서 각각 천공성에 있는 방 하나씩 청소하는 동안 나는 고작 해봐야 내 방의 걸레질을 마칠까 말까 하는 정도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이제 겨우  방 청소의 절반쯤 했을까 말까 했는데, 마야와 니아는 벌써 다른 방을 청소하고 있는 중이었다.


대체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이해가 가질 않아서 마야와 니아의 정보창을 살펴봤다가 납득했다.


이유는 대단한  없었다. 녀들에게 무려 전문(B)에 해당되는 가사 기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째서냐고... 그렇게 생각하다가, 한 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녀들이 갖고 있는 가사 기능은 내가 시녀로 임명했기에 생긴 것이었다. 무려 전문(B)에 해당되는 기능을 말이다. 덕분에 전문가 뺨치는 실력을 갖춘데다가 나보다 훨씬 재빠르고 힘도 좋은 마야와 니아의 상대가 그녀들에 비하면 힘도 약하고 민첩도 딸리는 내가 어떻게 될 수가 없던 것이다.

그래도 마냥 축 늘어지고만 있을 수 없어서, 나머지 정리를 하려고 청소도구를 챙기러 가던 중이었다.

“주인님? 지금 뭘 하고 계시는 겁니까.”

에루나에게 딱 걸려버렸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물걸레를 엉거주춤하게 뒤로 숨겼다. 하지만 이미 들킨 시점에서 늦은 뒤였다.

“...과연, 알겠습니다.”

그런 나를 본 에루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성큼성큼 다가와서 내가 들고 있던 걸레를 강탈해갔다.

너무하다. 제대로 빨아서 물도 쫙 짜낸 직후였는데 무자비하게 강탈당했다.

“이런 일을 저희들에게 맡겨주시길. 그러라고 있는 것이 저희들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심심하시다면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딱히 심심해서 이러고 있던 건 아닌데.

“다른 일이라니, 어떤 거?”

“...뭔가 잊고 계신 것 같습니다만, 마야와 니아를 시녀로 삼은 것은 주인님이기에 시녀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녀들을 여기까지 불러온 원래의 이유를 생각해보심은 어떻습니까?”

원래의 이유...

낙시안들을 불러왔던 일을 말하는 거지? 에루나의 말에 잠깐 생각했다가, 금방 무언가를 떠올렸다.

“아. 투긴지 뭐시긴지. 그거?”

“예, 맞습니다. 할 일을 찾으시는 거라면, 투기부터 익히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에네스타와 바록, 바쿠는 오매불망, 주인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에루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미 눈치 채고 있던 탓이었다. 나에게 집안일의 재능이 전혀 없다는 걸 말이다. 응, 오히려 내가 있어서 일이 더욱 늦어지는 착각이 아닌 기분이 들고 있기도 했고.

나야 어차피 머리나 비울 겸 할 일을 찾고 있던 중이었으니 집안일이나 수련이나 어느쪽이나 매한가지였다.

“바록이랑 바쿠가 어디에 있다고?”


“천공성 내부에 위치한 연무장에 대기시켜놓도록 하겠습니다. 위치는... 에오시스 자매들에게 말해두었으니 명령하시면 안내해줄겁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천공성의 안내를 마쳐뒀던 모양이었다. 나도 아직 어디가 어딘지 다  외웠는데, 천공성에 온지 이제 하루차인 에오시스 자매만도 못한 것 같다.

여기 내 집인데. 딱히 실감은 없지만 일단은 내 집인데... 집 주인 보다도 어제 막 들어온 신입들이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좋지만.

“그럼 생각난 김에 바로 가볼까.”

나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에오시스 자매들에게 부탁해서 예의 연무장이라는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지금은 후회하고 있었다.





"아아아악!"


쭈욱!

마치 엿가락을 늘이는 것처럼, 바쿠와 바록이 내 양 다리와 팔을 붙잡고 양쪽에서 잡아당기고, 이리 꺾고 저리 꺾으면서 주물럭거렸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건 죽을 만큼 아프다는 것이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낙시안들의 신체구조를, 임의로 만들기 위한 행위였다.

낙시안들은 선천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몸에 투기를 익히기 쉬운 구조로 되어있었다. 아무리 단련을 거듭하더라도 그들의 근육은 결코 단단해지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 중의 하나였다.

그렇다고 부드럽다는 건 아니지만. 굳이 떠올리자면 고무 같은 느낌의 근육이라고 해야 될 거다. 쭉쭉, 늘리는 대로 늘어나는 그런 근육.

물론 근육은 근육이니 한계야 있겠지만. 그래도 나와 비교하면 낙시안인 바록이나 바쿠의 근육은 상상이상으로 유연했다. 당장 내 팔과 다리를 무슨 원수라도 된 것마냥 쥐어 잡고 이리저리 비트는 바록과 바쿠는 나보다도 훨씬 덩치도 크고 키도 컸지만 머리만 들어갈 수 있다면 아무리 좁은 곳이라도 몸을 비틀어 꺾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낙시안인 그들도 태생만으로 그런 몸을, 만들고 유지하는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몸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만든 운동법... 그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짓거리의 정체였다.

신체를 부드럽게 하기 위한 운동법. 요가랑 비슷한 구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가보다 더 비틀고 꺾어대는 것 같기는 했지만.


"좀! 살살!"

꾸욱, 몸을 눌러오는 바록 때문에 밀려오는 통증에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내자 바록과 바쿠가 말했다.

"주인, 몸에 힘을 푸시면 편해집니다."


“맞습니다. 좀  편안하게 계시면 저희들이 알아서...”


알아서 내 저승행 편도 티켓을 끊어주겠다고?

내 표정을 본 바쿠가 머리를 긁적였다.

"무슨 몸이 이리 뻣뻣한지..."

너희랑 비교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이래봬도 엄청 유연한 거니까. 스스로 놀라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내 몸이 이렇게 유연했나 싶었으니까.

원래의 몸이었다면 앓는 소리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바록과 바쿠의 고문인지 아닌지 모르겠는 방법이 아주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근력이 1만큼 상승했습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민첩이 1만큼 상승했습니다.]

고작 몇 시간도 안됐는데도, 에네스타와 수련을 거듭할 때마다 간간히 들려왔던 능력치가 상승했다는 알림이 몇 번이나 들려왔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나름 효과는 있다는 뜻이리라. 아파 죽겠지만.


“그럼 오늘은 이정도로 끝마치면...”

결국 바록과 바쿠가 내 눈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니, 그건  되지. 그냥, 조금 살살해달라고.”

그런 둘의 말에 내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자 바록과 바쿠의 표정이 구겨졌다. 어쩌란 건데. 말은 안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느껴졌다.


“나의 주, 그렇게나 아픈가?”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에네스타가 호기심으로 가득한 얼굴로 그렇게 물어왔다.

일단 투기를 익히기 위해, 그릇... 즉, 육체의 단련부터 우선해서 하고 있던지라 할 이 없이 견학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바록, 바쿠가 하는 짓거리를 지켜보고 있던 에네스타가 심심했던 모양이었다.

얼굴에 나도  번 해보고 싶다. 그렇게 쓰여있었다.

지는 검주면서. 별로 배우지 않아도 이미 검주면서...

“궁금하면  번 해보지 그래?”

“음? 그래도 되겠나?”


내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에네스타가 바록과 바쿠를 보자, 바록과 바쿠 역시 서로의 얼굴을 보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상관없다.”

“너는 강자다. 거기에 같은 분을 주인으로 모시는 동료이니 아무래도 좋다.”

“그거 다행이군... 그럼, 나의 주. 잠시 실례하겠다.”


“실례고 뭐고, 그냥 옆에서 하면 되는...  지금 뭐하냐?”


꾸욱, 하고 내 등 위로 올라탄 에네스타를 보며 고개를 돌려 그렇게 묻자, 에네스타가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로 아픈지 궁금해서 말이다.”

“아니, 근데 거기서 뭐하냐... 으다다다닷!?”


꾸욱, 하고 에네스타가 무게를 실어오자 앞으로 접혀진 허리에서 어마어마한 통증이 몰려왔다.

동시에 나름 풍만한 에네스타의 가슴이 등 뒤에서 느껴졌지만, 그딴건 중요하지 않았다. 바록과 바쿠가 나름 신경쓰고 있다는 말이 진심이었음을 방금  알게된 참이었으니 말이다.

낙시안식 단련법의 생초보인 에네스타가 허리를 짓누르자, 여태껏 느껴왔던 고통의 두 배는 되는 통증이 느껴졌다.

“끄, 끄으으윽...”

“음, 많이 아픈 모양이군. 괜찮나? 나의 주.”


입에서 기괴한 소리를 질질 내뱉는 나를 본 에네스타가 그렇게 말했다.

그걸, 직접 해봐야지 알 수 있는  아닐 텐데...? 보면 충분히  수 있지 않니? 해보겠다는 것이 옆에서 따라하겠다는 게 아니라 자기도 나를 고문하는데 동참하고 싶다는 말이었을 줄 정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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