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112화
가슴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은백의 검을 바라봤다. 내 눈의 착각 같은 게 아니었다. 분명 내 가슴을 관통하고 있었다.
“쿨럭!”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피까지 토할 일도 없었을 테니까. 위치가 좋지 않았다. 내가 내 내장의 위치가 대체 어디에 있는지 잘은 몰랐지만 이 위치가 좋지 않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심장이 꿰뚫렸다.
아리스가 휘두른 은백의 검으로. 그대로 관통 당했다.
“너... 너...”
그런 내 눈에 당황한 크리샤의 얼굴이 보였다.
말도 채 잇지 못하며, 내가 토해낸 핏물로 얼굴이 더러워진 크리샤가.
이상하다. 내가 칼 맞으면 가장 좋아라 할 것 같았던 크리샤가 눈에 띄게 당황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아니, 이럴 때가...”
뭔가 말을 하려다 말고, 크리샤가 내게 손을 뻗었다.
우웅, 하고 손을 뻗은 크리샤가 영창을 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에, 머릿속에 띠링하고.
알림이 울렸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심장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그건 내 심장이 파괴되었다는 충격적인 소리였다.
‘상, 태창...’
흐릿해져가는 의식으로 어떻게든 상태창을 펼쳐보자, 거기에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생명력과 지구력이 보였다.
10초에 1할.
그 정도의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대치유...! 대치유...! 어째서 치료되질 않는 건데?!”
그런 내게 거듭해서 영창하며, 치료 마법을 걸던 크리샤가 히스테릭으로 가득한 목소리로 울부짖는 것이 보였다. 그 말 대로였다. 대치유를 연달아 사용하는 크리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감소하는 생명력과 지구력의 속도가 조금 줄어들 뿐, 회복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죽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크리샤의 얼굴을 봤다.
얼굴이 엉망이었다.
피와 눈물과. 그리고 절규와 공포.
어째서?
“또... 또 내 탓으로, 죽는 거야. 또...”
멍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그런 크리샤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 자신의 탓으로.
이전에 들었던 크리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혹시 크리샤가, 아직도 그때의 일을 후회하고 있었던 거라면, 아직도 그때의 일로 입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던 거라면...
‘어째서 아무도 크리샤의 걱정은 하지 않았던 거야?’
크리샤의 실수, 그렇게 말하는 다른 드래곤들의 말을 들으며 내가 그녀들에게 물었던 그 말을. 그녀들은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녀들은 이해할 수 없는 범주의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나 역시, 크리샤가 잘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으니까. 그녀가 제멋대로 밖으로 나갔다가, 인간들에게 험한 꼴을 당할 뻔했다가, 폭주로 인해 일대가 파괴될 만큼 커다란 사고가 있었던 것은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실수였다.
크리샤가 원했던 일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아직 어렸으니까. 아니, 지금도 어릴 뿐이니까.
그저 억지로, 어른인 척 하려고 하는 어린 아이.
지는 걸 싫어하고, 자매들의 관심이 나에게만 쏠리자 질투하는 소녀.
내게 크리샤는 딱 그런 느낌의 소녀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 외의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크리샤는 단지 드래곤일뿐이었다. 강대한 힘을 갖고, 터무니없는 책임을 지고 있는 드래곤.
이세계의 질서를 지탱하는 자이자 지배자이며, 조율자.
결코 실수를 용납 받을 수 없는 존재였다.
같은 종족에게도. 자매처럼 자란 이들에게도. 크리샤의 어린 실수는, 위로받거나, 달래질 수 있는 유형의 것이 아니었다.
드래곤으로써의 ‘실수’를 저질렀을 뿐인 크리샤에게.
단지 부여받은 기억만을 전부라고 믿고. 한없이 인간을 믿었다가, 그 인간의 추한 모습을 보고, 그 인간에게 배신 받았던 소녀는.
단 한 번의 위로조차 받을 수 없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것은, 동족이자 자매들인 다른 드래곤들의 나무람뿐이었다.
‘어째서 아무도...’
나는 그런 크리샤를 동정했다.
동시에 이해할 수도 있었다.
실망했으리라. 인간들에게. 실망했으리라. 자신에게.
그 날의 사고로.
드래곤의 폴리모프는, 그들의 정신연령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 날.
정신적으로 ‘어렸던’ 크리샤는, 어린아이의 육체로 ‘폴리모프’되던 크리샤는 단 하루 만에 어른이 되었다.
실망하고, 상처입고, 어른이 되었다. 아니, 어른이 되었다고 착각했다.
가엾은 아이였다.
띠링~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무슨 조건...?
머릿속에서 울려대는 알림이 뭐라 지껄이는지, 제대로 들리지가 않았다. 의식이 점점 멀어져만 가고 있었다.
두근, 두근...
그런 귓가에, 시끄럽게 울려대는 알림과 함께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파괴되었을 터인 심장의 소리가.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요청에 따라 현재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기능의 강화를 시도합니다.]
띠링~
[최우선 과제,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생존을 위해 파괴된 심장을 대체할 수단을 강구합니다. 이에 기능 ‘주시자의 눈’을 활용합니다.]
[대체할 장기를 확인했습니다.]
대체할 장기라니? 심장이 터져나갔다. 유일무이한 심장이. 그걸 대체할 장기가 대체 어디에 있다고.
두근두근...
아니, 설마... 아니 잠깐만?
귓가에 들려오는 의문의 심장소리. 그리고 대체할 장기를 찾았다는 알림에 설마하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꽤 오래 지난, 이전의 일이 생각났다.
이곳에 소환되는 과정 중에서, 심심한 나머지 내 몸을 가지고서 이것저것 했었던 기억이. 그때 분명히... 조금, 판타지스러운 짓을 했던 것 같은데.
예를 들어...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기능 ‘두 번째 심장’을 습득하셨습니다.]
「이름 : 두 번째 심장」
「등급 : 초보(F)」
「설명 : 마력에 대한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에게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며 동시에 드래곤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는 두개의 심장이 드래곤의 고유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생물적인 역할의 심장과 마력을 제어하는 역할의 심장. 이렇게 두 개의 심장을 일컫는다. 마법사들이 심장에 고리형태의 마력을 저장하는 인공기관을 만들어내는 것 또한 드래곤의 두 번째 심장을 본뜬 것이다.
마력에 대한 친화성이 대폭으로 증가한다. 마력의 보유 최대치가 대폭으로 증가한다. 마력의 자연회복능력이 대폭으로 증가한다. 마력을 사용한 모든 행동에 대한 안정성이 크게 증가한다.」
「효과: 마력에 대한 친화성이 100% 증가합니다. 마력의 최대 보유량이 100% 증가합니다. 마력의 자연회복능력이 100% 증가합니다. 마력을 사용한 모든 행동에 대한 안정성이 50% 증가합니다.」
심장을 두 개나 달았다던가, 하는 일말이다.
설마, 요즘 들어서 조금 혈압이 오른다 싶으면 머리가 띵해졌던 원인이 이거였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새롭게 습득한 기능에 대한 내용이 제멋대로 머릿속에 흘러들어왔다.
드래곤만이 갖고 있는 고유적인 특성.
마력을 통괄하는 장기라는 내용이.
우우우웅...!
내 주위로 빛무리가 모여들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처음 보는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알 수 있었다.
마력이었다.
나의 마력.
폭발하듯이, 내 마력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이윽고,
띠링~
[최우선 과제,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생존을 위해 다음과 같은 기능을 활성화합니다. ‘흡정’]
“으읏...!?”
쑤우욱, 하고 막대한 생명력과 마력이 내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크리샤의 것이었다.
크리샤의 생명력과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름 아니라, 흡정의 능력으로. 크리샤의 것만이 아니었다.
내 마력이 퍼져있는 주변 일대에 있는 모두의 생명력과 마력을, 대량으로 흡수하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휘청, 하고 가장 약해보였던 시녀가 주저앉는 것을 시작으로, 생명력과 마력이 흡수된 검주들과 마법사들이 하나 둘 쓰러져가는 것이 보였다.
띠링~
[기능 ‘두 번째 심장’으로 현 상황의 타파가 불가능합니다. 이물질이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회복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물질이라면, 다름아니라 지금도 내 가슴팍에 꽂혀있는 은백의 검이었다.
편린의 파편이 담겨있는, 천검.
띠링~
[기능 ‘주시자의 눈’으로 해당 상황의 해결책을 확인합니다. 기능 ‘두 번째 심장’을 강화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기능들을 대가로 지불합니다. 흡정, 투귀화, 투기, 투신, 마비내성, 즉각 반응, 전투감각, 통증완화...]
[대가가 부족합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동의하에 특성 황금률이 이에 대응합니다. 부족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대가를 미래에서 대신하여 지불합니다. 부족한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행운이 15만큼 소모됩니다.]
파직!
가슴에 꽂혀있던 은백의 검에 금이 가는 것이 보였다.
파직파직, 이내 금이 가며 부서져가는 검들이, 내 안으로 스며드는 것이 보였다. 검이 꿰뚫었던 상처 사이로.
[경고, 현재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육체는 ‘불멸자의 심장’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진행하시겠습니까?]
주시자의 눈 때와 같은 알림.
그때는 나의 눈을 대가로 삼아서, 주시자의 눈을 습득했었다.
근데 이번 것은 심장이었다.
불멸자의 심장.
뭔가 느낌이 쌔했다.
하지만 내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어차피 죽을 게 뻔했다.
띠링~
[기능 ‘불멸자의 심장’을 습득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직업을 습득합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직업이 ‘부덕의 왕’으로 바뀌었습니다.]
부덕의 왕.
로로의 운명을 내가 거둬들임으로써, 내가 습득할 수 있는 직업으로 추가되었었던, 정말이 꿀꿀한 이름의 직업.
아무리 생존을 위해서라지만, 강제로 그런 직업으로 전직당한 내가 멍하니, 그 과정을 지켜봤다.
과정.
내 몸이 바뀌어가는 과정을.
[‘부덕의 왕’으로 전직하셨습니다. 직업 특전으로 인해 최대 생명력과 마나력이 20%만큼 추가됩니다. 전반적인 신체능력이 증가합니다. 매력이 대폭으로 증가합니다. 행운이 대폭으로 감소합니다.]
그놈의 행운이 또 다시 감소하는 소리를 들으며.
뿌득, 뿌득하고.
손톱이 길게 자라나고, 송곳니가 자라난다. 꿰뚫렸던 가슴팍이 새하얀 십자모양의 결정 같은 것으로 메꿔진다. 1할 가까이 줄어들었던 생명력과 지구력이, 전혀 없었던 마나력같은 것이 순식간에 차오르는 것도 보였다.
이윽고, 내 머리에는 작은 혹 같은, 뿔이 돋아났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기능 ‘매혹안’을 습득하셨습니다. 상위기능 ‘주시자의 눈’에 호환됩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기능 ‘마력 장악’을 습득하셨습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기능 ‘복속’을 습득하셨습니다. 해당 기능으로 인해 가신들의 능력이 일부 변경됩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기능 ‘조화’가 상위기능 ‘사자심’으로 승급합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기능 ‘귀축’, ‘발기 조절’, ‘사정 조절’이 결합합니다. 상위기능 ‘카마수트라’를 습득하셨습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기능 ‘마법 이론’, ‘천문학’, ‘연금술’, ‘물약제조’, ‘골렘작성’ 을 대가로 상위기능 ‘마도의 이치’를 습득하셨습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기능 ‘조련술’이 상위기능 ‘심신 장악’으로 승급하셨습니다. 행운이 5만큼 감소합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칭호 ‘마왕’을 습득하셨습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특성 ‘마왕’을 습득하셨습니다.]
“뭐라고요?”
귓가에 들려온 알림에 나는 상태창을 확인해봤다.
「상태창」
「이름 : 이지경(베헤노스)」
「칭호 : 차원을 넘은 자, 단죄하는 자, 벌레만도 못한 자, 부덕의 군주, 드래곤의 처녀를 빼앗은 자, 마왕」
「성별 : 남성」
「나이 : 27세」
「직업 : 부덕의 왕」
「종족 : 인간(인간(50%)+낙시안(20%)+흡정귀(20%)+용인(10%))」
「근력 : 92(A)」
「민첩 : 87(B)」
「체력 : 96(A)」
「지력 : 85(B)」
「마력 : 112(S)」
「매력 : 81(B)」
「행운 : 32(D)」
「생명력 : 1152/1152」
「마나력 : 13440/13440」
「지구력 : 100%」
「고유 특성 : 차원을 넘은 자(SS), 개변자(S), 만인지상(S)」
「보유 특성 : 황금률(A), 예속 각인 : 에루나 투아레(A), 마왕(A), 독서가(B), 소환사(B), 검사(B), 요리사(B), 약초사(B), 징벌자(B), 권선징악(B), 귀축(B)」
「보유 기능 : 주시자의 눈(EX), 불멸자의 심장(EX), 카마수트라(S), 라이어스 제국 검술(B), 사자후(B), 마도의 이치(B), 마력 장악(B), 심신 장악(B), 복속(B), 사자심(B), 시오니스 검술(C), 방패술(C), 단죄(C), 소환 : 에루나 투아레(C), 요리(F), 함정 설치(F), 사격술(F), 야금술(F),,」
「상태 :당황 (마왕...?)」
띠링~
[새로운 마왕이 탄생했습니다.]
[주위의 모든 이지가 없는 마물들이 신생 마왕에게 복속됩니다.]
[293,213마리의 마물들이 신생 마왕, ‘베헤노스’에게 복속됩니다.]
[주위의 이성이 있는 마물들이 신생 마왕에게 강한 호감을 느낍니다.]
[주위의 모든 마물들의 호감도가 100만큼 상승합니다. 이 호감도는 마왕이 ‘마왕 같은 존재’일 경우 절대로 감소하지 않습니다.]
[주위의 일부 마물 태생의 종족들이 신생 마왕에게 강한 호감도를 느낍니다.]
[오크, 오우거, 미노타우로스, 마랑족...의 호감도가 30만큼 상승합니다. 이들은 처음 본 마왕에게 호감과 경계를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기능 ‘마물 소환’을 습득하셨습니다. 복속하의 마물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현재 소환 가능한 마물의 숫자 : 293,213]
“...워우.”
난생 없었던 첫 직업이 마왕이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