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7화 〉137화 (137/370)



〈 137화 〉137화

팡!


가볍게 땅을 박찬 로로가 순식간에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의 앞에 도착해서는 이내 주먹을 휘둘렀다.

스르륵!

그리고 그런 로로의 주먹을 감싸고 있던, 지금은 옷처럼 바뀌어있던 검고 질척거리는 무언가가 다시 한  형태를 바꾸는 것이 보였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형태로.

어라...

저거 조금 위험하지 않나?  봐도 강해보였다. 대략적으로... 크리샤의 그림자 두 세 개정도로.

그렇게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투쾅, 하는 소리와 힘께 로로의 주먹이 가슴으로 내 팔을 애무하는데 열중하고 있던 에네스타에게 그대로 꽂혀 들어갔으니까.

로로의 주먹에 적중한 에네스타가, 형태만 칼날의 모습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처럼. 주먹에 닿은 것들을 베어버리는 칼날들에 피를 흘리며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에네스타에게 추격타를 날리려는 듯, 먼지를 일으키며 날아간 에네스타를 향해 달려드는 로로를 보고서, 그런 로로를 내가 멈추려고 하다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아, 나 아직 못 움직였지.

콰드득!

그런 소리와 함께, 먼지를 일으키며 날아가던 에네스타의 몸이 무너지듯이 사라졌다. 사라져버린 에네스타가 있던 곳에는 이상할 정도로 많은 먼지만이 뿌옇게 일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먼지가 아니라, 조금 다른 것 같은데.


하지만 주시자의 눈이 사용이 불가능하게 됐다는 알림과 함께, 정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오른쪽 눈 때문에, 하나뿐인 눈으로는 저게 뭔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 대신에, 나는 다른 오감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사라졌던 에네스타가 다시 나타난 곳은 바로 로로의 뒤였다. 희뿌옇게, 먼지와 같은 것들이 다시 모여들더니 이내 에네스타의 모습으로 바뀌고서.

곧이어 후욱, 하고 로로에게 주먹을 뻗는 에네스타와,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건지 곧바로 몸을 돌리며 발을 휘두르는 로로가 맞부딪혔다.

콰지직!

발차기로 에네스타의 주먹을 막은 로로였지만 충격을 온전히 막아낸 것은 아니었는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무너졌다.

단지 그것뿐, 로로에게는 아무런 상처도 없어보였지만. 그리고 그건 로로에게 갑작스럽게 기습을 당했던 에네스타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그 먼지 같았던 무언가가 무슨 능력이었던 모양이었다.

"...아쉽지만, 주인님. 우선 방해꾼부터 처리해야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즐거운 시간은 조금 뒤로 미뤄요♥"

스윽, 하고 그런 말과 함께 내 곁에 있던 나타와 모네가 입맛을 다시고서는 에네스타를 돕기 위해 로로를 향해 주문을 읊는 것이 보였다.


일단... 살았군.

상황이 다른 의미로 조금 안 좋아진 것 같긴 한데, 당장 내 정조의 위기는 어찌저찌 물러간 듯싶었다.


문제는 로로였다.

바록이나 바쿠, 그리고 다른 낙시안들마저도 각성한 뒤에도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의 연계에 속수무책이었다. 지금이야 에샤가 한 명 줄어들긴 했지만, 그렇다해도 3대 1이란건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내 걱정과는 달리, 로로는 에네스타와 거의 대등하게 맞서서 싸우고 있었다.

그냥 에네스타도 아니고, 나타와 모네의 보조를 받고 있는 에네스타와 말이다. 물론 검주인 에네스타에게 검이 없다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이미 에네스타는 검이 없어도 깡패임을 다른 낙시안들로 증명한 상황이니 나로써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지.


에네스타는 원래부터 괴물같이 강했었으니 그렇다 치고서, 로로가 저렇게 강했던가?

스스로에게 물어봤지만, 곧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었다. 분명 로로는 강했다. 또래의 다른 낙시안들과 비교해서도 훨씬 강한 축에 속해있었다.

바록이나 바쿠를 발로 걷어차서 기절시킨 전례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또래의 낙시안이였다는 것과, 당시 바록과 바쿠가 이미 기절 직전의 상태였던 것뿐이지 객관적으로 봐서는 로로가 저렇게까지 강하지는 않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다면 이유로는...

"로로가 각성했군요."

아마도 각성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때, 에루나가 다가와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이 들려왔다.

"뭐야... 언제 왔..."

무심코 팬티를 부여잡았던 나였지만, 이내 에루나가 방해꾼들이 사라진 틈을 노려서 날 어떻게 하기 위해 다가온  아니란  알 수 있었다.


"너... 옷은 어쨌냐?"


평소 입고 다녔던 시녀복이 아니라,   본적이 없었던 차림의 에루나가 보였으니까 말이다.


시녀복 형태의 갑옷을 입은 에루나가.

"혹시 몰라서 미리 벗어뒀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별 일 없었지만 말입니다."


혹시 모른다니 뭐가? 이번에는  일이 없었다니, 그건 또 뭔 소리고.


에루나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이대로 두면 천공성이 무너지던, 에네스타나 로로  중 하나가 쓰러지던,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았다.

“에루나, 저  좀 말려봐.”

주시자의 눈이 없어서, 내게 걸려있는 상태효과가 얼마나 지속되는지  수가 없었다. 그리 길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되긴 했지만. 어쨌든 당장 나는 움직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불안하긴 에루나에게 그렇게 부탁했다.


"...지금의 몸으론 힘이 듭니다만, 알겠습니다."

대신, 하고 에루나가 덧붙이듯이 말했다.

“지금의 저로써는  둘을 막는 것은 무리이니, 주인님께 약조를 받아야겠습니다.”


“약조?”

“간단합니다. 제가 하는 말에 대해서, 책임을 져주신다고만 약속해주십시오.”


그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가, 묻지 못한걸 떠올린 내가 에루나에게 물어보려고 했지만, 이미 에루나는 내 앞에 없었다.


근데 무슨 책임...?


그건 말해주고 가야지.

금세 자리에서 사라진 에루나를 찾자, 내 부탁을 받은 에루나가 한창 격돌중인 로로와 에네스타 사이로, 사뿐하게 걸어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서로 노려보면서,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은 로로와 에네스타의 사이로.

그러고서는 막 다시 부딪히려고 하던 로로와 에네스타의 주먹을 에루나가 막아 세웠다.


투쾅, 하고.

로로와 에네스타 사이에서, 양쪽의 공격을 모두 받는 에루나가 보였다.


쩌저적, 그런 에루나의 갑옷에 금이 가는 것도. 그에 반해, 에루나는 무척이나 태연한 표정으로 둘의 주먹을 붙잡은 채로 서있었다. 마치 에루나가 받았어야 했을 충격을 갑옷이 전부 대신해서 받은 듯 했다.


“...방해야.”

주먹을 가로막은 에루나를 보고서, 로로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들려왔다.


“그러는 당신도. 저에게는 방해됩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로로에게 손을 뻗는 에루나가 보였다. 그런 에루나의 손을 피해서, 뒤로 몸을 젖히는 로로도. 그리고 그 순간 휘릭하고 로로의 몸이 뒤집혔다. 손은 속임수였다는 것처럼, 로로의 다리를 걷어찬 에루나가 그대로 뒤집어엎듯이, 로로를 엎어 메친 것이었다.


툭, 하고 로로의 몸이 땅에 닿기 직전에 손에서 힘을 뺀 에루나가, 그대로 로로를 땅에 눕히면서 말했다.


“주인님께서, 당신들이 싸우는 것을 말리라고 했으니까요.”


곧바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던 로로였지만 에루나의 말에 멈칫하더니, 이윽고 나를 바라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로로가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한숨을 내쉬고서 꾹하고 입을 다물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만사가 다 귀찮아져버린 고양이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 로로를 보고서 에루나가 이번에는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을 바라봤다.


움찔, 하고.


에네스타의 몸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음...


에네스타가 에루나에게 엄청 두들겨 맞았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의 일이 떠올린  아닐까 싶었다. 정작 지금의 에루나는 그때처럼 에네스타를 일방적으로 이길 정도의 힘이 없기는 하지만... 이제 막 깨어난 에네스타가 그걸 알리도 없었다.

심지어 눈앞에서, 로로를 가볍게 눕혀버리는 에루나를 보고서, 에네스타가 잔뜩 긴장해있는 것이 보였다.

“그쪽의  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유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래서야... 주인님의 성은을 입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난 그 성은같은거  생각도 없는데?

하지만 그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이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하,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유는 알고 있다고. 그리고 다행히 주인님께서 책임져주신다고 했으니...”


응?

그 말에,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의 시선이 곧장 나에게로 향했다. 꿀꺽, 하고 목울대를 울리며, 마치 굶주린 짐승과 같은 눈빛으로 나를 보는 여섯 쌍의 눈에 오금이 저려왔다.


“으응...?”

뭔가 느낌이 쌔했다.

짝, 하고 그런 분위기를 환기시키듯. 박수를 치며 주변의 시선을 다시 끌어모은 에루나가 말을 이었다.


“다만, 지금과 같은 형태는 좋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본분을 잊지말아주시길. 당신들은 주인님을 모시는 시녀와 기사입니다. 그런 당신들이 주인님을 덮친다니, 어불성설이지 않습니까? 하물며 그를 막기 위해서든, 그렇지 않던 간에. 주인님 앞에서 서로 싸우는 모습까지 보이다니...”

그걸 아는 녀석이  덮쳤지?

여태까지는 시도에 불과했었지만, 오늘은 그렇지도 않았다는 걸 떠올리자, 에루나의 말에 입 안이 썼다. 분명 에루나의 말은 정론이었고, 틀린 점은 하나 없었지만 정작 그걸 지키지 않는 것이 에루나임을 나만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다는 말씀입니까?”


그러고, 에네스타가 에루나에게 깍듯하게 그렇게 묻자. 에루나가 나를 바라봤다.

“그건, 주인님께서 정해주실 겁니다.”






“...상황은 알겠어.”


에루나의 중재로, 얌전해진 에네스타와 마침 깨어난 에샤까지 포함한 에오시스 자매들이  말에 기대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시선이 따가워서, 고개를 돌리자 이번에는 그런 넷을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는 로로가 보였다.


그 모습에 속이 쓰려서 다시 고개를 돌리면 어쩌시겠습니까, 하고 묻는 것처럼. 평소와 같은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에루나가 보였다.


결국 내가 시선을 돌린 곳은, 뻗어있는 다른 낙시안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세상 고민 없는 것처럼 뻗어있는 녀석들을 보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누가 머리를 쎄게 한 대 때려서 기절시켜줬음 좋겠다.

“주인님?”

그런 나를 보며, 에루나가 그렇게 말했다.


도망치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아니, 너라면  상황에서 어쩔 건데?”


음마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 정액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세계의 음마도 그랬다. 남성의 정액이, 음마들의 식량이고, 힘의 근원이었다.

종족이 음마로 바뀌어버린 네 명은, 어찌됐건 남성의 정액을 갈구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  셈이었다.

나의 탓으로.

거기에, 그녀들은 아직도, 마력 의존증이라는 질병이 남아있었다.

즉, 나의 마력만 받아들일  있다는 질병은 여전한 셈이었다.

그리고 정액에는, 당연하게도 마력이 깃들어있었다. 아니, 오히려 정액은 꽤나 뛰어난 마력의 매개체였다. 루시아가 나에게 멋대로 먹였었던 거인의 정액... 그것을 드래곤들이 보관하면서 보물로써 간직해왔던 이유가 그런 이유에서인 거다.

귀중한 마법재료니까.

아무튼... 나는 상황을 머릿속에서 정리해봤다.


내 마력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체질이 된 네 명과,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액을 어떤 식으로든 몸에 받아들여야하는 종족인 음마.


즉,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은 필요 불가피하게, 내 정액이 필요하다는 소리였다. 그게 아니면... 다시 재우던가.

“저라면... 입니까?”

내 물음에, 그렇게 되묻는 에루나의 모습에 뭔가 실수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저라면... 그렇군요. 우선 에오시스 자매들의 건은 문제없을 겁니다. 그녀들은 루시아 아가씨께서 내린 주인님의 시녀입니다. 주인님께서 안는다고 하신들, 그거에 토를  사람은 없을 겁니다. 문제는 에네스타입니다. 그녀는 루시아 아가씨가 주인님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가디언을 내주신 것이니까요. 다만, 에네스타 역시 주인님께 충성을 맹세했으니까. 그 점을 따지고 들면 역시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고 에루나가 말을 이었다.


“저라면  전부 안을 겁니다. 제가 만약 주인님이라면 말입니다. 물론... 아가씨들을 위한 아기씨도 남겨 두어야하니, 매일 같이 그럴 수는 없겠습니다만.”

“...거, 속 편하네 진짜.”

에루나의 말 덕분에, 한층  기대어린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네 명의 시선을 받게 된 이쪽은 골치가 아파왔다. 그게 시선을 받는다고 나오는 것도 아닌데, 뚫어져라  고간 사이를 바라보는 노골적인 시선에 더더욱 그랬다.

그렇게 봐도 안나오니까 그만 좀 봐라. 그게 어디 아무렇게나 있는 것도 아니고...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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