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1화 〉131화 (131/370)



〈 131화 〉131화
음마.


이 세계에 와서, 여러 종족을 접하고, 나 자신조차 흡정귀라는 괴상한 종족이 섞여있는 이상한 것이 되기는 했지만, 사실 당사자인 나도 흡정귀가 대체 무슨 종족인지  몰랐다.


오히려 그런 것보다도 훨씬 많이 들어본 이름의 종족. 아니, 사실 원래 세계에서  많이 들어봤던, 어쩌면 드래곤보다도 유명할지도 모르는 종족인 음마의 느닷없는 등장에 머릿속이 멍해졌다.

다른 이름으로는 서큐버스니, 단백질 도둑이니 하는 별명이 있는 그 음마로, 한 명도 아니고 에네스타를 포함한, 내 휘하의 엘프들 전원의 종족이 그렇게 바뀌는 것을 본 충격에 말이 나오질 않았다.


“...과연, 엘프들이 마왕과 계약해서 마력을 받으면 음마가 되는 거군요. 새로운 지식이 늘었습니다.”

 옆에서 태연하게, 그렇게 중얼거리는 에루나만 아니었더라면 현실감각이 돌아오기까지 더욱 시간이 걸렸을지도 몰랐다.

“아니, 엘프가 갑자기 왜 음마가 되는 건데...”

“그걸 저한테 물으셔도 제가 알 리가 없지 않습니까? 주인님의 마력의 영향을 받아 저리  거니 말입니다.”


에루나의 말대로라면, 내 탓이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억울했다.

 영향을 받았는데 어째서 음마가 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으응...”

그때, 마력으로부터 벗어난 뒤에도 잠들어 있던 에네스타의 입술 사이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에네스타?”

그런 에네스타의 이름을 부르자, 잠에서 깨어나듯, 몸을 뒤척이며 일으켜 세운 에네스타가 나를 바라봤다.

검주, 그 이름이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란 것처럼. 탄탄하지만, 여성적인 굴곡이 남아있는 알몸을 전부 드러낸 채로.


“나의 주...?”

두 눈을 깜빡이며, 평소와 같이. 나를 부르는 에네스타의 모습에 조금 안심했을 때였다.

순식간에, 몸을 박찬 에네스타가 내게 달려들었다.

“나의 주...♥”

얼굴에 홍조를 띄운 채, 달려든 에네스타의 몸을 받아들었다. 순간, 에네스타와의 수련할 때가 떠올라서 반사적으로 주먹부터 뻗을 뻔 했지만, 에네스타가 환자라는 사실을 직전에 떠올린 덕분이었다.


그대로, 내 품에 파묻히듯 에네스타가 강아지처럼 내 가슴팍에 얼굴을 비벼대는 것을 보고서, 내가 얼떨떨하게 에루나를 바라봤다. 그런 내 시선에 에루나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크리샤 아가씨께는 비밀로 해드리겠습니다.”


“내가 뭘 했다고?”

“그럼 얘기해도 되는 겁니까?”


“...비밀로 해주라.”

알몸의 에네스타에게 안겨졌다는  크리샤가 알게 된다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하물며 지금의 크리샤는 특히나 위험했다. 내가 안은게 아니라, 안겨진 것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아무튼, 정신이 든 듯한 에네스타에게 말했다.

“그보다, 에네스타. 몸은  괜찮아?”

“아아, 무척이나 상쾌합니다. 오히려...♥ 이전보다도 훨씬 기분이 좋습니다♥”

그렇개 말하고서,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서 숨을 크게 들이쉬는 에네스타가 보였다.

무척 난감했다.

이걸 떼어내긴 해야하는데, 이제 막 정신을 차린 환자였던 에네스타를 떼어내긴 조금 그랬다.

그때 내 눈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보였다.


살랑살랑, 좌우로 흔들리는 검은 무언가가.

에네스타의 등 뒤로 흔들거리고 있는 검은 무언가가 보였다.

“...꼬리?”


아니, 갑자기  꼬리? 하지만 어딜 보나, 에네스타의 등 뒤로 살랑거리고 있는 저건 꼬리였다. 끝이 뾰족한 창처럼, 흔히 아는 악마 꼬리 같은 모양의 꼬리가 살랑거리는 것을 보고서, 무심코 손을 뻗어 붙잡아봤다.


“하윽♥ 그, 그렇게 갑자기...♥”

꼬리를 붙잡히자, 그대로 다리가 풀린  주저앉는 에네스타를 보고서, 내가 잡으면 안  것을 잡았다는 걸  수 있었다. 덩달아 귓가에 들려오는, 카마수트라가 활성되었다는 소리와 함께 에네스타의 약점을 공략했다는 알림까지. 확실히 내가 잡으면 안될 것을 잡은게 맞았다.

주저앉은 채, 신음을 내뱉는 에네스타를 보고 있던  귀에 부스럭하고 몸을 일으키는 인기척이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자.

“주인님...♥”

아무리 봐도 정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에오시스 자매들도,  사이에 정신을 차렸는지 날 보고서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위험하다.

지금, 내가 엄청난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정확히는, 내 정조의 위기를.

이미 내게 정조라는  있기는 한가 싶었지만, 이런 식으로 당하는 건 사양이었다.

“에루나!”


유일하게 제정신인 에루나의 이름을 부르며, 에루나가 있던 곳을 보자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듯한 에루나가 보였다. 그리고 그런 에루나가 내 시선에 고개를 들더니 입을 열었다.


“...여기서 주인님을 돕는  저에게 이득입니까, 아니면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과 함께 주인님을 덮치는  이득입니까?”

아무래도 도움을 바라긴 그른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지금 고민하는 에루나가 더 위험해보였다. 차라리 계속 고민이나 하고 있기를 바라면서, 주춤주춤 에오시스 자매들을 피해 뒷걸음질치다가.

툭, 하고.

아직  마력에 감싸인 채인 낙시안들에게 가로막혀  이상 도망칠 수도 없게 되었다.

“주인님♥”


“나의 주...♥”

“어쩐지 몸이 뜨거워요...♥”


“주인님한테서, 맛있는 냄새가 나요♥”

저마다 다른 말을 하며, 등 뒤로 난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다가오는 전 엘프,  음마들을 보며 진땀을 빼고 있을 때였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주인이 느끼는 위협에 의해, 대상의 각성을 가속시킵니다.]


귓가에 들려온 알림과 함께, 쩌적하고.  뒤에서 쪼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바록’이 불완전한 각성을 이룹니다. ‘바록’에게 존재하던 힘의 일부가 깨어났습니다.]


[대지를 쪼개고, 하늘 위에서  밑을 오시하던, 고대의 존재의 힘이 일부 깨어났습니다.]

[‘바록’의 종족이 낙시안에서 반거인족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내 허리만한 팔뚝이 달려오던 에네스타와 에오시스로부터,  가로막듯이 막아섰다.


그리고, 육중한 몸이 된 바록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알몸으로.


“내 눈!”


거의  못지않게 커다란 바록의 물건을, 순간적으로 보게 된 내가  눈을 부여잡았다. 그런 나에게, 바록이 무슨 일 있냐는 듯이 말했다.

“...무언가, 엄청난 힘이 끓어 넘치는 것 같다. 주인.”

끓어넘치는건 힘이 아니라, 네 빌어 처먹을 거시기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어쨌던 불완전각성이니 뭐니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켜 세운 바록 덕분에 내 정조의 위기로부터 어떻게든 몸을 지킨 것 같으니까.

문제는 내 뒤편에서 느껴지는, 절대 느끼고 싶지 않은 존재감이란 건데.

“...지금, 나를 방해하는 건가?”

“이래서야 주인님한테 갈 수 없잖아요...”

"덩치만  게..."

"당장 비켜주실래요?"


아니지,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자신들을 가로막은 바록을 보며, 무척이나 화가  듯 한 저 음마들이 문제였다.

바록이 잔뜩 골이 나있는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을 보더니 난감하다는 듯이 말했다.


“음, 저들과 싸우는 것은 내키지 않은데, 주인. 어쩌면 좋나?”

“그럼 몸으로 때워야지.”

그런  말에, 바록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몸을 완전히 일으켜세웠다.

이전에도 바록은 나보다 머리 두 개는   거인이었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진짜 거인이었다. 족히 3m는 넘어 보이는 키의 바록이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내 앞에 서자 엄청나게 듬직했다.


다리 사이로 덜렁거리는 것이 보이지만 않았더라면.


“주인의 명령대로. 자, 너희들은 내가 상대해줄...”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들 듯, 땅을 박찬 에네스타가 그런 바록의 얼굴에 제대로 무릎을 꽂아 넣는 것이 보였다. 휘청, 하고 뒤로 넘어가려는 바록을, 에오시스 자매들이 마법을  것인지, 이상한 촉수 같은 것으로 속박하는 것도.

그리고 그렇게 묶인 바록이 후두려 맞는 것을 보며, 나는 더듬더듬, 덩치로 봤을 때 아마도 바쿠로 보이는 녀석을 붙들어 잡았다.

음마라는 이름의 종족으로 다시 태어난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의 전투력이 어마무시했다. 음마가 아니라 투귀 같은 걸로 변해야 되는데 잘못 바뀐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실상 직접 싸우는 것은 에네스타뿐이었지만 사방에서 보조하듯, 이런저런 버프나 바록의 움직임을 막는 마법들을 걸고 있는 에오시스 자매들의 활약으로 에네스타가 미쳐 날뛰는 것이 보였다.

거대하게 변한 바록은, 말 그대로 거대해졌을 뿐인 샌드백이 되어 에네스타에게 사정없이 두들겨 맞았다. 저런 상태라면 아무리 맷집이 좋은 바록이라도 얼마 못 버틸 것 같았다.

희생양이 더 필요했다.


마침, 바록 덕분에 낙시안들을 깨우는 방법도 알게  참이었다. 내가 위협을 느낀다면, 각성인지 뭐시긴지가 가속한다는 모양이니까. 아무래도 그 탓으로 불완전하게 각성하는 모양이었지만, 그런건 괜찮았다. 지금 나는 맹렬하게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정조의 위협을.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주인이 느끼는 위협에 의해, 대상의 각성을 가속시킵니다.]

[‘바쿠’이 불완전한 각성을 이룹니다. ‘바쿠’에게 존재하던 힘의 일부가 깨어났습니다.]

[대지를 쪼개고, 하늘 위에서 땅 밑을 오시하던, 고대의 존재의 힘이 일부 깨어났습니다.]


[‘바쿠’의 종족이 낙시안에서 반거인족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쩌억, 하고. 바록때와 마찬가지의 알림이 귓가에 들리고서, 거대해진 몸의 바쿠가 깨어났다.

“자, 가서  동생이나 도와라.”

바쿠가 일어나마자, 내 명령을 듣고서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바록을 돕기 위해 움직이려다가,


“...정말로 가야 하는가, 주인?”


에네스타에게 맞기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양 팔로 가드를 올린 채 코피를 터트리고 있는 바록을 보고서 살려달라는 듯이 날 바라봤다.


“...미안하다.”


그런 바쿠를 떠밀 듯이,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에게 얻어터지고 있는 바록를 가리키며 말했다.


“가서 빨리 도와라.  동생 죽겠다.”

“...쿠오오오오!”


절규인지, 포효인지 모를 울부짖음과 함께, 바쿠가 그런 바록에게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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