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82화
그렇게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때였다.
꾸물, 하고 쥬니어 드래곤 슬레이어가 조여왔다. 마치 뱀이 휘어감듯이, 쥬니어 드래곤 슬레이어 전체가 바짝 조여오기 시작했다.
"흐앗…♥ 뭐어…♥ 이미 지난 일을 후회하고만 있을 수 없겠죠♥"
한동안, 잠잠코 내게 가슴을 내주고 있던 루시아가 그렇게 말하고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느릿하게, 앞뒤로 허리를 흔들었다. 그것만으로 쥬니어 드래곤 슬레이어를 부드럽게 감싸쥔 루시아의 질벽이 쥬니어 드래곤 슬레이어 전체를 훑어내렸다.
마치 루시아의 입술이, 쥬니어 드래곤 슬레이어 전체를 감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했다…
순간적으로 덮쳐온 쾌락에, 가슴을 빠는 것조차 잊어먹고 있던 나에게 루시아가 말했다.
"거기에… 저도 이제 충분히 쉬어서, 이미 아래쪽의 상처도 아문 모양이니까…♥ 슬슬… 계속해볼까요♥♥♥"
뭔가 느낌이 싸했다.
그런 내 목 뒤로, 어깨를 붙잡고 있던 루시아의 팔이 둘러졌다.
이래서야 도망칠 수가 없었다.
아니, 도망칠 생각은 없지만.
스으윽, 하고 그런 내 등골을 루시아가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저는 처음이니까♥ 이지경님한테 전부 맡길게요♥ 그러니까…♥"
뭔가 불길했다.
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불길했다.
생명의 위협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마치 포식동물 앞에 선 초식동물이 된 것 마냥 몸이 굳었다.
그런 내 귓가에 루시아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자아…♥ 아기만들기… 해주세요♥ 저를… 이지경님이 원하는대로…♥ 해주세요♥"
그리고 그런 내게, 포식자는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을 내렸다.
"저한테도 그랬듯이… 이지경님이 아무리 그만두자고 해도, 받아주지 않을테니까요♥"
그리고 불길함의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일어나셨습니까? 주인님."
눈을 뜨자, 눈앞에 상반신을 완전히 노출한 시녀가 있었다. 새하얀 백자같은 피부에, 루시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손 가득 들어올 것 같은 가슴이 있었다.
생각보다 유륜이 컸다. 아니, 비교 대상인 루시아가 가슴의 크기에 비해 너무 앙증맞은 것 같지만. 어느쪽이 낫다고는 할 수 없었다. 둘 다 아름다운, 훌륭한 가슴이었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른 법이고 가슴에는 귀천이 없으니까.
아무튼 눈에 보인 것을 확인하고서, 천장을 한 번 봤다가 입을 열었다.
"뭐야. 꿈인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그렇게 말하고서 다시 드러누웠다. 그런가, 꿈인가. 그렇다면 그것도 꿈이었나. 아쉽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했다.
아쉬운 이유는 그게 꿈이라서 그랬다.
다행인건 그게 꿈이라서 그랬다.
서로가 모순됬지만, 놀랍게도 이 모두는 합당한 이유가 되었다. 아쉬운 이유는 루시아와의 하룻밤이 꿈이 되었다는 거고.
다행인건 루시아에게 밤새도록 쥐어짜인 것이 꿈이 되었다는 거다.
잠이나 더 자자. 그리고, 딱 전반부까지만 다시 꾸고 일어나자.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응… 목이 불편했다. 원래대로라면 딱 눕자마자 목 뒤에 있어야할 베개가 없었던 탓이었다. 안그래도 피곤이라고는 모르는 몸이 된 나는 내게 딱 맞는 베개가 없는 이상 자려고 해도 도통 잘 수 없는 몸이었다.
이래서야 잠에 들 수 없었다.
나는 베개를 찾아 손을 더듬거리다가, 말캉하고 무언가 잡혀 그곳을 바라봤다.
"…으응…"
거기엔 커다란 가슴이 있었다. 정확히는, 발갛게, 이런저런 곳에 키스마크가 잔뜩 남아있는 가슴이 있었다.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었다. 정정한다. 거기엔 가슴이 아니라, 키스마크 투성이의 가슴을 노출한 루시아가 있었다.
"즐거운 꿈이 되실 수 있도록,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당황스러웠다. 어째서 여기에 루시아가? 그리고 그런 내 위로 올라오는, 마찬가지로 상반신 올누드의 시녀가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에루나가 눈을 깜빡이고는, 이내 입술을 내밀었다.
정확히 에루나의 입술이, 아침이라는 환경보정으로 인해 기운차있던 쥬니어 드래곤 슬레이어에 닿을 뻔하던 순간이었다.
그런 에루나를 이마를 손바닥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떨어져. 그리고 내려가."
"주인님. 이건 단지 주인님의 즐거운 꿈을 위한 봉사일뿐이므로…"
"3…"
숫자를 세기 시작하자 냉큼 내 위에서 내려간 에루나가 느긋하게 바닥에 떨어져있던 시녀복을 집어다가 입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쉬고서, 다른 손으로 옆에서 색색거리면서 잠들어있는 루시아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굳이 다른 손을 쓴 이유는 아까 뻗었던 손으로는 여전히 루시아의 가슴을 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보고서, 어느새 시녀복을 완전히 입은 에루나가 말했다.
"하룻밤 사이에 여러가지로 성장하셨군요. 주인님."
"칭찬 고맙다."
"그럼 이 김에 시녀의 봉사도 받아들이는 대범함을 갖추시는 건 어떻습니까?"
"미안하지만 사양하마."
그렇습니까, 하고 대답한 에루나가 킁킁, 무언가 냄새를 맡는 것이 보였다.
"…뭐하냐?"
"주인님의 아가씨와의 뜨거웠던 밤의 향취를 기억회로에 저장중입니다."
"…그걸 저장해서 뭐할라고?"
"오늘 밤 반찬으로 쓸 생각입니다."
무슨 반찬?
헛소리를 하는 안타까운 시녀를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자, 에루나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농담입니다만,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시면 슬퍼집니다."
"미안. 진심으로 들려서."
"진정한 농담은 진실을 감춰야한다고 들었기에."
그것도 그런가… 순간 납득할 뻔 했다가 뭔가 이상한 기분이었다. 어느 쪽이던간에 진심이라면 이상했다. 나는 에루나를 보며 물었다.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 농담인데?"
"사실 오늘밤만이 아니라 주인님에게 밤시중을 들지 못하게 된 밤마다 사용할 예정이었습니다."
한대 쥐어박고 싶었다. 아무런 소용도 없겠지만. 오히려 내 손이 아플지도 모른다. 저래뵈도 에루나의 몸은 태반이 금속과 드래곤의 뼈, 이빨로 되어있는 골렘이니까.
그런 나에게, 에루나가 옷을 건네줬다.
"…평범한 옷입니다. 안심해주시길."
에루나에게 받은 옷을 빤히 보고 있자니 에루나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보기 드문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딘지 애달픈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조금 심했던 모양이었다. 조금 반성하면서 주섬주섬 받은 옷으로 갈아입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어떠셨습니까?"
"…또 뭐?"
또 무슨 소리를 하려나 싶어서 미리 정신적으로 안정을 취하고자 옆에 있던 루시아의 가슴을 주무르며 대답하자 에루나가 말했다.
"어젯밤 말입니다."
"음…"
어젯밤이라…
내 침대 옆에서, 저런 모습의 루시아가 있는걸 보니 어젯밤의 일은 꿈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 말은, 기억속에 남아있는 그것들도 꿈이 아니란 거였다.
"…지옥같은 천국이였어."
"아무래도 그럴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대답에 그렇게 말한 에루나가 바닥에서 무언가 집어들었다.
그건 묘한 무늬와 함께 날개가 달려있는 유리병이었다.
그리고 나는 저 물건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에루나가 그런 모양과 똑같은 병들을 집어들고서 중얼거렸다.
"…세병입니까. 많이도 쓰셨습니다."
"…본의는 아니였는데."
페가수스의 피가 담겨있던 병이었지.
에루나의 말 대로라면, 이 세계에서는 최고급 비아ㅇ라나 마찬가지인 물건이었다. 그리고 에루나의 말대로였다. 효과는 엄청났다는 소리였다.
자그마치 10연속의 고행으로 쓰러져가던 쥬니어 드래곤 슬레이어를 쌩쌩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런걸 3병이나 내리 써버렸다.
"이쪽도 사용하신 모양이군요."
또 뭔가를 집어든 에루나가 내 앞에서 흔들었다.
나뭇잎으로 중요한 부위를 가린 알몸의 미녀의 모양으로 세공된 유리병이었다.
저것도 알고 있었다.
드리아데스의 즙이란 것이 담겨있던 병이었다. 페가수스의 피로도 약발이 부족해서 잠시만 쉬게해달라고 말했던 순간, 루시아가 내 입에다가 꽂아넣었던 병이었다.
저거 성자도 발정시킨다던 발정제였던가…
덕분에 반쯤 미쳤었지…
"이쪽은 5병입니까…"
에루나가 나를 희귀한 생물을 보는 눈으로 바라봤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한 병으로도 이성을 잃어버립니다만."
"반쯤 그랬었지. 그런데…"
"그런데?"
10번쯤 싸고 나니까 이성이 돌아왔다.
발정도 발정 나름이지. 도저히 발정할 때가 아닐 때는 이성이란 것이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저것도 5병이나 썼지만…
…허리가 아파오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기분탓이겠지만.
"…이건 또 어떻게 찾으셨습니까?"
또 무언가를 찾은 모양인지 그렇게 말한 에루나가 묘한 모양의 빈 병을 들어올렸다.
저건 나도 모르겠다.
"뭔데 그건?"
나도 모르는 것이 튀어나와서 묻자 에루나가 뭔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모르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뭔가 엄청 불안했다. 병을 자세히 살펴보니, 희뿌옇한 이상한 액체가 병 밑에 조금이지만 남아있는 것이 보였다.
"…에루나, 저게 뭔데?"
"진심으로 알고 싶으십니까?"
에루나의 물음에 들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직감이 왔다. 동시에 듣지 않아도 후회할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자, 에루나가 느릿하게… 정말로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과거에 드래곤과의 전쟁으로 멸종한걸로 알려진 거인의 정.."
"우웨에엑!"
대체 나한테 뭘 먹인거야?!
"수입니다. 대체 왜 갑자기 헛구역질을 하십니까?"
"…뭐야?"
에루나의 말에 입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헛구역질을 하다말고, 에루나를 바라봤다. 그런 나를 보면서 에루나가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한음절씩 다시 말해주었다.
"정수입니다."
"정액이 아니라?"
"그쪽이 편하십니까?"
에루나의 대답에 깨달았다.
마저 토해도 될 것 같았다.
나는 일을 확실히 하고자 가장 긴 중지를 목젖에 꽂아넣었다.
"우웨에에엑!!!"
"거인의 정액이라고 하지만, 안심해주시길. 원래는 그렇다는 것 뿐이지 주인님께서 마셨던 건 마법으로 처리된 약물일뿐이니 말입니다."
"전혀 안심이 안되거든…"
십여분이나 헛구역질을 했는데도 입밖으로 아무것도 튀어나오지 않는 나를 보면서 에루나를 그렇게 위로의 말을 꺼내줬지만, 그런 위로는 쥐뿔도 듣지 않았다.
정액이라니.
내가 정액을 마시다니.
성스러운 응가같으니. 거인이 있는 세상이란 빌어먹을 세상이었다. 똥이나 처먹어라 젠장.
"뭘 그러십니까. 거인의 정수… 아니, 정액은 이제 구하지도 못하는 보물입니다."
"제발 입 좀 닫아줘."
"기록에 따르자면, 마신 자에게 젊음과 거인과 같은 힘을 부여해준다고 합니다만…"
"…상태창."
에루나의 말에 무심코 그렇게 중얼거리자 눈앞에 푸른 창이 떠올랐다.
「상태창」
「이름 : 이지경(베헤노스)」
「칭호 : 차원을 넘은 자, 단죄하는 자, 벌레만도 못한 자, 부덕의 군주, 드래곤의 처녀를 빼앗은 자」
「성별 : 남성」
「나이 : 27세」
「직업 : - (보류 : 드래곤 나이트, 부덕의 왕, 배덕의 왕)」
「종족 : 인간」
「근력 : 81(B)」
「민첩 : 75(B)」
「체력 : 88(B)」
「지력 : 85(B)」
「마력 : 0(F)」
「매력 : 49(C)」
「행운 : 67(B)」
「생명력 : 880/880」
「마나력 : 0/0」
「지구력 : 12%」
「고유 특성 : 차원을 넘은 자(SS), 개변자(S), 만인지상(S)」
「보유 특성 : 황금률(A), 예속 각인 : 에루나 투아레(A), 독서가(B), 소환사(B), 검사(B), 요리사(B), 약초사(B), 징벌자(B), 권선징악(B), 귀축(B)」
「보유 기능 : 주시자의 눈(EX), ※흡정(B), 투귀화(B), 사자후(B), 조화(C), 단죄(C), 소환 : 에루나 투아레(E), 라이어스 제국 검술(C), 요리(F), 물약 제조(F), 골렘 작성(F), 함정 설치(F), 조련술(F), 사격술(F), 천문학(F), 마법 이론(F), 야금술(F), 연금술(F), 마비내성(F), 기초 방패술(F), 전투감각(F), 즉각반응(F), 통증완화(F), 발기조절(F), 발기유지(F), 약물내성(F)」
「상태 :좌절중 (내가 정액을 마시다니...)」
"……"
와우.
정액 한 번 효과 죽여줬다. 마력을 제외한 거의 모든 능력치가 이전에 비해 대폭으로 상승되어 있는 스테이터스를 확인한 나는 확실히 감탄했다.
그래봤자 정액이지만.
좆같네.
"역대 드래곤들 중에서도 로드급의 드래곤을 많이 배출한 금색용. 그 금색용의 모든 자산을 이어받으신 최후의 금색용이신 루시아 아가씨니 하나쯤은 가지고 계셔도 이상할 건 없습니다만… 설마 그걸 주인님께 주셨을 줄은…"
별로 필요는 없었는데… 그렇게 소중한 물건이였다면 마저 대대로 물려줬으면 좋았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나에게 에루나가 척하고, 검지와 중지 사이로 엄지를 꽂아넣는, 이세계도 저런 손동작이 있다는 것을 내게 알려주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그만큼 만족스러운 밤이셨나 봅니다."
진짜로 쥐어박아도 될 것 같았다. 지금이라면 저 에루나도 조금은 아파하지 않을까?
진심으로 저 안타까운 시녀의 머리에 주먹을 콱하고 박아주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있던 나에게 에루나가 말했다.
"주인님, 한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너랑 안할거다. 그래서 제안이 뭔데?"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짜 한대 때려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